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칠전교회, 농촌교회 한계 넘는 다양한 사역

칠전교회는 기독교국제금주학교 사역을 통해 중독자들의 재활과 치유에 힘써왔다.
칠전교회는 기독교국제금주학교 사역을 통해 중독자들의 재활과 치유에 힘써왔다.

옻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동네라 하여 칠전(漆田)리라 부르고,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었으며, 한 때 300호가 넘는 인구가 살았던 큰 마을. 전정림 목사는 30년 전 이 동네를 찾아가 진도 칠전교회를 개척했다.

아무 연고도 없었고, 무속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던 마을에서 젊은 목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이었다. 그냥 교회로 불러다가 놀아주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제대로 가르쳐서 키워보자고 공부방을 만들었고, 전국 방방곡곡을 데리고 다니며 견문을 넓혀줬다.

가정의 붕괴로 보호자가 없던 두 아이는 직접 데려다가 키우기도 했다. 친부모처럼 정성스럽게 돌보았고, 훗날 아이들이 결혼하여 건강한 가정을 꾸리기까지 세심히 챙겨주었다.경계하던 아이들도, 부모들도 전 목사의 진심을 알아챘다. 작은 동네에서 주일학교 규모가 몇 년 새 100명에 육박했다. 물론 아이들은 공을 들인 만큼 잘 자라주었다. 이제 장성한 어른이 된 주일학교 출신들 중 현재까지 무려 8명이 목회자나 선교사로 사역하는 중이다.

▲ 섬김과 나눔으로 30년을 보내온 진도 칠전교회.

이들과 함께 전정림 목사는 조그만 농촌교회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역들을 감당해왔다. 대표적인 게 기독교국제금주학교 사역이다. 서울 새움교회(김도형 목사)와 동역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알코올 중독자나 약물 중독자들의 재활과 치유에 오랜 세월 매진해왔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찾아왔던 이들이 삶의 의욕을 되찾고, 신앙 안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해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돕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기적에 가깝다. 칠전교회는 금주학교 수강생들이 사회로 복귀하기 전 마지막 단계를 거치는 산실 역할을 해왔다.

전정림 목사는 이사장으로 섬기며 금주학교 사역이 국내를 넘어 중국 러시아 등지로 확산되도록 기여하고 있다. 또한 사역을 더욱 전문화하기 위해 진도 안에 1만 2000여 평의 부지를 확보해두는 등 원대한 포부를 가슴에 담고 있기도 하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에서 매년 여름 개최되는 씨뮤직페스티벌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도 칠전교회의 역할이 컸다.

초창기의 시행착오로 엄청난 빚이 쌓이고, 축제가 그대로 묻혀버릴 뻔한 상황에서 이웃교회들을 설득해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고 이듬해부터 다시 행사를 부활시켰다. 그 결과 국내 어디서도 만나기 힘든 세계적 수준의 크리스천 음악축제가 바로 진도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칠전교회 성도들에게 섬김과 헌신에 대한 익숙함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사고 발생 직후, 전정림 목사를 비롯한 온 교우들이 실종자 가족과 구조대원들이 집결한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찾아가 내 일처럼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각자 집에서 쓸 만한 도구들은 죄다 가지고 나와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한 것은 물론, 진도군교회연합회의 봉사부스 자원봉사에서부터 체육관 정리와 화장실 청소까지 소리 없이 감당했다. 평소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잘 알고 있기에, 피해자들의 슬픔을 깊이 공감하며 곁을 지켜줄 수 있었다.

그렇게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월호 사태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칠전교회 교우들은 나름 그간의 세월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설립기념일을 맞아 차재완 장로 부부와 필로스찬양단을 초청해 기념집회를 열기도 했다.

전정림 목사는 “이농현상의 여파로 마을의 모습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더욱 열심히 섬기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열정은 여전히 변함없다”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 항상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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