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4) 제21차 영성수련회 폐회예배

한복음 12:26~36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이 단에 서는 것은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난 받는 것을 당연한 것이니까 순응하는 것입니다. 혹은 고난에 따라오는 영광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거나 어떤 보상을 주거나 아니면 괜히 기분이 좋은 것,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에 십자가를 앞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제목을 이렇게 정했어요.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이 세상에 내가 온 것은 이때를 위함이다. 이때는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그분의 사역과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내가 도무지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는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네게서 지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길 원하나이다."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양면성 가운데 샌드위치가 되서 고민합니다.

사역은 힘들다. 혹은 나의 동역자, 조역자, 후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근데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떠나리라" 베드로는 ”누가 주님을 혼자 두냐고 다 버릴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며 죽을 때까지 따라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죠. 우리가 너무 잘 아는대로 세 번 부인했습니다. "어떤 제자는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가더라." 이런 것도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혼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물론 그 아래 몇몇 여인들과 또 사랑하는 요한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떠났어요. 이 말씀을 보며 목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올해로 목회를 시작한지 44년이고 내년 45년째에 그만 둡니다. 한 40년 하고 나니까 목회는 혼자다,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위로와 칭찬 아니면 존경 또는 영광 같은 거 받고 싶습니다. 그거 싫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그런 유혹에 빠지면 십자가를 질 수 없어요. 사역을 감당할 수 없어요. 우리는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영광을 바라보고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길을 먼저 가면 이 땅에서 다 나를 버릴지라도 배신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귀중히 여기신다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갑니다.

우리가 다 처음 신학교 들어올 때는 물도 불도 겁나지 아니하고 불덩이로 들어오는데 목회를 30년, 40년 하고 나면 꾀만 남아서 그게 또 나의 치부가 되진 않을까? 은퇴금은 많이 주진 않을까? 생활비는 좀 주겠지? 좋은 차도 주겠지? 이런 유혹에 늘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은퇴를 눈앞에 두고 보니 이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늦었지만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하나님이 나를 귀중히 여기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지혜가 자라가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지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심고 거두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심은 이나 물 준이나 일반이로되 각 각 자기에게 상이 있으리라."

목회를 하면서 주님이 네게 불가항력적인 사명을 주었으니 그 사명을 가지고 가되 좌우를 보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주겠지 하는 것조차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거기에 너무 실망하고 좌절하고 우울해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신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20, 30, 40대에 그런 자세를 가지고 초지일관으로 나간다면 나처럼 우울해하거나 자괴감이 들거나 사람을 만나기 싫거나 그러한 마음 과정이 없을 것 같아서 여러분께 제가 경험하는 것을 잠깐 맛뵈기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가 목회하던 시대에는 목회하기가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교인들이 대우해주고 섬기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옛날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시대는 힘들어요. 어차피 사명은 감당해야 하니까 주님 바라보고 가야죠. 저는 처남 둘이 다 목사입니다. 여기에도 한사람 와 있어요. 제 사위도 목사, 제 아들도 목사 입니다. 제 아들에게 목회하지 말라고 했더니 자기도 목회를 안 하겠데요. 사위도 목회하지 말라고 했더니 지금 자기는 괜찮고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좋아도 나중에 힘들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16명인데 다 제가 안수해서 세웠습니다. 그런데 소용없어요. 처음에 200명 출석하는 교회였어요. 지금은 장년성도가 2,000명 정도 됩니다. 그것도 다 소용없습니다. 그리고 300평 되던 예배당을 3,200평으로 늘렸어요. 30년 세월이 3년, 3개월처럼 느껴지게 지나갔네요.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는 사도바울의 말처럼 목구멍에 막 올라오려는 말을 지난주에 못하고 우리 사위한테만 목사 그만두고 다시 직장생활 하고, 우리 아들도 목회하지 말고 교수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목회가 쉬운 줄 알죠? 한번 해보세요. 우리 장로님들이 찔리는 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굳은 살이 배겨서 양심이 잘 안찔려요. 화살로 쏴도 안 들어가요. 대부분 목사님들이 그러는데 은퇴할 때 쯤 되면 당회에 잘보여야 한데요. 왜냐하면 원로목사 추대를 받아야 하니까요. 근데 저는 그걸 잘 못했어요. 그래서 아마 안 되는가 봐요. 제가 3년을 버티다가 우리 교회 후임자 청빙공고를 8월 30일까지 광고를 냈어요. 담임목사는 스카웃을 해와야지 목사가 무슨 직원이냐며 버티다가 16대 1로 졌습니다. 제가 두 손 들고 일체 간섭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서류도 보지 않을 것고 서류가 몇 개인 지도 안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은퇴하면 멀리 떠나고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오라고 해도 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왜 여기 다시 옵니까? 목회를 30년, 40년 하고서도 그 교회에 계속 남아계시는 어른들 보면 정말 존경해야 됩니다. 이 분들은 성인(聖人) 이상입니다. 나는 속물이 되서 30년 목회한 교회 꼴도 보기 싫은 거에요. 이걸 보면 아직도 제가 사람이 덜 됐다는 것이지요. 제가 저를 잘 압니다. 혹시 후임 목사님이 오라고 하면 내가 올 수도 있고 안 올수도 있다고 이렇게까지 선포했습니다.

우리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장로님 중에 고등법원 부장판사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발령을 받아서 여러 지역을 다녀봐서 하는 말이라며 “목사님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우리 교회만한 교회가 없더라고요. 우리 목사님만한 목사님 찾기가 드물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더 좋은 교회가 되길 원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했는데 이제는 손들고 편안히 놀고 싶어요.

누가 저한테 은퇴하면 뭐할 거냐고 묻는데 저는 45년 해서 이제 놀고싶다고 했더니 친구 목사가 하는 말이 “2년만 놀면 본전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정말 목회가 웃으면서 기쁘게 해야되는데, 그러나 죄성이 인간속에 있어서 누군가가 나를 지지해 주고 위로해 주고 그러면 더 좋은 것 같은데, 이게 정말 잘못되었구나 생각하다 보니 제가 우울해지고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3년 전부터 그랬는데 이제 그런 생각을 내려놓으니 많이 건강해졌어요. 마음이 편하더라고. 그래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귀중히 여기시면 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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