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까지만 해도 활짝 피어난 매화에 눈길이 자주 가더니 봄비와 함께 지기 시작하니까 이젠 큰 소나무 곁 테라스 옆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목련을 자주 바라보게 된다. 우리 정원의 나무와 꽃들은 나의 친구이기도 하고 나의 선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여전히 말없이 거기 있어주는 친구들을 보며 위로를 얻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때로는 여전히 자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자기의 자기됨을 지키며 하수상한 계절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말없이 온 몸으로 가르침을 주는 선생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목련 가지 중 소나무 쪽 가지가 말라죽는 것을 보면서 내년엔 살아서 꽃을 피우지 못하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올 봄에 보니까 목련이 살아서 싹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자세히 보니, 목련이 가지들들이 소나무 바깥쪽으로 휘어져있었고, 몇 일 전엔 꽂들도 대부분 소나무 그늘을 피해서 하늘을 향해 피어 있었다.

난 매화가 하늘을 향해 가지를 쭉쭉 내뻗고 그 가지에선 세상을 향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면서 매화만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것을 보며 잔잔한 감동을 받았었다. 그 이유는 피조물인 매화가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하늘로 하늘로 가지를 내뿜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매화로서 호박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세상을 향해 매화꽃을 활짝 피움으로서 매화의 매화됨을 자신있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어 떨어지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때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자신됨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는 모습에서 ‘사람도 저러해야 하거늘…’하면서 교훈을 얻었었다.

그러다가 내 눈길이 목련을 향하면서 목련은 내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 목련인들 독(?)을 내뿜는 소나무 아래 심겨지고 싶었겠는가! 어설픈 목사인 내가 심으니까 심겨져있었던 것일 뿐. 그런데 목련은 소나무의 독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도 살아내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가 굵은 가지가 죽어 잘려나가는 아픔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살아내면서 설령 가지가 휘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기우뚱하더라도 소나무 그늘이 아닌 하늘을 향해 자랐고, 그렇게 안쓰러운 모습으로라도 존재하면서 하늘을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목련꽃을 활짝 피움으로 목련의 목련됨을 보여주고 있었다.

설령 몸뚱아리가 잘려나가더라도 고난을 온 몸으로 이겨내온 목련…, 몸이 휘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나무 그늘을 피해 하늘을 향하며 자라고 있는 목련…, 살아내주고 있는 것만도 고마운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꽃을 피움으로서 자기의 자기됨을 보여준 목련…, 어찌 나의 선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텐가!

사람은 그저 생물학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사람의 사명이 아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주어진 생명의 날 동안 살아내는 것을 넘어, 그 삶의 방향이 세상과 사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께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자기의 자기됨의 모습을 하나님께나 사람들에게 마음껏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매화처럼…, 목련처럼…!

옛말에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다. 사람이 신념이건 일이건 생명이건 간에 하여튼 무엇인가를 포기할 땐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핑계거리가 있을 것이다. 심리학적 견지에서 보면, 이유와 핑계라도 댈 수 있게 해주어야 넘어진 사람을 일어설 힘을 얻게 할 수 있고, 죽을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고 하셨고(롬1:20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다.

즉, 사람이 자기 앞에 주어진 현실 앞에서 포기할 이유와 핑계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현실에 대하여 한 없이 연약하고 부족한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을 향하려고 발버둥칠 때, 그 고통의 와중에도 자기의 자기됨을 꽃피우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를 굳세게 하시고 도우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시는 것이다.

매화야, 목련아, 나를 깨우쳐주고 가르쳐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너희들을 본받아 저 높은 곳을 향한 삶을 치열하게 살도록 노력할게. 하나님의 꽃이 되고 사람들의 꽃이 되는 그런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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