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FEBC 교계전망대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사무총장 이상화 목사입니다. 각본없는 드라마가 매일 쓰여진다고 하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드디어 개막을 했습니다. 32개 나라의 출전 대표팀이 어떤 드라마를 써내려갈지 기대가 됩니다. 월드컵 경기가 남미 브라질에서 열리는 만큼 브라질은 물론 남미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습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더 복음이 편만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금번 월드컵을 계기로 브라질을 비롯해서 남미에 어떻게 하면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인가를 많은 선교단체들이 깊이 고민하고 선교전략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FEBC 교계전망대에서는 두 주간에 걸쳐서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본 남미 선교를 주제로 하려고 합니다. 오늘 두 분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김성태 교수님과 GBT 성경번역 선교회 소속으로 에콰도르 기초아부족을 25년동안 섬기고 계시는 이영민 선교사님 나오셨습니다.

▲ 극동방송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교계전망대' 녹음현장.

사회자 : 전 세계 축구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개막되었는데 이 월드컵으로 인해서 개최지인 브라질뿐만 아니라 남미에 대한 지역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브라질 월드컵을 보면서 먼저 월드컵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축구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영민 : 3:1로 브라질이 월드컵 개막의 신화를 창출했습니다. 공은 하나이지만 남미에서의 축구는 삶을 연결하는 고리이자 모든 사람들의 수단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남미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축구라고 하는 필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지켜보면서 남미인들만 느낄 수 있는 엄청난 파워를 보는 것입니다.

사회자 : 남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축구를 알아야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면 남미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브라질 월드컵도 잘 이해할 수 있고 남미 선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남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성태 : 중남미의 역사는 크게 4개의 시기로 이야기 합니다. 먼저 고대, 기원전 20,000년부터 서기 1492년 콜롬부스에 의해서 신대륙이 발견되는 때까지입니다. 20,000여 년 전에 베링해협을 통해서 몽고족 계열의 이주자들이 중남미 전역에 정착을 했는데 그것이 원주민 인디오족의 선조들입니다. 3대 문명이 존속했는데 아즈텍, 마야, 잉카문명입니다. 그 다음 1492년부터 1821년을 '정복과 식민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코르테제가 불과 얼마 안되는 숫자의 군인으로 1517년에 아즈텍 문명을 무너뜨립니다. 이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범선이 중남미를 계속해서 침입하고 남미 전역을 식민지화 할 때 로마가톨릭이 도입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중미, 카리브해 연안 지역을 식민지화했습니다. 세 번째 시기는 1821년부터 1930년대입니다. 이 시기는 해방과 독립과 정치적인 격변의 시기입니다. 1821년, 1823년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는 독립하기 시작했고 독립이 가속화되었습니다. 그 후에 군부 독재정치와 사회주의 정치가 정착되었습니다.  네 번째 시기는 1930년부터 현재까지입니다. 지금은 80년대 이후로 남미 전역이 상당히 근대화되고 있고 사회민주주의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민주화가 상당히 진행되면서 일반적으로 경제가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다음 문화적인 특징을 말씀드리면 상당히 혼합주의적입니다. 가톨릭이 단순한 로마가톨릭이 아니라 혼합주의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 다음 남미는 역사를 통해서 봤지만 다인종입니다. 1,509개의 종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이와 축제 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브라질의 카니발이나 삼바축제와 같은 것입니다. 그 다음 '아미고'로 친구 문화입니다. 가족의 유대가 굉장히 강합니다.

사회자 : 이영민 선교사님은 직접 오랫동안 그곳에서 사셨으니까 남미의 문화를 어떻게 특징지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영민 : 남미는 코드가 있습니다. 브라질의 삼바, 아르헨티나의 아사도, 안데스 고원의 인디오들의 감자, 쎄올로키아빵사, 빵사는 배가 빵빵하게 나온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이들은 많은 시간동안 밥을 먹으면서 교제를 합니다. 제가 처음 남미에 갔을 때 어려웠던 것은 너무 먹고, 자고, 노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일 좀 하려고 하면 다 쉰다고 합니다. 근데 성향을 보면 쉽게 말해서 일본사람은 100중에 80을 해놓고 20이 안되서 불안해 한다면 남미는 반대로 100중에 20을 해놓고도 즐기면서 나머지 80에 대해서는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온난화 시대의 남미는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공기와 지하자원과 물과 식량, 에너지를 아직까지 보존한 곳이라 라틴아메리카라고 하는 이 엄청난 대륙은 항상 정복자들이 들어왔던 곳입니다. 아마존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은 미개한 인디언들이 산다고 생각하시지만 아마존은 이미 600여 년 전에 가톨릭이 스페인 군대가 들어올 때부터 글로벌과 자본주의들이 이미 가동되었던 곳입니다.

사회자 : 굉장히 복잡다난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데 종교적인 영역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남미라고 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해방신학이 발원한 곳이라고 알고 있는 정도인데 독특한 문화와 신학이 접목된 이 남미는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김성태 : 로마 가톨릭이 남미의 지배 계층이 되었습니다. 남미는 농.축산업이 주요 산업이었는데 그들이 대지주를 형성하게 되고 대다수의 서민이나 원주민들은 거의 노예노동에 종사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불평등과 구조악, 종속화의 문제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가톨릭 신부 가운데 뜻있는 사람들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소위 해방신학을 이야기 했는데 이 해방신학은 인간해방과 사회정의 구현 등 일종의 사회구원론에 입각한 신학적인 운동입니다. 이 해방신학이 남미에서 태동이 되었고 발전이 되었습니다. 

이영민 : 거기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해방신학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방신학은 로컬신학이라고 하는 큰 주류의 하나일 뿐입니다. 남미의 신학을 말할 때 우리는 라틴아메리카 신학 학회에 속한 분들이 존 스토트와 같이 학생운동을 일으키는 그룹을 통해서 젊은 신학자들이 1980년대부터 자아신학화 과정처럼 남미에 맞는 토착적인 신학화 과정을 실험적으로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오순절 신학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고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남미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오순절 신학이 도움이 될 것이고 또 하나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남미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중남미를 말할 때  두 가지의 얼굴이 있는데 하나는 유럽에서 들어온 엄마 품에 안겨있는 연약한 아기 예수와 미국에서 들어온 부활을 상징하면서 승리한 정복자로서의 예수입니다. 유럽에서 들어온 신학과 미국에서 들어온 신학을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하면 신학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는 토착 인디오들의 영성이 맞물려 있습니다. 20세기의 선교계의 흐름은 문화인류학적인 선교전략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인디오들의 문화를 가지고 인디오신학을 접근했습니다. 그런 영향 때문에 한국 신학자들과 중남미 신학자들이 만나서 신학적인 논쟁을 하면 이들의 내공이 다져진 경험과 유럽과 미국의 신학을 다 배우고 상황화시킨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마도 많이 놀랄 것입니다.

김성태 : 조금 더 언급을 하면 해방 신학은 두 가지 영향이 있습니다. 세계 신학계의 영향이 남미에서 상황화가 되어서 나타난 것입니다. 1960년대 말에  WCC를 중심으로 상황화 신학이 세계적으로 발생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남아프리카의 흑인신학, 유럽의 여성신학, 남미의 해방신학, 한국의 민중신학입니다. 남미의 해방신학은 한국의 민중신학의 선제적인 모델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일반 서민들을 의식화해서 ‘기초 기독교 공동체’(Basic Christian community) 인데 8명~10명 단위로 소그룹을 통해 의식화하여 사회변혁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행동을 통한 변혁인데 이런 부분들이 사실은 오순절 교회가 성장하고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오순절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 가운데 해방신학의 영향이 상당히 약화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볼 때는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나 해방신학이 오늘날 남미 상황에서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요즘 해방신학의 세계 사회 포럼이 남미를 중심으로 해서 코스타리카,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교회들 가운데서 여전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미에서 왜 해방신학이 일어났는가 하면 경제정책의 양극화 부분, 종속적, 구조악의 문제들 가운데서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사회자 : 그렇다면 월드컵이 있는 브라질은 어떻습니까?

이영민 : 브라질이야말로 해방신학의 본거지입니다. 최근에 브라질 대통령도 이념적으로 좌익성향입니다. 이 대통령은 자본주의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미국과 정면대결을 해서 상당히 많은 영향력을 주변에 연계된 아르헨티나, 칠레, 파라과이등 에 끼치고 있습니다. 남미의 신학은 상황 안에서 삶속에서 시작됩니다.

사회자 : 오순절 신학이 남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형태가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봐야 될까요?

김성태 : 남미의 르네 빠딜라 싸무엘 에스코바르, 올란도 꼬스따는 복음주의에 속한 교회의 소위 성경적 상황화입니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는 상황화 신학인 해방신학하고는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말씀과 실제적인 삶이 함께하는 특별히 성육신을 강조합니다. 교인들의 삶속에 들어가서 희노애락을 나누면서 구체적으로 교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합니다. 특별히 한국의 보수교회가 남미의 교회 지도자들인 복음주의자들을 통해서 도전받고 배워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별히 오순절 교회가 남미에서 1960년대부터 급성장했습니다. 남미 전체 개신교인들의 17%정도가 오순절에 속해있습니다. 급성장한 이유는 남미의 해방신학이 거기서부터 태동했기 때문입니다. 양극화 가운데서 일반 서민이나 원주민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본인들이 열심히 노력해도 삶의 향상이 없는 가운데서 성령의 현재적인 역사, 하나님의 힘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순절 신학의 특징은 번영신학인데 이런 부분들이 남미인들의 필요를 상당히 충족시켜주면서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남미인들 가운데 오순절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갖고 있는데 그만큼 위험한 요소들도 있습니다.

이영민 : 오순절 교회는 평신도들이 목회자의 일을 합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인데 교회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심리적, 영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교회는 바로 조용기 목사님이라고 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플러신학교의 피터와그너가 주측이 돼서 여러 영성운동을 하면서 신사도운동까지 맞물려있습니다. IT기술이 보급되면서 미국의 오순절 계통의 지도자용 세미나가 스페인어로 더빙이 돼서 들어옵니다. 그래서 듣다가 목사가 되기도 하는데 조직 관리가 안되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사회자 :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해보면 해방신학이 태동시킨 상황신학적인 큰 흐름이 있고 복음주의 계열도 있지만 오순절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있고 또 하나는 토착 인디오들의 영성이 있고 또 정통교회가 있는데 그렇다면 비율로 따졌을 때 성도수가 가장 많은 것은 오순절 교회 인 것 같은데 한국의 선교사님들은 들어가셔서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는지요?

이영민 :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초창기 한인 선교사님들은 원주민사역으로 가신 분들 보다 한인교회를 섬기러 가신 분들이 많았고 상당수의 한인 사역자들은 북미를 들어가기 전 단계로 거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인 이민교회의 정착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확인 한 숫자는 1,100명 정도의 한인 선교사님들이 어떤 태로든지 한국교회나 한인교회에 연관이 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성태 : 한인교회를 살펴보면 1905년도에 멕시코 아즈텍의 사탕수수 밭으로 한인 이민사회가 1,000명 이상이 정착하면서부터 1965년도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에 농업이민이 있었습니다. 중미 카르브해 지역에 한 20개 국가 가운데 약 60개 정도의 한인교회가 있고 남미전역에  200개 이상의 한인교회가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많게 잡으면 1,000명이상이고 파송받은 선교사는 500명 정도입니다.

이상화 : 브라질의 정치 사회적인 위상은 대단할 것 같은데요?

이영민 : 한국 분들은 브라질을 잘 모르시는데 1970년대에 한국에서 브라질로 이민 간 사람들이 이미 한국의 지하철보다 더 좋은 대리석으로 된 지하철 역사를 보고 한인들이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브라질은 많은 자원과 80개 이상의 인디오 그룹과 개발되지 않은 넓은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와 스페인어와 포루투칼어를 통역없이 사용합니다. 왜 브라질이 정치적, 교육적, 사회적으로 앞서 있냐면 남미에 이민자가 들어올 때 브라질을 통해서 들어왔고 누가 들어오냐면 소수의 엘리트들이 유럽에서 최고의 엘리트교육을 받은 백인들이 주도하면서 나라를 형성해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성태 : 브라질에 대해서 보완한다면 멕시코가 미국하고 연계해서 친미로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주역이고 브라질은 반미적이고 유럽과 가깝고 중국하고 친합니다. 그러면서 한국과도 가깝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차세스하고 동일노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차세스가 죽은 이후에 브라질의 호세피에 대통령을 상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남미공동시장, 안데스 공동체, 남미자유무역지대(safta)를 브라질이 주도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유럽의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정치적인 위상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면서 외환보유고가 상당히 안정되어있고 지하자원이 굉장히 많이 있고 GDP도 10,000불이 넘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무비자협정이 2002년도에 맺어졌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금융상품의 브릭스가 있는데 바로 브라질(Brazil)·러시아(Russia)·인도(India)·중국(China) 등 4국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세계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나라입니다.

이영민 : 브라질은 한인, 일본인, 중국인 타운이 크게 형성되어있고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오는 국비장학생이 매년 500명 정도인데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명문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있습니다.  또 브라질 같은 경우는 지금의 한류가 있기 전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 왔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중국이 남미 전체 시장을 장악했고 중국의 유전회사와 브라질의 유전회사가 라틴아메리카의 자원 전쟁이 아주 심각한 상태입니다.

사회자 : 오늘은 여기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다양한 민족, 다양한 언어, 다양한 문화, 다양한 영성까지 갖추고 있는 나라들이 남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다음 주 에는 선교학적 차원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두 분 수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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