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목회신학 세미나/기타
[목회윤리] 목회자의 성격장애 이해와 치유(2015/11/20) 교갱협 "교회갱신과 목회윤리" 세미나

다음의 내용은 필자의 책 “목회심리학”(2005)에서 본 강의와 연관성이 있는 부분을 발췌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병리적 인성에 대하여 보편적인 견해를 규정하려 노력하는 정신 의학이 DSM-IV(현재는 V판이 사용됨)를 통해 규정한 성격 장애와, 성경에서 바라보는 병리적 인간과 죄성을 가진 인간 사이에는 많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크게 네 가지 영역 중에서 두 가지 이상 병리적인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는 이를 진단 가능한 성격 장애로 본다. 네 가지 영역은 인지, 감정, 대인관계의 기능, 그리고 충동 조절 능력이다. 즉 자신과 타인, 그리고 일상에서 발생한 사건과 현실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성격이 건강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 대해 적절한 감정을 느끼고 인식하며 표현할 수 있는 사람, 대인관계에서 적절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적인 능력과 그것을 의지적으로 행동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잘 발달된 사람을 건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본다(35-36).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교회의 유기성을 언급하며 각 직분자들의 은사에 대해 언급한 후에 13장에서 가장 최고의 은사로 사랑을 소개한다. 이 사랑의 특성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인격의 다양한 기능으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사랑의 특성을 완벽하게 구현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4:16)는 요한일서의 말씀처럼 사랑의 특성들은 하나님의 성품이자 행동이며 활동이다. 사랑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인격성'을 가진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후 하나님을 닮아 가는 삶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바로 사랑의 특성들이다. 이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의 의미와는 차별화된 아가페적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의 특성들은 대인관계 측면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지금부터 이 사랑의 특성들을 하나씩 짚어 가며 목회자의 인격이 인간관계 속에서 목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진단하며 처방하고자 한다(13-14).

 

1. “오래참고”

바울은 흥미롭게도 아가페 사랑의 첫 번째 특성으로 인내를 지적한다. 그는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고 끝맺으면서 시작과 끝을 인내에서 만나게 한다. 건강한 인격을 지닌 목회자는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성도나, 심지어 자신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성도와의 관계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어 있다. 또한 고난이나 힘든 일을 겪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인내한다. 반면에 미성숙한 인격을 가진 목회자는 갈등과 어려움을 야기하는 성도들을 대할 때 쉽게 좌절하거나 적대시하며 외면한다.

성숙한 인격을 가진 목회자라 할지라도 개인의 인격적인 힘만 의지하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때 견뎌내기 어렵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특히 목회자들은 위로부터 능력을 힘입어야 위기 상황에서 지치지 않고 견뎌낼 수 있다. 바울은 질그릇과 같은 자신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써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 견딜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14-15).

**안타깝게도 최근의 목회자의 칼부림 사건에서 당사자들은 나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공격성과 충동성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영향을 사려깊게 고민하고 갈등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2. “온유하며”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신다. 온유하다는 것은 대인관계에서 포용력이 있는 것이다....포용력이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욕을 한다고 똑같이 대응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 지혜로우면서도 적절하게 반응하고 수용하면서도 때로는 떠나보낼 수도 있는 것을 의미한다(15).

목회자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와 같다. 건강한 부모는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미성숙한 자녀를 향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대하며 실수를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박성 성격 장애 증상이기도 한 완벽주의의 문제점을 가진 목회자는 성도들의(상대방의) 작은 실수도 용납할 줄 모른다. 오히려 그들에게 면박을 주거나 치리함으로써 “빈대를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우를 범하고 만다. 온유한 성품을 가진 목회자는 전체를 보거나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눈을 소유하고 있다(16).

**온유함은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 관용하는 것과 간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병식 없음과 약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잠언 기자는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but a prudent man overlooks an insult)”라고 잘 교훈한다. 온유한 사람은 신중한 사람이며 모욕을 당하는 경우에도 간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분노조절을 잘 할 수 있다. 온유하지 못한 자는 미련해서 분노를 금방 드러내지만 그 결과는 쓰다. 분노조절장애는 성격장애의 한 증상이다.

 

3. “시기하지 아니하며”

‘투기’󰡑혹은 ‘질투’는 치명적인 일곱 가지 죄악 중 하나이다. 투기와 질투는 주로 마음 내면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며 외부 행동으로 실제 표출되는 경우는 적지만 표출될 때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투기와 질투는 주로 대인관계에서 발생한다.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해서 그가 자신보다 더 낫게 보이거나 더 많이 가지고 있거나 더 많이 성취했다고 생각될 때, 상대방을 무시하고 싶거나 상대방의 것이 자신의 것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16).

투기와 질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지 못할 때 생겨나는 치명적인 죄악이다. 이는 때로 이웃의 경계선을 넘어 이웃의 것을 빼앗거나 심지어는 이웃을 죽이는 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목회자는 동료 목회자들과의 관계에서 혹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사이에서 투기나 질투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역동성은 부교역자가 담임목사보다 더 설교를 잘하고 영향력을 끼칠 때, 동기 목회자가 자신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혹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목회자가 더 존귀한 위치에 올라서게 될 때 생길 수 있다. ‘함께 기뻐하는’ 마음보다는 냉소적이며 비판적인 마음이 자리하게 될 때 목회자들은 그 마음이 건강한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자신의 문제들을 솔직하게 내어놓고 치유받아야 할 것이다(17).

**질투와 투기도 일종의 “욕심”인데 질투를 마음에 품게 되면 이것을 결국 행동화될 위험성이 크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부러워했고 결국 이세벨의 계략으로 의로운 나봇을 죽이는 결과를 자초하였다. 야고보가 경고한대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말씀은 진리이다. 질투와 부러움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대표적인 한 증상이다. 자기중심성과 이기성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문화의 특성이며 바울사도가 경고한 말세의 첫 번째 증상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자랑하며 교만하며...감사하지 아니하며...무정하며...자만하며”(딤후 3:2-4).

 

4. “자랑하지 아니하며”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이다. 특히 아이들은 이 같은 마음을 갖고 성장한다.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자랑해서 관심을 끌고 싶은 것이 아이들에게는 정상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그러한 욕구는 점차 약해진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17).

성인아이들의 이슈 중 하나는 성장 과정에서의 인정과 관심의 결핍이다. 특히 목회자들은 자신이 대인관계에서 여전히 자랑하고자 하는 욕구와 인정과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남아 있는 성인아이는 아닌지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동료 목회자들 모임에서 자신의 교회가 얼마나 급성장하고 있는지, 헌금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목회자는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다. 이런 목회자는 다른 목회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매우 개교회주의적인 목회를 한다. 자신에 대해 떠벌일 때 다른 목회자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만 그들은 사실 이와 같은 목회자와는 친밀한 동료 관계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타교회로부터 설교 부탁을 받아 설교할 때 자신의 목회 업적이나 자신의 경력 등을 언급하는 데 설교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목회자는 연극성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다른 성격 장애들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이슈들을 가진 목회자들은 자신의 실제 모습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능력이 약하거나 아예 부재하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하고 백성들로부터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행차하는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모습이 목회자 자신에게 있지는 않은지 자주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공작새는 화려한 날개를 펼쳐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그 깃털이 빠지고 나면 보통의 닭과 별다를 바가 없다. 이 평범한 진리를 목회자는 늘 인식해야 한다(18).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핵심이슈들 중의 하나는 인정욕구였다. 그들은 외식(外飾)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구제와 금식과 기도는 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연극성 성격장애자들이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목회자가 되려고 할 때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우리의 눈을 “보이지 않는 분”에게 고정하자(Let us fix our eyes on who is unseen).

 

5. “교만하지 아니하며”

투기 혹은 질투와 함께 교만도 치명적인 일곱 가지 죄악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마귀는 교만한 자이며 인간이 교만해지도록 유혹한다. 교만은 자신의 실체보다 과대 인식함으로써 취하는 태도이자 행동이다. 교만하면 대인관계에서 타인을 무시하며 특히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잘 공감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거나 성공한 사람들과만 어울리려 하고 그들과 동일시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한다고 착각한다.

교만은 목회자에게 치명적인 요소이다. 교만은 목회에서 패망의 선봉이다. 목회자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성경의 교훈을 늘 되새겨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목회하고 있음을 항상 인식하면 교만할 수 없다. 교회가 좀 부흥되고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지명도가 높아질수록 겸손하지 않으면 다른 목회자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교만한 목회자는 선배 목회자에게도 안하무인격으로 대한다. 자신을 가르친 신학교 교수들을 만나면 언제 제자였냐는 식의 비상식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도 있다.

교만은 낮은 자존감이란 동전의 또 다른 한 면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중에서 능력이나 성취도가 뛰어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그들의 삶 가운데 자기애성 성격 장애라는 죄악이 만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과대망상(grandiosity of self)과 자기중심성, 그리고 공감의 결여가 특징인 이 장애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성격적인 결함이자 죄악이다(18).

자기중심적인 목회자는 양들과의 관계에서도 이기적인 목회를 한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양들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며 양들에게 상처를 주고도 인식조차 못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목이 곧은’ 목회자들을 징계하시고 낮추시거나 아니면 아예 폐기 처분 하신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만이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늘 깨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19).

**에스겔 34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들의 증상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만 먹는” 목자이며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 목자였다.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다스리는 자기중심적이며 반사회적인 목자였다(4절). 이들의 핵심 이슈는 교만이었다. 교만한 목회자는 연약한 성도들에게 공감할 수 없으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당연히 대우받기를 기대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기대했던 대우가 없을 때 분노한다. 이런 목회자들의 눈은 높고 이런 높은 눈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눈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잠 6:16-19). 두려운 사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예닐곱 가지 죄악들을 교단 정치 현장에서 목회자들과 장로들의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행하는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심히 두려운 일이다.

 

6.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인격이 성숙한 목회자는 예의와 도덕성, 그리고 상식을 갖추고 있다. 그는 사회법과 교회법, 그리고 양심의 법을 따라 행동하며 대인관계를 맺는다.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건축법도 무시하고 아무데나 교회당을 건축하거나 허가받은 설계도에 따라 짓지 않고 마음대로 지어놓고는 하나님의 교회당인데 누가 간섭하느냐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인격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는 사람이다. 혹은 동료 목회자의 실수나 잘못을 뒷조사해서 협박하며 돈을 요구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반사회성 성격 장애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가 나타나면 동료 목회자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면 그는 인격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20).

건강한 인격을 갖춘 담임목사는 부교역자들을 대할 때 주 안에서 동역자로서 예의를 갖추며 존경할 줄 안다. 반대로 건강하지 못한 담임목사는 부교역자들이 마치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대하거나 나이에 상관없이 반말을 하고 자신의 권위를 부각시키려는 행동을 함으로써 관계에 있어서 매우 고압적이며 억압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와 같은 인간관계에서 자발성과 존경심, 창의성, 기쁨이 솟아나기란 매우 어렵다. 담임목사가 가진 힘을 잘못 사용하여 부교역자들을 마음대로 갈아 치우거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한다는 것은 그의 인성이 반사회적임을 드러낸다. 가정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교역자들을 혹사시키면서도 사례비는 최저 임금 수준으로 대우하고, 그러면서 전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담임목사는 자기애성과 반사회성의 성격을 지닌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개교회적으로 혹은 교단적으로 사회 병리 현상과 평행적으로 잘못된 관행들이 이어져 온 부분들이 적지 않다. 각종 교단 선거에 돈이 뿌려졌다는 것은 결코 건강한 인격과 신앙을 바탕으로 한 현상이라 할 수 없다. 목회자들부터 먼저 마음을 기경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국 교회가 건강한 공동체로 변화할 수 있다(롬 12:2 참조) (20-21).

적절한 권위에 대해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 성격 장애는 반사회성 성격 장애이다. 이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은 타인의 인격성을 인정할 줄 모르며 적절한 사회적 기준에 부합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 오히려 사회와 타인을 공격하고 상처를 입히며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 목회자의 경우는 선배 목회자나 동료 목회자에 대한 적절한 존경심을 표현할 줄 모르며 오히려 무시하고 공격하며 정치적으로 음해하거나 매장하려고 온갖 술수를 부린다. 노회나 총회의 결정에 대해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또한 갈등이 있으면 쉽게 교회를 분열시켜 나가는 목회자들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적 인성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목회자에게 권위를 부여하신 “하늘 아버지를 거역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목이 곧은󰡓 목회자들이다(47).

**반사회적이며 싸이코패스적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싸이코패스라고 해서 감옥에 갈만큼 사회병질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명망이 있고 심지어 업적으로는 인정을 받는 CEO들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싸이코패스적인 사람들이라는 연구가 이미 나와 있다. 이것은 사회에서는 가능할 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나 교단의 지도자들이 싸이코패스적이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100회 총회의 결의에 의하며 신대원 지원생들이 정신감정의뢰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고 이번 입시에서 MMPI-II 심리검사를 실시했지만 이것이 목회현장에서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이것만으로 걸러낸다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지만 목회자들의 재교육과 아울러 정기적인 심리검사를 받아 목회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점검하며 필요시 심리적인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교단의 임원이 되거나 노회의 임원이 될 때에는 MMPI 검사(자기보고식)와 로샤투사검사를 제도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7.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건강한 인간관계는 상호적이다. 일방적인 인간관계는 대개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한 인격을 갖춘 목회자는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상호적으로 관계한다. 많은 부분에서 목회자는 양들인 성도를 돌보며 사랑하는 양육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목회자도 성도들로부터 도움과 사랑을 받기도 한다(21-22).

문제는 목회자가 목회라는 미명 하에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이며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는 동기로 사역에 임하는 경우이다. 과연 그런 목회자가 있을까 반문할 수 있겠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필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목회 동기가 자기중심성에 있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와 같은 목회자들이 이미 존재했고 오늘날도 존재한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병리적인 이스라엘 목자들의 자기중심성을 지적하며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겔 34:2)라고 경고하셨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자는 대인관계에서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접근하여 관계하며 그 유익성이 떨어지면 그들을 멀리하고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인간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모두 '나르시시즘'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유아기부터 소유하게 되는 타고난 특성이자 죄악 된 성향이다. 따라서 목회자가 말씀과 성령을 통해 자신의 나르시시즘의 이슈를 인식하고 제어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대인관계에서 자기애성이 드러난다(22).

목회자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 중 하나는 '물욕'이라고 한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 중 하나인 탐욕은 돈을 사랑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미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능력은 별로 없고(“감사치 아니하며”) 과도하게 아끼는 반면 유용하게 쓸 줄은 모르고 “더러운 이(dishonest gain)를 탐하는”(딛 1:7b)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건강한 인성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40).

이웃 교회의 성도들을 유혹하여 빼오는 숫자 놀음을 한다거나 교회 헌금으로 주식에 투자하거나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하는 행동은 사이버 시대에 건강치 못한 목회자들이 빠질 수 있는 유혹이다. 짧은 기간 안에 급속도로 성장하는 교회들 중에는 성장 결과를 부풀리거나, 부풀린 결과를 가지고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동료 목회자들에게 허상을 심어 주기도 한다. 이로써 내실보다는 외면에 치중하며 이미지에 치중하는 사이버 시대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리고 “염불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있는” 스님처럼 영혼 구원이나 사회 구원보다 헌금과 교세 불리기에 더 관심이 있다면 그는 삯군 목자이지 정직하고 신실한 목자는 아니다. 고액의 사례금을 받거나 교회의 형편에 맞지 않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인성에서 비롯된 행동이다(40-41).

 

8. “성내지 아니하며”

목회자의 인간관계에서 분노를 처리하는 문제는 ‘뜨거운 감자’와 같다. 분노를 잘못 표현하면 성도들에게 신경질적인 목회자로 비춰질 수 있고 그들의 마음에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분노를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인식하며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분노는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악 중 하나이다.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할 때 인간관계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반복적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분노는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 중 하나이며 아울러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문제는 분노를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다. NIV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를 “사랑은 쉽게 분노하지 아니하며”(it is not easily angered)라고 번역함으로써 분노 자체는 죄가 아님을 잘 지적한다.

목회자도 인간관계에서 분노를 경험한다. 가족 관계에서 혹은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혹은 각종 회의에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일단은 목회자도 인간인 이상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목회자 자신이나 성도들이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분노를 어떻게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다(23).

분노를 항상 억압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당시에는 문제를 피하고 지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 다른 사소한 일 등에서 그 억압되었던 분노가 함께 폭발함으로써 분노를 불의하게 표현하는 죄를 범할 수 있다....목회자는...분노를 적절하게 조절하면서도 정황에 맞게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건강하지 못한 목회자는 설교를 통해 자신의 억압된 분노를 표현하면서 선지자적인 설교를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사소한 일에 벌컥 화를 낸다거나 편집증적으로 분을 품고 보복할 기회를 엿보는 목회자의 인격은 건강하지 못하다. 목회자는 하나님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어느 정도 절제하는 범위 내에서 분노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연습과 노력을 해나갈 때 건강한 대인관계와 목양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23-24).

**이번 칼부림 사건도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극도의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경계선(borderline) 성격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징은 한마디로 “불안정성”(instability)이다. 대인관계는 “이상화”(idealization)과 “가치절하”(devaluation)가 특징적이다. 자신을 바라볼 때, 타인을 바라볼 때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있는 존재임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좋은 사이가 갑자기 틀어지고 나쁜 사이로 변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화해할 때는 기분이 급변해서 너무 쉽게 화해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린 아이의 심리적 특성이다.

 

9.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이 특성은 바로 앞에 언급한 분노와 관련이 있다. 건강한 인격을 가진 목회자는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잘못과 실수를 대화로 풀 줄 알며 일단 풀면 󰡐떠나보낼󰡑 수 있는 심리적 능력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잘못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기억하거나 기록해 두지 않는다. 상대방과 새로운 갈등 상황이 생길 때 그때마다 새롭게 해결하며 지난 잘못들을 들추어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24-25).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려고 애쓰는 목회자는 동료 목회자나 성도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맡기고 치유함을 얻는 작업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용서를 내면화함으로써 적극적으로 그들을 용서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용서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단계를 거쳐 반복되어야 할 과정임을 인식할 때 불필요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편집성 성격장애를 가진 목회자는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피해 의식과 불신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어 자기개방을 거의 하지 않으며 강한 방어기제들로 자신을 보호하는 증상을 나타낸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기에게 입힌 피해나 상처에 집착하며 기회가 있으면 보복하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 이런 목회자는 성도들과 치유적이며 목회적인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려우며 성도들의 가벼운 농담조차 잘 수용할 줄 모른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목사로서의 권위가 손상되는 말을 할까봐 매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25).

이런 목회자는 자신도 불행하고 성도들도 불행하다. 불완전한 세상과 교회 환경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은 인간관계에서 때로는 자신이 원치 않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존재임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인관계에서 좀 더 모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자신을 점점 개방해 가는 노력과 훈련을 할 때 성도들은 목회자의 삶을 보고 배울 수 있다. 또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25-26).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수없이 반복하지만 많은 목회자들의 병리적인 특성들 중의 하나는 용서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상처 입었다고 생각하며 보복하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소송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육체의 일이 분명한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성령을 좇는 목회자의 증상이 아니다(갈 5:20-21). 바울 사도는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향하여도 엄중하게 경고한다. 이 경고에 순종하는 것이 사는 길이다.

 

10.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불의 혹은 악은 마귀의 특성이다. 악은 파괴적이다. 악은 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죄로서 악은 거짓과 기만, 위장과 위선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 겉과 속이 다르며 위선과 거짓이 대인관계에서 자리 잡게 될 때 그 인격은 병리적이며 마귀적이 된다. 목회자도 대인관계에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것이라도 거짓말은 새로운 거짓말을 낳으며 목회자의 삶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짓은 모양이라도 버리려는 철저한 노력이 필요하다. 고통스럽지만 진실과 직면할 때 찾아오는 자유함을 기뻐하는 삶을 추구할 때 목회자의 인격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을 수 있다(26).

 

11. “모든 것을 참으며”

NIV 성경은 이 부분을 “사랑은 항상 보호하며”(it always protects)라고 번역한다. 이 의미로 본다면 성숙한 인간은 대인관계에서 항상 상대방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자이다. 특히 성숙한 인격을 가진 목회자는 양들을 위험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며 󰡒쉴 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과 같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자이다.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적 전투의 최전선에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 맡겨진 양 무리를 항상 하나님 앞에서 '회계할 자'로 인식하는 책임감을 갖는다(27).

 

12.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NIV 성경은 이것을 “사랑은 항상 신뢰하며”(it always trusts)라고 번역한다. 발달심리학자 에릭슨(Erik H. Erikson)은 그의 심리발달단계이론에서 출생한 아기가 경험해야 할 심리적 과제를 신뢰감으로 보았다. 신뢰감은 건강한 인격의 기초를 형성한다. 신뢰감은 대인관계에서도 초석과 같다.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는 대인관계에서는 성장과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건강한 목회자는 기본적으로 성도들과 부교역자들을 신뢰한다. 신뢰는 목회적 관계에서 안정감을 제공한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신뢰하지 않을 때 목회자의 공적 자기와 사적 자기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양파처럼 자신을 겹겹이 포장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목회자에게는 성도들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목회자가 막상 성도들을 믿지 못하며 극단적으로 편집성 성격 장애의 증상을 보일 때 목회자의 설교와 목회는 성도들에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28).

 

13. “모든 것을 바라며”

건강한 인격을 가진 목회자는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이다. 사고와 감정도 긍정적인 색채를 띤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밝은 면을 먼저 보고 상대방의 장점을 잘 인식하며 기대감을 갖고 대한다. 부교역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현재는 부족한 점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미래에 성장할 수 있는 많은 잠재력들을 보고 기대를 갖는다. 그러므로 실수를 해도 아량을 베푼다. 따라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는"(사 42:3)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목회자는 대인관계에서 훌륭한 멘토이자 격려자가 될 수 있다.

건강한 목회자는 개인적인 삶에서나 목회적인 삶에서 위기를 만날 때에도 완전히 좌절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개입󰡑을 믿고 바라며 기다린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궁극적인 소망의 닻을 내림으로써 풍랑 속에서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을 포기하거나 목회를 포기하지 않는다. 과거의 내러티브와 현재의 내러티브를 연결 지어 해석함으로써 미래의 내러티브를 소망적으로 쓸 수 있는 신앙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그 날’을 대망하면서도 현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29).

 

14.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맨 처음에 언급한 인내와 연결되어 사랑의 속성은 처음과 다시 만난다. 여기에서 인내로 번역된 단어는 ‘성도의 견인’이란 교리 용어에서 사용되는 ‘견인’에 해당한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먼저 하나님이 택한 성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도 또한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견뎌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견인은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이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사랑을 말한다(29-30).

대인관계에서 이 견인적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자녀로서 목회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대인관계에서 실천하려 애써야 할 것이다. 비록 힘들다 할지라도 이 사랑을 실천할 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신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목회 철학으로 성도들과 동료 목회자들을 대한다면 우리의 목회 사역에서 성령의 열매가 보다 더 아름답게 맺힐 것이다.

열네 가지의 속성들은 실제로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이다. 한 속성에서의 성장은 다른 속성에서의 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각기 기질과 성격이 다양하므로 이러한 성장의 시간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나 성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스스로 인식하고 점검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자신도 이 글에 비추어 볼 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인 이 사랑의 속성들을 사모하며 노력하는 목회자들의 인간관계는 보다 신적이고도 치유적이며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데”(골 1:28)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좋은 대상관계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30-31).

이관직 교수  총신대신대원

<저작권자 © 교회갱신협의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