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C 교계전망대

오프닝 :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FEBC 교계전망대를 진행하고 있는 드림의교회 이상화 목사입니다. 2014년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 상황에서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번 주 초반에는 한국교회가 과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현상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진지하게 살펴본 전국수련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주최한 제16회 전국수련회였습니다. 이 수련회에서 진보와 보수에 속한 15개 교단의 목회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강의와 워크숍을 통해서 개진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FEBC 교계전망대에서는 2014년 절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과연 어떤 한계점에 와 있는 가를 짚어보고 그 한계점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은 없는 가를 모색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한계점에 선 한국교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두 주간 진행하고자 합니다. 오늘 두 분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한목협 상임총무이시면서 부산 시온성교회의 담임목사이신 이성구 목사님과 한목협 신학위원장이시면서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이신 지형은 목사님이십니다.

▲ (좌로부터) '교계전망대' 출연해 대담을 나눈 한목협 상임총무 이성구 목사(시온성교회), 한목협 신학위원장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사회자 이상화 목사(드림의교회)

사회자 :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제가 좀 무겁기도 하고 시니컬하기도 한데 이렇게 주제를 정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성구 : 이 주제를 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연 이렇게까지 말해야 되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함께 동의를 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 상황은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이 모든 영역에 있어서 치부를 많이 노출해서 어디서부터 수습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개교회는 물론이고 연합운동도 전부 무너진 상황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보는 눈은 형편없이 한국교회를 내려보고 있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고 교회 성장도 완전히 멈춘 상태 아니 오히려 쇠퇴하고 있다고 합니다. 구라파에 나타났던 교회 노쇠 현상이 벌써 한국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한계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사회자 : 이런 자기 인식과 자기 반성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형은 : 한목협 전국수련회에서 제가 기조강연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 “한계점에 선 한국교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나름대로 묵상을 했습니다. 기조강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도 한계점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참 생각을 하다가 한계점에 선 분야가 저 나름대로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3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한국교회 한 지붕 씌우기를 계속 주장해 왔는데 연합기관 문제의 한계점, 또 하나는 한국교회 각 교단의 총회장, 부총회장을 포함한 임원 선거의 난맥상, 돈봉투와 권력 헤게모니, 이것은 거의 한계점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교회의 중직이라고 하는 장로와 권사, 안수집사 등이 성도들 사이에 벼슬이나 계급처럼 인식되는 상황,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상당히 힘든 상황에 부딪힌 그야말로 한계점에 온 교회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 가지 점에서 한계점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수련회를 진행하면서 한목협에서 한계점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이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때문에 논의도 깊게 진행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자 : 기조발제를 지형은 목사님께서 담당해 주셨는데 한국교회의 지도력에서부터 성도들의 권력지향의 모습을 보이는 한계상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부분도 있겠지만 교회가 힘을 발휘하는데도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고 봐도 좋을까요?

이성구 :  그날 박종순 목사님이 오셔서 개회예배 설교를 해주셨는데 너무 잘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사회 자체가 위험 사회가 된 것 같고 교회도 그런 영역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적나라하게 한국사회가 무법천지가 되어가는 상황 속에 한국교회도 거의 그렇게 닮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흑백논리로 가득차서 자기만 옳고 남을 부정하는 형태를 보이고, 큰 것은 선이고 작은 것은 악이고 혹은 작은 것은 선이고 큰 것은 악이라는 식의 접근 방법, 의식 구조 자체가 한계상황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사회자 : 우리가 지금까지 위기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지형은 목사님은 위기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형은 : 저는 이번에 기조발제를 준비하면서 '위기'라는 말을 많이 써왔는데 한계점, 이 단어를 생각하는 순간 제 생각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위기는 흔히 말하는대로 위험하지만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계점'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끄트머리이지요. 오늘날 한국사회,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한계점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가요? 그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상황 속에서 이런 저런 글을 쓰면서 총체적 위기라는 표현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위기라는 단어를 쓴게 벌써 옛날이 되었습니다. 위험사회를 넘어서 재앙사회가 아닌가 박종순 목사님도 표현하셨는데 '한계점'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우리가 우리를 성찰하고 자성하는데 적절한 모티브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자 : 그렇다면 한계점에 서 있다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함께 인식을 하고 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한국교회가 어떤 한계점에 서있는지를 논의하기 원합니다.

이성구 : 그날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은 지엽적인 문제로 인해서 한계점에 온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적인 문제를 따지고 하지만 그것이 한국교회를 한계점으로 몰고 갔겠는가? 그것보다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한국교회가 복음을 이해하거나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한 반성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본질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봐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지형은 : 신학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듣게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얘기하는 것을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근데 기독교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명제는 행동이나 윤리 이것보다 언제나 존재가 앞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보다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앞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가? 중생했는가? 거듭났는가? 칭의의 사건이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저 자신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과 매일 만나고 동행하는 이 자리가 근본적으로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때에 이성구 목사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이런 저런 지엽적인 문제, 중대한 문제라 할지라도 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근본으로 들어가서 과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아주 무서운 반성이라고 할까, 치열한 내면의 성찰 가운데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면 행동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화 : 행동이 존재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고 존재 자체가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이성구 : 제가 볼 때 1970년대부터 벌써 번영신학 문제가 나오고 교회도 기업이라는 말을 가감없이 사용하는 영향을 미국으로부터 받았는데, 결국은 지금 본질적인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에 이른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세습하는 문제가 나오면서 세습이라는 단어 자체가 얼마나 불쾌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곡해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습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힘이 있다는 것인데 돈이나 권력이나 뭔가 힘이 있으니까 세습을 한다는 건데 교회를 어떻게 보았길래 이런 단어를 적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무슨 힘쓰는 기관으로 본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라는 곳은 그야말로 자기를 비우는 곳이고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따르는 교회가 어떻게 힘의 논리를 따르는 집단이 되었는지? 이것이 한국교회의 엄청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교회에 대한 이해, 목회자들의 생각, 심지어는 교인들도 그런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데 교회가 어쨌든 규모적으로 크지 않으면 무능하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좌우지간 힘을 갖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식의 논리가 교회의 신학을 밀어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형은 : 세습이라는 단어를 이성구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교회를 어떻게 보기에 세습하는가 입니다. 힘의 승계, 혈통적인 승계를 하는가? 대단히 기분이 나쁘지만 수식어를 붙인다면 ‘기분 나쁜 현실’입니다. 저도 역시 기분이 많이 나쁩니다만 어쨌든 우리의 현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현실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보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는 난감함과 당혹스러움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 안에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 성령충만하면 다 된다고 합니다. 저는 표현 자체는 100% 공감합니다. 정말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다 되는 거지요. 그런데 성령충만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성령충만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거기에서 편차들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뭔가 근원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증요법입니다. 증상이 있으니까 증상으로 대응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현상 치료가 아니라 뭔가 뿌리부터 다시 바로잡는 근원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명백하다고 봅니다.

사회자 : 결국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근본 신학이 어떻게 정립되어 있느냐는 문제인데 그렇다면 신학의 문제를 잠깐 이야기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총체적으로 우리의 신학의 문제는 없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형은 : 이성구 목사님이 신학교 교수로 오랫동안 사역하셨고 학교에서 한국교회의 갱신을 줄기차게 올곧게 외치시다가 결국은 나오시게 되셨는데 이 목사님의 신학적인 문제를 먼저 들으면 좋겠습니다.

이성구 : 먼저 한목협이 발족한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998년도에 시작되었는데 그때 마침 몇몇 교단에서 갱신 그룹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한목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외쳐 왔는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16년 전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상황은 더 악해졌습니다. 그때는 연합기구가 두 개 였는데 이제는 세 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게 결국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 목회자들이 경건해야 하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복음에 대한 이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계점에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강사로 오셨던 박종순 목사님께서 한계점은 곧 출발점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 말씀에 힘을 얻고 감사드립니다.  다시 처음부터 해보자는 면에서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콘크리트 같은 것으로 덮어 씌워져서 속에 뭐가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지형은 : 그래서 말씀하신 신학적인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성구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1970년대부터 이미 번영신학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제 기억이 맞다면 1974년에 출간된 책이 있는데 국무총리를 지내셨던 한완상 박사님의 저서인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였습니다. 기독교의 이런저런 좌우의 스탠스에서 좌 쪽에 서 계신 분이신데 어쨌든 1970년대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전도집회, 엑스플로, 민족복음화 대성회 같은 대형 집회가 많았습니다.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200만까지 모이면서 한국교회 전체의 강력한 영적 파워가 분출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발제에서 제기했던 것은 사실 몇 달 전 한목협의 열린대화마당에서 제기했던 것이기도 한데 지금의 한국교회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1970년대에 모였던 그 열정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가설인데 그 대회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헌신했던 그분들이 선교사와 목회자로 헌신했고 그런 분들이 지금 한 30~40여 년 동안 계속 한국에서 활동을 해왔고 리더가 되고 했습니다. 1970년대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그분들이 중간에 어디 가셔서 공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가설이 이렇게 됩니다. 1970년대에 그 뜨거웠던 신앙과 신학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1970년대에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신학의 근저에는 번영신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설이니까 교회의 리더들이 설교하신 메시지와 저서를 학자들이 연구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은 1970년대의 신앙과 신학이 그 당시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하나님의 메시지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시대는 바뀌잖아요. 복음은 바뀌지 않지만 복음이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늘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하는데 한국교회가 그 작업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구 : 저는 1970년대가 참 묘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1975년 아니면 1976년인데 제가 서울에서 시내버스 안에서 전면광고로 교회도 기업이다 라는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말을 따서 광고한 것이었는데 그런 표제로 광고가 나왔었어요. 그러니까 1970년대를 이끌어 갔던 신학적 기조가 뭐였는가 하면 물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전도집회가 방점을 찍었는데 그 전도라는 게 영혼을 살리는 것에 대한 관심이었는지요. 그 여의도 광장에 저도 일주일 동안 있었습니다. 그때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보고 교회를 이렇게 지을 수도 있는가 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많은 목회자들이 대형교회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에 대한 강조를 많이 했지만 현상적으로는 대형교회로 나타났습니다. 1970년대 말에 신학교를 다녔던 우리 세대는 모두가 예외없이 조용기 목사님처럼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부흥이라는 것이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가지 않았는가 반성해 봅니다. 

지형은 : 작년에 어느 목사님께서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 중에 한 교회를 은퇴하셨는데 그분하고 작년에 대화를 나눴던 일이 있습니다. 한국의 제일 큰 교회 목사님들이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분은 진짜 존경을 가장 많이 받는 분이실 것입니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 때는 나까지 포함해서 사실 다 똑같았다. 큰 교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그분을 생각하면 대형교회를 추구하신 분이 아니고 워낙 메시지가 좋으시니까 사람들이 모였다고 인식되는 분인데 그분이 그런 솔직한 말씀을 하셨어요. 지 목사를 비롯한 세대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국교회가 살 것이라고 하셔서 저희도 이미 늦었다고 말씀드렸어요. 지금의 40대 초반 이전의 연령대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저도 이 목사님의 말씀에 근본적으로 동의하는게 한국교회가 대형화되고 교회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번영신학인데 기독교 역사가 언제나 타락할 때는 번영신학 쪽으로 갔고 그때마다 강조한 것이 십자가의  신학이었습니다. 루터의 95개 조항 거기에서는 맨 마지막에 결론내리는 것이 십자가의 신학이고 독일교회들이 다 히틀러에게 동조할 때 그것에 대항했던 칼 바르트의 신학선언을 보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기준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인식을 신학교 교육의 현장과  일반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다시금 어떻게 신앙의식화 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 문제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회자 : 이성구 목사님은 신학교에 계셨으니까 다음 세대들을 많이 키워내시면서 이 십자가의 신학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어떻게 하셨는지요?

이성구 :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선은 실체적으로 '십자가'라는 것이 희생과 사랑이 복합되어 있는 건데 희생을 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학생도 그렇고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들이 하는 말이 교회에서 헌신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게 지금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거든요? 십자가는 사라졌습니다. 오직 편안함, 영광, 누림, 이것만이 주 기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질의 문제라는게 절대 틀린 말이 아니고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오늘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현상적인 문제 인식은 한계점에 다다랐고 근원으로 돌아가서 회복되지 않으면 안되는데 십자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다음주에도 이 주제로 계속 이어질 텐데 마지막으로 짧게 한 말씀씩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형은 : 어쨌든 한국교회의 현 인식은 근본부터 다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종교개혁이 있었던 1500년대 초에 많이 얘기되었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그런 인식이 좀 더 철저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저부터 자신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필요합니다.

이성구 : 한목협은 교회 갱신을 간절히 바라는 그룹들이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이라고 하는 정결한 분이 계셔서 가능하기도 했지만 그게 모든 목회자들이 가지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쁘게 사역하다 보면 어디로 가는지 잊어버리기 쉬운데 하나님이 한목협에서 이런 과제를 생각하게 하고 도전하게 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목회자들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버리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이번주에 문제 인식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한국교회가 한계점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마음아프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자기 인식을 할 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해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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