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3) 한목협 제17회 전국수련회 주제발제

Ⅰ. 서론

20세기 후반까지 한국교회의 사회발전을 위한 공헌은 나름대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만한 점이 뚜렷했다. 물론 이념적, 역사적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뿐 아니라 환경과 인권, 통일 등 사회 발전 과정에서의 공헌은 적지 않은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할 만큼 분명했다.(*사회발전이라는 개념은 가치 함축적인 개념으로 근대화 과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양식으로 전개되는 사회구조의 변동을 말한다. 참고. 이삼열 외, 『한국사회 발전과 기독교의 역할』(서울: 한울, 2000), 임성빈, “기독교가 한국의 사회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한 소고: 현대화 과정을 중심으로,”『장신논단』23권(2005.6))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매우 부정적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오늘 한국교회의 사회적 평가는 상당한 위기감을 느낄 정도의 수준이 된 것이다.

본 강연은 먼저 한국사회의 최근 문화변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들을 소개할 것이다. 그 후 사회문화적 변동의 영향이 미친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러한 사회적 평가를 도출한 원인들을 다면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특히 교회에 대한 부정적 평가 요인들과 함께 그러한 평가가 함의하는 한국교회의 위기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물론 사회적 평가와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한 분석은 일반 은총, 즉 일반 학문의 영역에 속한 다양한 연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학제간의 연구를 통한 한국교회의 위기 상황과 원인들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기독교윤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후, 공공신학적 해석과 대안모색을 시도할 것이다.

후기세속화시대로 규정될 수 있는 한국교회의 위기상황을 초래한 원인과 현상들에 대한 기독교윤리학적 분석과 공공신학적 대안모색은 한국교회의 대응방향성과 구체적 응답의 방향성과 내용을 모색함에 있어서 신학적 정체성과 사회적 연대를 담보하는 전제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반 은총의 영역에 속한 제반 학문들의 도움을 받은 사회분석은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자리와 역할을 반성하는 작업에 시야를 넓혀 준다. 또한 이러한 사회분석에 대한 기독교 윤리학적 해석은 현재의 상황이 함의하는 신학적 문제성과 과제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공공신학적 해석과 대안모색은 일차적으로는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지평융합과 연대에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시민사회와 제반 사회 영역과의 연대에 더욱 공감적 지평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본 강연의 기본적 동기이자 동시에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II. 21세기 한국사회 문화변동 현황

(1) 가속화하는 문화의 세계

세계화로 상징되는 문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하여 우리들에게 더욱 국제적인 문화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중국, 미주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세계인들과의 문화 접촉이 더욱 일상적인 경험이 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가속화하기 시작한 문화의 세계화 과정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목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화현상을 이해하려면 세계화의 성격을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속화되는 세계화는 우리 사회를 더욱 다문화사회로 이끌고 있으며, 동시에 이와는 대조적인 복고문화와 민족주의적 문화를 강화시키고 있다.

사실 기독교는 서구적인 종교라는 인식을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이 가속화하는 문화적 세계화의 흐름과 갈등 양상을 나타내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떻게 복음의 세계화의 과제와 아울러 복음의 한국문화 안에서의 토착화의 과제를 동시에 조화롭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는 세계화시대가 동반하는 문화의 의미와 다양성을 이해하고 복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적 수용능력을 키워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아시아권에서 부상하는 한류현상에 대하여서도 주목하여야 한다. 이것은 세계화 현상의 일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선교에도 도움이 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몇몇 스타의 마케팅에 기초한 이미지에만 의존하지 말고 더욱 근본적인 접근, 즉 한국 대중문화의 도덕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 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때 기독교는 문화의 건전성과 도덕성을 담보함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 여가문화에 대한 관심과 물질주의와 소비문화

주 5일 근무제가 더욱 확산되어 교육계에도 적용된다는 면에서 여가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가문화는 물질주의와 소비문화에 대한 관심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여가문화란 원래 인간됨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을 지향하여야 하지만 실제로 오늘날의 여가문화의 즐김은 돈과 소비를 떠나서 생각하기 힘든 형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돈으로 상징되는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물질주의가 더욱 인간사회를 지배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때 우리의 소비생활은 필요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미디어 등의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 등을 통하여 자극되는 충동적이며 과시적이며 쾌락추구적인 욕구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삶의 문화를 소비문화라고 한다. 과연 이러한 물질주의와 소비문화 속에서의 바람직한 기독인의 삶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교회는 건전한 여가문화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물질주의와 소비문화에 함몰되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역에 힘써야 할 것이다.

(3) 도덕 기준의 붕괴

이익추구와 쾌락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공리주의와 소비문화, 또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결합은 전통적인 도덕기준을 용도폐기 시키는 사회현상을 촉진시킬 것이다. 예컨대 동성애에 대한 교회안팎의 대조적 견해가 이러한 사회문화적 변동과 그에 따라는 전통적 도덕기준의 변화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문화 변동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도덕을 논하는 기독교인들이 시대를 거스르는 너무도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인식만을 주기 쉽다. 그리하여 많은 젊은이들에게 교회란 자신들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어 사회선교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기독인으로서의 윤리적 삶을 확립하여 사회윤리의 정립에 공헌할 수 있을까를 깊이 관심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는 도덕을 말하기 보다는 삶으로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함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4) 여성문화 자리 찾기의 본격화

기존의 정치·경제·문화체제를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관점에서 일관적으로, 동시에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여성운동과 그로 인한 여성의 자리 찾기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호주제폐지가 그 대표적인 상징이다. 수백 년간의 숨겨진 소리였으며 존재였던 여성들의 자리복원운동은 기존의 여·남 관계 및 가족 내의 역할변화, 심지어는 가족구조의 변화와 사회구조의 변화마저 요청한다. 여성안수에 대한 문제제기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교회 내에서의 구조변화도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 및 남성목회자들에게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사고와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5) 남북문제로 인한 사회적 국제적 갈등의 심화

북핵문제로 대표되는 북한의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과 갈등의 심화현상은 국내적으로는 남남 갈등과 국제적으로는 대한민국 정부와 주변 국가들, 특별히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에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때 교회는 위기의 본질을 비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될 수 있으면 차분히 분석, 검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화해와 평화의 관점에서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정착을 유도하는 평화문화 정착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6) 후기 세속화 시대의 도래

세속화의 특징은 종교의 영역을 사사화(privatization)하는 데에 있다. 즉 신앙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만 의미를 주는 것이며, 정치·경제·사회적인 공적(公的)인 영역에서는 신앙이 아닌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속화 이론에 따르면 사회가 발달할수록 종교의 역할은 축소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이러한 주장은 오늘의 현실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세속화론자들의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21세기 초반 종교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더욱 괄목할 만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록 부정적인 면에서 미디어의 초점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날 종교가 소멸된다는 세속화론의 주장은 더 이상 사실부합적인 것이 아님이 자명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오히려 종교의 건전한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오늘의 상황, 즉 후기 세속화 시대의 특징에 주목하며 책임적 응답을 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III. 21세기 초반 한국교회에 대한 평가

1. 제도적 차원: 교회의 양적 상황을 중심으로

통계청에서 10년마다 진행하는 종교인구조사(2005)에 의하면 종교를 가진 인구는 전체인구의 52.6%인 2,476만 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약 229만 명 증가하였으며 천주교가 10년 전보다 약 219만 명, 74.4%가 증가한데 반해 기독교는 10년 전보다 14만 명 정도 감소한 861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표 1. 종교별 인구(단위: 명)(*통계청, 『2005년도 인구주택총조사』)
Table 1. Statistics on Religious Population

    2015년       10년전 대비
        불교 10,726,463  
        개신교 8,616,438 약 14만 감소
전체인구 47,041,434
(100%)
종교있음 24,765,258(52.6%) 천주교 5,146,147 약 219만 증가
        유교 104,575  
        기타 377,143  
    종교없음  22,070,668 (46.9%)      
    무응답 205,508 (0.5%)      

더욱 주목할 것은 교회학교 학생들의 감소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예장 통합의 경우, 2013년에 유치부원이 6.8% 줄었고, 중고등부의 수는 9.1%가 줄었다. 전체 신자 감소율이 0.06%라는 걸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심각한 비율의 감소이다. 이는 곧 미래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전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망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의 연령별 종교 인구 구성 비율에 대한 통계(*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한국기독교분석리포트: 2013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 보고서』(서울: 도서출판 URD, 2013).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은 지난 2012년 말, 여론조사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다. 개신교인 1,000명, 비개신교인 1,000명, 목회자 500명, 크리스천 여론 선도층 2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형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를 통하여 더욱 신빙성을 얻게 된다. 즉 젊은 층으로 갈수록 개신교인들의 구성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표 2. 연령별 종교 인구 분포(단위: %)(*위의 책, 24.)
Table 2. The Ratio of Population between Christians and Non Christians according to the Ages

  19-29세 30-39세 40-49세 50세 이상
개신교 18.6 20.7 25.7 23.5
불교 12.0 16.8 19.9 30.5
천주교 8.5 9.4 8.6 11.9
비종교 60.4 52.6 45.3 33.7

사실 교인은 감소하고 목회자는 증가한다는 통계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목회자들의 자질 문제이다. 아직도 수많은 교단 신학교들 뿐 아니라 무인가 신학교들까지 난립해 해마다 상당수의 목회자 후보생들이 나오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무인가 신학교를 포함하면 4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중에서 인가받은 신학교는 57개이며 나머지는 무인가 신학교이다. 그중에서도 150여 개만이 소재 파악이 되고 있고, 나머지 200여 개는 소재 파악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매년 신학생들이 7,000명 이상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학력 인정 학교에서 배출되는 졸업생이 2,000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한국교회 목회자의 무료 70% 이상이 무인가 신학교를 통해 배출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정재영, 2014.6.29. 한국 개신교 신학대학의 현황과 실태, 목회사회학연구소. http://www.psik.co.kr/bbs/board.php?bo_table=tb14&wr_id=41 [2014.12.15. 접속]) 무인가 신학교의 경우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교육부의 감독에서 벗어나있고 어려운 재정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경영이나 교육 부실의 개연성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통신, 직영, 사이버, 속성과정 등 편법이나 제대로 된 목회자의 자질 검증 없이 다수의 목회자들을 배출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2. 개인 신앙적 차원: 신앙관 및 신앙생활의 변화

교세의 양적 감소가 결정적인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인들의 신앙적 정체성이 약화된다는 것은 더욱 치명적이다. 다음의 통계들은 이러한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는다. 예컨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인의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목협 조사에 따르면,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2004년 조사 대비 9.4% 하락했다.

표 3. 개신교인의 신앙관 변화(단위: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위의 책, 53, 58.)
Table 3. On the Change of Faith for Christians

    1998년  2004년 2012년
구원확신(‘예’ 비율) 구원확신 67.9 69.6 60.2
  예수재림 80.7 77.4 73.0
  유일신앙 79.4 78.4 67.2
  종말론 68.9 61.0 55.7
기독교 종교교리에 대한 인식 현세적 신앙 41.0 38.0 40.4
(‘그렇다’ 비율)  궁합(샤머니즘) 15.6  15.4 29.5
  풍수지리(묘자리) 15.8 15.9 24.7
  종교다원론 24.5 25.4 30.2
  윤회설 11.5 9.6 19.5

이와 함께 기본적인 교리에 대한 인식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유일신’, ‘종말론’ 등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신앙의 초점이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으로 바뀌고 있다. 신앙의 목적을 타계적인 데 두는 것이 아니라 현세적인 데 두는 사람의 비율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궁합’이나 ‘풍수지리’ 같은 기복적인 신앙행태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은 타 종교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 다원주의를 용인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고, 윤회설과 같은 불교의 교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개신교인의 수도 현저하게 늘었다.

이와 함께 자신을 개신교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예전에 비해 교회에 찾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예배만 드리는 이들이 점차 늘15.6어나는 반면 구역 예배, 새벽 기도회, 철야기도회의 참석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교인들의 성경 열독 비15.8율도 크게 줄었다. 교인들의 헌금이 줄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지점이다.(*위의 책, 84,87,104,117.)

3. 윤리적인 차원: 도덕의식의 약화

전반적으로 개신교인들은 도덕적/윤리적 쟁점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표 4. 종교적 윤리 문제에 대한 인식 -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다 + 해도 무방’(단위: %)(*위의 책, 215-18.)
Table 4. Consciousness of Morality according to Religions

  1998년 2004년

2012년
(이혼)

2012년
(비개신교인)
이혼 35.9 49.5 60.9 74.0
인공유산     41.6 66.3
음주 54.0 65.0 72.5 92.8
흡연 46.1 48.7 62.3 81.7
혼전성관계 29.5 37.0 51.3 73.9
혼외성관계 9.9 8.7 15.1 18.5
뇌물제공 16.3 15.4 30.2 44.3
동성애* - - 17.5 21.6

(*동성애 항목은 2012년부터 설문을 시작한 관계로 이전 통계자료가 부재함.)

이보다 주목할 것은 윤리의식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행동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

표 5.  한국교회 속성별 신뢰도 변화 -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단위: %, 점)(*『201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발표 세미나 자료집』(미간행자료집, 서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13), 14.)
Table 5. The Change of Trust level on Christians and Pastors

    2008년 2009년 2010년 2013년
개신교인 그렇지 않다(전혀+별로,%) 50.8 40.8 45.5 49.2
개신교인 신뢰도(5점 척도, 점) 2.47 2.75 2.60 2.48
목회자 그렇지 않다(전혀+별로,%) 43.2 33.5 40.8 42.8
목회자 신뢰도(5점 척도, 점) 2.69 2.93 2.75 2.65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거론되는 물질주의와 개교회 주의, 목회자의 윤리문제다. 기독교, 비개신교인 가릴 것 없이 모두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로 윤리성의 결여를 지적하였다는 점은 치명적이라 하겠다.(*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위의 책, 431-32, 434.)

4. 대외 인식 차원: 교회에 대한 불신 확산

(1) 비그리스도인들의 인식

전도와 선교적 차원에서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지점은 비종교인들이 기독교를 불편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종교 본연의 기능이 취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 역시 그렇다.

표 6. 종교별 이미지 평가 비교 – 비종교인 대상 (단위: %)(*위의 책, 156,159.)
Table 6. Comparison on the Image of Religions

  개신교 천주교 불교
각 종교별 전반적 신뢰도 평가 18.9 26.2 23.5
종교지도자의 자질이 우수하다(‘그렇다’ 비율) 23.8 43.9 34.5
영적 문제에 해답을 주고 있다(‘그렇다’ 비율) 26.2 32.5 27.0
진리추구보다 교세확장에 관심있다(‘그렇다’ 비율) 59.3 22.9 25.5
헌금을 강요한다(‘그렇다’ 비율) 59.2 22.8 23.7
규율을 엄격하게 강조한다(‘그렇다’ 비율)  41.6 35.1 30.8

비그리스도인들은 한국교회가 당면한 과제와 관련해 교회가 지나치게 양적 팽창과 외형에만 치중하고 있으며, 목회자의 사리사욕이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꼽았다. 비그리스도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와 확산성을 저해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위의 책, 201-202.)

(2) 안티 기독교 세력의 조직화

주목할 것은 교회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함을 목적으로 하는 안티 기독교 세력이 보다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클럽안티기독교’ 카페가 개설된 이후 네이버의 ‘안티기독교’, ‘안티바이블’등 안티기독교 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개설되었다. 지난 2004년에는 시민운동을 표방한 안티기독교 단체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 생겨났고 최근에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이 ‘종교자유’와 ‘정교분리’를 표방하며 기독교 비판의 전면에 나섰다.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은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 등 이단, 사이비 세력등도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신천지 비호 신문인 ‘천지일보’의 경우, 기성 교회 비판 기획기사를 연재형식으로 게재하고 있다. 이들 안티 기독교 사이비 세력들은 한국교회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한 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전략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5. 기능적 차원: 교회 안팎에서 불거진 공공성의 위기

(1) 교회의 실제 사회봉사 현황

교회의 공공적 역할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고 실제로 공공적 기능에 있어서 개선해야 할 점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교회의 사회봉사 현황은 다른 여느 기관이나 종교들에 못지않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종교별 자원봉사자 현황(2012)에 따르면 자원봉사자 중 천주교인이 5.3%, 불교인이 4.8%를 차지하는데 반해 개신교인이 11.9%를 차지한다.

표 7. 자원봉사자현황 - 종교별(단위: 명, %)(*보건복지부, 『2012년 사회복지자원봉사 통계연보』, 18-19.)
Table 7. Statistics on the Volunteering Service according to the Religions

총계 개신교 천주교 불교 기타 종교없음 무응답
1,280,381 152,595 68,180 61,685 5,119 676,121 316,681
100.0 11.9 5.3 4.8 0.4 52.8 24.7

또한 교회 출석 교인의 47.7%가 교회 차원의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참여분야로는 고아원/노인 요양 시설 봉사(26.0%), 장애인 봉사(17.6%), 노숙인 봉사(12.1%), 지역 아동센터/야학(11.5%), 카페 운영(6.8%), 탁아소/놀이방 운영(6.6%) 등이었다.(*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위의 책, 93.) 그러나 비개신교인의 13.9%만이 인근 교회의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대해 인식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위의 책, 187.)

(2) 교회 내부의 공공성에 대한 요청

기독교의 사회봉사가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에는 사회봉사의 전시성과 목적성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교회 내부의 공공성에 대한 위기가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특별히 상식적인 교회 운영, 특히 교회 재정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담임목사 중심의 재정 운영 관행을 벗어나 시민 사회의 상식에 부합한 재정 관리를 하자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교회 분쟁의 34.4%가 담임목사에 의한 재정관련 문제가 원인이 되었다는 교회개혁실천연대 교회문제 상담연구소(2013)의 통계도 있다.

(3) 공공적 책임의 방기

한국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한국교회의 역할이 미흡했다는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 18년이 되었으나 각종 자살율과 재해사망률, 가계부채 증가율과 임금격차,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사회 복지지출 비율이나 빈곤감소율, 출산율은 꼴찌를 하는 불명예를 안았다.(*OECD 통계에서 자살률(10만 명 당 자살자 수)은 한국이 28.5명(OECD 평균 12.1명), 산업재해사망률(10만 명 당 사망자 수)은 21명, 가계 부채 증가율은 연평균 8.7%(2008-2013년), 남녀간 임금 비율 격차는 각각 100 대 62.5, 노인빈곤율은 48.6%(OECD 평균 13.5%)로 모두 2013년 기준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최하위를 한 부문은 복지 분야가 많았는데 2011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9.1%(OECD 평균 21.7%), 한국 정부 정책으로 인한 빈곤율 감소 효과는 2.5%(독일 24.2%, 멕시코 6%),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은 1.19명으로 모두 최저 기록을 기록했다. - 국민TV, 2014.12.13. 가입 18년, OECD 통계로 본 한국,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7887 [2014.12.13. 접속]) 이는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의와 생명이라는 기독교 본연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방기한 교회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6. 선교적 차원: 국내 전도와 해외 선교의 위기감

(1) 국내선교: 가나안 교인의 증가와 교회의 파산

자신을 기독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이른바 ‘가나안 교인’이 증가하고 있다. 목회사회학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개신교인이 26%에 달했다.(* 『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 자료집』(미간행자료집, 서울: 목회사회학연구소, 2013), 5.)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인의 10%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인구대비로 환산하면 대략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 성도들이란 말이 된다.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은 성장을 염두에 두고 교회를 건축했다가 파산하는 교회들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법원 경매에 나온 종교 시설들은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인데, 이 중의 4분의 1이 교회라고 한다. 작년 391건의 종교시설 경매 건 중에서 96건이 교회 건물이다. 교인들이 감소하고 헌금이 줄어들면서 은행 빚을 지고 교회를 건축했다가 이를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조성근, 2014.06.13. 100억원 이상 초대형 교회, 법원 경매시장 잇단 등장, 한국경제 A2면.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61204161 [2014.12.16. 접속]) 이것은 교회만 건축해 놓으면 전도를 통한 교회성장이 가능하다는 식의 교회성장론 유형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교회에 대한 대사회적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에서는 전통적 전도방식이 예전처럼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2) 해외선교

한국은 해외 선교사를 미국 다음으로 많이 파송한 국가다. 1979년, 파송선교사가 93명에 불과했는데, 2012년에는 25,745명을 파송해 33년간 무려 325배나 증가했다. 대한예수교 통합측, 합동측, 감리회 등 각 교단들마다 교단 선교부가 있고, 두란노 해외선교회, 인터콥, 바울 선교회 등 선교단체가 있다. 2012년 기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산하에 16개의 교단 선교부와 128개의 선교단체가 가입해 있다. 그러나 파송 선교사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한국 선교의 성과주의에 대해 여러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성과 위주의 선교는 결과물에 대한 모 교회의 압박과 한국교회 성장주의 신학 및 가치관의 영향, 사역지와 사역형태의 집중과 교단 및 선교단체의 분열현상에 기인한다. 성과를 요구하는 외압에 직면한 선교사는 자신이 무능력자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정상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외형적 성공 혹은 가시적 성과 위주의 선교는 건축 위주의 선교 혹은 소위 ‘콘크리트 선교’를 하는 것으로 반영되는 등 결과적으로 선교사간 경쟁과 견제, 중복 투자의 문제를 낳았다. 한수아, “구조적 측면에서 본 한국 선교의 문제와 대안,”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제13회 한국 선교지도자 포럼』(2014), 11-23. 참조. 안교성, “한국선교 30년의 명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38호(2013); 홍인식, “선교현장의 한국 선교사 분열 현상과 그의 극복을 위한 제언,” 『KMQ』(2014).)

7. 담론적 차원: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확산

(1) 기독교 관련 이미지 형성 : 언론

한국교회가 방송,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복투자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른바 선교방송에 힘을 쓰고 있지만, 정작 비개신교인들은 한국교회 영상/인터넷 매체를 통한 예배/선교 프로그램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위의 책, 181-83.) 반면 64%에 해당하는 비개신교인들이 TV나 신문 등 일반 언론 매체를 통해, 그리고 4.9%의 사람들이 뉴스 포털이나 토론방 등 인터넷을 통해 한국교회 활동을 파악하고 있다.(*위의 책, 184.) 이러한 경향은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어서 기독교 이미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2005년에는 주변 교인들의 언행이 가장 큰 비중(51.9%)을 차지했다면 2012년에는 언론 보도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38.8%)으로 조사되었다. 문제는 한국교회 활동에 대한 언론 보도가 대부분 부정적이며, 그러한 부정적 보도에 대해 60.6%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39.4%의 사람들만이 실제보다 기독교 관련 언론의 과장 보도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위의 책, 186.)

표8. 기독교 관련 이미지 형성 영향 변화 – 비기독교인 대상 (단위: %)(*위의 책, 185.)
Table8. On the Influential Factors for the making the Image of Christianity

기독교 관련 이미지 형성 영향 결과 2005년 2012년
매스컴 보도 12.5 38.8
주변 교인들의 언행 51.9 26.3
인근 교회의 활동 16.9 19.1
목회자,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 15.6 15.7
기타/없음 3.1 0.1
100.0 100.0

(2) 기독교 관련 이미지 경향 : 영화

오늘날 영화는 한국 내 가장 친숙한 대중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영화를 오락거리나 심미적 예술의 장르의 하나로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대 사회 구성원들의 삶과 정체성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사회, 문화적 현상을 반영한다. 사회 제반 문제들을 다루고 조명함으로써 사회적 의미를 생산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 영화에는 개신교인들의 삶과 정체성이 녹아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로써 개신교인 혹은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 역시 반영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기독교를 다룬 한국 영화를 통해 당시 사회가 기독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독교는 사회에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1960~1970년대 : 사회를 계몽하는 기독교
1960~70년대 기독교 영화는 기본적으로 한국교회의 인물을 다루는 전기영화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무녀도>(1972), <을화>(1979) 등에서 무속 등 전통적 신앙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성찰한 경향 역시 살펴볼 수 있다. 60년대 후반에 진행되었던 기독교의 ‘토착화’ 논쟁과 70년대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과 연관된다.(*신광철, “한국 개신교영화의 회고와 전망,” 『종교학연구』 19집(2000), 88-90.) 또한 <별들의 고향(속편)>(1974)에서 예배당 앞에 버려진 이에게 세례를 베푸는 목회자가 등장하는 등 당시 기독교가 사회에 지니는 사회적 공신력을 드러낸다. 1960년대 말 한국교회 인구는 225만 명으로 추정된다.

② 1980년대 : 기독교 영화의 부흥기
1980년대는 한국 기독교가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던 시절이었다. 1985년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인은 60년대 말 대비 288%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649만 명에 이르렀다. 이 시기는 한국 기독교 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양적으로도 많은 영화가 제작되었지만 현실 세계 속에서 신앙의 의미를 추구하거나 <사람의 아들>(1980), <어둠의 자식들>(1981) 등의 영화를 통해 기독교적 진리의 근원성에 대한 심각한 물음을 제기, 당대 역사적 시점에서 기독교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중 어떠한 좌표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 등 비판과 도전이 이루어졌다.(*위의 논문, 91-92.)
 
③ 1990년대 : 신성성을 잃은 풍자의 대상
급속히 치솟던 한국교회 성장률이 1990년대 들어 잠시 주춤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영화 역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편수나 내용 면에서 크게 눈에 띄는 영화들이 없는 대신 대중적으로 흥행했던 영화 <투캅스>(1993)와 <할렐루야>(1997)에서 기독교의 정신과 무관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내용을 다뤘다.(*위의 논문, 92.) 두 영화 모두 주인공들이 부의 축적을 위해 성도들 앞에서 겉과 속이 다른 신앙적 행위를 하는 교회 내 직분자(집사, 목사)를 연기했다.

④ 2000년대 이후 : 놀림과 조롱의 대상
영화 <박하사탕>(2000), <4인용 식탁>(2003), <친절한 금자씨>(2005), <오로라 공주>(2005),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등에서 거룩함을 부르짖지만 정작 구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개신교인들에 대한 비판과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나타난다. 2005년 한국 기독교 인구는 861만 6천 명으로 10년 전인 1995년보다 14만 4천 명 감소한 바 있다.(*통계청, 『2005년도 주택인구총조사』)

 

Ⅳ. 한국교회 위기의 원인 분석과 대안 모색

모두가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작금의 한국교회 상황은 교세의 양적 성장 감소는 물론,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도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대사회적 신뢰도 조사가 나타내듯이 21세기 들어 한국 기독교회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교회는 다른 사회기관이나 종교기관들에 비해 사회적 섬김에서 오히려 앞선 실적을 보이면서도 한국사회 안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표 9.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변화 - 전반적 신뢰도 부분(단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위의 책.)
Table 9. The Change of Trust Level about the Churches in Korea

  2008년  2009년 2010년 2013년
신뢰한다 18.4 19.1 17.6 19.4
보통이다 33.3 47.4 33.8 36.0
신뢰하지 않는다 48.3 33.5 48.4 44.6

이러한 상황에서 본 소고에서는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오게 된 원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주장하는 주요 논점은 다음과 같다. 오늘의 교회 위기는 신앙인들의 신앙인답지 못함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신앙체계와 삶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함께 신앙공동체의 공공 영역에서의 역할 부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제도적, 신앙적, 기능적 역할의 부족함은 결국 교회에 대한 대외 인식을 악화시킴으로써 대사회적 선교 역량의 한계를 노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위기는 시민사회를 비롯한 사회의 각 영역, 특별히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의 영역에서 기독교 복음의 핵심 담론이 제대로 소통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심화되고 있다. 핵심 담론이 소통되지 못한다는 문제는 곧 우리의 삶이 그 담론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과 함께 사회 참여에 대한 태도와 전략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내용과 방식을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1. 위기의 원인과 의미에 대한 기독교윤리학적 반성

(1) 신앙/신학의 위기

한국교회의 신앙왜곡과 불신앙, 그로 인한 한국교회의 위기는 사회적 영향력을 저하시킴으로써 결국 한국사회에 닥친 비극을 예방하지 못하였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청지기로서의 일차적 사명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다(요10:10).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세상의 어떤 것보다 우선시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이라 함은 바로 이러한 생명 중심의 세계관과 가치를 믿고,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뜻한다. 신앙이 좋다는 것, 신앙이 성숙하여 간다는 것은 하나님 주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의 영역이 더욱 넓어지고, 그 실천이 더욱 구체화 되어 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에 저항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시대 기독교 윤리의 우선적 과제는 물신 숭배에 맞서는 일이다. 물신숭배는 오늘의 비극적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다. 생명보다는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기에 원칙보다는 변칙을, 준법보다는 편법을 사용했다. 돈을 위해서 생명과 안전을 거래했다. 우리는 이 세계가 얼마나 물신숭배로 만연되어 있는가를 밝혀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보다는 물질의 힘을 크게 여겼던 문화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즉 회개를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 생명 중심의 가치를 뿌리로 삼고, 하나님의 의로 올곧은 삶을 살아내어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열매 맺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신앙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인자가 다시 올 때 믿음을 다시 보겠느냐”(눅18:8)(*cf. H. Richard Niebuhr, Faith on Earth(Yale University Press, 1991)) 하신 경고의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을 향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 제대로 된 믿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었다면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발생케 한 가치관과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내도록 허용하였을까를 반성케 된다. 전 인구의 1/5에 달하는 기독신앙인들이 있는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가 물신숭배와 향락주의적 소비문화로 가득하다면 과연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직면한 한국교회 위기의 근본원인은 한국교회의 현실과 문화가 복음적 정체성에 확고한 토대를 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십자가-부활 신학의 부재로 인하여 복음의 핵심적 담론이 실천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히려 기복적 번영신학이 범람하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 대신 천민자본주의와 야합한 값싼 은혜의 오염이 주된 요인이다. 이러한 신앙의 왜곡과 불신앙이 곧 오늘 한국교회 위기의 핵심에 자리한다.

(2) 맥락(context) 해석의 위기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력의 부재도 오늘의 위기의 주된 원인이다. 21세기 문화가 세계화, 포스트모더니즘, 소비문화, 정보화라는 사회 문화적 바탕위에 서 있는 반면, 오늘날 교회는 사회 문화 변동에 대한 문화 지체(cultural lagging)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맥락 이해의 부재 및 문화지체현상은 대사회적 소통의 문제를 야기했을 뿐 아니라, 교회가 교회의 시대적 소임을 오판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 교회는 다음과 같은 사회문화의 변동현실 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함으로써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① 교육: 사회발전과 함께 피교육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은 피동적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보다는 능동적인 참여를 열망한다. 교육의 정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역자(collaborators)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신뢰도를 높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경험과 지혜와 통찰을 모으고 다듬는 데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교역자와 소수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예배와 교회의 각종 기획과 행사들은 다양한 능력을 구비한 회중 구성원들의 참여를 충분히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현실은 결국 신앙공동체의 역량을 떨어뜨리며 따라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치명적 한계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② 정보: 지식정보화 시대의 성숙과 함께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더욱 다른 사람들과의 의존관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와 지도자는 더욱 다양한 관계망과 소통기술들을 필요로 한다.(*Alan E. Nelson, Spirituality & Leadership: harness the wisdom, guidance and power of the soul(Navpress, 2002), 29.) 동시에 너무도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적절하게 취사선택하고 또한 가공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함을 뜻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러한 지식정보화시대의 도래에 적절하게 응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는 힘든 현실이다. 

③ 여성: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과 전문직 여성의 놀랄만한 증가는 오늘날 신앙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비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교회는 여성들의 이탈이 영국 교회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는 연구를 매우 주의 깊게 참고할 필요가 있다.(*cf. C. Brown, The Death of Christian Britain(London: Routledge, 2000).) 전문직 여성들이 함께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다. 남성적인 리더십이 결과 중심적인 경향성을 보이는 데에 비하여 여성적인 리더십은 과정 중심적이다.(*Nelson, op.cit., 30.) 이러한 여성 리더십의 특징은 전통적인 리더십에 비하여 오늘날 지향하여야 할 목회리더십이 더욱 통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말해 준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여성안수를 거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수를 받은 여성 지도자를 배출한 교회조차 그에 걸맞은 지도력의 자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교회구성원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여성 교인들에게 가부장적 문화에서 행해오던 일들만 고집하는 것이 현실이다.

④ 민주화: 현 시대 문화의 특징은 모두가 집단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의 강화와 정보의 홍수와 함께 더욱 강화되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위계적 질서에 익숙한 교회는 변화하는 사회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게토(ghetto)화 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민주화라는 미명하에 복음의 정체성과 진리의 불변성을 타협하는 선동정치(demagogue)의 풍조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민주화라는 사회문화 흐름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오히려 전통적인 위계적 권위에 대한 급격한 도전으로 여기며 혼란 상황을 도출하는 경우도 많다고 볼 수 있다.

⑤ 조직의 복합화와 파편화되는 충성심: 세계화와 정보화의 가속화에 따라 많은 조직들이 점점 복잡화, 대형화되고 있다. 작은 조직들과 기업들도 심화되는 경쟁상황에 놓여 있다. 정태적이고 단순하던 시대에서 날로 복잡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이러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지식을 모두 갖추기는 어렵다. 이에 교회는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차별화할 과제를 가진다.

21세기 들어 정보화의 심화에 따른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야 하고 가속화되는 세계화가 동반하는 심화된 경쟁 상황에서 사람들은 전례 없이 많은 기회와 함께 도전과 스트레스도 크게 받고 있다. 그들은 모바일(mobile)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서로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기 원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성원 각자들에게 구체적인 의미와 유익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주고,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섬김의 리더십을 요청받게 된다.(*Ibid.) 그러나 교회성장론 중심의 교회문화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충분한 존중을 기울이지 못함으로써 결국 오늘날 많은 교회는 예전만큼의 응집력과 헌신도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3) 행위자(agents) 동원과 자원(resources) 활용의 위기

한국교회는 어떤 시민 단체와 기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교회 내의 인적, 물적 자원을 통전적으로 활용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만인 제사장직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교직자 중심주의와 일부 중직자 중심의 개교회주의가 고착화 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앙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큰 꿈을 쉽게 이야기하면서도 공동체 안에서 협력과 하나 됨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4) 연대와 소통의 위기

오늘의 위기는 사회변화를 선도할 만큼의 실력을 두텁게 쌓지 못한 신앙인들의 얄팍함에도 중요한 원인이 있다. 실제로 “사회변화는 문화를 생산하는 중심부에 위치한 기구들 안에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엘리트들의 초밀한 연결망을 통한, 핵심 심층부로부터의 변혁으로부터 시작되곤 한다.”(*James Davison Hunter, To Change the World(Oxford University Press, 2010), 274.) 주변에서 핵심으로 이르는 변혁도 필요하지만 사회변혁은 문화의 핵심부에 대한 설득과 연대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변혁을 추동할 만한 전문적인 능력과 사회적 연대가 빈약한 상태로는 사회적 영향력 발휘, 즉 사회변혁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특별히 인문사회학의 부흥시대를 맞이하여 한국기독교는 인문교양의 능력을 고양하고, 일반은총의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갖춤으로써 소통과 연대의 능력을 갖춤에 성공적이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통과 연대는 사회에 대한 지식을 요청하지만 그보다 앞서 전제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하는 일이다. 예컨대 기독교회는 권력(power)에 대한 잘못된 사회이론의 무비판적 수용을 경계하여야 한다. 예수께서 이방인의 관행이라고 하였던 정복과 지배로 상징되는 콘스탄틴 식의 권력관을 수용한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정치적인 권력 게임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Ibid.) 예컨대 신앙적 배경과 동기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한 이들을 당선시키고, 특정한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정책을 입안하면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앙인들은 세상적인 힘과 정치적 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Ibid., 275) 결국 세상을 바꾸고자 정치에 참여한 신앙인들이 바로 그 세상을 닮아가 버린, 모순적인 현실을 낳은 것이다.

결국 확고하지 못한 기독교적 정체성, 즉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미숙하고 왜곡된 신앙, 기복적 성향은 뿌리가 깊으나 십자가와 섬김에는 얄팍한 신앙과 건전한 신학의 부족,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 권력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왜곡으로 인한 사회적 과제 선정의 미숙과 상대적으로 우수한 인재와 풍부한 재원의 활용 부족, 결과적인 연대와 소통의 부족함이 오늘 한국교회가 위기를 자초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볼 때 우리가 교회의 기능적 차원의 분석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만큼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 종교들과 기관이 많지 않다. 사회적 공헌이 적지 않다는 역사적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에 대하여 유난히 비판적이다. 정치적인 권력과 유착된 집단으로 교회가 매도당하기도 한다. 대중 미디어들은 여느 종교보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나 시민사회와의 소통능력을 갖추지 못한 소수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과 기관의 대표자들에 의해 한국교회의 전체 실상이 왜곡되고 있다. 이는 매우 치명적이다. 이러한 원활한 소통의 부재는 결국 주류 여론들의 잘못된 시각을 양산한다. 언론과 지성인 집단, 청년들 사이에서 기독교에 대한 냉소적 비판 기류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저하로 이어져 반선교적 문화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2. 공공신학적 관점에서의 한국교회 과제

그러나 오늘의 위기(危機)는 문자 그대로 위험한 기회를 뜻하기도 한다. 즉 교회와 신앙의 왜곡과 부족한 신앙과 화석화된 신앙은 복음적 신앙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회복의 기회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이기도 하다. 또한 교회와 신앙의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에 대한 함몰로 인한 위기는 신앙의 사사화(privatization) 극복을 통한 신앙의 공공성 회복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나라 참여를 위한 만인제사장적 청지기직 회복으로의 부르심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교회의 교회됨을 모색할 수 있다.

(1) 신학적 토대강화 - 신앙의 공공성 및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의 확립

유례없는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의 복음적 정체성 확립을 위한 신학적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신학적 토대 강화는 우리 신앙을 성경적 토대 위에 확고히 서도록 지속적으로 도전하려는 노력을 뜻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오직 말씀 위에 우리의 신앙과 삶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충성을 뜻하며,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사적인 영역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할 공적인 영역까지 끌고 갈 수 있도록, 복음적 신앙과 신앙의 공공성을 함께 담보하는 공공신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관심과 실천적인 노력이 신학자와 신학교, 목회자들뿐 아니라 모든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2) 교회의 인적/물적 자원의 전략적 활용을 위한 공공신학적 토대 강화와 실천 강화

한국교회는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의 이해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인문-사회-자연과학과의 대화를 강화하여 나가야 한다. 이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속한 일반 은총의 영역이다. 이와 함께 기독신앙인으로서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영역에서 활약하는 학자들의 제사장적 청지기 역할을 도전하고 지원하며, 학제간의 대화와 연구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교회가 활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의 전략적 활용은, 하나님 나라 중심의 교회관과 선교관의 확립, 만인제사장직과 청지기 직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를 중심으로 하는 신학적 토대 위에서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하나님 나라 중심 신학의 바탕위에서 21세기 사회문화의 특징인 네트워킹을 겸손한 태도로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역교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실천을 공유하는 교회 및 기관들과 에큐메니컬 연대를 이어가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자원들을 활용해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3)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소통과 연대

교회는 시민사회를 협력자로 인식해 이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며 선교친화적인 사회 문화 형성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민사회는 여론 선도 집단인 동시에, 탁월한 전문가와 실천가들로 구성된 단체다. 그리고 시민운동단체 안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의 상당수는 신앙적인 배경 하에 나름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이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 형성에 힘써야 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특성화된 전문성을 가진 시민단체와 구성원들을 매개하는 허브 역할을 하면서 보다 생산적이고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독교적 배경을 지니고 시민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관들, 예컨대 기독경영연구원, 한반도평화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등의 전문연구기관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의 시민운동기관, 한국기독교언론포럼 등의 언론 전문기관들과의 긴밀한 연대는 더 중요하다.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시민사회 및 언론, 문화 단체와의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4) 목회적 과제

① 매력적인 교회보다는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Church 3.0, 47)
매력적 교회란 교회를 중심으로 사람들과 자원들이 구심적 성향을 가지는 교회를 말한다. 반면에 선교적 교회란 교회 밖으로 사람들과 자원들이 투입되는 원심적 성향을 가지는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앉아서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 그보다는 보내는 곳, 즉 사도적 전승을 가진 곳이다.

② 고비용 구조로부터의 전환(*Church 3.0, 48)
때로 우리는 교회구성원들이 더욱 능력을 갖추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회는 더욱 성장의 동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능력과 아름다움을 갖춘 이들이 하나님의 사역에도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는 오늘의 문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준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는 거리가 먼 전제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들보다는 약한 자들 안에서 자신을 나타낸다고 하신다.

유기적 교회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조직적이며, 구도자에 민감한 교회거나 목적을 추구하는 교회가 아니다. 그보다 유기적 교회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리스도만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심지어 교회가 하는 사역들이나 설교자나 찬양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실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영적인 관심, 즉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Church 3.0, 49)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매력적인 교회가 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요구된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대단히 많다. 매력적인 교회로 보이기 위하여 수많은 비용을 들여 연속된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은 참으로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 엄청난 예산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교회 내부의 우리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물과 예산과 큰 행사기획 등은 결국 교회를 개척하는 데에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목회를 계속하기에는 우리의 자원이 고갈되어 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과거와 비교하여 오늘의 상황은 대형교회가 더 이상 늘어나는 추세가 아니다. 물론 상당한 수의 대형교회는 여전히 활발한 목회사역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교인들의 숫자는 오히려 정체내지는 감소하는 현상이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문화와 가치가 전반적으로 더욱 하나님 나라의 그것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이다.

오늘날의 교회, 특별히 대형교회들은 과연 교회를 매력적으로 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들을 신자다운 신자 되게 함에 더욱 힘을 쏟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물론 교회가 매력적이 된다는 것은 신자들을 신자답게 함에 목적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교회 조직 자체를 유지하는 데에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사실 교회는 신앙인다운 이들, 즉 제자들에 의하여 출발된 것이다. 교회는 매우 중요하지만 구조나 건물이나 행사로서의 교회보다는 사람으로서의 교회의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③ 교인들을 진정으로 구비시키는 교회로의 전환(*Church 3.0, 54-5)
건강한 교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목표는 평범한 신앙인들을 하나님의 나라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비케 함에 있다. 이것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훈련된 전임 사역자들 중심의 사역형태와는 구별되는 목회유형이다. 우리의 일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소명의 장이다. 건강한 교회 사역자들의 우선적 임무는 다양한 교회 사역과 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구비케 함에 있다. (마28:20) 우리 교회가 담당할 다양한 사역지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그런 교회가 많지 않은 이유는 교회가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교인들을 즐겁게 하려고만 애쓰고 있는 오늘의 교회 행사와 사역은 아닐까?

교인들을 만족시킴으로써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교회의 문제점은 결국 새로운 신앙인들이 장성한 신앙에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교회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건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1) 새로운 신앙인들은 복음을 전달할 접촉 기회에서 제외된다. 예전에 신앙을 영접하기 전에 사귀었던 이들과 급속하게 멀어짐으로써 오히려 복음 전파의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2) 교회 역시 일터와의 접촉점과 상관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3) 결국 사회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된다.(*Move, 54-55)

Ⅴ. 결론 :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우선 과제

한국교회의 개혁을 말할 때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다. 물론 교회가 사회변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변혁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세상에 알리기에 앞서 치열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상의 작은 일들에 먼저 충성하고, 사회와 세상에 대한 일관된 자세를 견지하며 교회가 할 수 있는 실천을 꾸준하게 지속하여야 한다. 물론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너무 쉽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언만 반복한다면, 자신을 세상의 유혹과 공격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Andy Crouch, Culture Making,:Recovering Our Creative Calling, (IVP, 2013) 265.) 우리가 다양한 통계와 평가를 통하여 살펴본 대로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교회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신앙인을 신앙인답게 양육하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사회 변혁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의미 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교회구성원인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이 신앙인다워짐을 뜻한다. 그러나 신앙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워 나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주권, 청지기, 만인 제사장 신앙 등이 삶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회적 공동선(common good)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공공선이라는 사회변혁의 목표에 동참하게 된다.(*Ibid., 285.)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분리될 수 없듯이 교회의 교회다움과 사회적 역할 역시 분리될 수 없음은 매우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동선을 위한 건설적 역할은 교회의 교회다움으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교회의 교회다움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는 한국사회 안에서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즉 교회만의 정체성을 보존하되 동시에 사회적 공공선을 위해 다른 사회 기관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평신도 사역의 활성화와 시민사회 안에서 교회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자각하게 된다. 소수의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 지도층 인사들의 관점만으로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회가 할 수 있는 영역과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한국사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바로 교회가 한국사회 안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들만이 포착할 수 있는 과제와 영역이 아니다.

교회의 교회다움은 신앙인의 신앙인다움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신앙인다움이란 세상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는가에 따라 판명된다. 개인의 신앙을 사적인 영역에만 적용시키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서 책임 있는 실천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회의 좋은 교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도모하는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전제한 상태에서 신앙인을 신앙인답게 하기 위해 교회가 갖추어야 할 교회다움을 살펴야 할 것이다.

신앙인을 신앙인 되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교회가 안팎으로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직관하고,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오늘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신 소임, 즉 “신앙의 공공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를 주장하는 바이다. 바로 이것이 21세기 초반 한국교회의 과제이자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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