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민과 아픔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내가 원하던 생각, 시간, 계획, 방법, 일, 사람, 환경이 아닌 현실에 처하게 될 때 오는 아픔을 누구나가 가지고 있다. 마음속에 담아놓은 그림과 실제 그려지고 있는 그림이 너무나 차이가 날 때이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설레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많은 준비를 하고 떠났는데 실제 막상 그곳에 도착하고 보니 실망이 너무나 큰 경우를 여행을 해보면서 당할 때가 많다. 그러나 내가 환경이나 시간이나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주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나는 주님께 붙잡힌 바 되어 오늘 여기까지 왔노라고 신앙고백하게 될 때 모든 어려움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마침내 로마에 오게 되었고 오자마자 한 일이 무엇이지를 잠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울이 로마에 오게 된 것은 자유로운 전도인으로서 온 것이 아니라 쇠사슬에 매인 바 되어 왔으며,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있는 몸이었다.(행28:16) 사도 바울은 아무 잘못한 것 없이 유대인들로부터 고소를 당하여 로마에 재판을 받기 위하여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의 부당한 박해가 자기로 하여금 로마에 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 들어온 지 사흘 만에 그곳의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했다.(행28:23)

바울은 복음전파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가 감옥에 있을 때조차도 그 목표는 계속 유지되었다. 무엇을 통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가? 먼저,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특혜이다. 그 당시 관례를 보면 친위대에 인도되면 병영 내에서 머무르게 된다. 양팔에 호송하는 군사 두 명이 팔과 팔로 연결된 수갑을 차고 이렇게 감시를 한다. 이제 이것이 재판 받을 때까지 계속되는데 바울이 초기 얼마 동안만 이렇게 묶여 있었던 것 같고 바로 그의 사상이 검증되면서 자유롭게 거할 수 있는 집을 얻어서 셋집에서 가택연금 상태라고 하는 큰 자유를 얻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사도바울은 타의에 의해 로마에 가게 되었다. 먼저 하나님은 그를 택하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사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도바울에게 사명을 주시어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고 또한 사도바울의 마음에 로마사람들을 위한 빚진 자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때가 되니까 하나님은 주위의 환경을 통하여서 사도바울을 로마로 가게 하심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섭리는 사도바울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도 똑같이 역사 하신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고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가야할 로마는 어디인가? 예루살렘은 나의 가정이며, 온 유대는 여러분들의 친척이며, 사마리아는 우리의 이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땅 끝은 아직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들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가족과 친척과 이웃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지만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교회를 통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시기를 원하신다.(행1:8) 이일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의 남은여생, 여러분이 해야 할 분명한 목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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