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 내 생각엔, 그 입술에 주님을 향한 찬양이 있고,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예배할 수 있는 교회를 소유한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예수님을 노래할 그 입술로 악한 말과 저주의 말을 하고, 밥 잘 먹고 생긴 힘으로 호시탐탐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해롭게 하고 쓰러뜨리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 이유는 전자는 그 마음에 천국을 경험하고 있고, 후자는 그 마음에 지옥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선잠이 들었다가 깰 때가 종종 있다. 그저께도 잠이 들었다가 깨는 바람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 아이폰에 담아 내 추억창고인 페이스북에 넣어두었던 교회 사진들을 꺼내어보았다. 교회 십자가 위와 정원의 소나무 위엔 파란하늘과 흰구름이 걸려있고 정원에선 하얀꽃 분홍꽃들이 피어있는 정경… 그 사진들을 보며 ‘아름답다 아름답다 이게 정녕 우리 교회란 말인가’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면서 올 봄에도 우리 교회에 펼쳐질 아름다운 정경들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아름다움과 추함, 좋음과 나쁨은 사실 상대적이다. 교회에서 나오는 소리도 어떤 이에게는 풍금소리로 들리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끄러운 꽹가리 소리가 되기도 한다. 교회가 어떤 이에게는 내 마음에 그리는 천국과도 같은 교회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골칫덩이 사람들의 집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예수님의 판단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판단이며, 인간은 자기의 판단이 곧 신앙적 판단이라고 착각한다.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을 곧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이라고 착각한 대표적인 무리들이 바로 예수님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이었다. 또 개념없는 군중들은 표적이 되었든지 지혜가 되었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주면 예수님이 자신들의 노래가 되었지만, 그러지 못했을 경우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할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를 개척한지 몇 년쯤 되는 어떤 목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 “목사님, 제가 이 교회 등록해서 목사님 도와드릴게요.”라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반갑지 않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경험상, 그런 사람은 대체로 목사를 도와주기 보다는 오히려 목사의 선생 노릇을 하려드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또한 자기의 생각과 판단이 예수님의 생각과 판단이 되어버린 사람은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은혜가 없는 교회, 은혜가 없는 목사’로 정죄해버린다. 역으로, 목사도 마찬가지다. 목사인 자기의 생각과 판단이 예수님의 생각과 판단이 되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따르지 않는 성도는 교회의 공적으로 여기게 된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서로 자기가 주체가 되고 예수님을 객체로 전락시킬 때, 더 이상 내 마음의 풍금도 없고 내 마음의 교회도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문제…, 사실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회건물이 크다 작다 혹은 성도가 많다 적다 이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주체이신 예수님을 객체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어느 교회 어느 목사를 비판하기 전에 내가 내 스스로를 생각해보면, 초창기엔 분명한 목표의식과 계획이 있는 것이 곧 믿음이 좋은 증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 아래 단기 중기 장기 목표를 세웠고, 그에 따라 1년 단위 2년 단위 4년 단위 계획들을 세워 살아왔고 그런 스케쥴표에 따라 교회도 세우고, 마음 속에 그리고 있던 일들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내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것이 있다. ‘주님이 주님의 목표를 위해 너를 사용하시는거니? 아니면 너의 목표를 위해 니가 주님을 이용하는거니?’ 이 질문을 두고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분명히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워놓고 부지런히 달리다보니 머리와 가슴에만 들어있던 것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게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도 이루게 되었고, 안 되는 일도 되게 되는 역사도 있었다. 그 와중에 든 생각이 ‘주님이 너를 사용하고 있는거냐, 니가 주님을 이용하고 있는거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님이 나를 사용하고 있는지, 내가 주님을 이용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지 하며 고민을 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내 방법대로 되지 않더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여전히 한결같이 주님이 나의 노래가 되고 교회가 내 마음의 교회이면 그것은 내가 주님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사용하신 것이 맞다는 것이다. 반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씩씩 거리고 속 터져하고 목회 하네 마네 교회 다니네 마네 죽네 사네 이러면 그 사람은 주님께 사용된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주님을 이용하려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념을 하던 중에 새삼 잠언 16장 9절 말씀이 떠오랐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리고 이 말씀을 의지하여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고, 그후 여전히 목표도 세우고 계획도 세우지만 내 뜻대로 되고 안 되고에 상관없이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내 노래이며 몸된 교회는 내 마음의 교회로 자리잡고 있다.

해마다 고난주간이 되면 분명이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어쩌고 저쩌고 한다. 그런데 진짜 십자가 신앙이 녹아있는 사람은 주님은 항상 내 노래이시며 몸된 교회는 항상 내 마음의 교회인 사람이다. 긴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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