(2001/08/21) 교갱협 제6차 영성수련회 주제특강

먼저 제 소개를 잠깐 하겠습니다. 저는 14살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20년 정도 살다가 돌아온 1.5세대 동포입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는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대학은 미국 히피들의 본산지이며 미국 자유주의 문화의 본산지인 버클리를 나왔습니다. 얼마나 거기가 기독교를 싫어하고 음란하고 아주 폭력적인 세상의 문화와 학문이 강한 곳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버클리를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목사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 다음 신학은 웨스트민스터에서 했고 학위는 풀러에서 했습니다. 굉장히 극자유주의 대학에서 극보수주의 신학을 하고 그 다음에는 초교파주의 신학교에서 학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나중에 이유가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상황을 보면 저희 아버님의 골수 고신파 목사님이십니다. 그래서 얼마나 무서운 보수 신앙교육을 이어왔는지 모릅니다. 지난번에 농담을 하나 들었는데 고신교단 교회에서 주일날 고양이가 성경책을 넘어갔답니다. 그 무서운 죄를 어떻게 심판했겠습니까? 그 고양이를 하루 종일 금식을 시켰답니다. 저희 아버님도 그래서 평소 때는 좋으신 분이신데 강단에만 올라가면 얼굴이 석고상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대학교에 가서 CCC라는 선교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고신교단에서는 평소에 안해보던 전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믿는 사람에게 접근하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선교단체 출신들은 특수부대 아닙니까? 그리고 대형집회를 기획하는 것을 담당했는데 몇 천명이 모이는 대형집회를 기획하는데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각양 각색의 사람을 접촉하는 것을 그때 가르쳐 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버클리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침례교에서 1년 정도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귀납식 성경공부를 미국 침례교처럼 잘 가르치는 곳이 없습니다. 미국교인의 50%가 침례교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학이 없다고 침례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예수를 처음 믿게 해서 성숙한 신자로 훈련시키는 선데이스쿨 시스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말씀이든지 주석없이 귀납식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을 거기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평신도 성경공부 지도자들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목사 이상으로 탁월하고 쉽게 잘 가르치더라고요.

그 다음에 서부 웨스트민스터를 다녔는데 동부 웨스트민스터의 지나친 보수주의를 싫어해서 제이 아담스, 죤 프레인, 에드 클라우니 같은 사람이 우리는 자유를 찾자고 하면서 서부로 와서 클래스를 오픈한 지가 몇년 안되었기 때문에 에드 클라우니 같은 분은 일곱 명에게 설교를 가르쳤는데 제가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탁월한 선생님이 학생수가 적었기 때문에 그때에 탄탄한 보수신학을 다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풀러로 갔는데 초교파주의 신학교이기 때문에 거기서 각양각색 교단의 목사님들을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장로교에서 자랐기 때문에 워십의 파워에 대해서, 찬양과 경배와 성령의 파워에 대해서 굉장히 무지했는데 풀러에서 오순절파 목사님들을 만나면서 그걸 느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 전도의 80%를 오순절파 교회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또한 세계에서 성장하는 교회90%가 바로 오순절파라고 합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서 워십의 파워를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에서부터 역사를 전공을 하면서 변호사가 되려고 미국과 유럽의 현대사를 전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버클리에서 미국과 유럽의 현대사를 가르쳐준 교수님들이 전부 나토의 장성들 아니면 미국 정계에서 일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현장감 있는 세상의 정치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때 세상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짬뽕이 되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한 영적인 리더십이 만들어지는데 있어서 자기의 신학을 건강하고 성경적인 것으로 갖고 있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세상을 끌어안는데 있어서는 시각이 넓고 품이 따뜻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교회에 와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사람을 향해서 이단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는 것입니다. 칼 같이 잘라버리니까 그것이 자신들의 리더십을 제한하는 리더십 킬러가 되어버립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 와서 온누리교회에서 장로 리더십 스쿨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항상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엄선해서 장로후보자를 뽑아서 1년 동안 아주 혹독한 훈련을 거칩니다. 제가 훈련교감하면서 조금 인심을 잃은 것 같습니다마는 장로님들을 훈련하는 일을 제가 하고 있고, 또 저의 교회의 열린 새신자 예배에서 스피커로 섬기고 있는데 열린 새신자 예배는 윌로우크릭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한테 자료를 받은 것으로서, 교회 문턱에 들어오기 힘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눈높이에 맡는 프로그램과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언어로 쉽게 복음을 전하는 예배 세팅을 만들어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은 자리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 와서 많이 하게 된 것이 교회 집회보다는 기업체의 강의와 대학강의를 많이 갑니다. 이렇게 된 것은 IDAS(International Design Advanced School) 최고경영자스쿨이라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와서 얼마 안되었는데 전화를 받았습니다. IDAS 최고경영자스쿨 기획담당자인데 종강강의로 하용조 목사님을 모시려고 했더니 그 분이 못오시고 저를 추천했다고 해서 쉽게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학생들 명단을 팩스로 넣어주겠답니다. 강의를 가는데 학생명단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자기 단체의 소속원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오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사무실에 가보니까 동료 목사님들이 웅성웅성해요. 다들 팩스의 명단을 보고 괜찮겠냐는 겁니다. 정말 신문지상에서나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톱 정.재계 인사들, 젊은 40~50대 회장급들입니다. LG, 삼성, 현대, 부회장급들과 정계 비서실장들입니다. 학생들이 너무 무서워서 다시 전화해서 강사 선정에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고 하 목사님을 모시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들도 그러려고 했는데 하 목사님이 적극 추천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갔습니다.

종교인은 하 목사님과 제가 처음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언어를 한번도 못씁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처음으로 만든 강의안이 있는데 이게 뭐냐하면 세상에 목회자가 가서 전하는 전도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익숙한 종교적인 언어를 쓰면 안되기에 이걸 안 쓰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담은 그들의 비즈니스 리더십을 강의해서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열게 하는 것입니다. 일단 이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부터 제거하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시각만 열어줘도 그건 크게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런 강의를 처음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책임자들이 우리 교인들인데 걱정이 심해요. 전혀 지명도가 없는 강사를 불러다 놓고 학생들은 굉장히 태도도 나빠요. 그런데 그날 제가 열심히 기도하고 가서 강의를 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그 학기 최고의 강의로 뽑혔습니다. 그때부터 운명적으로 줄줄이 연결이 되어서 기업체 강의를 많이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이걸 다녔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 그 부분의 소명을 주셨습니다. 교회 집회 다니는 목사님은 많지만 이 사람들은 죽었다 깨나도 자기 발로는 절대 교회에 안갈 사람들입니다. 이게 선교지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언어도 우리가 쓰는 언어랑 다르고 습관도 다릅니다. 그러나 상류사회는 예수가 안 필요합니까? 복음이 필요하고 예수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도된 것을 보면 중산층 중심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상류층과 낮은 계층에는 복음이 효율적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이 상류사회의 가치관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꿔놓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한테 그들이 알아듣는 비즈니스 언어로 강의를 해서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열게 해서 그 중에는 이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한 강의 중에 하나를 오늘 이 시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1870년대에 유럽은 춘추전국 시대였는데 그 때 독일이 통일을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세월동안 프랑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통일한 독일이 그때까지 무적의 군대라고 불렸던 나폴레옹 3세의 군대와 오스트리아 군대와 러시아군대를 연전연패 시키면서 19세기말 유럽 최강의 군대로 군림했던 독일의 군대. 어떻게 신생국가의 군대가 그토록 강할 수가 있었는가? 20세기 초반 1, 2차 세계대전까지도 독일의 군대의 강함은 계속 증명이 되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2차대전 때 미군 8명이 죽어야 독일군이 1명 죽을 정도로 독일 지상군의 전투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 군사정치학 교수님이 나토의 장성이었는데 지금도 탱크전에 있어서는 나토에서 독일군 장교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사막의 여우 롬멜도 연합군이 엄청난 물량보급으로 죽여서 그렇지 군수물자 보급만 엄청나게 되었더라면 그 사람은 절대 패하지 않았을 인물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배출해낼 수 있었는가? 이것은 1870년도에 독일 통일전쟁을 수행했던 헬무스 본 몰트케 원수가 만든 독일군 작전참모부(The German General Staff)가 그 비결입니다. 몰트케 원수가 생각해보니까 무선통신시설이 없던 당시에 수십만의 대군이 총사령관의 재가를 일일이 받아서 군대가 전투결정을 수행한다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여 그러면 어떻게 연락을 할 것이냐? 그래서 몰트케가 생각하기를 아주 총명한 젊은 200명의 장교들을 뽑아서 몰트케 자신이 2년 동안 많은 제자훈련을 시킵니다. 전쟁의 모든 이론과 실전경험을 철저히 가르친 다음에 이 200명의 엘리트 장교들을 일선의 사령관 옆에 깔아놓습니다. 이 사람들을 가리켜서 독일군 작전참모부 장교라고 부릅니다. 유사시가 되면 전체 작전방향만 세워지면 총사령관의 전권이 주어집니다.

마치 몰트케는 200명이나 되는 자기의 분신을 전선에다 깔아놓은 셈이 되는 겁니다. 독일군은 60만 대군이지만 움직이는 것이 마치 벤처기업들 같았다는 겁니다. 대기업의 단점이 무엇입니까? 공룡은 너무 커서 뒤뚱거립니다. 그러나 벤처기업은 민첩하지요. 대군이 벤처기업처럼 움직이게 만들어놓은 겁니다. 일일이 나폴레옹 3세의 재가를 받아야 했던 프랑스의 100만 대군이 한달도 못되서 몰트케의 60만 대군한테 뭉그러지고 맙니다.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히죠. 그리고 오스트리아도 러시아도 모두 뭉그러집니다. 1차 대전, 2차 대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하나를 꺾기 위해서 유럽의 5대 강대국이 붙고 미국까지 붙어야 그 군대를 깰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독일군 작전참모부의 비밀이야말로 바로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카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짐 콜린스의 “영구히 보존되게 만들어진 것 : 비전기업들의 성공적인 습관들(Built to Last : Successful Habits of Visionary Companies)”

한 7년 전에 나온 책으로 미국의 비즈니스 경영자들의 모든 책상 위에는 꼭 놓여있어야 된다는 책이 하나 있었는데 이게 바로 짐 콜린스의 “영구히 보존되게 만들어진 것 : 비전기업들의 성공적인 습관들(Built to Last : Successful Habits of Visionary Companies)” 이라는 책입니다. 제가 세상의 비즈니스 책을 보고 그렇게 은혜를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세상의 어떤 전문분야든지 간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극치에 다다른 전문가는 거기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조각가도 절정에 이르면 하나님을 봅니다. 의사나 군인도 얼마나 신심이 깊은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를 알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노력과 탁월한 지혜와 기민한 리더십의 절정에 오른 사업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사람들의 사업하면서 세운 철학은 거의 성경말씀입니다. 여러분,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더 입증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과학과 싸울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즈니스 책들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리더십 원리를 너무나 잘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짐 콜린스는 미국의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의 교수인데 이 경영대학원에서 6년 동안 팀이 리서치한 결과를 가지고 이 책을 썼습니다. 짐 콜린스가 물었던 질문은, 누구든지 천재성과 운을 가지고 순식간에 한번의 스타는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이기고 또 이기고, 또 이기는 식으로 계속 이겨간다면 여기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대학농구는 4년마다 선수들이 바뀌기 때문에 스타가 한명 있으면 3, 4년 제패하기는 쉽겠지만 그 다음에 계속 제패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미국같이 경쟁이 치열한 데에서는 더 어렵습니다. 60년대 UCLA대학 농구팀은 11번을 제패했습니다. 짐 콜린스가 물었던 질문은 한번 두번 세번 계속 정기적으로 이기게 한다면 거기에는 뭔가 리더십의 비밀이 있다는 겁니다.

짐 콜린스는 그걸 비즈니스로 적용을 합니다. 아직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훌륭한 회사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빌 게이츠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훌륭한 회사는 창시자가 죽고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망하지 않고 더욱 건강하게 계속 승리를 쟁취해나가는 장기적으로 승리를 계속 유지해가는 단체이다. 그 단체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래서 짐 콜린스가 미국에 있는 18개 우수 기업들의 역사를 조사합니다. 그것도 50년 이상된 기업들만 찍어서 기업역사를 조사해서 한 조직으로 하여금 장시간 동안 탁월한 성과를 올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의 열쇠는 무엇인가를 연구해서 스탠포드 연구팀이 6년 동안 만든 비밀을 공개를 했는데 제가 이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리더십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1. 시간을 알려주는 것(Time-Telling)보다 시계를 만들어 주는 것(Clock-Buliding)이 더 중요하다

어느 마을에 임마누엘 칸트 같은 시간의 천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있는 한 시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죽고 난 다음이죠. 그 마을은 그 사람에게 의존했던 것만큼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자기가 죽기 전에 자기의 천재성을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은 시계를 만들고 죽을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기의 천재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을 만들기 전에 짐 콜린스는 미국의 많은 경제전문가들과 함께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기업이나 단체의 흥망성쇠는 창시자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적인 천재성과 그의 폭풍 같은 리더십이 좌우한다.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정주영 없는 현대를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헨리 포드 없는 포드를 생각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몇 십년이 지나도록 계속 챔피언의 자리를 유지한 기업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짐 콜린스가 놀란 결론은 지나치게 카리스마적이고 지나치게 천재성이 많은 창시자의 존재는 장기적인 단체의 발전에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1) 제니스(Zenith)의 창업자 유진 맥도날드(Eugene Mcdonald) vs. 모토롤라(Motorola) 창업자 폴 갈빈(Paul Galvin)

1929년 즈음에 시카고 근교에서 거의 비슷한 아이템으로 세워진 두 회사의 예를 들겠습니다. 둘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는데,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모토롤라이고 또 하나는 제니스사입니다. 제니스의 사장은 유진 맥도날드라는 사람인데 유진 맥도날드의 별명은 사령관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봐도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시겠지요. 회장 옆에 가면 컴퓨터 소리가 난다고 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사람입니다.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때문에 스텝들이 0.5초 내에 포인트를 말하지 않으면 재떨이를 날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다들 의견 있으면 말해봐!” 해놓고 1초도 안 기다리고 “의견없으면 내가 하지.” 하면서 스텝회의를 다 장악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회사의 모든 아이디어와 추진은 회장이 다 합니다. 이 사람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내가 없는 제니스는 상상할 수가 없다!” 입니다.

이에 비해서 모토롤라의 회장이었던 폴 갈빈은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엔지니어 출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폴 갈빈은 이 회사를 처음 시작하면서 경영자 저널에 뭐라고 썼냐 하면 “나는 내가 별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모토롤라를 팀리더를 양성하고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는 회장이 되겠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토롤라는 수직권위적인 그 시대에 이미 벤처 같이 그 회사를 운영했던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기르듯이 팀 매니저한테 자기의 특기에 따라서 회장의 전권을 주고 연구비를 주면서 준비시켰던 사람입니다.

두 회장이 살아있을 때에는 비슷한 규모로 갔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 두 회장이 죽고 그 다음 세대로 리더십 바통이 넘어가면서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제니스는 맥도날드 회장이 죽고 나니까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갈팡질팡 하다가 LG전자에도 주식이 한번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지금도 2류급 TV 라디오나 만드는 회사로 전락해있습니다. 그에 비해 모토롤라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전세계의 정보통신기기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으며 월 스트리트 주가에서 최상단을 치고 있는 회사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은 폴 갈빈의 손자 밥 갈빈이 회장인데 지난번에 제가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우리 회장들의 경영방침은 똑같다. 할아버지의 생각대로 나는 매니저들을 제자화시키고 그 매니저들이 최대한 리더십 역량을 발휘하게 해주는 것이 모토롤라의 경영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교회의 법칙과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모토롤라의 최고 경영진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도 굉장히 많습니다.

 

2. 이윤추구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

짐 콜린스가 발견한 또 하나는 톱리더가 수대에 오면서 바뀐 기업들을 보니까 이윤추구보다도 더 중요한 무엇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냉엄한 기업현장에서는 일단 돈버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익을 내야 된다는 것이지요. 한국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홍콩의 재벌그룹의 손자와 같이 다녔는데 자기집의 가훈이 한국 사람들과는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는 것이랍니다. 자기 할아버지 때에 한국인을 믿고 엄청난 양의 쌀을 계약을 했는데 첫번째 쌀의 3분의 2에서 모래가 섞여 나왔답니다. 그 사람은 도망가서 찾을 수도 없고, 그 할아버지가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전쟁의 상처를 주었던, 그래서 그토록 미워했던 일본인들은 비즈니스를 해볼 때 신용이 분명했다는 겁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기업현장에서 이윤보다도 소중한 그 뭔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1) 제약회사 머크(Merck)의 예

“머크”라는 제약회사의 예를 들겠습니다. 회사 사훈이 “우리는 병을 이기고 인류를 돕는 약을 개발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둔다” 입니다. 그런데 이 사훈을 테스트하는 시점이 이르렀는데 2차대전 말기였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머크제약회사가 결핵치료약을 개발했습니다. 패전국 일본에 엄청나게 만연하고 있었던 결핵의 치료약을 머크가 단독으로 독점 개발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비자는 무궁무진하고 제품은 머크만이 독점하고 있는데 소비자가 돈이 전혀 없는 패전국의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머크사가 고민하기를 자신들은 자선단체도 아닌데 이렇게 많이 만들어놓은 약을 어떻게 그냥 주는가, 그래서 국방성과 적십자사를 돌아다니면서 이걸 싼값에 사서 일본에 원조를 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사지 않았습니다. 비즈니스 윤리상 이걸 어떻게 그냥 줍니까? 그래서 중역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그냥 버린다면 일본인들은 많이 죽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양심을 가지고 병을 퇴치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둔다는 사훈을 걸어놓은 우리가 앞으로 사원들을 끌고 나가겠는가? 세상사람들한테 어떻게 팔겠는가? 그래서 머크가 비즈니스적으로는 바보 같은 결정을 합니다. 일본에다 무상으로 갖다준 것입니다. 그리고는 경제적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오늘 머크의 중역인 해외담당 지사장이 나와서 말하기를 머크의 해외지사 중에 매출액이 가장 높은 곳은 일본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일본이 가난했을 때 약을 공짜로 풀어준 머크의 은혜를 일본사람들도 결코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비즈니스 회사들을 보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순간의 이익보다도 다른 뭔가를 추구해야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2) 스티븐 코비(Steven Covey)의 “본질적 위대성(Primary Greatness)과 부수적 위대성(Secondary Greatness)”의 차이

우리는 여기서 스티븐 코비가 말한 본질적 위대성과 부수적 위대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인간의 위대성을 판가름할 때 우리는 많은 경우 부수적인 위대성을 가지고 한 인간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재산이며 학벌이고, 외모이고 인맥입니다. 스티븐 코비는 다 좋지만 본질적인 위대성이 밑에 포맷되지 않은 채로 세워진 부수적인 위대성을 가진 리더가 있으면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위대성은 무엇입니까? 자기보다 못한 인간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이고 앞을 볼 수 있는 비전이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고 다른 사람들한테 배울 수 있는 겸손 같은 것이 본질적인 위대성으로 자리할 때만이 부수적인 위대성은 탄탄하게 세워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상호변화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과 상호교환적인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의 차이

많은 경우 세상에는 상호변화적인 리더십과 상호교환적인 리더십이 있습니다.

상호교환적인 리더십은 계약관계입니다. 왜 보스는 그 직원들을 데리고 있고 직원들은 그 보스 밑에 있습니까? 이유는 직원들은 그 보스를 싫어하지만 월급을 주니까, 보스도 직원들이 싫지만 일해서 돈벌어 주니까 할 수 없이 서로 이익이 되는 동안만 계약식으로 리더십과 팔로우십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날 많은 세상의 기업들과 심지어는 교회까지도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란노 목회상담을 하다 보니까 얼마나 많은 부교역자가 담임목회자를 싫어하는지 놀라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상호변화적인 리더십입니다. 그것은 내가 이 리더 밑에 있음으로서 돈을 받고 하는 것 이상으로 그의 인격에 감동을 받고 그가 만들어놓은 비전을 통해서 내게 자극이 되고, 그가 만들어 놓은 공동체정신에 의해서 나의 용량이 커지는 것을 만끽할 때, 내 인생이 이와 함께 함으로써 상호변화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리더도 팔로우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배우지 않습니까? 목사도 교인들한테 많이 배우는 것을 봅니다. 정말 교인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 교인들의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영성이 변해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상호변화적인 리더십.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것인데 오늘날 많은 경우 이게 없다는 것입니다.

 

3. 원대하고 분명한 비전을 세워라

그런데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짐 콜린스가 발견한 것이 탁월한 기업들에는 원대하고 분명한 비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쏘아놓고 그게 내 목표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현실을 초월하는 엄청나고 원대하고 분명한 비전입니다. 60년대 초에 케네디 대통령이 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을 달에다가 올려놓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60년대에 미국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렇지만 달에 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과학클래스가 업데이트 되기 시작하고 미국의 각종 고급인력을 연구인력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꿈이 60년대에 달에 사람을 보냈고 그러므로 미국의 국가적인 역량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탁월한 단체들에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2000년이 넘게 끌어오는 것 중에 하나는 “너희가 땅 끝까지 가서 제자를 삼으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세계화라는 단어가 이미 2000년 전에 하나님의 가슴에 있었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있기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 촌놈들한테 엄청나고 원대한 꿈을 주었던 것이지요. 그 비전이 도대체 인간적으로 보면 안될 것 같았던 주님의 교회를 끌어오는 핵심적인 요소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4. 핵심(Core)을 보존하되(자기 기업의 독특성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절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과감한 발전(Progress)을 자극하라

많은 단체들이 변화에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변하지 말아야 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바꾸기를 싫어합니다. 내가 무엇을 안해야겠다는 것이 분명해야 다른 모든 것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가령 기업들도 역사가 오래된 회사들은 보면 놀랍게도 기업철학이 똑같습니다. 디즈니의 기업철학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시대와 문화의 요구에 따라서 막 바꿔줍니다. 1930년대는 백설공주 같은 칼라 만화영화를 하나 만들어 놓아도 애들이 행복해 했습니다. 그러나 50년대로 넘어오니까 디즈니랜드라는 놀이공원을 만들어줘야 사람들이 행복해 합니다. 90년대에 오니까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어줘야 사람들이 행복해 합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철학은 절대 변하지 않지만 그 철학을 시대에 맞게 바꿔주는 것은 기가 막히게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인 확신이 있는 목회자는 그 복음을 변하는 시대에 전달하는 방법 만큼은 과감하게 바꾸어갈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의 복음적 뿌리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열린예배를 해보면서 느낀 것도 그것입니다. 역시 열린예배에는 좋은 가수를 세우고 음악을 하는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는 사람의 90% 이유는 설교자입니다. 과연 그 설교에 복음의 진수를 쉽고 분명한 언어로 전달해주는 것이 있는가? 다른 모든 것은 그것을 도와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디지털 시대라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구나. 모든 것은 그것을 받쳐주는 것일 뿐이다. 이 말씀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본질을 전하는 방법만은 우리가 얼마든지 바꿔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이단시비 걸 것은 없습니다. 주보를 칼라로 바꿔주고 드럼을 두들기고 힙합을 쳐주고 핵심을 보존하기 위해 과감한 발전을 자극하는 것, 그것은 시대를 넘어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비밀이기도 하면서 변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복음을 던지는 교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5. 많은 것을 대담하게 시도해보고 그 중 잘되는 것에 집중하라

탁월한 기업들이 내린 결정 중에 우리 생각에는 아주 치밀한 중역회의를 해서 내린 결정 같은데 많은 경우에 보면 계산된 위험부담이 많았습니다. 매출액이 세계2위 기업인 월마트의 경영비밀에 대해서 하버드나 스탠포드에서 페이퍼를 많이 썼습니다. 페이퍼의 많은 경우가 결론이 월마트가 치밀하게 마켓의 변화를 예감하고 전략을 세웠다고 했는데 그걸 월마트의 사장한테 가지고 갔더니 사장이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내가 그걸 다 예감했으면 신이지 인간이냐?” 그러면서 성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소개가 안되었을 뿐이지 실패를 성공보다 조금 덜 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모험과 실패를 통해서 성공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옥외 엘리베이터도 처음에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죠? 이미 건축공사가 반은 끝난 빌딩에 공사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70층이 넘는 빌딩인데 다시 할 수도 없고 큰일났습니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청소부 할아버지가 지나가다가 “나 같으면 밖에다 만들겠다.” 고 했습니다. 그 어떤 엔지니어도 그걸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나서 밖으로 달려나가 보니까 기가 막힌 강이 보이는 겁니다. 엘리베이터를 밖에다 달고 벽을 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거 하나 때문에 그 빌딩의 시가가 다섯배나 뛰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자신들이 일부러 한 것처럼 그 빌딩을 팔았습니다. 그게 세계 최초의 옥외 엘리베이터의 시작입니다.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보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왜 목회를 못하는가 하면 공부한 것이 자기 지식의 한계를 주어서입니다. 많은 선배 목회자들을 보면 이 분들이 자기 단점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이 지나쳐서 망하는 것을 봤습니다. 저희 아버님 친구분은 기도로 목회하겠다고 월요일에 기도원에 가셔서 토요일에 오십니다. 어린 제 마음에도 목회가 절대로 안될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안보고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환상을 봅니다. 아픈 교인들을 심방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을 목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성의 세계는 프리즘과 같아서 빨주노초파남보 중에 어느 게 진짜 빛입니까? 답은 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익숙한 것을 가지고 절대화시킵니다. 제가 아는 분은 성경공부로 Ph.D를 하신 분인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성경공부를 시킵니다. 나중에 그 교회는 대단히 머리통이 큰 아카데미로 전락했습니다. 선교도 전도도 하지 않고 성경공부만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여러가지를 시도해보는 모험정신, 자기와 다른 의견을 듣고 틀을 빠져나가 보는 모험정신, 그런 것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6. 톱리더들을 내부에서 양성하라

70년이 넘도록 챔피언십의 자리를 고수한 탁월한 기업들을 조사해보니까 최고경영자를 외부에서 영입해서 경영난을 극복한 기업은 5%도 안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신선한 변화는 오히려 내부에서 자기들이 키워낸 리더들에 의해서 나온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전 이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은 교회에게 주는 제자훈련 사명과 비슷한 것입니다. 자기가 땀 흘리지 않고 따먹겠다는 발상은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1) 펩시콜라(PepsiCola))의 로저 엔리코(Roger Enrico) 회장

펩시콜라의 로저 엔리코 회장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회장은 천오백 명의 펩시콜라의 세계 톱 매니저들을 훈련시킨 리더십스쿨의 교장입니다. 왜 회장인 이 사람을 리더십스쿨의 교장으로 임명했느냐 하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1980년도에 무적의 코카콜라에 펩시콜라가 도전했습니다. 콜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몰라도 코카콜라는 알았을 정도이며 내 몸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라고 했을 정도의 코카콜라를 80년대 중반에 펩시가 꺾었습니다. 콜라전쟁에서 펩시를 승리로 이끌었던 선봉장이 바로 로저 엔리코입니다. 이 로저 엔리코를 회장이 불러서 “너는 우리의 마이클 조던이다. 너처럼 탁월한 메니저는 없다. 너 때문에 우리가 코카콜라를 꺾었다. 그런데 이제 중요한 것은 천오백 명이나 되는 전세계 지도자들을 훈련시킬 때 항상 하버드, 스탠포드에서 교수들을 데리고 와서 강의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 똑똑한 소리를 하는데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이 가서 그 사람들의 강의를 듣고 정리를 해서 현장경험이 있는 당신의 경험과 그 이론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가르쳐라.” 그래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자기가 스타인 것과 스타를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수영을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옆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목회를 잘하는 목사님한테 설명을 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어려워 합니다. 자기는 하는데 남한테 가르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펩시콜라가 섬을 하나 샀습니다. 로저 엔리코는 그곳에 9명씩 선발해서 18개월 동안 90명의 리더들을 멘토화 시킵니다. 여기서는 두 달 동안에 한기씩 졸업을 시키는데 세계지사의 현실을 가지고 로저 엔리코가 강의를 한 다음에 전부다 프로젝트를 하나씩 만들게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90일 동안 실천에 옮겨보고 다시 돌아와서 그걸 가지고 다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180명의 경영자들을 1년 동안 이 사람이 훈련을 시켰는데 계열사인 KFC의 패밀리패키지도 그때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이걸 하면서 로저 엔리코가 전세계 지사장들의 사정을 다 파악해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펩시콜라의 차기 회장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7. 변방의 인재를 주목하라

미국 해병대에서는 장군진급이 확실시 되는 젊은 장교들은 노스캐롤라이나와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의 미군 해병 신병훈련소의 교관으로 반드시 2년을 봉사하게 합니다. 그리고 전 미국에 흩어져 있는 해병대 모병소의 면접담당 교관으로 1년을 봉사를 하게 합니다. 그 이유는 필드에서 탁월한 장교들이 나중에 장군이 되기 위해서는 신병들을 훈련시키면서 뒹굴어봐야 다른 이들을 리더할 수 있는 리더십이 커진다는 겁니다. 신병들 입장에서도 최고의 선배들한테 훈련을 받아야 해병대에 대한 프라이드도 커지기에 일석이조라고 합니다.

미국의 기업도 제대로 된 곳은 매니저 훈련하는 팀의 팀장들로 현장에서 제일 탁월한 사람을 배치합니다. 제네럴 일렉트릭의 회장도 그 바쁜 사람이 자신의 시간의 55%를 다음 세대의 매니저를 양성시키는 학교에 가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 스케줄을 봐도 12명의 제자들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걸었는지 알 수 있지요. 탁월한 기업들은 그것이 미래에도 살아남는 길임을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신학교에서 신선하게 일고 있는 바람은 달라스의 척 스윈돌 총장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학교의 설교학 교수가 가르쳐주는 대로 가서 설교해서는 교회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너무 목회현장을 모르는 것도 신학생들의 공통적인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신학교들이 어떤 시도를 했는가 하면 목회를 잘하는 목회자들을 데려다가 D.Min을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시킨 겁니다. 그리고는 목회를 하면서 한 시간씩 강의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교수들은 강의를 줄이고 가서 목회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신학교 교수들은 목회를 해보면서 앞으로 자기가 훈련시킨 신학생들이 투입될 현장의 감각이 더욱 새로워지게 되었고, 그러니까 교수내용과 방법이 달라지게 되고 목회자들은 신학교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쳐보면서 목회현장이 너무 바빠서 정리하지 못했던 자기의 목회이론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보여준 곳이 바로 달라스의 척 스윈돌 총장입니다. 척 스윈돌 총장은 미국의 스펄전이라고 할 정도로 설교를 잘하는 사람인데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가들을 키워내는 신학교가 달라스 신학교입니다.

척 스윈돌, 빌 하이벨스, 스콜드 맥도날드 등 제가 개인적으로 들어본 그 분들한테 질문을 꼭 한가지 하는데 “지금 몇 년 동안 하나님이 당신에게 준 소명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나는 젊은 리더들의 올드 프렌드가 되고 싶다. 나는 이제 남은 생애를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과 소그룹을 하고 그들과 수양회를 다니고 그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전수하는데 보내고 싶다. 그 어떤 집회보다도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리더는 어쨌든 간에 다음 세대의 리더들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교육열이 높은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작은 나라가 급성장을 이루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시킬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 아킬레스건이 되어서 지나친 학벌 중심주의와 특정 신학교 중심주의가 탁월한 인재들을 발견하는데 큰 거침돌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리더를 발굴할 때에 눈을 크게 뜨고 변방의 인재들을 발굴해야 합니다.

 

(1) 프리넬과 아인슈타인

1875년에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의 집약지는 파리 아카데미였습니다. 물리학에 있어서 당시 신앙처럼 여겨지던 것이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설이었죠. 그런데 그 만유인력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입자론에 대한 충격적인 논문을 누가 제시합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그것이 빛에 대한 새로운 이론으로 자리를 굳히게 됩니다. 그 논문을 제시한 사람은 파리 아카데미에 있는 그 수많은 엘리트들이 아니라 지방을 돌면서 열차선로를 감독하던 열차 엔지니어 프리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흐릅니다. 그러나 프리넬의 이론은 충격적인 것이긴 했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는데 더욱 완벽하게 그 빛의 이론을 입증해야 한다고 다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합니다. 100년 뒤에는 세계 물리학의 중심이 베를린과 베튕겐으로 옮겨지는데 거기에 있는 천재들도 프리넬이 제시했던 빛의 이론을 완성시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돌파구를 누가 열었는가 하면 1905년 스위스의 작은 지방도시 베른이라는 시골의 특급우체국에서 근무하던 직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엽니다. 상대성 빛의 이론을 통해서 20세기 초유의 고전물리학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프리넬과 아인슈타인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전통적 명문의 인재들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갖혀서 씨름하고 있을 때 이 무명의 인재들은 오히려 일류기관의 밖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새로운 각도에서 이 문제를 직시하고 이 문제의 돌파를 열어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립된 것 같았고 소외된 것 같았던 그들의 변방성이 중앙의 과학자들은 상상도 못했던 창조성의 산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미국교회 목사님들이 놀라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신학교를 중퇴한 빌 하이벨스가 어떻게 빌리 그래함이 지목한 미국의 다음 세대의 최고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을까? 다들 그것이 의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메이지 이전 에도시대에 일본에서는 무사계급이 지배계급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항상 동양고전과 유교를 가르치는 학교에만 다녔고 이 사람들이 무시하던 하급 무사들이나 평민들은 승려들이 경영하는 절인 데라고야라는 학교에 다녔는데 이 데라고야는 나중에 일본의 사립학교가 됩니다. 거기서 영어, 네덜란드어, 서양문학을 가르칩니다. 상놈의 학문이라고 상류층 명문가문의 자제들이 무시하던 그 학문을 하류가문의 인재들이 배웁니다. 그리고 이들이 1860년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됩니다. 이또 히로부미 같은 사람도 아주 미천한 말을 치는 머슴이었지 않습니까? 일본 교육이 당시 사회의 하류층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이것은 우리에게 기존의 엘리트 기관을 신격화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카톨릭이 스스로를 신격화했고, 미국의 많은 보수교단들도 자기 신학교를 나와야만 정확한 목회자라는 사실을 신격화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전혀 뜻밖의 변방의 인재들을 일으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배움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배운다’와 ‘가르친다’를 똑같은 동사로 쓰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떤 의미를 줍니까? 가르치는 자는 계속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일본의 차세대 리더십 양성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경우는 일본 전역의 최고수들과 상대해서 60명을 저승길로 보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일본의 학자들이 말하기를 만약에 미야모토 무사시가 당시 전통의 엘리트학원인 도쿄나 오사카의 검술학원 출신이었다면 몇 게임 못하고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법은 전통학원의 검법이 아니라 전통학원의 검법을 공부한 다음 자기가 자연으로 나가서 익힌 검법입니다. 자기는 어린애랑 마주쳐도 몸조심을 한다고 하면서 배운 검법이지요. 무사시는 검술계에서 은퇴한 다음에 묵화를 그렸습니다. 묵화를 그리는 것도 경지에 이르러서 그가 죽을 때에는 묵화로 일본에서 그 사람을 능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뭐든지 하면 잘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묵화든 뭐든 모든 것은 자기가 검술을 터득한 그 법칙에 따라서 하면 된다고 해서 오륜의 책을 썼는데 아홉가지 비결입니다. 그중 첫 번째가 정직하게 생각하라. 그리고 나머지 여덟 개는 네가 하고 있는 일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은 한시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철저하고 끊임없이 연마하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칼싸움을 하기로 마음 먹으면 미리 가서 답사를 하고 그곳의 풀이 어떤 방향으로 누워있고 흙이 어떤 토양인가? 바람이 어떻게 부는가? 상대방이 어떤 옷을 입었는가? 그것까지도 다 공부를 한답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천재 같지만 그에게는 이런 배움의 자세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칼은 총이 나오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총은 대포가 나오면 무용지물이 되고 대포는 미사일이 나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486급 컴퓨터는 펜티엄이 나오면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지요. 이런 것을 가리켜서 창조적 파괴라고 합니다. 이 창조적인 파괴는 지나치게 틀에 박힌 전통적인 엘리트기관에서는 극히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전통과 명성에 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이지요. 기업체 경영의 법칙에 대해서 이카루스의 모순이라는 법칙이 있는데 “기업은 성공했던 요인 때문에 망한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도 학벌과 집안을 리더의 자격으로 지나치게 따지는 우리 문화에서 이것은 의미깊은 역사의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선입관을 깨고 바라보면서 번뜩이는 변방의 인재들을 우리가 뜻하지도 않았던 데서 찾아내야 됩니다. 나이를 초월하고 지방색을 초월하고 교단을 초월하고 학벌을 초월해서 바라보면 탁월한 변방의 진주들이 있습니다. 눈만 열면 성령님께서 보여주십니다. 그들을 튀게 함으로써 기존의 인재들도 자극을 받아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개화기 초창기의 한국 북부지방

한국기독교가 6.25 이전에는 거의 북쪽에 집약되었던 이유를 아십니까? 선교사들이 적어놓은 일기를 보면 북부지방 사람들과 남부지방 사람들은 성질이 달랐다고 합니다. 남부지방은 우리나라 전통 유림의 본산지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북부지방 사람들은 관직에 등용시키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북부지방 사람들도 과거를 패스하는 비율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앙관직에 진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상업에 종사하면서 중국, 러시아, 아라비아로 다니면서 일찌감치 외국과 문물을 교환하면서 외부세상에 대한 생각이 열려 있었습니다. 조선의 역사, 조선의 유교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방의 물결이 들어오니까 북부지방 사람들처럼 적극적이고 개척적인 정신으로 그걸 새롭게 받아들인 사람이 없었던 것이지요. 남부지방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했으면서도 유교가 최고의 것인 양 잡고 있었을 때 북부지방 사람들은 빨리 예수를 믿고 빨리 경제를 활성화시켜서 탁월한 자기 계발의 터전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Res Gestae Populi Romani)”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첫 번째 도입부분에 이렇게 나옵니다. “지성에서는 헬라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루투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이라고 로마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만이 마지막 승자로 남아 번영할 수 있었을까?”

 

1. 융통성 있는 인재양성 시스템

시오노 나나미가 발견해낸 비결은 로마의 융통성 있는 인재양성 시스템입니다. 로마의 정계나 군대에서는 고위직에서 일하던 사람이 다시 하위직으로 와서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령 오늘의 국무총리에 버금가는 사람도 나중에 재무관에 선출되면, 오늘날의 재경국장과 같은데 거기서 또 성실하게 일했다고 합니다.

직위에 대해서 유연했던 그들의 사고방식, 전문성을 중시하고 계급의 상하에 대해서 유연했던 그들이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인재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는 당시 고대국가 중에서 전쟁에 패한 장수를 죽이지 않는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다른 나라는 전쟁에 패하면 다 죽였기 때문에 서로 과감하게 승부하는 것보다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도망가기에 급했는데 로마만은 전쟁에 패한 장수에게 또다시 기회를 줌으로 말미암아 실패를 교훈으로 더욱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그토록 광대한 지역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점령지 출신의 인재라도 능력만 입증이 되면 인종과 학벌과 상관없이 발탁했습니다. 실제로 로마와 싸웠던 산악민족의 족장을 하나가 워낙 전략에 탁월하니까 이 사람이 나중에 로마의 국무총리인 집정관까지 진출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중국인이 귀화했다고 합시다. 군사전략이 탁월하다고 그 사람을 국방장관시키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육사도 안 넣어줄 것 같습니다. 카르타고나 아테네는 탁월한 문명을 가지고도 도시국가로 죽어버렸지만 로마가 세계제국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점령지의 인재라 할 지라도 능력만 있으면 과감하게 등용하고 시민권을 줌으로 말미암아 자기나라 통치 때보다도 더 공평한 인재등용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에 도시제국의 한계를 넘어서 세계화로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재 등용의 문을 열지 않으면 절대 세계화의 꿈은 불가능합니다.

 

2. 두터운 리더층

또 하나가 로마에는 리더층이 굉장히 두텁습니다. 로마가 이 리더층에 대해서 신경을 쓰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태리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로마는 기름진 땅에 나라를 지켜줄 산이 없는 평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로마를 먹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강력한 국방력이 없으면 나라를 지켜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로마는 탁월한 리더가 많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로마도 초창기에는 귀족파와 평민파로 나눠서 계급갈등이 심했는데 한번은 켈트족이라는 야만족의 침입을 받아서 도시가 쑥밭이 되어 버립니다. 그 치욕을 겪고 나서 이 사람들이 결심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계급을 나누어 싸우면 국론이 분열이 되고 결국 이런 치욕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나라를 개혁해야 된다. 그렇게 해서 통과시킨 법이 리케니우스법입니다. 이 법은 인재등용 시스템에 자유합니다. 한마디로 전면 개방입니다. 모든 관직을 평민, 귀족이라는 신분에 관계없이 완전히 자유경쟁 체제 속에서 개방해 버리는 것입니다. 아마 세계 최초의 개방형 인재등용 시스템이었을 것입니다. 벌써 기원전 4세기에 귀족계급의 아성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뽑힌 사람들은 혈통과는 상관이 없고 실력만이 그들의 능력을 가름하는 잣대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로마에는 많은 양질의 인재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국가위기 상황 속에서 로마를 살려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전쟁의 천재였던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로마에 들어가서 괴롭혔습니다. 그런데도 결국은 한니발이 졌습니다. 왜냐하면 저쪽에는 한니발 한 사람 밖에 없는데 로마는 한니발을 견제할 수 있는 장군이 열두 명은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작전이 뭐냐하면 한니발을 맡은 장군은 계속 수비만 하고 나머지 장군은 후방으로 돌아서 공격하는 거였습니다. 한니발이 없는 후방은 다 지는 것이지요. 한 명의 천재에게 목숨을 걸고 있는 나라와 양질의 천재들을 다량 생산한 나라의 저력은 위기상황 속에서 이렇게 드러났습니다.

 

3. 매뉴얼 만들기에 담긴 로마인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개방성

또 하나의 로마의 저력은 매뉴얼 만들기에 담긴 그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개방성입니다. 로마인들은 매뉴얼을 만드는데 천재입니다. 어떻게 만드는가 하면 수없이 많은 선배들의 현장경험을 계속 업데이트시켜 가면서 만들어 냈습니다. 야영텐트를 계곡에다 어떻게 치는가까지도, 못을 어떻게 박는가까지도 그림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C급 지휘관들도 그대로만 하면 전멸은 면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또다시 업데이트시킵니다. 그 당시 나라들은 서로 자존심이 강해서 상대방의 무기는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우리 같은 나라가 오랑캐의 무기를 받겠는가? 이런 식이지요. 그러나 로마는 배움에 겸손했습니다. 로마의 칼은 양날 칼이었는데 처음에는 한쪽날 칼이었습니다. 서양민족과 싸움을 하다가 저쪽의 칼이 너무 잘드는 것 같아서 뺏어보니까 양날이 다 서있는 겁니다. 그 다음 전쟁에서는 전부다 양날을 갈고 나왔습니다.

또하나, 로마 보병의 창이 굉장히 긴데, 이것도 야만족과 싸우다가 가기도 전에 저쪽에서 창을 던져서 죽으니까 저게 뭔가 하고 보니까 창이 긴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게 전부 로마 창이 되어버렸습니다. 로마인들처럼 배움에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민족은 없었다고 합니다. 나만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야만족에게서도 배울 것은 거침없이 수용하는 로마의 개방성이 그들을 끝없이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a non uno die aedificata est)”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매일 배우고 성장하는 로마였습니다.

 

(1)로마와 미국

로마는 정적이 죽어도 그 정적이 남긴 업적을 계속 보존하고 이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나전칠기의 장인들 얘기를 들어봐도 망자의 것을 묻어버린다고 해서 자기의 자식한테도 전수를 안합니다. 그러면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고려청자 도공들이 일본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일본에서는 만들었지만 조선에서는 제자를 만들지 않았답니다.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그 기가 막힌 청자의 옥색 빛깔을 계속 제자들을 통해서 전수하고 발전시켰으면 우리는 전세계를 놀라게 할 청자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편협한 생각으로 다음 세대에 그것을 물려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옛날에 오리엔트에서도 아무리 탁월한 업적을 어떤 사람이 이뤘어도 그 사람이 정적으로 몰려 죽으면 그 사람의 것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로마는 정적이 죽어도 그 사람의 업적이 좋은 게 있으면 그대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끝없는 자기 발전의 노력이 당시의 로마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참 미스테리입니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범죄도 많고 문제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엄청난 자유가 있고 또 민족성에 호소할 수도 없는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나라가 전세계의 군사적 경제적 교육적 강대국이 되었는가? 바로 미국의 배움에 대한 개방성과 실력중심의 인재양성 시스템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은 국민 전체가 똑똑한 나라인데 미국은 똑똑해야 할 사람이 똑똑한 나라입니다. 대학교의 정교수만 봐도 매년 많은 페이퍼를 쓰고 교육을 받고 학교에 제출하고 하면서 리더 한 명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모든 각계각층의 세계의 유학생들을 다 받지만 중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의 탁월한 인재들이 미국에 눌러앉아 버립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느끼기에 자기들의 실력을 최고로 발휘하게 해줄 수 있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졸지에 세계의 두뇌를 끌어안아 버립니다. 로마가 바로 그런 힘이었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

지금 우리 자신의 시대에 반짝 하고 교회가 잘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거짓말 같을 정도로 자신의 세대에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열 두 명에게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 자신이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것은 살아있는 시스템을 만들 리더십이었습니다. 시스템은 바로 리더십이고 사람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는데 이런저런 세미나에 다 가보았지만 안된다는 겁니다. 신통한 게 없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를 그 세미나가 신통한 게 없는 게 아니라 그걸 쓰는 사람이 신통치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은 어떤 것을 해도 안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곳을 향해 오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목회자의 가슴 속에 무엇이 가장 큰 고민으로 남아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21세기에 우리 교회가 남을 수 있겠는가?’ 대책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과연 우리 교회의 미래는 어떤가? 이것은 공포입니다.

 

(3) 윈스턴 처칠 : “생존이냐, 승리냐(To Survive or to prevail)”

1941년도 영국 국민들이 바로 똑같은 질문을 자기 자신들에게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유럽 전체가 나치 독일에게 짓밟혀버리고 지상 최대의 독일 육해공군이 도보해협을 건너서 영국을 초토화시킬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일 수백, 수천 개의 폭격기가 날라와서 폭탄을 비오듯이 퍼붓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독일편에 붙어 버렸고 미군은 참전하지 않습니다. 그 누가 보기에도 영국으로 가는 모든 보급품은 독일군 잠수함에 의해서 차단되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영국 국민들은 당연히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과연 영국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때 윈스턴 처칠 수상의 대국민 연설이 나왔습니다. “살아남다니.. 나는 그런 치사한 비전을 세워본 적이 없다. 우리의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것이다. 땅에서 하늘에서 바다에서, 마지막 영국인이 싸우다가 죽을 때까지 우리는 절대 나치독일에 무릎 꿇지 않는다. 신이 살아계시는 한 언젠가 미군은 우리와 함께 참전할 것이고 히틀러를 완전히 항복시킬 때까지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승리하는 것이 목표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책임질 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 살아남다니요?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치사한 목표를 주신 일이 없습니다. 내가 반석 위에 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절대 승리하지 못하리라.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서 목회하는 것이지 살아남기 위해서 목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변치않는 복음으로 변하는 세상의 더럽고 타락한 어두운 세력을 꺾고 마침내 주님의 영광을 이땅 위에 이룩하고 말 것입니다. 성령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그런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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