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에게 전화번호를 쓰게 하고 강제로 교회를 구경 시키는 것이 대한민국 법에 저촉 되는 것 아세요?” 젊은 아주머니가 교회로 들어와 그 교회 담임목사님을 만나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곁에는 경찰 2명을 대동하고 자기 자녀에게 거리 전도 때 전화번호를 적게 한 좋지 않은 목사라며 고성과 협박을 계속 하는 것이 아닙니까?

목사님은 그 수모를 받으면서 할 말이 많았지만 주님 십자가를 바라보며 끝까지 참으며 낮은 목소리와 예의를 갖추어 대답을 하였습니다.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교회가 적은 어린 학생들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확인하여 연대 저항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내가 그렇게 하면 이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 아세요..!”

그러나 그 교회 목사님의 마음을 찌른 것은 그 젊은 분의 이 말이었습니다. “목사님, 나도 모 교회 집사입니다.... 하지만 이러시면 안 되죠?!” 그것까지 참았다고 합니다. 그 동안 많은 국민들이 인터넷과 방송에서 화젯거리가 된 일부 교회 및 목사님을 통하여 사회학습이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는 갑이요, 갑질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교회 및 목사님이 계시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와 모든 목사님들이 그 교회 목사님처럼 갑이 아니라 철저히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목사에게는 사랑의 법외에는 적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언행을 하게 되면 “목사가...?”하며 더 난리를 치거나 부풀려 현실과 사실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제 후배 목사님 교회가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땅을 파고 축대를 쌓아야 하는데 교회 근처 주민들이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을의 입장에서 조심과 예의를 지키며 요구사항의 거의 대부분을 들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반대하며 그 현장에서 들어 눕기까지 한 주민이 누구인 줄 압니까? 모 교회 권사님이었습니다. 그것도 새벽기도 다녀온 후 무슨 힘을 받았는지 참으로 힘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인디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기 전에는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게는 가재 편이라고 무조건 목사가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집사님, 권사님의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항의하는 강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상식이 통하는 언행’일 뿐입니다.

국가법이든 성경이든 상관하기 싫습니다. 교회를 다니던 안다니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무슨 직분자이든 동네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계시던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절실한 사회요 교회입니다. 법을 초월한 것이 상식입니다. 신앙생활을 초월한 것이 상식입니다. 직분과 위치를 초월한 것이 상식입니다.

상식이 통하면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 소통은 교통이 되며 결국 서로에게 형통이 될 것입니다. 어느 종교인이든 상식과 평화와 상생할 수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잠깐이라도 모든 차량이 ‘우선멈춤’, 혹은 ‘빨간 신호등’ 앞에서 정지하듯이 조용히 자신을 바라본 후 다시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상식이 통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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