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내 목욕탕에 참 귀하신 분들이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소자, 영육간에 가난하고 힘든 분들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시기에 귀한 분들입니다. 그분들도 귀하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목욕탕 봉사 사역하는 분들은 더 귀한 동역자임을 고백합니다.

목욕하러 오시는 분들은 목욕을 끝낸 후, 원하시면 목욕탕 옆에 있는 옷방에 들어가 원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가실 수 있습니다. 또 원하시면 교회에서 정성으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드시고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교회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며 감사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솔직히 그들은 성도님들이 거룩하고 의로운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교회, 목사 및 교인들에 대하여 느끼며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교회내 목욕탕입니다. 물론 목욕탕과 식사제공을 통해 주님 사랑을 경험하며 본 교회에 등록하여 학습, 세례를 받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목욕을 기다리시는 분들 중에 대부분은 교회와 담임목사님에게 감사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교회, 이런 목사님이 어디 계셔! 고마울 뿐이야...” 그러면 가끔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아니야, 신문과 방송을 보니까 아주 나쁜 교회와 못된 목사들도 많이...”

그럴 때마다 목욕탕 봉사하는 분들은 특이한 현장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교회와 목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잖아. 그렇게 교회와 목사님을 욕하려면 목욕하지 말고 그냥 가요! 사람이 은혜를 알아야지..” 웬만한 교인보다 더 귀한 마음으로 분명한 발언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의 나눔과 섬김의 모습을 보면서 그 분들이 이미 교회와 목사, 그리고 교인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신앙 및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그저 우리끼리 인정하고 우리끼리 좋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다가 결국 초대교회와 교인들을 극한 박해를 통해 사방으로 흩으시던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 한국교회와 우리 교회에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물론 교회의 첫 번째 존재 목표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교회가 교회 밖으로, 성도님들이 교회 밖 사람들에게 흩어져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들의 섬김과 희생을 보면서 주님께 대한 새로운 궁금증과 교회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에 그렇게 섬길 수 있는 교인들과 재정상황을 계속 허락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는 교회 방향임을 우리 안에서 볼 수 있는 귀한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이듯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교회 만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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