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라는 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홀로서기를 꿈꾸며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홀로서기’를 노래하지 않는 것 같다. 대신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노래한다. maybe..., ‘홀로서기’ 당시에는 나름 열심히 살면 홀로설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는 시대였던 모양이고, 그 희망을 부여잡고 오늘의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며 홀로서는 노력을 하며 살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들이 더 이상 ‘홀로서기’를 노래하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노래하는 것은 아무리 참고 노력해도 홀로 설 수 있는 희망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점점 짐만 무거워지고 그 무게만큼 삶의 질이 떨어지고…, ‘가만히 있으라’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죽을 일만 생기고…. 그런 가운데 사람들은 ‘이런 우라질레이션~’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면서 쓴 웃음과 헛웃음을 웃으며 사는 것 같다. 오늘이 이러할진대,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 ‘환희의 송가’를 부를 수 있을까? 그럼 부를 수 있고 말고. 암~ 그렇고 말고….

젠 평소 마음을 주고 받던 ‘노아의집’ 김창언 원장님의 따님 결혼식에 참석을 했었는데, 참으로 복스럽고 아름답고 은혜스런 결혼식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홀로서기’에 대한 생각을 했더랬다. ‘홀로서기… 기쁜, 그러나 만만치 않은 여정’ 꽤 괜찮은 워딩(wording) 아닌가? 풉~. 미상불, 사람이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한 홀로서기 한다는게 쉽지 않다.

아니, 애초에 사람에게 있어 ‘홀로서기’는 불가능하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게 만들어진게 사람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이유가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힘을 합해야 사람다운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게 하셨다. 그런 점에서 독불장군식으로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만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힘을 합하는 가운데 두 사람이 하나되어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홀로서기라고 생각한다. 오늘 백년가약을 맺은 두 아름다운 신랑신부는 이제 부모의 품에서 떠나 서로의 힘으로 아름다운 홀로서기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다른 이의 홀로서기도 도와주는 삶을 살 줄 믿는다. 헐~, 꼭 주례사를 하는 것 같군….

자식…, 내가 아들이나 딸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이 녀석들이 겉돌지 않고 애비 품 안에 있다는 것이다. 아들도 여친이 있고 딸도 남친이 있지만, 여전히 두 녀석 다 애비 에미 품 안에 있고 그 품을 반경으로해서 자기들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딸래미가 몇 일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이제 교회가 편해지기 시작했어.”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딸에 대한 안쓰러움과 고마움이 솟아올랐다. 목사 아들… 목사 딸…,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들 스스로 스트레스 받을 법한 이름이다. 어쩌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쁘기 보다는 고통이 되었던 날들도 있었을 것이고, 애비가 목청껏 하나님을 외치면 외칠수록 마음 문이 더 닫힐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딸로부터 “아빠, 교회가 편해졌어”라고 한 말에서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이제 아빠의 품에서 하나님 품의 평안함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아빠의 편협한(?)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광대한 세계로 그 삶의 지경을 넓혀갈 수 있겠다 싶었다. 다른 하나는 ‘아빠의 딸’ 혹은 ‘목사의 딸’을 넘어 ‘자기 존재’(self being)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딸로 하여금 홀로서기를 잘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겠다 싶었다. 물론 아들도 그러할 것이고, 현재 내 품(?)의 반경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신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부모로부터 적절하게 품어지는 경험과 하나님으로부터 품어지는 경험과 사회로부터 품어지는 경험을 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의 전존재(the hole being)가 품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때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동력을 얻으며, ‘그 사람’을 만나 하나가 될 때, 온전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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