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엘리엇과 나와 어떻게 상이 같을 수 있는가?

▲ 옥한흠 저, 국제제자훈련원, 2004-10-25, 290쪽, 10500원
“세상에서 상 받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오면 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짐 엘리엇은 스물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물여덟에 아우카 족 하나를 구하원하려다가 세상을 떠난 이 사람이 주님 앞에 가서 받을 상하고 제가 받을 상하고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저자의 글이 가슴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나의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말은, 그리고 머리에서 계속 머무는 생각은 “짐 엘리엇과 나와 어떻게 상이 같을 수 있는가?” “28살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에게 간 짐 엘리엇과 나와 어떻게 상이 같을 수 있는가?”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목회를 하고 있고, 누구를 바라보고 목회를 해 왔는가를 많이 생각했다.

다른 목회자들과의 비교에서는 초연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열심히 목회했지만 저자가 말하는 ‘십자가의 영성’을 늘 묵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다시 결심했다. ‘십자가의 영성’을 늘 묵상하면서, 오직 예수님의 고난을 바라보면서 목회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했다. 처음 목회의 길을 들어섰을 때의 그 순수함이 세월이 흐르니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사람과 다르게 늘 처음처럼 하자고 열심히 했지만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교역자 15년, 담임목사10년의 세월이 지나다 보니 많은 것이 무디어 지는 것 같다. 이런 나를 하나님이 깨우시기 위하여 이 책을 읽게 한 것 같다. ‘십자가의 영성’으로 깨끗하고 진실하게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목회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해 본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3권의 책중 한권을 읽어야 하는데 어떤 책을 읽어야 내 목회에 도움이 되는가 고민했다. 그래서 국제제자훈련원에 사역하는 후배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 목회 현장에 어떤 책임이 도움을 되는가 문의했다. 그 목사는 3권중에 이 책을 추천해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많은 도움이 됐다. 테이프도 있는 것을 알고 테이프도 사서 다 들었다. 책을 읽고 테이프를 들으니 더욱 감동이 왔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통하여 감동이 올수록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목사에게 마음으로 많은 감사를 했다. 그리고 저자에게도 많은 감사를 드렸다. 점점 무디어 가는 나의 영혼을 깨워주신것에 대하여...

물론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많은 결심을 했다. 새로운 목회를 해 보기로...

저는 세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많이 받아서 나중에 주님 앞에 가면 벌거숭이가 될 확률이 큽니다. 그렇다고 제가 제 위치를 다 포기해버리고 어디로 도망가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에게 있어서 큰 교회는 너무너무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저를 변질시키기에좋은, 너무나 좋지 않는 환경입니다. 때문에 저는 저보다도 앞서가는 사람, 저보다도 더 주님께 바짝 다가가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그분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고, 그분의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을 바로 세워가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는 나쁜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중에 주님 앞에 어떤 사람으로 서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자의 외침은 한국 교회를 향한 외침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교단을 갱신하고 교회를 갱신하는 쪽으로 흐름이 흘러가는 것 같더니, 점점 교역자들을 향한 외침으로 돌변했다. 점점 변해가고 타락해 가고 무디어 가는 한국 목회자들에게 대한 외침이요, 나에 대한 외침이다.

이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움 점이 있다면 저자는 그렇게 외치는데, 저자의 외침이 교갱협이나 제자훈련 세미나에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교갱협이 구성되고 임원진을 구성하고 그 외 조직이 발표된 것을 신문에서 접할 때 여기도 역시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많이 배제되고, 사이즈가 큰 교회 목회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때 역시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강사 역시 사이즈가 큰 교회 목회자들 중심으로 강의를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의 외침과 이것과는 다른 것인가? 아니면 외침은 외침이고 행사는 행사인가? 많은 혼란이 일어났다. 한국교회를 갱신하고 목회자를 갱신하자고 일어났는데 조직이  발표되고 강사들이 발표되는 것을 보면서 아픔을 갖거나, 역시 똑 같네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 또한 또 하나의 조직에 불과하지 않는가 반문해 보고 싶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주님이 일을 하실 때면, 지금까지 변함없이 선택하시는 전략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한 자. 작은 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교회를 원상회복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교회로 다시 재충전시키고 새롭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사용하시는 자들은 한결같이 작은 자요, 약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전략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잘못된 곳으로 끌고 가는 많은 지도자들이 보지 못하는 허를 찌르는 작전입니다.

중략

마귀는 아주 약하고 무력한 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신경도 안 쓰고 방치해둡니다. 그렇게 방치하고 벙어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약한 자를 사용하실 때 마귀가 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약한 자. 작은 자를 쓰시는 이유가 바로 마귀의 혀를 짜르기 위함이며 마지노 요새를 공격하는 작전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참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중략

또 하나 물어봅시다. ‘과연 우리는 작은 자를 주목합니까?, 우리 동료들 중에서 작은 자를 주목합니까?’ 하나님은 그런자를 주목하고 찾고 계시는데, 우리는 작은 자를 되외시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과연 저자의 외침은 이런데 저자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고 저자와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세로 일을 했는가 반문하고 싶다. 얼마전 어떤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목사들 과 한 방을 썼는데 그들은 교단도 다르고 개척교회 목사들인 것 같았다. 그러므로 필자가 사역하는 교회 성도수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불평했다. 그 목사들은 대형교회를 심하게 비판하고, 심지어 저자를 비판하고, 교갱협을 비판하는 것을 들었다. 상당히 충격이었다. 왜 이들에게는 이것이 이렇게 비취어 지는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 독후감을 공모하기에 한번 글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글을 쓴다. 교갱협에서 작은 자를 주목하기 위하여,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다른 조직 형태로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들이 비판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 책을 읽었기에 저자를 비판하는 그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주고, 교갱협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대형교회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대형교회를 원망하지 말고 개척교회에 사람들이 올수 있도록 차별화된 목회를 할 것을 권면했다. 나중에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 사이즈를 들은다음부터는 그들은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을 느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제자훈련 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저자를 존경하고, 교갱협도 사랑하고, 교갱협의 임원들도 사랑한다. 왜냐하면 필자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시작하는 10년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어느 시대나, 특히 선지자 시대를 보면, 상황이 위기에 치달을수록 거짓 종들은 평화를 외쳤습니다. 평화가 무엇입니까? 긍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모든 것을 좋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분명히 보아야 할 문제점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좋은 것만 자꾸 부각시켜서 확대하니까 사람들이 그걸 쳐다보고 자기는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 “너는 교갱협에 얼마나 참석했느냐?” “네가 알면 얼마나 아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들 보다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들이 더 잘 볼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필자는 교갱협을 반대하는 사람도 아니다. 성장위주의 한국교회 세미나에 많은 목회자들이 성장병에 걸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병을 고칠수 있는 해답을 얻었기 때문에 이 글을 썼다. 세상의 세미나들이 성장! 성장!으로 치달아 모두다 성장병에 걸려 있는 목회자들에게 어떤 목회가 바른 목회이고, 어떤 목회가 즐거운 목회이고, 어떤 목회가 건강한 목회인가를 가르쳐 주는 귀한 교갱협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하여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받고 도전을 받았다. 교갱협 영성수련회에 참석하고 싶을 정도로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필자의 목회에 새로운 이정표를 새웠다. 짐 엘리엇과 친구들의 고백이 다시 떠오른다.

“우리는 소모품이다.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우리는 소모품으로 부름받았으니 언제 죽어도 좋다.”

나는 이렇게 외쳐본다.

“나는 소모품이다. 내가 사역하는 이 지역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는 소모품으로 부름받았으니 언제 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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