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 케어가 없는 것은 선교사를 방치하거나 거의 유기하는 것이다

나는 20년의 지역교회 목회 은퇴 후 최근 2년간 거주 리서치와 아프리카 초기 문화 적응을 위해 머물던 탄자니아를 떠나 옆 나라 케냐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내 선교 소명의 비전인 빈민사역을 준비해서 실천할 예정이다. 아프리카로 나오기 전에도 거의 매년 빠뜨리지 않고 15년 동안의 선교지 탐방을 통해 선교의 경험을 쌓고 안목을 넓히며 선교지와 선교사에 대한 이해를 충실히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현지에서 2년 동안 살았던 경험은 선교사와 선교지를 직접 체험하며 아주 많은 것을 깨닫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가장 크게 느끼고 도전 받았던 것은 선교사의 발굴, 소명, 훈련, 파송 등의 과정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론 파송한 선교사에 대한 멤버 케어가 전무한 한국 선교단체와 파송교회의 현실이다. 이 두 가지 사항은 결코 사소하거나 가볍지 않은 중대하고 근본적인 선교의 장애와 문제가 되고 있다. 선교를 위해 성도들의 피땀으로 드려진 헌금과 기도의 눈물이 결코 낭비되어서는 안 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점이 마음 아팠다. 그 현실과 개선책에 대해 고민한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 케냐 중북부 오지에서 원주민과 함께. © 박정식 목사

1. 선교사의 발굴과 파송

선교사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발굴되고 파송 받는다. 그러나 그 첫 출발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뿐 아니라 교회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부르심을 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사명이라고 한다. 첫 출발이 정확하게 확인되고 검증되지 않으면 그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없다. 선교지에 와서 보니 과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선교사의 소명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떠밀려 나왔거나 어쩔 수 없이 나온 사람들 또는 도피성으로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단 선교부나 전문 선교단체에서 소명을 확실하게 점검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면의 개인적인 소명을 비록 수치화하거나 과학적으로 실험할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이상으로 뚜렷하다. 완전하지 못해도 얼마든지 검증할 수 있다. 제발 함부로 선교사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선교사 소명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선교지에서 결코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타문화권 선교에 따른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선교사 소명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선교사 노릇하는 경우이다. 아무리 선교가 중요하고, 선교가 흔하게 통용되는 요즘이라 해도 선교사 파송까지 아무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선교사 소명에 대한 검증과 확증이 바르게 되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뿐 아니라 제대로 그리고 철저히 훈련시켜서 파송했으면 좋겠다. 젊은 선교사들이나 평신도(전문인) 선교사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선교사와 선교지, 선교사역에 대한 전문성이나 통합적인 안목이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교사 파송 한 기간(term)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선교 사역의 비전과 전략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때그때 임기웅변 아니면 주먹구구식으로 하니 사역의 효율성도 없고 객관적인 평가도 불가능하다. 사역에 대한 큰 그림이나 목적과 목표의 설정도 불가능하다. 결국 본국에서 방문자나 단기 팀이 오면 즉흥적으로 보여줄 내용이나, 선교후원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인 방식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선교의 본질인 복음전파를 통한 영혼 구원과 그들을 주님의 제자 삼는 사람(일꾼)을 양육하는 일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의 자기 정체성 혼란을 가져오고 하나님 나라에 도리어 심각한 장애가 된다.

2. 선교사 멤버 케어(member care)

바르게 발굴해서 훈련시켜 파송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나는 과거 선교지 방문 시에도 뼈저리게 느꼈지만 선교지에서 선교사로 살고 선교사들과 교제하면서 이 중요성을 더욱 무겁고 중요하게 느꼈다. 한 마디로 한국 대부분의 교단 선교부와 선교단체는 파송 이후의 멤버 케어는 전무(全無)한 상태이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비용 때문인지 적임자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 중요성을 몰라서인지. 아마 내 생각엔 지금껏 한국교회의 선교 수준이 거기까지 못 미쳐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제 한국선교는 양이 아니라 질을 생각하고,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북음 전파와 교회개척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와 총체적인 선교로 방향을 전환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결코 외면해서 안 되는 시급한 과제가 선교사 멤버 케어이다. 선교지에 나와서 보니 상당수의 선교사들이 자기 영성이나 정서, 대인관계, 현지인과의 관계, 재정관리, 가정생활 등의 전반에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타문화권에 사는 선교사들에겐 더욱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과는 달리 타문화권이 주는 다양한 스트레스와 갈등이 그것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서처럼 다양한 교제권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관리 감독도 없다.

나는 이 문제의 중요성 때문에 선교지 나오기 전에 여러 목사님들에게 멤버 케어에 대해 말하고 멤버 케어 선교사로 파송해 주길 요청했었다. 그 중요성에 대해 모두 공감했으나 정작 파송은 주저했다. 아마 지금까지 선교사 멤버 케어를 위한 선교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바로 선교사를 위한 선교사, 즉 선교사의 멤버 케어를 위한 선교사 파송이다. 나는 탄자니아에 있을 때 작은 도시에서 한국 선교사 5세대와 교제하며 상담하고 격려하며 본의 아니게 멤버 케어를 했었다. 전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이고 또 그들 중에는 교단이 다른 사람도 있었지만 나를 통해 치유되고 힘을 얻고 격려를 받았다.

멤버 케어는 정기적이며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멤버 케어를 제대로 받을 때 선교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할 수 있고 그 이상도 가능하다. 멤버 케어가 없는 것은, 파송한 선교사를 방치하거나 거의 유기하는 셈이다. 단기 팀의 방문이나 담임목사와 장로들 또는 선교위원회의 일시 방문은 필요하지만 분명 전문적이고 정기적인 멤버 케어를 대신할 수 없다.

지금 선교지에는 안녕하지 못한 선교사들이 너무 많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와 관계된 선교사도 안녕하지 못할 수 있다. 늦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첫 단추인 선교사의 소명에 대한 바른 점검과 철저한 훈련 그리고 파송 이후의 정기적이고 구체적인 멤버 케어를 통해 선교에 드려진 물질과 기도가 헛되지 않으며, 영혼을 살리는 복음 전파의 원동력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능력으로 열매 맺었으면 좋겠다.

▲ 탄자니아 킬리만로 산 자락 입구에서. © 박정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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