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결혼하겠다는 생전 처음 보는 한국인 남편을 무조건 믿고 한국으로 시집 온 자매이야기입니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도시 인천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고 때론 두려웠습니다.

그럴 때 집사님을 통해 교회를 소개 받았습니다. 평생 처음 들어간 한국의 교회, 인천제2교회였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며 그 무엇인지 몰라도, 또한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좋았고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그 후 주일예배와 기도회를 가는 것은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니는 회사는 주로 야근을 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아침이면 한잠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집으로 가느냐, 교회로 가느냐의 고민도 있을 법한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야근 후에도 주일예배는 우선순위였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면 삶의 힘과 한국생활을 하는데 담대함이 찾아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교회로 인도해 주신 집사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생활도 철저히 했습니다. 혹 헌금봉투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집사님, 혹은 교역자들에게 확인하면서까지 헌금생활에 동참하는 것도 믿음생활의 기쁨이요, 확신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교회생활의 자유로움은 한국인 남편의 허락 때문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남편은 아내가 이단 사이비 교회를 다니지만 않으면 허락해 주겠다는 열린 마음이 계신 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이상한 교회가 아님을 확인한 후에는 자주 아내가 교회 다니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교회 앞까지 차량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아직은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을 약 올리며, 애타게 하는 남편과’에 속하지만 말입니다.

잠을 아끼며 힘들게 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작은 차량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차량을 구입한 목적은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구역식구들 또는 그들의 자녀들을 주일날 교회로 안전하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그리도 마음이 아름답고 믿음이 잘 성장했는지요?! 그 베트남 성도님의 차량을 이용하여 교회로 오는 구역의 자녀들은 평생 그 추억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충분히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말입니다. “구역장 집사님의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요. 저와 집사님이 시간이 될 때 제 차로 면회를 갈 것입니다. 저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운전 잘 합니다....” 교회를 다니며 한국생활에 안정과 보람, 그리고 기쁨을 찾은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남편은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구역식구들과 자녀들을 맥도날드 헴버거 가게로 데려가 한턱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베트남에서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 정도로 삶의 여유가 있었던 분이었는데, 이제는 한국생활과 교회생활에 즐거움을 느끼며 비자를 계속 연장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모시고 월남 국수를 대접하니까 너무 좋아서 야근했는데도 잠이 안 와요. 안 자도 될 것 같아요!^^”라며 밝게 웃던 한국 이름이 장영아 성도님이 계시기에 목회의 어려움과 복잡함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은 저의 목회의 기쁨이요 면류관 같은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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