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차] 주 예수께 받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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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차] 주 예수께 받은 사명
  • 정평수 목사
  • 승인 2014.08.1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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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8) 교갱협 제19차 영성수련회 개회예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것이다

오늘 본문 24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까? 세상의 어떤 사람에게 사명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죠?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어떤 역사를 하시고 어떻게 역사하시길 원하시는지 알고 계시지요?

아프리카 우간다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우간다는 악명 높은 독재자 이디아민이 통치할 때였습니다. 우간다에서 제일 큰 교회에서 어느 목사님이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독재 정권을 비판하고 바른 길에 대한 설교를 자주 했습니다. 고난주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우간다 비밀 경찰관 5명이 찾아왔습니다. 교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들은 총을 겨누고 사무실로 들어와 반국가 사범을 처단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때 그 목사님은 5분의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 마지막 기도를 하고 목회 사역을 마치겠다고 얘기하며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간다 통치자 이디 아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 명령을 원치 않으면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이 다섯 사람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간다 국민들에게 자유를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내 조국에는 다시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온 성도들이 “주여! 주여!”하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비밀 경찰관 다섯 명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겨누었던 총을 내려놓고 유유히 나갔습니다. 이디 아민 독재자를 무너뜨리는데 한 명의 목사님이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다”(딤전 6:11,12)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일 뿐 아니라 부름 받은 사명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명자로 불렀다면 우리의 삶과 사역이 주님 앞에 잘했다고 칭찬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신앙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고 한다면 정체성을 가지고 바른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역을 마치고 주님 앞에 갔을 때에 마지막 고백은 그래도 “내가 믿음을 지켰다”라는 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을 보면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우리는 누구라고 하십니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앞에 사명을 받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첫째로 신앙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사역에 우리의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인본주의 신학이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편리주의, 적당주의 신앙과 신학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한국교회를 온통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저와 여러분들은 보수개혁주의 신학,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살고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말씀드립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우리의 사명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는 돌아보고 다시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면서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66권 성경말씀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믿고 살면서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1-24)

우리의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번 수련회 기간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옛사람을 버리고 새롭게 되어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새사람을 입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라고 이 자리에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대한민국을 바른길로 가게 한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경제가 나아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교육이 잘되면 국민들의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겠지, 문화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 달라지겠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너무나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를 무엇으로 구원하고, 새롭게 하고, 역사하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생명의 말씀, 능력이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만이 대한민국을 바른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행 2:37,38)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민족을 위하여 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를 잘 아실 것입니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스 병원에 폐수종으로 입원을 합니다. 한 달 동안 발악을 합니다.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고 절규합니다. 죽음의 공포와 불안 때문에 자신이 무슨 병인지 묻지를 못합니다. 그는 현대인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고 자유와 관련한 수필과 글을 남겼지만 그의 마지막은 실로 비참했습니다. 1980년 4월 16일 입원한지 한 달 만에 몹시 괴로워하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프랑스 신문에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에 대하여 한 독자가 이렇게 기고를 했습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비참했던 이유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신문 기사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 기자가 다음날 토막소식에 이렇게 기고합니다. “사르트르가 돌아갈 고향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돌아갈 고향을 찾지 못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나라를 돌아봅시다. 자유주의, 인본주의, 종교다원주의가 판을 치는 이러한 때에 교갱협 수련회 참석한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기도하고 다시 한 번 새로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사명 받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부터 19절에 보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당시 사도 바울의 사역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겸손으로 눈물로 어려운 시험을 참아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 사역이 간단치 않습니다. 힘이 듭니다. 젊은 목사님들 앞으로 사역의 힘든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에 수원에서 목회하시는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교육전도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교육전도사 사역을 마치고 나니 시무전도사가 되고 강도사 인허를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담임목사님께서 강단을 맡겨놓고 풀러신학교에 가셨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에 오시더니 “정 목사, 어떻게 할래?” “담임목사로 청빙 받아서 갈래? 수원에서 개척할래?”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개척 안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는 현재 피영민 목사님께서 사역하시는 서울 강남침례교회 맡은 편 강남구청 근처에서 개척을 시작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이 없습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방을 얻어서 같이 살아야 하는데 방을 얻을 돈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보증금 50만 원에 월 5만 원짜리 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권사님께서 오셔서 아이에게 100원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아내가 빼앗아 저녁에 콩나물 50원 어치를 사서 콩나물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 다음날 또 50원어치 콩나물을 사서 끓여 먹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기도하면서 3년 동안 몸부림을 치니 교인들이 120여 명이 모여들고 땅을 사자는 말도 나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문 쪽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수요예배를 드리는데 한 아이가 예배 중에 나오라고 손짓을 해서 나가보니 은일이라는 아이가 4층에서 지하 1층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병원으로 가보니 아이가 두 손을 모으더니 벌벌 떨면서 죽어갑니다. 3년 동안 고생해서 교인들 100여 명 모여 예배를 드릴만 한데 이게 무슨 시험인지 교회에서 아이가 떨어져 죽었다고 하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 아이를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 죽으면 안 됩니다. 살려주세요.” 그렇게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면 아이가 죽을까봐 끝내지도 못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평안이 오고 알 수 없는 힘이 생겼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눈을 떴는데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정상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다른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우리의 생명이시고 구원이신 주님, 오늘도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이 말씀을 외우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사역에 이루어지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와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에도 교인들 나오기 전에 먼저 나가서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일하시고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사역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좋은 일도 있게 하시고 힘든 상황을 감사의 상황으로 바뀌게 해주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좋은 것 주심에 감사하고 증거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역사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죽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님께 사명 받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날마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저는 로마서 7장을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람도 자기 자신이 죽어야 할 것이 많아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1-24) 사도 바울의 인간적인 자아가 자신의 발목을 붙듭니다. 그것을 내려놓기 위하여 부르짖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은 세 가지는 꼭 명심하여 경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첫째, 명예를 너무 추구하지 마라. 두 번째, 이성에 대해 항상 조심하라. 교인들과 경계를 두고 선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관계가 발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돈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돈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목사가 1년 중에 가장 예민할 때가 11월말 예산 세울 때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역할 때에 굶어죽도록 놔두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돈을 모으기 위하여 사역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목사로서 존경받고 아름다운 모습이 손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때는 교인들이 목사님 사례비를 올려준다고 해도 거부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 5장 15절 16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2장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 12:29-31)

하나님 사랑하고 대한민국 사랑하고 총회, 한국교회 사랑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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