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행복한 날이 있었다.

그 일은 지난 2월에 열렸던 CAL-NET(제자훈련목회자 네트워크) 평신도전국지도자컨벤션을 통해서였다. 동일한 목회철학과 열정을 가지고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여러 동료 교역자들과 각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이 사랑의교회 본당을 꽉 채운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마디로 모두의 가슴에 안겨진 선물 같은 잔치였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달려온 목회자와 교우들도 함께 자리하였다. 은혜롭게 준비된 만남의 시간과 강의가 새로웠다. 특히 칼세미나(CAL-Seminar) 제100회를 앞두고 열리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 모임이기에 참여자 모두에게는 거룩한 기쁨의 현장이 되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축복된 일이 벌어졌다. 그 일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 남자 집사님이 강사로 부름을 받아 아름답게 쓰임 받는 모습을 보는 담임목사로서의 기쁨이었다. 필자도 강사로 초청받았다. 필자의 강의 장소는 본당아래층 중예배실, 그런데 우리 교회 집사님은 본당에서 많은이들 앞에서 훌륭한 강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상황은 필자에게 의미 있는 기쁨을 선물하였다. ‘담임목사보다 낫구나’ 필자는 그 상황이 상징적으로 축복된 의미를 부여하였다. 평소 부교역자나 평신도지도자들을 향하여 “여러분, 저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야 합니다. 저의 어깨를 내어 드리니 마음껏 타고 오르십시오.”

한 집안이 왕성하게 일어나려면 자식이 부모보다 나아야 한다. 부모보다 잘 되어야 한다. 이러한 미래지향적 가정은 수많은 가정에게 영감을 일으키고 닮고자 하는 의식을 일깨워 준다.

필자가 지향하는 제자훈련은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를 세우는 사역이다.’ 곧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몸에 배게 하는 일이다. 삶을 통한 구체적인 변화를 경험하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시간의 투자, 물질의 투자, 동역자간의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집사님의 강연에 참여한 모든 교우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역자를 자랑스러워했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목회의 본질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제자훈련의 목회는 건강한 교회론을 바탕한 사람 세우기에 집중하는 사역이다.

필자는 주님을 더 많이 닮고, 주님께 더 즐겁게 쓰임받는 목회자와 교우들이 되기를 늘 소원하고 있다.

능력보다 화목

능력과 화목은 충돌의 개념은 아니지만 동시에 한 종류라도 지나칠 수 없는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능력을 추구하는 목회자는 화목을 소홀히 다루다가 나중에 어려움을 만나고 아픔을 토로하는 것을 본다. 필자도 이러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주위에서 많이 보고 들었기에 필자는 조금은 천천히 간다 하더라도 화목함을 유지하는 것이 능력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의 조급증에 빠져 화목의 미덕을 훼손하면 반드시 그 댓가를 여러배 치른다는 것을 온 몸으로 배워가는 중이다. 최근에도 잘 나가던 목회자라고 주위의 부러움을 사던 이가 교회 부임 20년을 앞두고 물러서야 하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였다. 밖으로는 능력있는 목회를 표방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화목에 금이 가 있었던 것이다. 신뢰를 바탕한 화목함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능력 또한 하루아침에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 때가 있음을 안다. 교회 부임 초창기부터 화목의 소중함을 여러 고난 사건을 통하여 체득하게 하신 주님의 예비하신 은혜에 감사드린다.

혼자보다 함께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목회자의 조급증은 억제할 수 없는 재채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무한 경쟁에 익숙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부지불식간에 목회자에게도 조급증이 마치 내장 지방처럼 쌓였다. 혼자 뛰어나고 싶고, 혼자 잘되고 싶고, 혼자 소문나고 싶은 마음이 목회자의 마음속에 독사가 꽈리를 틀고 있듯 하다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자본주의 논리는 승리의 논리이며 독점의 논리이다. 곧 승자독식인 셈이다. 필자가 새로남교회에 부임하기전 당회 앞으로 보낸 서신중에는 ‘목회자로서의 기대와 소망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은혜가 넘치는 당회를 이루는데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영적인 팀웤과 동반자 의식을 최대한 발휘하여 진실 되고 충성스럽게 주님과 새로남교회 믿음의 가족들을 지성껏 섬길 때 주님께서는 말씀의 권능과 성령님의 은혜와 따뜻한 사랑이 넘쳐나는 예배공동체, 훈련공동체, 전도공동체, 선교공동체, 섬김의공동체로 빚어 주실 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년을 지나고 보니 함께 한다는 것이 자기를 얼마나 엄격하게 다스려야 하며, 이웃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인내의 기간을 가져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깨달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부임초창기부터 이웃과 함께, 노회와 함께, 대전광역시 기독교연합회와 함께, 총회와 함께, 목회자들의 모임인 미래목회포럼과 함께, 젊은이들의 전도양육을 위한 총회군선교회와 함께, 합동교단의 젊은 세대인 SCE(Student Christian Endeavor)와 함께하기를 힘썼다. 또한 선배와 동료 후배들과 동역의 악수를 내미는데 인색하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하였다. 함께의 마음이 계속 불붙기를 바라고 있다. “책임은 감당하고, 기쁨은 공유하고”

문화보다 복음

충청도를 예향(禮鄕)이라 부른다. 기분 좋은 평판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끈적이는 문화의 발목잡음도 숨어 있다. 사람 살리는 문화야 축복된 것이지만, 복음을 변질시키는 문화는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사람들은 문화를 치장하여 혈연, 지연, 학연을 강조할 뿐 아니라 스스로 얽매이는 것에 대한 경계를 늦추어 버린다. 교회안에 문화를 빗댄 풍토가 자리잡게 되면 복음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인간적인 정리 때문에 복음의 빛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화의 고유한 속성이 복음의 장애물이 되는 상황을 여러번 목격하였다. ‘좋은게 좋은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 ‘빈 총이라도 맞으면 기분 나쁘다.’ ‘가만히 있으면 때가 되면 자리를 차지한다.’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 이런 말이 나름대로 의미 있게 통용되는 상황이 있겠지만, 복음이냐 문화냐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사도 바울은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존심을 걸고 자기 고백적으로 외쳤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찬송통합 521장) 나 스스로도 미사여구를 동원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상황을 해석하여 본질을 흐리지 않도록 더욱 경계하려 한다.

현재보다 미래

세속주의는 현재에 몰입되어 미래를 상실하도록 유도한다. 천국주의는 현재에 매몰되지 않고 천국의 가치를 실현하기를 힘쓴다. ‘내 코가 석자인데’와 ‘발등에 떨어진 불’의 논리로 표방되는 현세주의는 세상의 가치에 코가 꿰어 끌려 다니도록 만들어 버린다.

가치 있는 것은 오늘 희생과 인내를 요구한다. 오늘의 희생을 거절하면 축복된 미래를 경험할 수 없다. 필자는 우리의 다음 세대의 소중함을 알고 조금이라도 실천하고자 주일학교와 대학청년부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투자를 하기를 원했다. 물론 기대만큼 투자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음 세대를 살리는 사명이 지역교회에 맡겨져 있고 최후의 결정권이 담임목사의 손에 있다는 것은 특권과 동시에 매우 두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음세대를 향한 영적인 야성이 무디어질까 조심스럽다. 보신주의는 다음 세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음 세대를 일으키고 살리라고 말씀하신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1-2)

새로남교회에서 새로남기독학교(Saeronam Christian School/ 핵심가치: 견고한 영성(Sound Spirituality), 기독의 인성(Christlike Character), 뛰어난 지성(Distinguished Intelligence), 국제적 역량(Global Competence), 섬김의 지도력(Servant Leadership))를 설립할 때 돈 곧 경제논리로 접근하지 아니하고 사람 곧 다음 세대를 살리자는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누군가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

지난 1월 새해은혜집회때에 박종순 목사님을 강사로 모셨다.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박목사님께서는 월간목회에 3년을 기고하신 원고를 바탕으로 ‘완주자의 노래’라는 책을 발간하셔서 필자에게 선물해 주셨다. 읽고 감동을 받았다. 필자 역시 주의 종으로서 또한 한 지역교회의 담임목회자로서 ‘완주자의 노래’를 부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사님의 싸인이 된 책자를 특별 요청하여 우리교회 부교역자들도 읽히고 독후감을 써서 함께 나누었다.

필자뿐 아니라 동역을 하는 부교역자들 역시 ‘완주자의 노래’를 불렀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부족한 종의 글을 마음 담아 읽어 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올려 드린다.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 ‘완주자의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해 본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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