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8) 교갱협 제14차 영성수련회 여성사역자특강

에스라 7장 6~10절

 

들어가는 말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여권이 강화되고 있으며 우리의 딸들은 회사나 단체에 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교육받아 여성 지도자들로 배출되고 있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잘 반영하듯 요즘 TV드라마는 강한 여성 강한 어머니 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 예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선덕여왕”은 미실과 선덕여왕이라는 강한 리더십을 가진 여성의 이야기이고 얼마 전에 방영을 마친 “하얀 거짓말”은 완전히 아버지가 배제된 상태에서 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어머니상을 가부장과 대조되는 가모장이란 신조어로 부르고 있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시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이렇게 높아진 여성관을 가지고 젊은 세대가 자라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 교회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시대착오적이어서 우리가 선교해야 할 대상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현재 우리 교단은 여성 리더십을 크게 인정하지 않는 관계로 여성 안수를 허락한 타교단의 여성 사역자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되고 함께 사역을 하는데 위축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과연 드보라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여성 리더십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겠다.
본 글은 먼저 드보라 사사의 특징들을 다루고 이런 드보라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적용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본론

1. 드보라 사사의 특징

1.1 드보라는 여성이다.

드보라 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삿4:4에서 여자, 여자 선지자, 랍비돗의 여자, 여자 사사로 드보라가 소개가 된다. 이렇게 여성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를 네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본문은 드보라가 여성이라는 것을 강조를 하고 있다.
드보라가 ‘여성’이라는 것은 남성 사사를 기대하거나 남성 지도자에 익숙한 청중들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즉, 고통을 당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백성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드보라라는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 많은 남성 지도자들이 있었고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바락이라는 인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사사로 드보라는 부르신 것이다. 이 시대는 사실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무리하는 시기로 가나안 하솔은 철병거 900승이라는 가장 강한 군대를 지닌 강적이었다. 수17:16에서 보면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이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자 이들은 철병거를 두려워하며 다른 땅을 달라고 요청하였었던 상대이다. 이런 힘든 시기에 보내신 사사가 여성 드보라이다.

 

1.2 드보라는 선지자이다.

드보라 사사의 두 번째 특징은 선지자라는 것으로 선지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드보라가 선지자이기 드보라의 지위를 제한하려는 견해가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락이 진정한 구원자이고 드보라는 바락의 조력자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선지자가 인간 왕이나 장군보다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에서 모세가 명령하는 자고 군대 장관인 여호수아는 이 명령을 수행하여 전쟁을 하였으며(출17:9~13) 사울과 사무엘의 경우에도 사무엘이 사울을 선택하였고(삼상10:1) 사울이 잘못하였을 때 사무엘이 책망하였으며(삼상13:13~14; 삼상15:22~23) 다윗을 선택한 것도 사무엘이다(삼상16:12~13).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경우 엘리사에 대해 ‘내 아버지’라고 불렀다(왕하13:14). 그러므로 선지자와 군대 지도자 간의 관계에서 볼 때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전달하는 자이기에 더 권위를 가진다. 그러므로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에서 모세가 지도자인 것처럼 드보라와 바락의 경우에도 드보라가 지도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은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일으키심’과 ‘하나님의 영의 임재’가 빠졌다는 것을 예로 들어 드보라의 사사성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클라인이라는 학자는 드보라가 이미 여호와의 대변인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사사로 세우실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선지자라는 호칭은 드보라가 이미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거나 영감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드보라의 사사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드보라가 선지자라는 호칭을 가진 것은 그녀가 전쟁터에서 칼을 들고 싸우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은 거의 대부분 칼을 들고 직접 전쟁터에 참여하지 않는다. 대표적 선지자인 모세,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등은 장군을 세우고 싸움의 전략과 승리의 확신을 주는 등 그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인간 장군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선지자는 성스러운 직분이므로 직접 칼을 잡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예외적으로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를 칼로 죽였다(왕상18:40).) 그러므로 드보라가 여성이고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쟁을 직접 수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사이면서 선지자이기 때문에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조력자’로서 바락을 세운 것이다. 구약에서 사무엘이 드보라처럼 사사(삼상8:15~18)와 선지자(삼상4:20)의 직무를 모두 수행한 인물이지만 그도 전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그들을 블레셋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여호와께 부르짖고 기도하였다(삼상8:8). 그러므로 선지자라는 직무가 조력자이며 구원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드보라가 선지자라는 사실은 그녀가 힘있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는 단순히 다른 전쟁의 군대장관으로 역할 한 다른 사사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였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항상 느끼고 사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바락을 불러 가나안과 전쟁하라는 명령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바락은 드보라가 전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순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여 주저하였고 드보라가 동행하지 않으면 같이 가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결국 이런 약한 믿음 때문에 바락은 전쟁에서의 영광을 여인의 손으로 넘겨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드온이나 입다 삼손 등 다른 사사와도 구별되는 특징이다. 기드온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여 여러 번 하나님을 시험하였고 입다는 승리를 주시면 자신을 제일 먼저 마중 나오는 자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겠다는 어리석은 서원을 하였다. 이 모든 행동들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그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드보라는 선지자로 하나님을 잘 아는 인물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승리를 확신하였기에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보라가 선지자라는 것은 사사기 5장 드보라의 노래가 일부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드보라 개인적인 감정이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이라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성경의 대부분은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되어 있고 선지자의 말은 권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드보라도 선지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따라 승리의 노래를 부른 것이며 축복과 저주를 한 것이다.

 

1.3 드보라는 재판장이다.

삿4:5에서 보면 드보라가 에브라임 산지 종려나무 아래에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았다고 진술한다. 이 구문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드보라가 사사로서는 유일하게 재판도 하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사는 전쟁의 지도자였던 반면 드보라는 재판도 한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드보라를 사사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4절에서 드보라를 사사라고 한 성경 화자의 말이 그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화자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온 백성이 드보라를 사사로 받아들이고 그녀를 따랐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드보라는 사사기에서는 유일하게 영적인 권위와 사법적 권위를 모두 가진 사사로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런 권위를 모두 가진 인물은 드보라 이외에 모세와 사무엘이 있다.

 

1.4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이다.

많은 학자들이 드보라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과 삿2:16에서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셨으니’라는 말을 근거로 드보라에게는 구원하였다 혹은 구원자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사사가 아니라고 하였다. 하지만 구원자로 행동한 에훗에게도 ‘구원자’ 혹은 ‘구원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자’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야 진정한 사사라는 말은 문제가 있다. 에훗이 모압과의 전투를 인도하고 훌륭하게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모압의 손에서 벗어나 80년동안 평온할 수 있었다.

본문에 따르면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은 후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사사를 소개하는데 그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사 드보라이다. 드보라가 구원자라는 것은 본문은 두 가지로 나타내는데 첫째는 바락과의 관계에서이고 둘째는 5장의 드보라의 노래이다.

첫째 많은 학자들이 구원자라고 말하는 바락과 드보라의 관계를 보면 바락은 드보라의 부름을 받고 달려오는 인물이다. 사사기 4~5장의 본문에서 바락에게는 아비노암의 아들이라는 것이 외에 구원자나 지도자, 군대장관등의 어떤 호칭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드보라에게 사사, 선지자 등의 칭호가 주어진 것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는 철저히 드보라의 권위아래 있었다. 드보라가 바락을 부르자 그는 지체 없이 달려왔다. 본문은 드보라의 부름과 바락의 옴 사이에 조금의 간격도 두지 않음으로 바락이 드보라의 부름에 바로 순종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군사 만 명을 모아 시스라와 전쟁을 할 것을 명령한다. 이것은 전쟁을 결정하는 권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드보라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바락은 드보라의 명령에 주저하며 조건을 단다. 즉,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삿4:8)”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바락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드보라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70인 경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나와 함께 하시게 할 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바락의 이런 모습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날에 신적인 조력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여 바락의 부정적인 요소를 없애려고 하였다. 또한 Fewell과 Gunn같은 학자는 바락이 여성으로서 드보라의 권위를 의심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런 바락의 망설임에 드보라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려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라고 질책한다. 사실 6절에서 드보라가 바락에게 명령을 함으로서 이야기의 주도권이 바락에게 넘어가는 듯하였다. 하지만 바락의 주저함으로 이야기의 주도권은 다시 드보라에게로 넘어오게 되었고 바락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락과 대조적으로 드보라는 직접화법과 ‘반드시’라는 말을 통해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드보라는 바락의 주저함과 용기 없는 태도가 치러야 할 대가를 언급하는데 그것이 바로 시스라가 여인의 손에 팔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스라가 팔릴 여성에 대한 정보는 전혀 주어지지 않고 막연히 “여성의 손”라고 표현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어떤 여성일까?’하는 궁금증을 유발 시킨다. 그리고 ‘여성의 손에 팔다’라는 표현은 자체적으로 모순이다. ‘손에 팔다’라는 단어는 항상 전쟁의 상황에 나오는 문구인데 그 주체가 전쟁과는 무관한 여성의 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표현 자체에서 드보라는 바락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으며 바락에 대한 책망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대는 반드시 남자 장군의 손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전쟁을 모르는 여성의 손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하므로 바락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는 것이다. ‘아미트’라는 학자는 이 구절이 바락이 구원자가 될 가능성을 희석시켰다고 지적하였다.(Amit, The Book of Judges, 207.) 이제 시스라의 운명은 바락의 손에서 여성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그리고 드보라의 예언을 드보라의 개인적인 생각 혹은 책망으로 보는 견해는 드보라가 선지자라고 밝힌 내러이터의 평가적 관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해석으로 보인다. 드보라는 선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보라는 자신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9절, 10절에서 반복하여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드보라는 바락에게 승리의 확신과 전쟁을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삿4:14). 그리고 바락은 드보라의 명령을 따라 군사 만 명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다. 이렇게 바락과 드보라의 관계에서 볼 때 드보라가 구원자이고 바락이 조력자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야엘이 시스라를 죽인 사건은 드보라의 예언의 성취로 이것은 드보라가 참 선지자이며 비록 그 장면에는 없지만 그녀가 전쟁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삿4~5장의 본문 속에는 야엘이 왜 시스라를 죽였는지에 대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야엘의 행동이 드보라의 예언을 매우 극적인 방법으로 성취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야엘이 시스라를 죽인 행동은 드보라의 예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을 충실히 실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드보라가 전쟁 장면 이후에 사라지기는 하였지만 예언과 예언의 성취의 관계를 통해 그녀의 영향력은 사건이 종결 될 때까지 지속되고 있다.)

두 번째 사사기 5장 드보라의 노래에서는 드보라의 구원자적 성격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삿5:3에서 왕들과 통치자들에게 ‘들으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백성들은 위기에 처하자 ‘깰찌어다 깰지어다’ 하면서 드보라를 부르고 있다(삿5:12). 그리고 삿5:13~15에서는 각 지파의 지도자과 백성들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드보라에게 내려오고 있다. 이런 구문들을 보았을 때 백성들은 확실하게 드보라를 구원자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드보라는 노래에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이 호칭은 드보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아이들로 여기고 있으며 자신을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해야 할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란 호칭은 성경에서 여기서 단 한번 나온다. 블록은 “이런 모성적 모습은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여호와의 조력자라는 인상을 드보라에게  부여한다”고 하였다. 즉, 어려움에 빠진 이스라엘을 위해 일어난 어머니의 모습은 단지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는 선지자로서의 모습만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자녀를 자신의 품에 품고 적들을 흉흉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전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구름과 비를 동반하고 나오시는 여호와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엑썸도 드보라에게 있어 이스라엘의 어머니란 의미는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주며, 보호를 해주고, 그의 백성의 안녕과 복지를 보장해 주는 사람”이라고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였다. 평소에는 재판 등을 통해 백성을 돌보던 드보라는 이스라엘이 위기에 빠지자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일어난 용감한 어머니이다. 삿5:7에 따르면(7절 그쳤도다! 지도자가/ 이스라엘 안에 그쳤도다!// 나 드보라가 일어나기까지/ 나 이스라엘의 어미가 일어나기까지) 이렇게 드보라가 구원자로 일어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지도자로 일어서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또 12절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전쟁이 임박한 상황이 오자 백성들이 드보라를 깨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12절은 요청을 하는 어법으로 진행이 된다. 하지만 화자가 드보라에서 백성으로 바뀌었고 백성들이 드보라와 바락에게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요청을 드보라가 직접 화법으로 노래에 인용한 것이다. 1, 2행에서 “깨어라”라는 단어를 4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긴박함과 간절함을 표현하였다. “깨어라”라는 단어는 사51:9, 사52:1에서 삿5:12절과 같은 형식으로 사용되었다.(“깨소서 깨소서 여호와의 팔이여” 혹은 “깰지어다 깰지어다 시온이여”)

이사야에서 ‘깨어라’는 주어가 다르지만 ‘깨어라’ 다음에 모두 ‘힘의 옷을 입으라’고 요청한다. 사51:9의 경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전사이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고 사52:1은 전사로 무장하라고 시온이 요청을 받는 것이다. 세 본문 모두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전쟁을 준비하라는 다급한 요청이다. 드보라에게, 여호와께, 시온에게. 이렇게 나라가 위급해지자 백성들은 드보라를 깨우고 전쟁을 할 구원자로 일어나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3~15절에서는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일어난 드보라에게 전쟁을 하기 위해 모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드보라의 노래에서 백성들은 분명하게 드보라를 구원자로 생각하고 있으며 드보라 자신도 이스라엘의 어머니로서 자녀인 이스라엘이 위험에 빠지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일어선 강한 어머니와 같은 구원자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드보라의 모습은 후에 “나의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요 마병”이라 불린 엘리야 엘시사 선지자의 모습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렇게 사사기 4~5장은 드보라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한 구원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1.5 드보라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를 한 지도자이다.

사사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는 두 가지 기능을 하는데 첫째는 전쟁에 참여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둘째는 전쟁 참여자에 대한 축복과 전쟁 불참자에 대한 저주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이 끝나면 공로와 잘못에 대해 평가를 하고 상을 주거나 벌을 준다. 이 드보라의 노래에서도 이런 기능을 하고 있다. 전쟁이 모두 끝난 뒤 드보라는 노래를 통해서 참여지파의 명단과 불참지파의 명단을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이 사사기 4장과 5장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참여지파는 열심히 내려오는 모습으로 표현된 반면 불참지파는 물가에서 한가하게 노닥거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상벌은 삿5:23~24에서 나타난다.

23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하여 메로스를 저주한다. 그런데 저주 이유가 여호와를 돕지 않은 것이다. 즉, 가나안과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저주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참여하지 않은 지파도 이 저주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24절은 이와 대조적으로 축복을 받은 한 인물이 소개된다. 그는 야엘이라는 겐사람 헤벨의 아내로 이방 여인이며 장막에 거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호와의 적인 시스라를 죽여 여호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에 드보라에게 가장 축복을 받은 여인이라는 평가와 축복을 받았다. 야엘에 대한 축복은 또한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한 모든 지파들에 대한 축복인 것이다. 이렇게 드보라는 전쟁에 참여하여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편에 선자에 대해 잊지 않고 축복하며 그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런 드보라의 모습은 야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많은 주석가들과 대조를 이룬다. 그동안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야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속임수를 쓰고 환대법을 어겼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적으로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야엘이 시스라를 환대하고 안심하게 하고 잠들게 한 뒤 말뚝으로 죽인 사실에 대해 속임수를 쓴 비열한 행동이며 고대 근동에서 손님을 보호해야 하는 환대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불법적인 행동으로 평가를 하였다. 이런 평가는 고대의 전통을 성경의 율법과 동일한 권위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며 현재의 상황이 여호와의 전쟁의 상황이며 시스라가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 여호와의 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시스라를 동정하는 입장에서 나온 해석이다. 그리고 야엘을 성적으로 부도덕한 여인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장군인 남성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여자의 손에 죽을 수 있는가라는 반문으로 시작된다. 즉, 성관계를 가져 매우 피곤한 상태에 빠졌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가들은 ‘우유’, ‘텐트 안으로 들어감’, ‘덮어줌’ 등을 모두 성적인 행동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성경의 내러티브 본문에서 성 문제를 다룰 때는 분명하게 나타내지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의 이런 부정적인 해석들은 모두 야엘의 행동을 전쟁 상황에서 여호와를 도운 관점으로 보지 않고 단지 한 여인 한 남자를 죽인 사건으로만 보기 때문이고 또한 이런 이야기는 대부분의 남성 해석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보라는 야엘의 행동을 인습이나 편견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함으로 야엘을 비록 이방인이고 가정주부이고 여자이지만 하나님의 편에 서서 여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동역자로 보았고 그녀를 축복받은 여인으로 올바르게 평가해준 것이다. 이것은 드보라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관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적용점

적용점에서는 드보라 사사의 특징들을 통해 현재 교회에서 사역하는 여성 사역자들이 가져야 할 리더십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2.1 여성 리더십

드보라는 여성이었고 한 남성의 아내로 소개된다. 하지만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이 전혀 그의 사역에 문제를 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많은 남성 중에 여성인 드보라를 선택하셨다. 그 이유가 남성 중에 지도력을 발휘할 인물이 전혀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 지도자에 대한 논란은 지금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관습이나 사회적 분위기 보다는 드보라의 영성과 능력이 하나님 쓰시기에 적당하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에 합당한 인물이기 때문에 드보라를 쓰신 것이다.

하나님께는 여자인가, 남자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느냐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위에서 살펴본 대로 바락과 야엘을 비교해 보아도 바락이 비록 남성이고 군대 장관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름에 주저하자 하나님은 이방인이고 가정주부인 야엘을 들어 적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죽이게 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것에 동참할 인물을 찾고 계신 것이지 우리 인간들처럼 우리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내나 혹은 다른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며 또한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만의 고유의 특성과 은사가 있고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에는 이 모든 부분들이 다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여성이라는 한계를 지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루실 계획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이다.

 

2.2 모성적 리더십

드보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핍박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녀는 이스라엘 위에 군림하거나 그들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일어난 것이 아니다. 드보라는 평상시에는 재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위협으로 위기에 처하고 백성들이 드보라를 간절히 부르자 구원자로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의 손에서 가나안의 철병거에서 지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지극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을 이렇게 어려움에 빠진 자식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자식을 구하는 어머니와 같은 사랑과 헌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모세도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여 몰살당할 위험에 처하자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 하기를 쉬지 않았다. 그렇게 했기에 모세가 훌륭한 리더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이다.

현대 교회나 사역지에서 여성적 부드러움과 어머니와 같은 사랑과 헌신의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2.3 협력하는 리더십

드보라는 다른 사사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모든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맡은 직책이 다른 사람보다 많기는 하였지만 자신이 감당할 부분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과감히 넘겼다. 예로 전쟁을 위해 바락을 불렀고 전쟁의 마무리를 위해 한 여인을 예비하였다. 그래서 사사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활약하는 다른 사사들의 전쟁과는 다르게 사사기 4장의 전쟁은 전쟁의 처음은 드보라가 준비하고 시작하고 중간은 바락이 여호와를 도와 싸우며 마지막은 야엘이 시스라를 죽임으로 마무리 된다. 세 명의 조화로운 역할 분담을 통해 가나안과의 그 어려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가나안땅 정복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공도 자신의 공으로만 돌리지 않고 같이 싸웠던 모든 지파와 바락과 야엘에게 골고루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드보라는 요즘 시대에 절실한 협력하는 리더십을 잘 보여준 리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도는 모두 지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한 사람이 이끌어가고 나머지는 따라 가는 곳이 아니라 각 지체가 협력해 가는 곳이기에 협력하는 리더십이 더욱 필요하다.

 

2.4 편견 없는 리더십

마지막으로 드보라는 야엘을 평가할 때 현대의 해석자들처럼 성적,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편견을 갖고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가 하나님의 편에 섰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판단하였다.

야엘은 비록 그녀가 이방인인 겐족이고 훈련받은 군인도 아니고 비록 그 당시 문화적 습관과 다르게 시스라를 자신의 텐트로 인도하고 그 당시 관습법이었던 환대법을 어겼다는 작은 사실보다는 더 큰 그림 속에서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그 사실에 더 초점을 둔 것이다. 본문은 야엘이 왜 시스라를 죽였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야엘이 시스라가 올 것을 알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과감하게 행동하여 적장인 시스라를 죽였다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야엘의 행동에 대해 드보라는 칭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도자는 관습이나 인습을 초월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는 눈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을 판단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물론 관습과 인습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바로 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옳은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관습과 사회법이 옳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아닌 것이 있고 반대로 관습과 사회법이 아니라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로 판단하는 판단력이 지도자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이며 이런 판단력이 있을 때 공동체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드보라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을 잘 알았기에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나오는 말

여사사 드보라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어떤 인물이었고 그에게서 어떤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금보다도 훨씬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드보라를 사사로 부르셔서 가나안 정복을 완성시키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시대에 그리고 현재 이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 뜻이 있으실 것이다. 물론 한계가 있고 장애가 많지만 이런 한계와 장애를 모르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우리가 영적인 힘이 없기에 그리고 세상적인 관점만을 가지고 우리의 사역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좌절하고 힘이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어려움에 구원자로 나선 드보라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없지만 믿음 하나로 적장을 죽인 야엘인지 아니면 가나안의 철병거를 무서워한 바락인지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며 우리가 드보라같은 지도자로 설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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