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C 교계전망대

오프닝 : 생명의 소중함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적인 풍요는 경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자살률에 있어서는 oecd국가들 가운데 최고라는 오명을 12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37명이 자살한다는 그런 통계까지 있습니다. 이런 통계를 놓고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생명을 살리는 영보다는 죽음의 영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생명의 가치와 소중함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무너지는 생명윤리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생명에 대해서 어떤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할지 심도있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생명을 스스로 파괴하는 자살 문제와 교회가 자살 예방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샘병원’ 대표원장이시며 국가생명윤리위원장이신 박상은 원장님, 그리고 남서울대학교 교수이시면서 새새대교회윤리연구소 소장이신 문시윤 교수님, 자살예방단체인 ‘life hope’ 사무총장이신 장진원 목사님 나와 주셨습니다.

사회자 : 계속해서 생명 윤리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오늘은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생명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도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자살에 대한 이야기도 참 다루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우선 정의부터 하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박상은 원장님, 죽음, 자살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립니까?

박상은 :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중단시키는 그런 행위를 얘기하겠죠.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정신 질환의 결과로 일어나는 자살일 수도 있고, 또는 여러 사회환경적인 것 때문에 원인별로 다양한 분류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궁극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종결시키는 그런 행위가 자살이 되겠습니다.

사회자 : 라이프호프에서는 어떻게 자살을 규정하고 있습니까?

장진원 : 일단 죽음에 대한 공통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에서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자살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이미 지나서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질병적인 한 질환으로 자살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은 한국사회의 심각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새로운 자살의 개념들도 많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 : 문시윤 교수님,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자살을 좀 심도 있게 다루십니까?

문시윤 : 자살문제가 ‘바이오메디칼 에틱스‘ ’생명의료윤리‘에서는 아주 다양하게 이야기가 되고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잊고 있습니다만 미국에서 ’닥터 커버키언‘의 경우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용어를 쓰게 만든 사람입니다. 자살은 자살인데, 의사가 조력해서 ‘doctor aided suicide’라는 말이 나온 장본인인데 여러 원인들도 있고 연령대별로도 여러 분석이 있습니다만 “내 생명의 처분권이 나에게 있다”라는 의식의 변화, 생명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로부터 이런 자살의 문제들에 다양한 어려움이 생기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리학에서는 고대 유명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일부 자살한 얘기도 쓰고 있기도 하고 자살의 역사성을 얘기하면서 자살이라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재조명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잡하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상은 : 의사조력 자살을 말씀하셨는데 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살의 상당수는 깊이 들어가 보면 자살이 아니에요. 아까 타살 말씀도 하셨습니다만 예를 들어서 요즘 ‘자살카페’에서 만나서 동반자살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모텔방을 구해 거기서 번개탄을 피우지 않습니까? 그럼 번개탄을 피우는 행위를 한 사람이 같이 누워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타살의 행위를 한 것입니다. 같이 있기로 동의해서 있습니다만 그런 부분에서 ‘자살과 타살’이 이제는 합쳐져서 동반자살이 됐는데 예를 들어서 특히 가족들이 같이 동반자살 하는 경우를 알고 보면 나이 어린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해서 자살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은 아이들을 살해하고 자기가 자살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세 명의 타살과 한명의 자살을 합쳐서 우리가 동반 가족자살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런 어휘가 상당부분 우리를 혼동하게 하면서 마치 그것이 자살로 포장이 됩니다만 살인과 뒤범벅이 된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명확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자 : 결국 자살은 사회적 문제군요.

장진원 : 지금은 그렇게 보여지고 아까 말했듯이 지금도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사실 맞지 않습니다. 아까 살해 후 자살 이런 표현도 있고, 이어서 말하면 이제 한국사회의 독특한 현상들이 있죠. 자살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과 최근 자살의 경향들도 ‘한국형 자살’이 무엇인가 하는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의 연구 기간이 짧고 ‘자살예방조례법’도 통과된지 얼마 안됐고, 그런 것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분노형 자살’이라든지 사회적인 이슈화에 대한 영향이라든지 경제적인 문제 이런 것들이 다각적으로 지금 복합적인 상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자 : 장 사무총장님, 이왕 말씀하신 김에 우리나라의 자살 현황을 좀 세밀하게 한번 짚어주시면 어떨까요.

장진원 : 많은 분들이 심각하다는 것은 다 인식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입니다. ‘OECD 12년째 1위’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심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이죠. 2015년도 보고가 14,513명 정도입니다. 물론 작년 한 2년째 조금씩 줄고 있어서 또 자살예방하시는 분들의 수고에 저희도 동의하고 감사드리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위 국가하고 2-3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2위가 헝가리인데,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고, 보통 OECD에서는 자살률을 10만 명당으로 얘기하면 보통 평균이 한 10명이하, 적어도 5명이하가 안전한 국가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26명 정도니까 굉장히 불안한 국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자살이 1위가 아닙니다. 그건 맞습니다. 사실 청소년 자살률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숫자적으로 보면 노인 자살이 굉장히 높고 80대 이상이 굉장히 집중되어 있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모든 세대가 다 많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향성입니다. 특별히 자살 시도자들은 아직도 파악이 잘 안되고 있고 일년에 최소한 60만 명 이상, 자살해서 바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성공률이 한 10-15% 정도라고 보면 60만 명에서 100만 명 정도가 일 년에 자살 시도를 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이 시도해서 실패하면 다음에 또 합니다. 또 거기에 대한 유가족들과 충격을 받은 고위험군까지 하면 일 년에 한 360만 명, 부산시 인구가 매년 자살에 연관되어있고 고통 받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것을 12년 동안 해왔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자살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자 : 자살징후나 이런 것들을 파악하는 방법들이 있습니까?

장진원 : 의학적으로는 우울증에 기반해서 우울증 검사라든지 심리검사가 있지만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많습니다. 남성들의 자살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질환이 있겠지만 충동이 대부분 많습니다. 사회적인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죠. 그러다 보니까 일상적으로 생활하다가 갑자기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위에서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준비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냥 갑자기 하는 경우는 없고, 평균적으로 6개월 이상 준비하시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겠죠. 또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공동체나 교회나 또 가족이 모르고 있다면 갑작스럽게 그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사회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자 : 수능 시험을 전후로 해서 ‘수학능력시험’을 본 학생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어떻게 봐야 될까요? 문 교수님, 여러 가지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나 개인의 윤리 의식이나 또 상황적인 판단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결부되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문시윤 : ‘뒤르끼엠’이라고 하는 사회학자가 자살 자체를 이미 사회병리로 규정하면서부터 자살에 대한 사회적 지평에서의 논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가 어느 개그맨이 했던 그 한마디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이러한 ‘피로사회증후군’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분이 문화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질리고 지쳐야 그만둔다는 말을 하시던데요. 하여간 남들이 알아줘야 되고, 내가 할 만한 것은 다 해봐야 되고, 이런 데서 오는 여러 가지 좌절, 우울감, 이런 것들이 경쟁과 관련된 부분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될 거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줄 세워서 성적순으로 무엇인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특히 수능과 관련 되서 생각해 보면 이제 20세의 그 사람이 들어간 어느 대학이 서열이 높은 대학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서열지어지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과감하게 지적하고 싶은데 정확하게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이 문화가 먼저 지적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지 혹은 모르고 있는지 그런 그 약간의 혼돈이 있는 사이에서 늘 번영하고 복 받아야 되고 잘되어야만 그것이 삶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가르쳐 오는 문화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굉장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번영의 복음, 축복, 이런 것에 관심 갖게 하고 심지어 거기에 집착되고, 중독되게 하면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그 사회 병리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도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살 문제에 대해서 예방하고 가이드라인을 줘야 될 교회가 이 문화에 대해서 분명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사회자 :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자살의 관련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될 것 같은데요. 특별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졌던, 또 그렇게 자기 간증을 많이 했던 분들이 자살에 이르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을 많이 아프게 하고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혼돈으로 몰아넣는 그런 경우들 많이 있는데, 박상은 원장님, 많이 경험하셨지 않습니까?

박상은 : 장로님, 목사님, 많은 자살의 예외가 아닌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운데요. 결국 아까 나온 것처럼 세상의 어떤 잣대가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오다 보니까 교회와 세상이 별 차별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자살률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생명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너무 잘못되어 있지 않는가? 내가 누릴 수 있는 생명권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생명 결정권하고 혼동하는 것 같아요. 생명은 우리의 심장이 뛰는 동안 마음껏 이 삶을 누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또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면서 사는 권리가 생명권인데, 생명 결정권은 생명의 시작과 마지막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거잖습니까? 이것은 원래 하나님께 속한 권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누리라고 주신 생명권인데 마치 이것이 내 것인 것처럼 결정하려고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에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교육과 정립이 교회 안에서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고요. 저희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도 이 자살문제가 우리나라가 말이 1위지만 2위하고 차이가 꽤 많이 나는 1위입니다. 응급실에 자살 환자가 많이 오는데 사망진단서에 자살이라고 적히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 문화이다 보니 자살로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자살이 있다고 보고, 특히 청소년들 자살 숫자에 많이 반영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보면서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생명존중선언문’을 발표했었습니다. ‘생명존중선언문’ 내용 중에서 핵심은 ‘우리의 생명은 선물이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1) 생명의 책임성 - 내가 지키지 않으면 지켜낼 사람이 없다. 내가 지켜야 된다. 2) 생명의 평등성- 외모나 또는 학식이나 또는 재물로 비교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명은 그 자체가 신 앞에서 평등하다. 3) 생명의 안정성- 이것은 우리 사회가 지켜내야 됩니다. 4) 생명의 관계성 - 혼자 힘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안전망을 세워서 특히 교회가 촘촘한 그물망이 되어서 빠져나가는 생명이 없도록 지켜내야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역할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 아주 촘촘한 안전망을 말씀해 주셨는데 장진원 사무총장님, 계속해서 자살 예방에 앞장서 계시면서 한국교회 안에서 자살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오는 것 자체가 굉징히 힘들었을 것 같고 또 터부시되는 주제이니까 어떤 의미에서 저항도 받았을 것 같은데요.

장진원 : 물론 초기에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자살을 왜 다루냐는 물음들이 많았고 그 원인은 교리적인 것이었습니다. 교리에 대해서 연구하고 활동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이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개신교 국가에서 자살을 교리적으로 정죄하는 국가는 거의 없고, 사실 가까운 우리가 신앙을 이어받은 어떤 북미나 유럽에서도 당연히 거기에 대한 질문은 사실 한국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오해 중에 하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제는 교리적인 것을 떠나서 유가족들을 생각하고 또 자살 예방을 생각했을 때는 그런 것들을 좀 더 전향해야 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례나 이런 문제들이 많이 개방되어서 공식적으로 장례 문서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살의 문제를 믿음, 교리, 회개의 문제로 다루기보다 우울증의 문제, 또 돌봄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그런 섬김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자살 예방을 위하고 성도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될 부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자 : 같은 맥락에서 이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데 결국 자살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유가족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고 또 어떤 방식으로 계속해서 나눔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장진원 : 저희는 유가족 크리스천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수련회를 갔다 왔어요. 그분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낸 다음에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은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느냐?” 자살 유가족 분들은 마음을 치료하지 않고 대부분 참고 계세요. 그리고 말 한마디 때문에 공동체에서도 못 견디고 나옵니다. 정말로 제일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내 자녀가, 내 부모님이 자살했는데 천국 갔는지 지옥 갔는지 입니다.
또 그런 분들은 평생 불행하게 사십니다. 남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남은 사람들은 평생 행복하면 안 되고 죄인으로 살게 만드는 것이 정말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일까요? 교회가 그들을 정죄해야 될 것인가? 자살 이후의 유가족들은 초기 치료가 가장 중요합니다. 3개월 이내에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 합니다. 고통을 참고 평생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고 대안을 주기 위해서 교회와 사회와 전문가들이 함께 그들을 치료한다면 훨씬 더 행복하고 특별히 자살률을 충분히 예방하고 낮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상은 : 자살을 경험한 그 유가족들이 또 다시 자살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심리 부검’이라고 시체 부검하듯이 그 자살 원인을 좀 심층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동감이나 이해하는 것들을 통해서 가족들이 새로운 모색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교회가 할 역할이 많은 것 같아요. 자살을 너무 쉬쉬하는 게 아니라 그 가족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냥 방치했을 때는 이게 오히려 확산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 문시윤 교수님, 목회적인 차원에서 목회자들이 자살 유가족들을 좀 어떻게 대해야 될는지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까?

문시윤 : 언젠가 자살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목회상담학자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언론이나 보도에 자살이라는 단어가 많이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천 명사들의 자살을 언론에서 자주 언급하면 부정적인 효과들이 있다. 가급적이면 노출빈도를 낮춰야 된다.” 이런 말씀으로 얘기가 진행됐던 기억이 있습니다. 목회적 관점에서 보면 노출빈도를 낮추는 것이 이론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치 믿음이 없어서 자살 한 것이나, 또는 죄를 지은 것으로 정죄하는 관점으로부터 목회자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살 문제를 교회가 해결하기 위해서 첫 번째 포인트가 교리에 대한 극복일 텐데요. 하지만 이 교리 자체가 또 기독교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새로 진지하게 좀 더 현실에 기반해서 신학자들이 논의를 다시 시작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생명윤리 활동을 하다 보면 논문을 발표하면서 보면 늘 한쪽에서는 교리적으로 잘못됐다고 합니다. 과연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먼저 교리에 대한 신학적 논의가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계속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율법적으로 정죄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살 예방을 위한 목회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 ‘자살은 예방이다’ 이렇게 이제 정리할 수 있겠는데요. 교회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한 분씩 말씀해주시고 오늘 얘기를 정리하겠습니다.

장진원 :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겠지요. 그 속에서 자살에 대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유가족을 돌보는 일일 것입니다. 또 처음에도 나왔지만 지역 네트워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실 교회는 각 지역마다 재능 있는 상담가들 목사님들이 돌볼 수 있는 자원들이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교회들이 실질적으로 이 사회의 자살 예방 또 생명의 문화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들과 프로그램들, 그리고 일 년에 몇 번 정도는 속회 지도자들에게 교육시키면 좋겠습니다. ‘자살예방’ 전문교육은 전 국민이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봐주고 또 전문가에게 연결시켜주는 이런 일들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마 한국교회 또 희망을 위해서 또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교회만큼 사회안전망이 조밀한 데가 없죠? 그런 측면에서 라이프호프에 도움을 받고 자살 예방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 연락하면 되나요?

장진원 : 라이프호프 홈페이지를 보시면 특별히 저희가 무지개 강사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목회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 특별히 최근에는 크리스천 유가족 모임 같은 것들이 좀 더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숨어계신 분들이 힘들어도 찾아오신다면 함께 치유하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사회자 : 너무 모르시는 것 같아서 좀 알려주시면 좋겠다 싶고, 또 숨겨 놓았던 어떤 상처들이 있으면 연락을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문시윤 교수님,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시죠?

문시윤 : 제가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자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교리에서 자살을 죄로 규정했던 것이 보호막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신학자로서 제안해본다면 ‘자살 예방’에 초점을 맞춰서 목회자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고, 설교에 반영할 수 있고, 교회 교육에 반영할 수 있는 현장 중심적 논의가 신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또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자살예방을 위해서 수고하는 시민단체와 깊이 협력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박상은 : 저는 응급실에서 자살의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청소년들의 자살은 정말 안타까워요. 그 어머니가 바닥을 치면서 통곡하는 얘기가 아침까지 멀쩡했다는 거예요. 이게 참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고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관심을 가지고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비교의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아이들을 풀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씀도 하셨는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정말 한 아이의 그 소중함을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정말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는 빈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고독사 부분도 결국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자살에 많은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장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데 그것을 자살 예방에 잘 활용해서 시민단체와 잘 네트워크를 해가지고 각 지역마다 자살 예방의 중심에 지역 교회가 역할을 해내기를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결국 예방이 가장 중요하고 교회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패널들께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이 주제를 가지고 샘병원 대표원장이신 박상은 국가생명윤리위원장님, 또 새새대교회윤리연구소 소장이시면서 남서울대학교 교수이신 문시윤 교수님, 자살예방단체인 라이프호프 사무총장이신 장진원 목사님 말씀 나눠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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