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 중에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앞에 앉아있던 성도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인생을 살아왔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주님을 더 의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 감사하고 행복하답니다. 직장일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고 싶어서 더 힘든 일을 맡아 하고, 기꺼이 손해도 감수합니다. 완전하지 못한 교회 공동체이지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섬기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바보가 예수님 닮은 바보성도였습니다. 예수님도 바보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보라고?’ 명예훼손죄에 걸려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보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죄인 취급 받으시면서 십자가에서 묵묵히 죽어가셨습니다.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다고 여깁니다. 사실 예수님의 바보스러움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의 삶 전체가 그렇습니다.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원하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종처럼 섬기는 자로 사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고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니까 그곳을 떠나서 전도하고 병을 고치는 일을 하십니다. 욕을 먹어도 맞대어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실 때는 묵묵히 참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보통 바보가 아닙니다. 그분이 왜 바보가 되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도 바보처럼 살라고 하십니다. 바보의 길을 가신 주님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바보목사, 바보장로, 바보권사, 바보집사, 바보성도가 되라고 하십니다. 바보가 되기를 거부할 때, 문제를 일으킵니다. 자기 잘난 줄 알고 살아갑니다. 자기 경험, 자기지식, 자기주장을 앞세웁니다. 똑똑한 척하며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기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다툼을 일으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고, 곧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마틴 루터가 면죄부를 판매하는 타락한 로마 카톨릭교회를 향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개혁운동입니다. 그때 있었던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강력한 외침이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 안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보로 사는 길입니다. 주님 닮은 바보들이 많은 교회,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우리 함께 바보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바보 목사, 바보 성도가 됩시다. 그런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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