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뒷동산에 올라가 벤치에 기대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던 한가로움과 평화로움이 생각난다. 요즘은 모두모두 너무 바쁘다. 정신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다. 그러다 보니 가을이 와도 독서의 계절이니 사색의 계절이니 하는 말이 왠지 멋쩍어 보인다.

가을이 와도 사람들은 여전히 검색의 계절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열검(열심히 검색) 중이다. 그래서 요즘에 목 디스크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도 있다. 물론 정보의 시대에 검색은 필수다. 최신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검색해 내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지혜임에 틀림없다. 노하우(know how)도 중요하지만 이젠 노웨어(know where)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검색보다 사색이 중요하다. 검색은 생경한 지식이나 얕은 정보를 제공해 주지만 사색은 깊은 사고력과 창의성을 제고함으로 인생을 풍성하게 해준다. 산업과 경영의 현장에서도 사색을 통해 창조적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창조적 경영을 하는 사람들이 앞서 가는 것을 보지 않는가.

그런데 유의할 게 있다. 올바른 사색은 막연히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는 게 아니다. 빈손으로 사색을 하다 보면 망상이나 공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책을 들고 사색을 하는 게 훨씬 현명하다.

그렇다. 사색의 도구는 책이다. 디지털 기기가 유용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나 창의성을 풍성하게 해 주지는 못하는 약점이 있다. 오히려 인간을 말초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로 전락시킨다. 요즘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말초적이 되어 가는데, 다 그런 맥락에서 벌어지는 역기능적 현상이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디지털의 고수들도 성장기의 자녀들에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독서를 강조했다는 이야기는 현대인들이 무겁게 받아들일 엄중한 메시지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사색은 아니다. 책을 읽되 잠시 멈추어 생각을 정리하고 반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수다. 책벌레가 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은 아니니까 말이다.

신앙생활은 사색이 있는 삶이다. 책 중의 책인 성경을 들고 묵상하는 사색, 그리고 성경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색이 신앙의 본질이다. 이런 사색을 신학적 표현으로 계시 의존적 사색이라 한다. 막연한 공상이나 망상에 잠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주는 계시의 말씀을 토대로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시편 1편은 계시 의존적 사색의 축복을 노래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과 기도를 골고루 섞어 영혼의 되새김질을 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는 표현이 절묘하다. 수액이 풍성하여 잎이 푸르청청한 나무,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소담스럽게 열린 나무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런 인생이 되기만 한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인디언들은 한참 달리다가 이따금 멈추어서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너무 빨리 달려서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봐 그런다나. 순진한 생각이지만 영혼을 챙기는 그들의 여유로움이 부러워지는 계절이다. 검색보다 사색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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