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땅콩 생산지를 손꼽는다면 당연히 미국의 앨라배마일 것입니다. 그 주(州) 안에 소도시 엔터프라이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재판소 앞에는 언뜻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돌탑으로 된 비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비석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화를 갉아먹었던 벌레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 벌레들은 우리에게 번영의 계기를 주었고, ‘하면 된다’는 신념을 주었다. 목화벌레들이여! 다시 한 번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를 바친다.” 원래 그 곳의 주요 산업은 목화였습니다. 그러나 1895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목화 벌레 떼의 기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벌레들의 극성으로 인하여 목화밭은 초토화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실직의 아픔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그 처절한 재앙에 도전하였습니다. 정든 목화재배를 포기하고 생소한 콩, 감자, 그리고 옥수수와 특히 땅콩을 재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개척자들의 노력은 드디어 열매를 맺게 되었고, 오늘날 세계적인 땅콩 생산지로 발돋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어떠한 위기와 고난에도 결코 무릎을 꿇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생활하였습니다. 요셉은 철저한 오해와 부당한 대우를 받는 큰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욥은 자녀와 재산, 그리고 건강을 한 번에 잃어버리는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룻은 극한 물질의 고난의 터널을 그저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따돌림과 절대 고독을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때가 차매 그들에게 회복과 위로는 한순간에 다가왔습니다. 본인들도 과연 이것이 꿈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착각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 고난을 주었던 환경이나 사람에게 감사하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고난의 순간순간들이 자신들을 정금 같은 신앙인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도구였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넘어져 있는 성도님을 다시 못 일어나게 하는 것은 결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떤 삶의 고통을 당하고 있더라도 그것으로 인생의 끝이 아님을 입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과정임을 인정하시기 원합니다. 앞문 뒷문이 다 막힌 것 같더라도 하늘 문이 열려 있음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혹독한 고난의 광야에서도 어느새 하나님의 은총의 꽃이 피기 시작하며, 열매가 맺히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에는 하나님 뜻이 있었음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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