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킬링필드’라는 영화를 보고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후 30여년의 세월이 지날 동안 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킬링필드였고, 내겐 육체적으로나 마음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였다. 즉 캄보디아는 내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던 나라였다. 그런 내가 그곳 현지 교회지도자들의 재교육을 위한 강사 목사로 다녀오다니! 역시 사람의 내일은 알 수 없는게야….

 

내 강의시간은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였기 때문에 강의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한 후 선교사님의 안내를 받아 프놈펜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 뚜어슬랭 박물관과 킬링필드를 방문하였다. 이 두 곳을 들러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인간의 잔인성이 빚어낸 참혹한 행위의 흔적들을 살펴보는 동안 내 속에서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들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역사의 현장에도 남아있는 비극들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자행되고 있는 살육(에 버금가는 잔인한 행위들)의 현장들이 오버랩되면서 겉으로는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나 속에는 비루한 욕망에 사로잡힌 이 세상의 엘리트 그룹과 권력가 그룹들에 대해 짙은 회의가 밀려들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이 세상의 종교인들과 지식인들과 권력가들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비록 어설픈 목사요 사회복지사요 음악치료사로서 교회와 사회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활동하고 있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 강의 주제는 [교회와 지역사회]였는데, 첫 시간에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함께 연주하고 함께 찬양을 하는 가운데 나는 그들이 섬기는 교회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돌리는 교회, 오직 믿음(Sola Fide)을 지키는 교회,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충실한 교회, 오직 은혜(Sola Gratia) 안에 머무르는 교회가 되게 하라고 했다. 둘째 시간에는 이 종교개혁 정신의 토대 위에 서서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고 성도들을 위하고 캄보디아를 위하는 교회가 되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지 교회지도자님들께 캄보디아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시라고 했다.

내가 볼 때, 현지 교회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안겨 준 (감당하기 어려운)비극의 고통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이 캄보디아 국민들의 영적 아버지와 영적 어머니의 품이 되어줄 수 있으려면, 그들부터 영적 혹은 심리적 혹은 육체적으로 품어지는 경험을 통해 치유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유받은 사람이 남도 치유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믿거나 말거나…, 자기의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사람이 지식을 얻고 권력을 얻고 부를 얻으면 그 지식과 권력과 부로 남을 아프게 한다. 세상 지도자도, 종교 지도자도! 종교, 사상, 지식…, 이것들이 근본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인류의 평화와 공생공존이 아니겠는가?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다 이를 주장하고 이의 실현을 말한다. 그러나 이를 주장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잉간들 자신이 내면에 상처로 인한 분노가 이글이글 거리며 타오르고 있으면 사랑을 말하면서 미웃 짓 골라하고,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일으키고, 생명을 말하면서 죽이는 짓거리를 서슴치 않고, 악의 축출을 말하면서 그 보다 더한 악을 행하는 것이다.

나는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돌아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잔인성의 범위를 넘는 모습을 본 것에 대한 쇼크가 왔다. 함께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데 쓰여져 왔던 농기구가 무시무시한 살육의 도구가 되고, 어린 영유아들을 엄마가 보는 앞에서 나무에…, 나무에… 아이 참~, 아이 참~... 도저히 못 쓰겠네…. 다시 또 눈물이 흐른다. 어쩌면 그 쇼크가 오래 갈지도…. 그런데, 인간 잔인성의 극치를 보여준 잉간들이 어디 캄보디아의 크메루 루즈 뿐이었나? 여기에 기독교도 자유롭지 못하고,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는게지. 지금도 총칼로 죽이지 않는다 뿐이지 인격살인을 자행하고 있는 종교인과 지식인과 권력인들이 한 둘이 아니지….

어허~, 이거 이거 돌 맞을 소리 하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김 목사, 너도 겉으로는 고상한 일 하는 척하며 마음 속에는 아직도 분노가 이글이글 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잉간 아닌겨?” 이런 소리 들을 만한 소리하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각설하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돌아보고 현지 교회지도자들과 귀한 만남을 가지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오페라 리날도는 권력가(?)의 횡포에 어만 여자만 희생을 당하여 울게 만든다. 다행히 그녀 알미레나의 눈물은 헛되지 않았다. 연인 리날도는 적 아르간테를 물리치고 알미레나와 결혼을 하여 행복하게 산다.

목회적 사회복지적 심리치료적 관점에서 생각할 때, 캄보디아 국민들..., 특히 캄보디아 현지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m) 품에 기대어 충분히 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캄보디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한국교회나 선교단체는 숫자 놀음 선교보고에 연연하지 말고 선교사들로 하여금 캄보디아 사람들이 기대어 울만한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m)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지 교회지도자들이 충분히 울고 나면, 분명 그들은 동족들을 품을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캄보디아는 비극의 아픔을 이겨내고 스스로 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논리가 어디 캄보디아에만 적용이 되랴! 그냥 내 생각이다 머~.

뱀발.

부끄럽지만..., 나는 솔직히 선교사로 헌신하지 못한 이유가 낮선 이국 땅에서 산다는 것이 무서워서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선교라는 미명 하에, 최근 중국 1차례, 필리핀 1차례, 캄보디아 1차례 방문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먹고 살만한 목사의 낭만적인, 그러나 교활하게 교만한 목회경력 쌓기 수단이 아닌가 생각하며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맨바닥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살아남은 저는 솔직히 수천 수만 명의 성도가 있는 교회 목사들 보다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열악한 선교현장에서 열정을 불사르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을 훨씬 존경합니다.

선교사님 중에 이 칼럼을 읽으실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선교사님들을 존경합니다. 또, 응원합니다. 빠샤~! 허허허...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