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2) 한목협 제30차 열린대화마당

필자는 북측 비무장지대(DMZ)에서 심리전방송요원으로 근무하다가 휴전선을 넘어서 한국으로 왔다. 냉정한 한국사회의 박덕함과 차디참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과 통일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이듬해에 대학에서 학부생활부터 시작하여 10년 만에 박사학위도 받고 현재는 통일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 할수록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즈음에 통일의 문을 열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의 통일은 불가능하고 영구분단으로 갈수 있다는 두려움과 긴박함에 휩싸이게 된다. 통일을 전공한 나에게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과연 통일이 언제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통일이 언제 되는지 알려거든 우리 사회의 통일준비가 어떠한지를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사회의 통일준비는 어떠한가. 먼저 통일상황을 살펴보자. 북한은 3대세습을 안착시켰지만 내부의 불안정성은 더욱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통일보다는 체제유지가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국이 통일을 주도하고 책임져야 한다. 통일을 주도한다는 것은 분단의 원심력을 무너뜨리며 통일의 구심력을 확보하는 것이며 통일을 책임진다는 것은 우리내부뿐만 아니라 북한주민들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통일은 책임지는 자만이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내부에서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념갈등과 양극화 등은 통일을 위한 한국사회의 최소한의 통합마저 저해하고 있으며 설사 내일 당장 통일의 기회가 찾아온다 하여도 우리사회의 극단적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물신주의적인 현금의 모습은 통일을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우리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케 한다.

따라서 이제라도 통일을 상정한 우리사회의 본격적인 통일준비와 다양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 통일을 위한 다기다양한 많은 과제들 중에서도 필자는 무엇보다도 통일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향후 통일시대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들을 키우는 준비가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남북한의 통합과정에서 갈등과 충돌을 중재하고 이질감과 적대성을 해소할 수 있는 역량은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탈북민들은 지금도 북한과 전화통화, 서신연락, 송금 등으로 북한 내 가족, 친지들과 소통하고 있고 외부정보 전달 등을 통하여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북한내부에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통일의 마중물이자 남북통합의 가교인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정착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에 입국한 2만 8천 명 중 5천 명 정도가 탈남脫南했고 이중 적지 않는 탈북민들이 다시 북한으로 재입북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살률이 세계 1위인 한국에서 탈북민의 자살률은 한국인의 3배이며 실업률은 일반국민의 3.5배, 이들의 월 평균 근로소득도 106만 4천원으로 매우 열악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들의 정착의지와 태도, 그리고 정부와 사회의 정착지원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은 2만 8천명의 탈북민도 품지 못하는 한국이 2천 4백만의 북한주민과 8천만의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한반도의 성공적인 통일을 원한다면 한국사회에서 탈북자의 성공적인 사회정착이 우선시되어야 함과 함께 한국정부와 사회, 그리고 교회에서 탈북민을 리더로 양성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면 탈북민을 리더로 키우는 목적은 무엇이며 이들이 앞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무엇보다 북한의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탈북민들이 북한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북한의 엘리트들 및 북한주민들이 친남한親南韓 감정을 갖고 친한파親韓派 세력이 될 수 있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 유엔에 의해 독립 주권국가로 규정된 북한체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해도 그것이 바로 통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정치 엘리트집단과 북한주민들이 동독이 베를린장벽 붕괴 후 서독을 선택했던 사례와 같이 한국으로의 통일을 원한다면 우리는 한국주도의 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한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적응한 탈북민들이 북한 내에 한국사회를 잘 설명하고 전달할 때 가능하다.

둘째, 북한에 새로운 민주정권이 들어설 경우, 북한을 재건하거나 남북한을 통합해야 하는 다양한 과제를 수행할 적임자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와 선진기술을 습득하고 리더십을 키운 탈북민들이다. 70년 분단으로 인한 남북한의 이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민족을 규정하는 언어도 심각하게 이질화되어 통일이 되면 통역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 분야에서 이를 중재하고 상황을 관리할 인재는 필수적이다. 또한 남북의 끝없는 적대성속에서 북한사람들의 신뢰를 받으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북한에 정착할 사람은 탈북민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북한복음화와 선교를 부르짖는 한국교회 또한 통일 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탈북민 출신 전도사와 목회자를 앞세우지 않고서는 기독교를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보는 북한지역에 교회가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셋째, 통일의 과제는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통일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남북한 주민들이 통일국가에서 화합하는 것이 분단의 고통만큼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 주민들이 상생하고 함께하는 성공적인 통일공동체를 위해서라도 남북한 두 사회를 모두 경험한 탈북민들을 리더십으로 잘 훈련하고 무장시킨다면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국에 와 있는 탈북청년들을 통일지도자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통일은 동독의 민주화와 통일을 열망한 청년들이 그 기폭제가 됐다. 그리고 통일독일이 선택한 최초의 여성 총리는 동독출신인 앙겔라 메르켈이다. 현재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중에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탈북청년들이 1,500명에 달하고, 탈북청소년 학생들도 2,5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북한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 와서 유연한 사고로 선진교육을 습득하고 시장경제 체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탈북청년들은 통일국가의 차세대 리더들이다. 이들을 한국사회가 통일지도자로 키우느냐, 아니면 외면하느냐에 통일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 나만의 기우일까?

끝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필자는 탈북민 지도자의 양성을 지도하고 후원할 세력으로 정부나 사회단체도 좋지만 교회와 기독교가 먼저 나섰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부이든, 사회단체 혹은 교회이든 이러한 조치를 취할 때가 이제는 왔다는 사실이다.

※ 주승현 박사는 한국에 귀순한 유일한 북한군 대남방송요원 출신으로, 2002년 귀순전 서부전선 민경대대 대남제압방송국 제압조장(상급병사)을 지냈습니다. 남쪽에 온 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2004년 탈북자 최연소 박사가 됐습니다. 현재 명지대 외래교수로 북한체제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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