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중서울노회 경동시찰 소속 교회들의 목회자 부부와 장로 부부들이 1박 2일 일정으로 설악산 늦가을 나들이를 갔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가 보았다. 전설에 의하면 권금성은 옛날에 권 씨와 김 씨 두 장수가 난(亂)으로부터 가족들을 산으로 피신시키고 적들과 싸우기 위해 하룻밤 만에 성을 쌓았다고 하여 권금성이라고 한단다.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의 침략 때는 백성들의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권금성 꼭대기의 봉화대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장쾌한 백두대간과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기분 나이수~. 그리고 또 하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이 있었으니, 바로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푸르름을 자랑하며 꼿꼿이 서있는 쌍둥이 소나무였다. 온통 바위 뿐인지라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데 소나무가 소나무됨을 자랑하면서 서 있다니…, 감동이었다.

 

이날 난 권금성에서 두 가지 상념에 잠겼었다. 첫째, 권금성을 쌓았다는 권 씨와 김 씨 성을 가진 두 장수…. 역사를 보면 평소에 큰 소리 뻥뻥치던 뻥쟁이들이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밤 사이에 도망가거나 어만 사람 앞장 세워 희생시키는 잉간들이 많았고, 또 지들이 숨어서 벌벌 떨고 있을 때 목숨 걸고 싸워 위기를 이겨낸 사람을 생트집 잡아다가 벌 주는 잉간들도 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엘리트들은 이기적이고, 권력가들은 탐욕쟁이인 면이 많다...고 하면... 안 될 테고... 뭐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에혀~, 새가슴하고는….

전설 속의 권금성을 쌓은 권 씨와 김 씨라는 두 장수…, 하룻방에 그 성을 다 쌓았다는 것은 다분히 뻥인 것 같지만 두 사람 힘만으로 쌓았든지 두 사람이 리더쉽을 발휘해서 사람들과 함께 쌓았든지 쌓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으니까. 설마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쌓았다고 우기는 믿음(?) 좋은 사람은 없겠지. 허허허...

분명 그 두 장수는 적들로부터 가족을 지켜내고 이웃을 지켜내고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땀을 쏟았을 것이며, 죽을 고비도 넘겼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업적 내세우지 않고 남의 업적 가로채지 않고 무명으로 살다가 돌아가신 모양이다. 참으로 귀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특히 이런 신앙인들이 많아져야 할 터.

아~, 저 바위산에서 당당히 푸르름을 자랑하며 서 있는 저 쌍둥이 소나무! 난 그 모습에 진짜 감동 먹었더랬다. 난 교회를 세울 준비를 하면서 사군자를 닮은 교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소나무를 내 목회 인생의, 그리고 우리 교회의 아이콘으로 삼았다. 그래서 교회 정원에 소나무를 심었고, 그 소나무가 시름시름 앓는 것 같았을 때는 내 마음도 참 아팠고, 그 소나무가 다시 푸르러지기 시작할 땐 내 마음도 한없이 기뻐지며 푸르러지는 것 같았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권금성 바위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고 모진 삭풍을 이겨내며 푸르게 푸르게 자란 저 쌍둥이 소나무, 그 끈질긴 생명령과 푸르름을 감탄하면서 사람의 인생이, 신앙인의 인생이, 목회자의 인생이 그러하여야 하거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소나무가 너무 좋아서 일부러 옆에 서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무성한 소나무 잎의 초록색, 나의 흰머리와 정열이 물씬 묻어나는 빨간 쟈켓이 누런색 바위랑 썩 잘 어울리는 것 같다(음~, 또 발동이 시작되는군. 허허허...). 그런데, 잘 어울리기만 하면 뭐하노~. 머리도 다 세버렸고, 힘도 점점 빠져가고. 용기와 기상도 점점 사리며 사는 것을.

끈질긴 생명력과 한결같은 푸르름…, 내겐 너무나 매력적인 것들이다.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내 생명 끝날 때까지 울퉁불퉁 험한 바위산과 같은 삶의 환경 속에서도 생명의 열정을 불사르면서 푸르른 믿음의 기상을 지키고 삶 속에서 구현시켜가는 것, 이게 어제의 내 삶의 과제이기도 했고 오늘은 물론 내일의 과제이기도 하다.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맡겨진 상하고 아픈 사람들, 감당하기 힘든 삶의 고난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노숙인들, 그리고 어르신들…, 내가 그들을 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그들이 뿜어내는 아픔을 가슴으로 동감(sympathy)하고 공감(empathy)한 후에 그들을 담아주고 품어주는 열정(passion)을 불사를 수 있으려면 내 안에 우리 주님을 믿는데서 오는 생명력과 푸르고 푸른 사명감이 항상 불 일 듯이 일어야 할 터.

어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뿐이랴? 우리 성도님들도,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끈질긴 생명의 열정과 늘 푸르름의 열정을 불태우며 살기를 소망하며 노력하며 살리라. 또 그 와중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에 나처럼 속상해하며 낙심하며 괴로워하기도 할 터. 사람은 다 그렇게 도진 개진인 것을.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다. 그래 그래, 권금성 바위틈의 소나무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것을 넘어 우리 주님을 바라보아야지. 이 깊은 밤 우리 주님을 생각하니 내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주님께 감사!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