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2) 교갱협 제12차 영성수련회 주제특강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늘 이렇게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반도 및 세계의 복음화와 한국교회 갱신을 위해 수고하시는 목회자님 및 사모님들을 모시고 특강을 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릴 주제는 외교문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좀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왜 목회를 하시는 분들께서 외교와 국제정치를 알아야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 영원한 시간과 역사 속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보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지만, 인간은 역사의 한 시점에서만, 즉 2008년 8월 22일 한국이라는 구체적이고 한정된 시간과 장소 속에서만 살도록 파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속에서 영원 속에 사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메시지를 잘 전달하려면 전달받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함께 있어야 되고 그 현장에 함께 있는 것, 그 현장을 아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사랑이기에 그렇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이야기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직을 떨쳐 버리고 캐나다 토론토의 어느 공동체에 들어가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섬기다가 세상을 떠난 헨리 나우웬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 "헨리 나우웬과 함께 하는 아침"이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나옵니다.  한번 경청해주십시오.

"아기가 태어나거나, 친구가 결혼을 하거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시거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어떤 민족이 기아선상에 있을 때, 우리가 이런 일들을 아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축하하거나 슬퍼하거나 혹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을 보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자문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우리는 이 모든 일 가운데서 어떻게 살도록 부름 받았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이 없다면 삶은 무미건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그 질문들을 생활화(live the question)하고, 릴케가 말한 대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스스로가) 그 해답이 되어 가리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결코 그것들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손에는 신문을 들고 살아갈 때,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질문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우리에게서 드러나리라고 신뢰하면서 신실하게 그 질문들을 생활화하는 방법도, 역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처럼 순례자적인 자세로, 그리고 이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삶의 고뇌와 고통에 온 몸을 던져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자세가 아니면 아마도 불신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로 인도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를 자기들과 별로 상관없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던지는 메시지 자체를 공허하게 여겨버릴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계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인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 "난 당신을 사랑하오, 그런데 당신이 어떤 상황에서 살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소,"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또 민족을 사랑하고 복음화하기를 원하는데 나는 민족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관심이 없소"라고 말한다면 그게 되겠습니까? 바로 그래서 목사님들께서도 우리 민족이 어떤 처지에 처해있는지 알아야 되고 그래서 외교나 국제정치도 공부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우리가 전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도 외교와 국제정치를 알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고 살아가는 세계화 시대에, 세계 11위 경제력을 갖고 있는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더욱 그렇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젊은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석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프간 땅에 뿌린 순결한 사랑의 씨앗은 언젠가는 분명히 풍성한 결실을 맺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1세기 전 선교사들이 고통 받는 땅 조선에 와서 뿌린 복음의 씨앗이 결실을 맺어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가운데서도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둘기 같은 순결한 마음뿐만 아니라 뱀 같은 지혜를 가져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더 잘 전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과 국제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좀 더 치밀하게 연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국제정치학은 단순히 세상 학문이라고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바로 복음 전파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

우리 민족의 지난 1세기는 어려움의 역사였습니다. 전반부 50년은 식민지 시대였고 후반부 50여 년은 냉전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어두운 냉전시대의 그늘에서도 우리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냉전시대가 끝났는데도 아직 남북 분단 하에 북한은 고통 중에 있습니다. 지금도 남북의 150만 젊은이들이 중무장을 한 채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고 1000만 이산가족들은 아직도 헤어진 가족 친지들의 상봉을 기대하고 눈물짓고 있습니다.

게다가 1993~94년도의 1차 북핵 위기에 이어 2002년 우라늄농축을 통한 제2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다행히 금년 2월 13일 북경에서 6자회담이 타결되어 후속 실무회담이 최근에 진행되었습니다. 길고도 지루한 과정을 거쳐 외교적 타결이 이루어져서 다행입니다만 북한이 약속대로 모든 핵을 포기하고 나설지는 아직 좀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북한이 왜 핵문제에 그렇게 집착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많은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북핵 문제는 한반도가 처해있는 지금의 독특한 상황의 한 반영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는 냉전이 끝난 탈냉전 질서 속에서 유일하게 냉전분단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즉 세계사는 탈냉전에 진입한지 오랜데 한반도는 냉전 상황에 처해있다는 세계사와 우리 민족사의 갭이 한반도의 특수성입니다. 한반도는 현재, 냉전갈등의 과거에서 탈냉전 화해협력의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기의 한 중간에 처해 있다고 생각됩니다.  북한문제도 바로 이러한 전환기적 상황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북핵 문제는 남북 간의 세 가지 불균형 구조 속에서 야기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첫째의 불균형은 경제적 불균형입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고속성장을 계속해서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단계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한 직후 소련으로부터의 경제지원은 거의 끊겼고 이것은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부족한 석유와 에너지 공급으로 공장은 문을 닫고 북한경제의 총생산은 94년에서 99년까지 5년 사이에 50%가 감소했습니다.

둘째는 재래식 군사력의 불균형입니다. 에너지 공급이 끊어지다시피 하니 탱크나 전투기나 훈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북한이 의지해오던 재래식 무기나 전투력의 심각한 약화를 초래했습니다. 즉 경제 불균형이 군사력 불균형으로까지 연결된 것입니다.

셋째는 외교 불균형입니다. 남한은 1990년 중국, 1992년에는 소련과 외교관계를 정상화 했습니다. 남한은 과거 적성국가인 두 나라와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는데 북한은 과거 적성국가인 미국 일본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한 불균형 상태입니다.  북한은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90년대 초 이후로 미국에 대해서 외교관계를 수립해줄 것을 꾸준히 요청해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반응하지 않아왔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불균형은 북한의 지도자들이 극심한 심리적 위기의식에 빠지도록 만들었습니다. 특히 동독, 루마니아 등에서 일어난 정치적 변화나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은 북한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심각한 불안감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한꺼번에 타결하고 나름대로 체제를 지켜야겠다는 의지 때문에 북한은 더욱 핵무기 개발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1993~94년도의 1차 핵 위기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카터대통령의 개입으로 해결되어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Kelly 동아태차관보 일행에게 북한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입장

이처럼 북한의 핵문제는 북한의 경제난, 외교적 고립 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핵문제를 풀기위해서는 북한 경제문제나 외교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는 포괄적인 접근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마치 북한의 경제문제나 외교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핵문제만 협상을 통해서 풀려고 한다면 풀리지도 않을뿐더러 봉합을 일단 했다하더라도 그 후에 다시 재발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정부는 남북한 간에 경제, 문화, 사회적인 교류를 심화시켜나가면서 서서히 정치적인 통합의 기반을 마련해나가자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남북한 사회 전체에서 아직 분위기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는데 정치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 보다는 사회, 경제, 문화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한 간에 교류와 통합의 기반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진적인 통일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나 정권교체(regime change) 주장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갑작스러운 붕괴나 정권교체는 무력 충돌이나 갈등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동서독 통일 때 서독이 부유했던 것만큼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정치적 사회적으로 그러한 갑작스러운 통합을 이루어낼 능력이 준비되어있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핵문제를 대북포용정책의 맥락에서 외교적인 협상을 통해서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남북간에는 2000년 6월 15일 정상회담 이후 금강산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남북 철도 연결,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개성공단 건설 등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인적, 문화적 교류도 심화되었습니다.

 

미국의 입장

그런데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미국 내의 시각은 좀 더 복잡했습니다. 미국정부의 기본적인 공식 입장은 핵문제를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서 풀겠다는 것이었고 그러한 입장에서 2003년 6자회담의 해결방식을 마련해서 지금까지 협상이 진행되었습니다.

부시행정부는 나쁜 행동을 한 북한에 보상을 줄 수는 없다는 논리를 가지고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나갔습니다. 외교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겠다고 하면서 6자회담을 추진해나갔지만 북한과 미국의 강경대립으로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해왔습니다. 특히 북한은 영변의 핵시설을 통해 핵물질을 계속 추출해나갈 수 있고 중국이나 한국에서 경제협력은 진행되고 있으므로 아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미국 측은 특히 911 테러공격이후 테러리스트들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대단히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만들어낸 핵물질을 돈이 궁한 북한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경우 그것은 치명적으로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미리 막아내는 것이 최대로 중요한 목표인 셈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북한 문제를 615정상회담이후 진행되어온 남북관계를 해치지 않은 범위 내에서 풀어나가도록 일차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유지라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인 셈이지요. 저는 이러한 한미 간의 편차를 인정하면서도, 양국 간에 북한 문제에 대한 공동해법을 개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한미 동맹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도 북핵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은 먼저 북한에 대해 모든 외교적인 노력을 다 소진해보자는 것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 어떤 것들을 구체적으로 얻게 될 것인지를 자세히 북한에게 밝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방법으로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을 해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경제협력을 해줄 것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미국이 2004년 6월에 처음으로 스스로의 해법을 제시했지만 이처럼 자세한 협상의 내용을 담은 안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미북 간의 양자회담을 부정해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밉더라도 핵문제 타결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양자회담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책변화

그러던 상황에서 2005년 부시 행정부 2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파월장관이 사임을 하고 그 뒤를 이어 라이스 박사가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북핵 협상의 책임을 맡는 미국 측 대표로 주한 미국대사였던 크리스토퍼 힐을 임명해서 북한과 실제로 무언가 주고받는 협상을 처음으로 시작하도록 했고 그 결과가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이었습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인 지원이나 외교관계의 개선 약속, 경수로 논의 약속 등이 포함된 포괄적인 안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 내 강경파의 반대와 경수로 제공문제에 대한 미북 간의 갈등이 노정되어 합의는 이행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달러 위조 및 불법자금 세탁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하여 북핵문제는 더욱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월 13일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후 4년 4개월 만에, 드디어 6자회담이 타결되었습니다. 이날 합의의 핵심은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6자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을 구체적으로 이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즉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불능화하는 대가로 중유를 지원받고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6개국 외무장관들이 동북아 평화체제를 논의하고 별도의 포럼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 문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만일 213합의가 약속대로만 이행된다면 한반도는 소련 붕괴로 지구상의 냉전이 끝난 지 16년 만에 드디어 본격적인 탈냉전시대에 진입하게 되고 동북아정세도 크게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합의 이행이 실패하게 된다면 과거 어느 때 못지않게 위태로운 위기 국면에 진입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반도는 지금 역사의 분기점에 서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2차위기가 시작된 지 4년 넘게 지나서야 베이징6자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을까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정부는 미국에게 북한과의 직접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으나 미국 측은 나쁜 행동을 한 북한에 보상을 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러한 강경 기조가 바뀌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작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자 그동안 영향력을 행사해오던 이른바 신보수주의 강경파들의 입지가 대단히 약화되었습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사임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이라크사태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어서 미국의 국내여론은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은 오히려 미군의 증원을 주장하면서 국민들의 협조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라크문제에 대해서 국민들과 의회의 협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가 호전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부시대통령은 아마도 느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공화당 행정부의 입지를 상당히 약화시키는 부담이 될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할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시대통령은 그동안 절대 허용하지 않던 북미간의 양자회담을 허용했고 금년 1월에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차관보가 베를린에서 김계관과 양자회담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2월의 6자회담의 자리가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향후 전망

다행히 BDA 자금을 미국이 풀어주고 북한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영변의 핵시설을 폐쇄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이행과정에서 부딪칠 난관은 적지 않습니다. 핵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북한이 취해야할 조치와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이 취해야할 조치들을 순차적으로 하나씩하나씩 상호적으로 취해나가면서 최후의 종착역인 북한의 모든 핵시설 철폐와 북미, 북일 수교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양측이 서로 상대방이 먼저 움직여주고 자기 측은 가능하면 상대방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늦게 움직이려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8~10개 정도로 추정되는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를 어떻게 할 것이냐, 그동안 추출한 플루토늄 물질과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될 것입니다. 만일 북한이 이런 모든 핵관련 사항을 빠짐없이 보고하고 해체 절차에 들어가면서 철저한 검증에 임한다면 그것은 북한이 성실하게 비핵화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됩니다. 이는 북핵문제가 협상을 통해 성공적으로 풀리는 것을 의미하며 북한 및 한반도 전체가 연착륙을 통해 평화적인 변화과정으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같은 우리의 희망을 저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부시행정부와는 영변핵시설 및 우라늄농축프로그램만 협상하고 이미 만든 핵무기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분간은 적극적인 협조 자세로 나가면서 적당히 시간을 끌며 얻어낼 것은 얻어낸 다음, 2009년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과거 북한의 협상방식을 살펴보면 이러한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 및 국제사회는 강경기조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북핵문제와 함께 한반도 전체가 위험한 경착륙의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모처럼만에 미국이 정책전환을 하게 된 이번 계기를 놓치지 말고 성실하게 모든 핵물질의 제거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결단을 북한은 내려야 할 것입니다. 핵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리비아는 건재할 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에 진입하면서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일주일 후로 다가온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간의 경제협력, 이산가족 상봉,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 등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213합의를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 포기가 없이는 아무리 평화협정을 맺고 평화체제를 만들어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평화구축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약속과 선언들이 휴지조각처럼 되어버린 예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북핵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우리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일 협상이 성공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탈냉전의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할 것입니다. 미북, 미일이 수교하면 한미동맹은 새롭게 정의되고 새로운 역할이 부과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나면 재래식 군사 위협을 약화시키는 조치들이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IMF에 가입하게 된다면 국제기구와 서방자본의 북한 진입이 본격화될 것이고 새로운 대북경제협력 전략이 수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중요한 일들에 대해 미리 철저하게 대비하고 마스터플랜을 짜 놓아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에 다가올 중대 변화에 제대로 미리 대응하기위해 저와 몇몇 선배 동료들이 한반도평화연구원을 올해 2월 달에 만들었습니다. 이 연구원이 화평케 하라는 말씀을 분단과 갈등의 땅 한반도에 실현하는데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추구의 방향

이제 결론 삼아서 앞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될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주도적 역할을 우리가 담당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능력과 역할에 대하여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아닌 정확한 평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경제력 11위에까지 도달했다고 하면서도 외교 문제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는 한편으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때로는 자기비하적인 시각까지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 풍미했던 종속이론적 시각, 강대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만다는 식의 체념적 권력정치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자기비하적 시각이 우리 의식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한 자세로는 결코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주도해서 풀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주변국들에 비해 국력은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현명하고 신중한 전략과 세계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와 세계여론에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연계시킴으로써 한반도의 미래를 충분히 주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체념론이나 자기비하적 시각은 그러한 모색을 시도할 동기유인마저 느끼지 못하도록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켜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비하적 체념론은 더 나아가 모든 국제관계, 외교를 피해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게 만들면서 감성주의적, 국수주의적 대응을 낳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어차피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상, 한 국가에게 국제관계의 공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국제관계란 피해나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전략적으로 설정하고 관리해나가야 할 것이냐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주변 국가들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유리할 것이냐를 철저하게 계산해서 외교를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주도적 의식을 우리 스스로 가진다는 대전제하에 우리가 생각해야 될 점은 어떤 것이 가장 신중하고 현명한 외교 전략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와 세계사회에서 존중받는 가치의 실현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외교 전략적 측면에서 한미동맹의 문제입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국제정치를 주도해나가면서 수많은 국가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한 수많은 동맹들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적인 동맹은 아마도 한미동맹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영국의 한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것을 우리는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전쟁의 폐허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처럼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보란 듯이 제쳐버리고 지금은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냉전시대에 한미동맹은 바로 이러한 성공이 가능하도록 안보환경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나아가는 지금과 같은 전환기적 시점에서도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중요한 외교적 도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제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서 동맹의 목표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세계정치에서 냉전이 종언된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한미동맹이 한반도의 탈냉전화를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고려해야 되는 점은 보편적인 가치 추구의 측면입니다. 우리는 외교를 추진해나가는데서 뿐만 아니라 특히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세계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시장경제, 인권, 비확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세계사회에서 존중받는 이러한 가치들을 북한이 점진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대북협력정책을 추진한다면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적 지지도 강화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서방사회까지 끌어들여 대북포용정책에 동참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213합의 이후 미국은 북한이 협조한다면 그렇게 할 의지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계11위 경제력에 걸맞게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주도해나가겠다는 의식을 철저히 가지고, 한미동맹과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인 자세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등 현명한 대외전략적 선택을 하면서, 세계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외교와 대북정책의 지침으로 삼고 현안들에 대응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냉전분단의 해소와 평화와 통일도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사명과 선교 방향

이러한 어려움들을 지혜롭게 극복해나가서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고 북한의 동포들의 삶을 돕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도록, 그 고통의 현장에서 북한동포들이 하루빨리 벗어나게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를 우리 민족이 달성해나가는데 있어서, 다시 말해 냉전의 애굽 땅을 벗어나 평화와 통일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성경 말씀에 따라 우리 한국교회가 영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로마서 9장 3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도 바울의 입에서 이만큼의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분단된 조국, 휴전선 너머 고통 받고 있는 우리 동족의 형편을 생각할 때 우리 교회가 어떤 자세로 민족의 아픔을 껴안아야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호수아 1장 7절에는 가나안땅으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니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는 앞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좌냐 우냐, 보수냐 진보냐의 이념적 대립구도를 벗어나야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동포들의 삶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얼마나 개선되도록 했느냐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대북협력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의 북한 동포들에 대한 "사랑"의 정신이 우리 교회의 최대의 목표이자 선교의 지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정신이 냉전의 이념 갈등을 녹여내서 평화와 통일의 그날이 어서 빨리 다가오기를 기도해야하겠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목사님들께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들어와 있는 탈북주민, 새터민들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주십사 하는 점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은 그들 정치체제의 영향을 받아 크게 상처받아 있습니다.  그들과 사람 대 사람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진정한 통일을 달성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처받은 심령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은 한국교회 교인들의 사랑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교회가 1만 명을 넘어서기 시작한 새터민들을 껴안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달성할 우리 민족의 역량이 길러졌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통일 역량을 키워주시기 위해 보내주신 예습과제인 것입니다.

이 시대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도래한다면, 아니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런 선물을 내려 주신다면, 그것은 아마도 한국이 더 나아가 동북아 평화의 선도국가 역할을 감당할 준비까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민족주의가 갈수록 강화되고 서로가 치열한 군비경쟁을 하는 강대국들이 자리하는 동북아에서, 한국은 그들에 비해 세상적 권력의 크기는 작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통일 한국은 비둘기처럼 순결한 사명과 뱀 같은 지혜를 가지고 이 지역의 평화를 선도해나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고통과 역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통하여 의도하고 계시는 깊은 뜻인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꿈을 함께 가지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시렵니까?

긴 시간 동안 경청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이글은 최근 저자가 행한 연설이나 기고 등을 최근 국내외정세 진전 상황을 반영하여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http://koreapeace.or.kr 홈페이지에 실린 저자의 여러 글들과 "세계관이 변해야 미래가 열린다" (미래전략연구원 http://www.kifs.org)를 참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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