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연하의 남편과 사는 아내 이야기입니다. 그 아내는 결혼 후 막내 남동생과 같은 남편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하며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있을 때, 둘만 있을 때도 늘 최상의 존댓말, 때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그 녀석에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엄마, 엄마는 아빠보다 10살이나 많은데 왜 그렇게 늘 아빠에게 존댓말을 해요? 존경스러워요!” 그랬더니 그 엄마 대답이 걸작이었다고 합니다. “쟤... 이렇게 안하면 삐져!” 혹 그렇다 할지라도 자녀 앞에서 또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감추는 것 지혜로운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장자권을 강탈했던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에서는 어떤 감정이었겠습니까? 폭풍분노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그런 생각을 품었을 뿐 정작 만날 때에는 자신의 그런 감정을 털어버리고 야곱을 보자마자 먼저 달려갔습니다. 먼저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먼저 용서하였습니다. 결코 옆에 있던 가정 군대장관에게 “쟤... 이렇게 안하면 삐져!”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 자신을 철저히 외면, 부인, 배반했던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그 때 그를 향한 폭풍, 질풍언행은 당연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운전하다 쌍욕이 나올 것 같으며 이미 정해 놓은 쌍욕 숫자를 외친다고 합니다. “에이.. 1번!” “정말.. 6번이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로지 평강을 비는 인사를 나누며 그에게 용서의 증표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쟤... 이렇게 안하면 삐질걸?” 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시고 말입니다.

가족 혹은 성도님들에게 그런 지혜로운 언행을 하므로 축복의 통로요, 복의 근원이요, 요셉의 창고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 관리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육신은 결코 마음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 사람의 마음이 그의 언행과 표정까지 절대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는 우리들에게 지킬 만한 것 중에 최고의 것이 바로 자기 마음임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바뀌면 말도 바뀌고, 인상도 바뀌며, 결국 인생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와 교회는 바꿀 수 있으나 자신의 성격은 결코 바뀌지 않는 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구원 문제를 해결한 후에는 자신의 마음과 성품을 바꾸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예수님 안에서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잘 가는 고급 목욕탕에 앵무새가 있었습니다. 그녀도 목욕을 하고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으로 나오면 그리 예쁘지 않았는지 앵무새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참, 못났다!” 아무리 앵무새라도 그렇지, 나올 때마다 그렇게 말하니 주인에게 저 녀석의 말을 조심시켜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몇 번에 걸친 주의에도 불구하고 앵무새는 계속 “참 못났다!”라고 앵무새가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말하자 엘리자베스가 그 녀석을 잡아 머리카락을 다 뽑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그 고급 목욕탕 남탕으로 들어가는 대머리 율브린노를 본 이 녀석이 그를 향하여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니도 봤재?!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자신의 몇 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그 마음과 성품을 바꿀 수 있는 비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성령과 성경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새로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된 증거는 분명합니다. 자신의 단점이 보이고 다른 가족, 혹은 성도의 장점도 보이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님은 지금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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