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제안에 따라 해안길로 접어들었다.
푸른바다
이정표에 이렇게 적힌 길목으로 차를 몰았다.
20년 가까이 다녔지만 그냥 이정표만 보고서 지났다.

좁다란길
다닥다닥붙은 천수답들이 길을 감고
차도 식구들도 길과 함께 감겼다가는 풀린다.
어지럽다

앙상한 동해
아낙들은 철지난 미역을 딴다.
동네사람이라고 철지난 걸 못파겠단다.
딴동네사람들은 철지난 미역국을 먹겠구나

높다란 전망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동해가 저만치 멀어져 있다.
도회지사람들이 차를 세워다 놓고는 바다의 평수를 재고 있다.

해맞이공원이라고 꾸며 놓았다.
해는 해맞이명소에서만 뜨지 않으리라
반도의 산하
그 모두가 뜨거운 해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열망의 땅이 아니더냐

꾸덕지를 씹으며
강구간다.

*필자의 졸시 2004.

고향가는 길은 곧 강구가는 길이다. 언제부터인가 고향가는 길에 강구를 들렀다 가는 게 코스가 되었다. 어릴 적 모친은 차멀미가 심각하셨다. 지금도 그렇다. 차를 타면 이내 멀리를 하신다. 그래서 모친만의 비법이 꾸덕지다. 모친이 가방에서 꾸덕지를 꺼낸다는 것은 멀미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유년시절 시골에서는 먹을 거리가 마땅찮았다. 호박씨를 까먹고,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메주의 콩을 파먹고...거야말로 닥치는대로 먹었다. 감자나, 고구마는 굉장히 격을 갖춘 간식이었다. 겨우내 노가리를 까고 나면 비릿한 고가리껍질에 붙은 살도 포기할 수 없는 간식이었다. 봄이면 ‘송구’와 ‘뽕구’를 먹고, 뱀딸기에, 산딸기, 진달래꽃에서 감꽃까지...꾸덕지도 그렇게 간식축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유년시절 보아온 모친의 모습 때문에 꾸덕지를 먹을 때마다 모친생각이 난다. 딱 한번 정말 좋은 차에 모친을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작에 꾸떡지를 사와도 먹을 사람이 없다. 생꾸덕지를 시골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아무도 손이 가는 사람이 없어 필자의 전용반찬이 되고 만다. 꾸덕지를 먹는 것은 필자가 살아온 삶을 복기하듯 아주 인내하며 이놈을 입속에서 천천히 녹여 먹어야 한다. 성질급하게 먹으면 잇몸에 찔리고, 이빨에도 끼인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입속에 넣고는 이 놈이 동해바다처럼 누울 때 서서히 녹여 먹는 것이다.

강구 한번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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