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평생 짖다가 간
똑똑한 바보가 묻혀있다"
민족시인 故 서은 문병란 선생의 묘비이다.
2015년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 분단, 국토 분단을 애통해 하며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꿈꾸며 독재 정권, 부패 정권을 질타한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심문과 협박을 받으며서도
꿋꿋한 민주화의 열망을 외쳤다.
그의 <땅의 연가> 한 부분이다.
...
나를 사랑해다오, 길게 누워
황토빛 대낮 속으로 잠기는
앙상한 젖가슴 풀어 헤치고
아름다운 주인의 손길 기다리는
내 상처 받은 묵은 가슴 위에
빛나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다오!
짚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고무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군화가 짓밟고 간 다음에도
탱크가 으렁으렁 이빨을 갈고 간 다음에도
나는 다시 땅이다. 아픈 맨살이다.
나는 그에게서 詩를 배우고 있었고,
2년만인 2014년 가을에 <할머니의 기도 손>이라는 작품으로
<문학예술>에 등단시켜 주었다.
시인으로 세워준 것이다.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 3편의 작품, 한 평생 신앙과 목회의 결실물로서 큰 '울림'을 택하여
감히 목사보다 더 높은 점수 얹어 시인의 호칭으로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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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기도 손
황영준
순백 목련
꽃잎 떨어지고 남은 씨 주머니
열 손가락 다 잃어버린 몽당손
하늘 향해 뭉툭 손 합장한다
동병상련 소록도 부부
죽지 못하는 목숨 살아보자며
돼지 먹이고 마늘 심고 일했더니
“하나 둘, 열 손가락 다 없어졌어요”
아른거리는 눈물 세월
엄마 품 젖먹이 꼼지락 열 손가락
친구들 어울려 신부 꿈 수놓던 섬섬옥수
“내 손이 참 고왔어요”
새벽 예배당
종지기 박 권사 할머니
하나님 만나는 기도 시간
엎드려 두 손 들고 학처럼 운다.
<2014 가을. 『문학예술』 등단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