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평 장로 이야기(5)

“시각장애로 글도 못 읽고 손가락은 감촉도 없으니 성경을 통째로 암송합시다.”

양재평 장로의 제안으로 애양원교회 교인 몇이 모여 신약성경을 암송했다. 눈 밝은 봉사자가 읽어주면 몇 번이고 따라 읽으며 신약성경을 암송했다.

동산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남전도회나 여전도회원들이 종종 애양원 성경암송반을 찾아가서 양장로님의 간증을 듣고, 함께 성경 읽고 기도하며 찬양했다. 과일과 떡을 준비했고, 함께 부를 복음성가도 챙겼다. 신곡보다는 한국 교회가 전통적으로 부른 그런 찬송이었다. 외로운 분들을 위로하는 것도 보람이지만, 우리의 메마른 심령, 건강하면서도 감사가 식어진 길바닥 심령에 은혜의 샘물을 채우러 가는 것이었다.

세상 소망 다 내려놓고 평생을 한센병으로 살아온 한 많은 사람들.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무서운 병, 세월을 지내며 소리 없이 찾아온 장애까지 겹쳐 살면서도, 오직 믿음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그분들의 믿음은 어디서 볼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분들을 뵙고 나면,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들은 한낱 엄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설교나 권면으로는 깨닫기 어려운 은혜의 메시지요 강력한 감동이고 도전이었다.

양재평 장로님께서 성경암송반을 소개했다.

1954년에 8명으로 시작해서 50년이 넘도록 매주 두 차례씩 모였다. 처음에 이렇게 권했단다. “우리는 눈도 멀고 손가락도 없소. 손가락이 있다 하여도 지문이 없고 감촉도 없으니 점자도 못 읽습니다. 그래도 청각과 기억력이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언제까지나 남이 읽어주는 성경만 들을 것이 아니라 성경을 우리 마음 판에다 새깁시다. 우리 형편이 다섯 달란트를 가진 그런 사람이 못됩니다. 그래도 한 달란트는 남았습니다. 그러니 해봅시다.” 하고 강권한 것이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봉사자가 수 십 번을 읽으면 듣고 겨우겨우 암송해도 금방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는 굳은 각오로 물러서지 않았다. 실망했다가도 다시 암송하기를 거듭하면서 성경이 한 장씩 외워지고 어떤 사람은 신약성경 한 권씩 암송했다. 정말 희한했다.

양 장로님은 신약 27권 전부 암송했다. 대단한 노력이었다. 대학생들이 모이는 CCC수련회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간증했다. 총재였던 김준곤 목사님과 동향인이었다.

양 장로님이 애양원병원 수요예배를 인도할 때면 성경책도 찬송가도 손에 들지 않았지만 성경 말씀과 찬송가는 막힘이 없었다. 자동으로 잘 풀려나왔다. 참석자들에게 큰 은혜였다.

교회나 개인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자신의 삶과 순교하신 손양원 목사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가족이 흩어져서 고생했던 일, 1948년 여순사건 때 두 아들이 순교한 일 그리고 그 살인자를 용서하여 아들 삼은 일, 6‧25 때 손 목사님께서 순교하신 일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비문도 다 외워서 소개했다.

구구절절이 눈물 나고 마음을 뜨겁게 하는 일화들이었다. “우리는 이중 삼중 장애를 입었지만 오직 예수 믿음 붙들고 이렇게 열심히 삽니다. 당신들은 건강하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하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권하는 그의 간증과 권면은 권세 있는 말씀이었다. 감동이고 교훈이었다.

그의 간증이다. “사람들은 나병을 천형天刑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이 좋은 것이라 했거든요. 예수님이 이 일로 나를 불러 예수 믿게 하셨습니다. 저는 쉽게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었지요. 그러니까 천혜天惠를 받은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천국 소망으로 행복합니다.” 그의 인생여정은 84세로(2007. 10. 15.)로 마감되었다. 은혜로운 이야기들을 남기고.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전도서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라 하였다. 장로 ‘양재평’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보배로운 이름 아닌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