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23) 교갱협 제10차 영성수련회 주제특강

이 시대에 한국교회를 향한 도전과 비전이 있습니다. 동시에 한국 교회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인의 삶의 자리에서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교회 갱신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천 년대 기독교 역사의 주역으로서 시대적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을 진단하고 증상치료와 함께 원인치료가 일어나야 합니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을 치료하기 위한 각론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하고, 그와 더불어 한국교회 문제의 근원을 찾아 치료할 수 있는 전 방향 구조 조정이 시도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집회의 주제 선정에도 이러한 현실인식이 엿보입니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희생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자기를 희생하는 일에 앞장서 실천하지 않으면 교회가 한국 백성들에게 감동감화를 줄 수 어렵고, 더 나아가 기독교의 존재이유가 소멸된다는 현실인식이 느껴집니다.

이제는 지엽적이고 국지적 차원에서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제시하기에는 시기적으로 긴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 안에 기독교에 반동적인 기류도 동일하게 강력한 기세로 형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가 일차적인 원인제공을 합니다. 상황이 훨씬 불리합니다. 어쩌면 기독교의 존립을 놓고 일종의 판을 새로 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갖게 됩니다. 이 땅에 기독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혹은 기독교란 무엇인가? 하는 정말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건전한 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교회가 국지적인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약진을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그들을 주시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교회 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보려는 마음들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기도 합니다. 교갱협의 활동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전면적 구조조정 차원과 관련하여 한 가지 측면을 검토해 보려고 합니다. 즉, 전환기에 놓여 있는 교회가 어떤 방향을 잡고 움직여야 하는가 하는 다소 거시적 담론 macro-discourse을 염두에 두고, 한국교회 구조 조정을 위해 가장 핵심적으로 요청되는 사항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흐름에 일어났던 기류 변화를 간략하게 검토해 보고, 기류변화를 가능케 했던 영적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 : 유대교의 퇴출과 새로운 전통의 시작

마가복음 1장 21~28절 말씀입니다.

“21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1. 예수님은 소위 기독교의 창시자 inaugurator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기독교의 창시는 유대교의 퇴출을 의미합니다. 유대교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기 힘들다는 판결이 난 것입니다.

2. 유대교의 퇴출을 가져 온 첫 번째 요인은 말씀의 권위 상실입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모든 사람이 놀랍니다. 자기네 서기관들과 달리 가르침에 권위 있음을 느낍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권위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당시 회당은 일차적으로 율법을 가르치는 장소였습니다. 유대인 열 가정이 있으면 회당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율법을 가르치는 회당의 숫자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회당이 많고 율법을 정기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권위가 상실된 가르침으로는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성경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성경 풀이와 강론(講論)이 서기관들의 성경 풀이와 달랐던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 예수님은 말씀을 체화하신 분이라 큰 확신으로 가르치신 것이고, (2) 예수님의 성경 풀이와 강론에는 성령님의 영감과 능력이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말씀을 스스로 체험한 바탕 위에서 큰 확신을 얻어 풀이하지 못했고, 더군다나 성령의 영감과 능력이 빠진 공허한 주석의 나열이었던 것입니다.

3. 유대교의 퇴출을 가져 온 두 번째 요인은 영권의 상실입니다. 회당 안에 귀신이 버젓이 들어와 앉아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유대교의 무력함을 단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나 유대인들이 귀신들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회당 안에 그 사람을 들어오도록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귀신이 회당 안에 앉아 있음을 몰랐습니다. 회당 안에서 귀신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유대교의 붕괴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귀신이 유대교를 유린하고 무시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기독교의 시작은 말씀의 권위 회복과 귀신을 제압하는 영권의 회복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말씀과 능력(영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있었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능력이 나타났고, 능력의 드러남은 말씀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라는 새로운 전통은 말씀 권위와 영적 권위의 회복 위에 세워져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 기독교 전통의 계승

사도행전 6장 1~6절 말씀입니다.

“1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1.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제자들이 사역을 계승합니다.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갑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와 예수님이 역사 무대에서 사라지신 이후의 상황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의 사역을 제자들이 대신해서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적에는 그저 뒤를 따라다니고 시키는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기들이 나서서 사역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역사 현장에서 사라지신 이후 상황에 대해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있던 사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일차적으로 사단의 세력을 멸망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자기들은 벙어리 귀신들렸던 아이를 고치지 못해 쩔쩔매었던 뼈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또한 한 밤중에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귀신인 줄 알고 기겁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사역 현장을 제자들에게 물려주고 예수님이 떠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제자들은 아마 아찔한 생각이 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우리끼리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단은 활동하고 있고, 예수님과 같은 말씀의 권세와 영적인 능력은 아직 없고 해서 몹시 당황했을 것입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아직 직접 실력대결을 할 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임하심을 예루살렘에서 기다립니다. 그 때 제자들이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는 마음은 지극히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3. 결국 오순절 날에 일어난 성령의 임하심이 기독교 전통의 계승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제자들이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이 기독교 역사 초창기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이 결정이 기독교를 기독교 되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루터와 칼빈 : 기독교 전통의 흐름을 바꾸다

1. 사도행전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시작된 지상 기독교의 전통이 약 1000년 정도 유지되어 오다가 루터와 칼빈을 중심으로 한 개혁 세력의 반발에 부딪치게 됩니다. 사실 기독교는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로 기독교의 정체성 integrity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기독교에 호의적인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기독교는 힘겨운 싸움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정치적인 세력이 배후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고,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즉시로 교회 구성원으로 편입되어지는 현실이었기 때문에, 한 영혼을 건져내기 위한 처절한 영적 싸움의 필요성이 점차 감소되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호의적인 장이 마련되었음과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는 기독교 내지 기독교 사역의 속성 자체에 서서히 그리고 점진적인 변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2. 기독교가 본질을 잃고 비기독교적 전통을 쌓아가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중세기 기독교계 전체에 확산되어집니다. 루터와 칼빈이 그러한 집단적 문제제기의 선봉에 서서 종교 개혁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소 단순하게 말하면, 중세 종교 개혁의 핵심은 성경 해석학의 혁명입니다. 중세 카톨릭 교회 현실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탈 기독교 혹은 반 기독교적 현상들이 난무하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잘못된 가르침에 있는 것으로 직시했습니다. 그리고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낳은 주범으로 잘못된 성경 해석 방법이 지목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 오리겐(Origen)이 체계를 잡은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 방법을 전면 부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문예부흥을 거친 중세 후반의 지적 환경에서 알레고리적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풀고 강론(講論)하는 것은 더 이상 적실성이 없는 것으로 거부되어집니다. 루터와 칼빈은 역사적-문자적 성경 해석 방식을 도입합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중세 종교 개혁의 토대는 성경의 재발견이요 성경을 풀어 강론하는 방식에 혁신을 가져온 것에 있었습니다. 중세 종교 개혁은 성경을 잘못 읽고 잘못 풀어 잘못 강론하게 되면 기독교 전통 전체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역사적 증험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또한 기독교 전통이 시대적인 지탄 대상으로 전락했을 때 문제의 핵심은 성경을 풀고 강론하는 방법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한 때문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21 세기 기독교의 현실 : 기독교의 전통을 새롭게 하라

1. 우리는 중세 종교 개혁이 천 년을 지탱해 왔던 성경 해석 방법에 대한 혁명적 전환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21세기 기독교의 현실도 중세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 안팎으로 도전이 거셉니다. 기독교 바깥으로는 탈 기독교적 혹은 비기독교적 정신 환경이 기독교의 존재이유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내부적으로는 적지 않은 신학자들에 의해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기에 이른 것입니다. 성경 권위에 위기가 초래 되었다고 말해집니다.

2. 오늘날 서구 사회는 기독교의 붕괴를 말합니다. 서구 사회가 탈 기독교 혹은 후기 기독교 사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유럽, 특히 영국을 보면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의 관점에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현실’(new reality)을 말합니다. 종교 개혁 이후 전개되어 왔던 개신교적 기독교 전통의 적실성에 한계가 왔음을 지적합니다. 새로운 현실에 새로운 전통의 등장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서구 기독교의 붕괴, 개신교 전통의 한계 상황, 그리고 새로운 전통의 등장을 전망하는 현실적 상황의 이면에 성경 연구 방식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학문적이고 인지적 차원의 성경 연구는 고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을 삶으로 터득하고 시범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3. 21세기에는 기독교의 종주국에 변동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종주국 노릇은 서구 사회가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기독교의 새로운 종주국은 기독교 복음을 인지적, 개인적 및 영적 차원에서 깨닫고 보여줄 수 있는 지역이 될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실제 현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영적 권세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이 시대가 그런 문제의식을 고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종주국에 변동이 일어나게 되면 기독교의 전통을 새롭게 하는 일 new traditioning이 일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되어집니다. 성경을 보여줄 수 있으려면, 현재 성경을 읽고 풀고 강론하는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성경 연구 방식에 혁명적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단순히 학문적 및 인지적 차원의 연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 awakening과 체득 embodiment과 삶의 변화 transformation를 일구어내는 방식으로 성경을 새롭게 풀고 강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 : 성경을 새롭게 읽어라

1.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제반 불미스러운 일들과 비기독교적 작태들은 근원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이 제대로 설파되지 못하는 것에 기인합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바르게 규명되고 바르게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가르침이 능력으로 연결되어 나타나져야 합니다. 여기에 한국교회를 향한 도전이 있습니다. 성경을 푸는 세 단계를 복원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인지적으로 풀고, 삶으로 풀고, 마지막으로 영적 능력으로 풀어야 합니다.

2. 성경의 인지적 연구를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독, 다독 및 정독을 반복해서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에 드러난 하늘의 경륜을 깨닫는 일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우치려는 각도에서 성경을 깊이 연구 및 묵상해야 합니다.

3. 성경의 체험적 해독을 통해 자기 변혁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을 닦고, 육신의 욕심을 죽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모습을 실질적으로 이루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삶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4. 성경의 영적 능력의 세계를 재현해 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를 주도할 권능을 한국교회가 복원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의 시작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보여주었던 가공할 만한 영적 능력이 한국교회 안에서 현실화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유수한 대학교 신학부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신약학 교수에게 전화가 옵니다. 그 지역의 어느 동네 교회에서 온 전화를 학교 직원이 신약학 교수에게로 돌린 것입니다. 동네 교회의 어떤 사람이 귀신에 들린 것 같으니 속히 와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그 직원의 생각에 신약 성경의 전문가가 가장 적임자일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 신약학 교수는 그 전화를 받자마자 자기가 아는 어느 목회자의 이름을 불러주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립니다. 그 신약학 교수는 학계에 잘 알려진 소위 세계적인 신학자로 대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연구에 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경의 세계를 재현해서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지적 연구 차원에 머무르면 우리가 성경을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맺는 말

한국교회는 이 세 영역에서 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적 깨달음의 차원에서도 강단의 위기를 말합니다. 체험적 차원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보여주는 일은 더욱 희박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성경의 영적 능력을 시범으로 보여주는 일은 더 더욱 희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심정으로 기다림이 있고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안된다’고 하는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속히 성경을 연구하는 방식에 혁명적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한국 목회자들의 갈급한 심령에 진리를 밝히고 능력을 부여하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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