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선생 아닌 사람이 없고 학생 아닌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천하에 교만하기 짝이 없으면  평생 선생을 만나는 기쁨과 학생이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고 또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가만히 보면, 정말 선생 같지 않은 선생이나 학생같지 않은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은 ‘교만’인 것 같다. 반면에 선생이면서도 학생처럼 늘 배우려고 하는 선생이 있고, 학생이면서도 선생들에게 말없이 가르침을 주는 학생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겸손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저마다 잘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겸손이 아닐까 싶다. 주여, 내게 겸손을 허락하옵소서~!

지난 목요일 참으로 가슴이 짠하면서도 감동과 도전이 되었던 일이 있었다. 내가 진행하는 암환우님들을 위한 뮤직테라피 프로그램에 늘 빠지지 않는 내 동년배쯤되는 남자환우님이 있다. 그가 너무나도 수척한 모습으로 힘없이 와서 하시는 말씀  “목사님..., 제가요..., 몸이 너무 아파 여기 올 수 없는데요, 목사님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그의 눈빛에서 ‘갈망하는 눈빛’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렇다. 그의 눈빛은 갈망 그 자체였다. 물론 그는 나에게 그 눈빛을 보내었지만, 나는 안다. 그의 갈망은 눈 앞에 있는 인간 김동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김동문 위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이라는 것을!

그 일이 있고나서 내 뇌리에 두 단어가 떠올라서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치어리더’와 ‘에너자이저’라는 단어이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에서 날마다 펼쳐지고 있는 풍경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르신들 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의 활발한 활동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묻어나는 소리들, 아이들 센터에서는 역시 아이들의 활발한 활동에서 나오는 에너제틱한 소리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이 생명력 가득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는 중심에는 직원들이 있다. 즉, 직원들이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치어리더 역할을 하고 에너자이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해빌리지에는 치어리더들과 에너자이저들로 인해 건강하고 행복한 에너지가 끊임없이 발산되는 것이고, 나는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에너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살리는 에너지와 죽이는 에너지가 그것이다. 어떤 사람은 살리는 에너지를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죽이는 에너지를 가지고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도 죽이기도 한다. 왜 똑 같이 밥을 먹고 사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살리는 에너지가 나오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죽이는 에너지가 나올까? 내 생각엔 밥 먹고 나오는 원에너지는 누구나 똑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안에 생명의 영이 있으면 그 사람의 에너지는 살리는 에너지로 사용되고, 그 안에 죽음의 영이 있으면 그 사람의 에너지는 죽이는 에너지로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신앙적 관점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영이시고 마귀는 죽음의 영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에 속한 사람은 밥 먹고 얻은 육체의 힘과 공부해서 얻은 지식의 힘과 예수 믿어서 얻은 믿음의 힘을 가지고 약한 사람 강하게 하고 쓰러진 사람 일으켜주고 지친 사람 힘 얻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놀란 가슴 진정시켜주고 화난 사람을 진정시켜주고 불안해 하는 사람에게 평안을 주고 가난한 사람을 부요하게 해주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또 예수의 영에 속한 사람은 마귀의 영에 사로잡혀 그 있는 힘을 가지고 사람 넘어지게 하고 죽이는데 사용하는 악한 자를 담대하고 용기있게 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마귀는 대적해서 내쫓거나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지 피하거나 겁내거나 져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럼, 예수님을 안 믿으면서도 생명 잘 되게 하고 살리는 데 열심을 내는 사람은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생명 잘 못 되게 하고 죽이는데 열심을 내는 사람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솔직히 나도 명쾌한 답을 못 내리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영은 살리는 영이시고 마귀의 영은 죽이는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밥 먹고 얻은 힘과 배워서 얻은 힘과 믿어서 얻은 힘을 ‘살리는 일’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한 주간을 반추해보니, 울 해빌리지 공동체 안에서는 늘 살리는 에너지가 용솟음쳤고, 갈망하는 이에게 다가가 품어주고 기도해주고 찬양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살리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치어리더와 에너자이저 역할을 하며 그렇게 생명의 에너지를 가지고 살리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이를 놓고 보면, 예수님과 우리의 공통점은 생명의 에너지를 가지고 살리는 일을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백한 차이점은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로서 우리의 영원한 치어리더요 에너자이저이시지만 우리는 그저 제한적 일시적 치어리더와 에너자이저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만한 생각일랑 아예 하지도 말고 그저 항상 겸손하게 주어진 때에 주어진 역할 잘 감당해야 할 터.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도 있듯이, 철 지나고 때 놓치고 껄~ 껄~ 껄~ 하며 후회하지 않도록 기회가 주어지고 힘이 있을 때 잘 하자. 주님은 분명 그런 우리를 도우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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