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자는 변질되지 않는다

▲ 옥한흠 저, 국제제자훈련원, 2004-10-25, 290쪽, 10500원
시간이 지나가면 더 멋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갈 거라 믿었었다. 또 정식으로 신학교를 다니게 되면, 그래서 정식으로 신학을 배우게 되고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받게 되면, 내 안에 믿음이 더 정확한 기반 위에 서게 될 거라 믿었었다.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원했던 신학대학원까지 왔다. 한 학기 수업을 마쳤다. 지금 난 자랐는가? 어디쯤 와 있는가? 그리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변화보다는 변질된 나를 만났다.

전도사 사역을 시작한지 만 3년이다. 설교 사역은 올해로 5년차다. 일반대 출신이었고 얼마간 선교단체에서 훈련 받은 것 뿐 이었지만 대학교를 졸업한 후 장교로 군대에 근무하면서 군 교회의 빈 강단을 맡았었다. 한 주에 한두 번 밤을 세야 하는 일직근무를 서면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새벽시간에 말씀을 붙들고 씨름했었다. 그렇게 눈을 부비며 준비한 말씀을 들고 군 교회의 수요예배와 주일 저녁 예배를 인도할 때의 감동은 나로 나이게 했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누군가가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그렇게 좋아서 말씀을 전했던 시간이었다.

전역 후 어떤 목사님께서 교회 어린이 부서 전도사를 맡아 달라고 하셨다. 신대원에 입학도 하지 않았었고 정식으로 신학 수업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불러주셨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자를 불러주신 교회에 감사해서, 그 교회에서 지금껏 만 3년 동안 전도사 일을 하고 있다. 처음 어린이부 담당자였던 난, 어느덧 청년부와 중고등부를 담당하는 그리고 구역과 장년 오후 예배 설교의 절반을 담당하는 특이한 전도사가 됐다. 화려하거나 대단한 부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으나 사랑받고 사랑하는 그리고 섬기고 기뻐하는 그런 사역들을 했었다. 매 주일 밤, 젖은 종이처럼 지쳐서 죽은 듯 쓰러져 잠들어버리는 무거운 사역이었으나 내 속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있었다.

올해 초,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입학 통지서를 받은 순간 행복했다. 합격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식 목회자가 된다는 것, 자격 조건을 갖추고 라이 센스를 얻게 된다는 것 때문만은 분명 아니었다. 좀 더 고상한 이유 때문에 나는 그 합격 통지서를 보고 기뻐했었다. 그곳에 가면 내가 변화될 거라는 기대, 지금의 한계들을 뛰어넘을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 동안 홀로 고민했던 문제들, 성경 해석에 있어 여러 권의 책을 봤지만 아직 납득되지 않는 구절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통해서 원어에 접근하고 싶다는 열망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갖고 싶었다. 항상 홀로 있어야 했던 작은 교회의 유일한 교육전도사에게 가장 목말랐던 것은 자극이 되고 도전이 될 만한 멋진 동역자 그룹이었기 때문이었다. 갇혀 있는 나의 틀을 깨고 내 한계를 넓혀줄만한 동역자, 그래서 그들로 더불어 내 한계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신학대학원 한 학기, 각양각색의 동역자들 속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이제 원어의 읽는 법과 기초문법도 익혔고, 교수님들을 통해 어디에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도 받았고, 이전에는 생각도 해본적 없는 교리들, 삼위일체 교리나 기독론 교리가 뭔지도 배웠다. 너무도 오래 고대했던 것들이었기에 그 모든 것을 경험했던 한 학기 6개월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학기의 종료 후, 내게 남아 있는 것과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변화를 추구했다. 더 깊이 더 깊이 나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남겨진 나에게서 보이는 현재의 모습은 변화보다는 변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깊은 무기력증이 밀려왔었다.

이전 날 난, 다른 이와 나를 비교하지 않았었다. 하물며 나의 사역과 다른 이의 사역을 숫자로 비교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 학기 동안 수 없이 많은 비교들을 들으며 나의 열 명 뿐인 청년부와 열다섯 명의 중고등부, 이십여 명의 유초등부 유치부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맡고 있는 모든 부서 인원보다 자신의 한 부서 아이들이 더 많다는 이들의 목소리 앞에서 기가 죽었었다. 또 내 급여와 학비 지원에 기가 죽었었다. 연봉이 천만원이 넘는 전도사와 그렇지 않은 전도사, 학비를 지원 받는 전도사와 그렇지 못하는 전도사, 못나게도 나는 그런 비교 앞에서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기죽고 있었다. 어떤 큰 교회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NO!"라고 대답했다. 지금 내 양 무리와 시작한 한 해는 책임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렇게 단호한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목소리 뒤에 수많은 다른 목소리가 있었음을 나는 안다. 나는 위축되고 기가 죽었었다. 영혼에 대해 양들의 건강에 대해, 그들의 영적 성숙이라는 내 기준은 사라지고, ‘숫자’에 밀려 위축된 내가 있었다. “변화인가 변질인가?” 이건 분명 변질이다. 다른 이가 뭐라건 나는 변질되었다. 깨끗하지 못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서 자라기보다는 처음의 그 순수함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이미 저만큼 흘러가 있었다. 그렇게도 가기 싫어했던, 그렇게도 혐오했던, 그토록 비난했던, 그 자리에서 나는 냄새가 내 몸에도 났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에서 진정한 소명자는 숫자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글을 읽었다. 숫자가 아니다. 한 번도 예수님께서 숫자 때문에 뭐라 하신 적 없다. 수많은 서신서 가운데 교회와 사역자들의 책망의 이유가 숫자였던 적은 없었다. 열 명 남짓의 예배당에서 드려진 그 영혼의 소중함에 대한 글을 읽었다. 소명자는 ‘비밀한 소명’을 지닌 자다. 그 ‘비밀한 소명’을 지닌 자라야 이 시대의 잘못된 부흥관에서 자유 할 수 있으며, 거대한 수의 놀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다.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에서 고갈의 이유에 대해서 목마름에 대해서 성령을 구하지 못한 나의 삶을 보게 되었다. 교회 공동체의 침체의 원인에 대해 내가 힘이 없음을 인정케 되었다. 해산할 때가 되었는데 해산할 힘이 없어 아이를 낳지는 못하는 우리네 모습과 나의 모습을 봤다. 성령님을 구하지도, 찾지도, 두드리지도 못하고 있는 내 모습 어디에도 부흥에 대한 갈망을 찾을 수 없었다. 3년의 사역 속에서 보지 못한 부흥, 남은 날들에서도 기대하지 않는 나를 봤다. 청년들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소서!”

'표준을 낮게....' 시간은 무섭다. 처음 잡았던 그 기준,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과는 갈수록 멀어지는 우리 공동체와 학생들을 향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결국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영적 무기력증이었다. 나 스스로의 삶 역시, 비교 대상들 속에서 비교 우위였다. 글을 읽는 가운데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는 인생의 모습을 봤다. ‘보배 담은 질그릇’의 고통을 경험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걸어야할 푯대를 본다. 또 내가 그 푯대가 되어, 본이 되어 청년들과 아이들 앞에 서 걸어야 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내 이 부족한 질그릇에서 삐거덕거리는 비명이 터져 나오더라도 내가 걸어야할 길이 이 길밖에 없음에 다시금 걸으려 결단한다.

'십자가로 가까이'에서 변질과 변화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형교회 목사로서 경험한 변질에의 지독한 유혹과 그 유혹 앞에서 십자가의 영성을 회복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이 변질된 열정, 변질된 기대, 변질된 목회관... 단 6개월 만에 이렇게도 많이 변질된 내 생각 속에 어느덧 그 자리를 잃은 ‘십자가’를 봤다. 세상에서 너무 많이 받아서, 하나님 앞에서 벌거숭이가 될 것 같다는 저자의 체념어린 목소리 앞에서, 어느 것 하나 이뤄놓은 것 없음에도 지독하게 복음의 원색을 잃어버린 나를 만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라고 말씀하셨다. 그 ‘자기 십자가’는 그냥 막연한 고난이나 어려움, 또는 손해를 의미하는 비유가 아니었다. 그 당시 이천여 명이 한꺼번에 십자가에 달렸던 적이 있었던 정도로 십자가형은 보편적이었다. 제자들도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시내를 통과해 가는 죽음의 무리를 ‘실재로’ 봤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것은 전혀 비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제자들을 향해 ‘죽으라’라는 명확한 명령이었다. 피해갈 수도 돌아갈 무엇도 없는 외길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죽음의 길’이다. 결국 나의 생도 그 길을 주님처럼 걷다가 십자가에 달림으로 끝나야 한다.

밀알은 썩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제껏 나는 ‘썩는다’보다 ‘열매를 맺는다’를 주목해 왔었다. 내가 수고하면 그 수고의 결과로 엄청난 것을 받는 것이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오늘 생각건대, 썩어진 그래서 죽어진 밀알에 과연 자아가 있겠는가? 없다. 밀알에게 그 맺힌 열매가 어떤 이익도 되지 못한다. 죽고 썩어진 것, 그것으로 밀알의 역할은 끝났다. 그것이 끝임에도 불구하고 ‘썩어지는 밀알’이라야 뿌려진 종자로서 역할을 온전히 감당한 밀알인 것이다. 열매를 볼 수도, 그 열매의 유익을 얻을 수 없음에도 썩어진 밀알의 자리, 그 밀알의 자리가 바로 내 자리였다. 그것이 비밀한 소명을 가진 자의 자리였다.

'변질'을 '변화'로 받아들여, 흘러가는 대세 속에 몸을 맡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내 아이 때문에, 가계에 늘어가는 빚 때문에, 서른이 넘어 자리를 잡아가는 세상 친구들과의 비교 때문에, 쉽게 나와 같은 길에서 우위를 점하는 이들과의 비교 때문에... 하지만 나는 내가 거기로 부르심 받지 않았음을 안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으며, 소명자이기에 변질될 수 없음을 결단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탄식처럼 기도한다. “제 연약함 아시는 주님! 제 삶이 끝까지 당신을 좇는 인생이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그러다가 당신이 가신 그 십자가까지 가게 하소서. 그곳에 달려 당신처럼 온전히 죽어지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연약하오니, 주님 나로 거기까지 가게 도우소서! 붙잡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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