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갱신, 풀리지 않을 것같은 실타래 앞에선 그의 외침

▲ 옥한흠 저, 국제제자훈련원, 2004-10-25, 290쪽, 10500원
우연히 새로남교회를 방문하였다. 평소에 존경하던 목사님, 조기 은퇴하셔서 목회의 발자취를 아름답게 이끄신 옥한흠 목사님께서 설교 세미나를 하신다는 주보 광고를 보았다. 모든 기독교인이나, 목회자, 신문이나, 그리고 기독교 방송으로부터 모범적인 목회자상으로, 칭찬받으시는 분이어서, 설교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친구와 마음을 모았다. 지난 5월 30일 월요일 오전 10시에 옥 목사님의 설교 세미나를 듣기 위해, 아침부터 샤워를 하며,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새로남교회를 다시 방문하였다.

참으로 기대하는 마음과 설레임이 있었다. 줄을 서고, 등록을 마친 뒤, 안내하시는 분의 안내를 받아, 그 분이 주시는 중간 크기 만한 봉투를 받아 본당에 들어갔다. 참 아름답고 아담하게 느껴지는 교회였다. 봉투 안에는 세미나 스케줄과 교회를 알리는 소책자와 팜플렛이 있었고, 그 가운데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 독후감 공모전을 보고 책을 하나 선정하여 독후감을 내기로 결심하였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와!  도서상품권 많이 주네...”

그리하여, 3권의 선정 도서중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고, 나의 마음과 생각에는 웬지 모를 위로감을 줄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제일 와닿는 제목이었다. 목차를 열어 보니 몇몇 안되는 심플한 제목들이 단숨에라도 읽어 버릴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독자가 생각하기에 소명감이 흔들리고, 방황하며, 목회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좌절과 낙심에 빠져 있는 목회자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처음부터 꼼꼼히 줄을 그으면서 정독하다 보니 생각과는 다른 메세지인 것을 깨달았다.

첫 페이지 첫 줄을 읽어보니 교회 갱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였다. 거짓 종들이 평화를 외치고, 내 교회, 내 교단 중심주위에 빠져있는 현 세대에, 기독교가 생명력을 잃어버려,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절규를 느낄수 있었다. "하나님은 약한자를 들어 강한자를 누르고, 지혜 없는 자를 들어 지혜 있는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자 를 찾고 계실까 하며 반문해 본다. 할수 있다, 내가 한다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사람이 아닌, 내가 무엇을 할수 있겠느냐고 자신을 모든 것에서 내린자가 하나님께서 응시하고, 주목하는 사람이 아닐까... 

책의 내용 전체를 읽는중, 특별히 모르거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없었던것 같다. 다만 저자의 호소와 메세지 앞에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느껴져 동일한 아타까움을 느낀다. 독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자신없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는 점이다. 입술로는 주님만 바라 본다면서 매일의 삶속에서는 주님 보다 더 좋은 것들이 있다. TV에 나오는 중국 무협이 재미있고, 친구와 eye shopping 하는 것이 즐거워, 시간을 낭비하는 경향이 많은데,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은 너무도 적다. 조금 피곤하면, 핑계삼아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고, 이불 뒤집어 쓰고 잠만 쿨쿨자는...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또 한겨울게 혹한 눈보라와 싸워가며 기도하지 못하고, 따뜻한 방안에 앉아 기도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본다. 정말 주님 보시기에 내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독자는 영.유아를 위해 주님 앞에 헌신하고, 거의 15년 가까이 사역해 왔다. 주님 앞에서 이 분야에 개척자적 사명을 위한 부르심을 받았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도 있었다. 남이 잘 알아 주지 않는 사역이다. 해도 해도 표가 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역이다. 그야말로 어린 아기들과 유아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은 콩나물 시루에 물붙기와 같은 일들이다. 그래서 더욱더 책의 제목이 가슴에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평소 한국 교단에 영.유아 사역에 대한 페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 했으며, 나아가 한국 교회학교 교육의 페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 했었다. 우리나라 영.유아 교육의 현실은 어느 학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옛날 이스라엘 나라의 사사시대를 보는것 같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 21:25).

도대체 어린 영.유아들을 향한 이 시대의 하나님의 뜻은 무었일까? 그분의 교회학교 교육을 향한 의중과 의도는 무엇일까?  독자는 생각했다. 교회학교 교육을 하는 목회자와 교사들의 가치관이 변화되지 않으면, 한국 교단의 교회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 교회 갱신이 어디 비단 기성 교회에만 국한되겠는가?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소명자는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고" 지금 나의 사역의 현실을 바라보면 참으로 암담하다.  다음 세대를 짊어 지고갈, 순수하고 때묻지 않게 자라나는 영.유아들을 바라보면서, 너무도 열악한 환경 가운데 교육 받고 있는 그들에게 그나마 한가닥 소망을 잃지 않고 있다. 영어에 이런 표현이 있다. "Better than Nothing"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낫다라는 정도로 번역할수 있다. 연약한 내가 지금까지 아주 엎드러 지지 않고, 일어설수 있었던 것은, 작고 미흡 하지만 주님의 부르심과, 지치고 쓰러져 방황할때, 다가오시는 부드럽고, 따스한 주님의 잔잔한 음성이었다.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싸움 이었던것 같다.

또 하나 깨닫는 사실은 목회자의 인격에 대한 부분이다. “인격”이라는 단어는 정말 나를 힘들고 어렵게 한다. 온전하지 못한 자신을 바라 볼때면 당장에라도 주의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런 사실앞에서, 나같이 부족한 자를 불러 주시고 사용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드릴 때가 많았다.  필립스 브룩스라는 유명한 설교가의 설교 주제가 바로 “인격”이라는 내용이었고, 100년 넘도록 설교의 주제를 이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저자는 그 부분을 인용하면서 그만큼 목회자가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인격”이라는 면을 강조 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인격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그리고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가? 주님 앞에 부족한 인격의 변화를 위해 고쳐 달라고 몸부림 치지 못하는가? 순간적으로 깨달을 때만 자신을 변화 시켜달라고 기도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참된 주의 제자는 주님을 본받는 자이고, 주님을 사랑 한다면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라 여겨진다. 주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임을 고백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무엇일까? 여인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귀나 목에 십자가 형태의 귀거리를 대롱대롱 걸거나, 목에 메달고 다닌다. 이렇게 하면 십자가를 생각하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인가?  조금은 비약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바로 나를 죽이는 삶이고,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사는 삶일 것이다. 저자는 십자가가 빠지는 영성은 반드시 그 목회자를 변질 시킨다고 표현했는데,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교회의 개혁과 갱신이 일어난다 해도 십자가의 사랑이 없다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임을 공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반성하고,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것 같아서 무척이나 좋다. 아니 제대로 태도를 변화시켜야 겠다는 동기 부여가 되는것 같다. 잘못된 신앙체계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포멧(format)을 해야할 때 임을 실감한다. 이러한 회개와 돌이키는 운동이 개교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수만 있다면, 우리의 잘못된 신앙관 즉, 왜곡된 신앙의 본질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곪은것은 도려 내야한다. 곪은 것을 살이라고 그냥 내버려 둔다면 더 곪아 터질것이다. 아프지만 칼로 도려내야 하고, 짜내야 한다. 그래야 새 살이 돋아나서 아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롭게 고치시고 일하시는 이는 오직 성령하나님 그분 한분 뿐 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께서 비추셔야 우리의 죄 와 잘못된 부분을 알수가 있다. 또한 무엇을 해야할지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과 변화되는 운동이, 바다의 파도가 새롭게 파장되어 밀려오는 것같이, 더러운 찌꺼기는 쓰러져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주님은 새 시대에 쓰실 새 일꾼을 찾고 부르시는 것 같다. 그러한 부르심 앞에 우리 모두가 순종 하여야 함을 고백한다. 부디 내현실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고, 확장되기를 기대하며, 새롭게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Until, Jesus is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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