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1년을 보낸 교황을 바라보는 관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1989년 방한한 이후 25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인해 한국의 천주교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 8월 14일부터 5일간 방한이 확정된 후 언론은 교황의 방한 소식을 여느 연예인 못지않게 전했다. 교황의 어록은 물론 그로 인한 경제적 효과, 대한민국 홍보효과, 천주교 신자 급증 등 ‘프란치스코 효과’에 대한 내용이 대다수를 이루었지만,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지 1주년을 맞은 그가 이토록 전세계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모습과 대비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 www.vatican.va

프란치스코 교황은 처음부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비유럽권인 출신이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이었고,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전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부패와 권위주의로 물들어 있던 바티칸의 제도와 관행을 새롭게 변화시키면서도 그의 시선은 항상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행보는 다소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무신론자는 물론이고 무슬림, 동성애자 등을 향해 포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에이즈 환자의 발을 씻겨주고 여성에게 최초로 세족례를 해주었으며, 혹으로 뒤덮인 병자를 안아주는 모습을 전세계 앞에 보여주었다. 또한 아르헨티나 대주교 시절에서처럼 교황 전용 리무진도 마다하고 추기경들과 같은 버스를 타고, 교황 관저가 아닌 산타마르타의 공동 숙소를 거처로 정하는 등 예수회 출신 교황다운 검소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러한 경직되지 않고, 편안하며, 보통 사람들도 쉽게 다가서게 만드는 매력은 비단 우리뿐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퓨리서치센터가 2014년 2월 14~23일 미국 성인 1,821명(천주교인 351명 포함)을 대상으로 전화 인터뷰를 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천주교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인해서 천주교 신자가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천주교 신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그들 중 85%가 그를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71%는 그를 로마가톨릭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인물로 보았다. 그에 대한 전반적인 호감도가 1980,90년대에 큰 사랑을 받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필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문제, 교황 기밀문서의 누출 등 추문이 끊이지 않던 교황청 내부의 일은 대부분 베일에 쌓여왔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은행 돈세탁 의혹과 관련해 임기 5년인 감독위원회 소속 추기경 5명 중 4명을 교체하고 민간 회계 컨설팅 업체까지 참여하도록 하는 등 지난 1년간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오랜 시간 쌓여온 바티칸의 제도와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부단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교황이 보여준 그간의 행보가 대중들의 기대에 부합하여 그만큼의 신뢰를 주고 있는 것이다.

▲ © www.vatican.va

반면, 같은 조사에서 51%의 미국인들이 2050년 즈음에는 “성직자의 결혼이 허용될 것이다”라고 응답했는데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전인 2013년 3월 조사와 비교하여 12%나 증가한 것이다. 또한, “여성 사제가 허용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42%로 전년 대비 5% 증가했고, “피임이 허용될 것”이라는 응답도 56%로 전년 대비 3%가 증가하였다. 지난 조사에는 빠져있던 “동성결혼이 허용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36%에 달해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후 보수적이라 여겨왔던 기존의 관행들과 비교해 훨씬 완화된 입장을 보였다.

뿌리깊은 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문서에 서명한 전임 교황 베네틱토 16세에 비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은 상당히 급진적이고 파격적이다.
“종교 안에는 인간적 측면을 무시하는 매우 많은 규범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만일 동성애자인 사람이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비는 경계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에게 죄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며 양심을 듣고 따르면 선악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보수 진영의 비판을 받고 있는 이러한 말들이 그를 전부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한 사람이 끼친 영향력은 사제집단을 넘어 천주교 전체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진리는 항상 호전적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역시 투쟁적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람들과 더불어 가려고 하면 항상 그 걸음걸이는 느려지게 마련입니다.”
“거짓, 은폐, 위선이 난무하는 사회는 삶의 기본인 신뢰를 잃은 사회입니다. 신뢰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은 의심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부가 가난한 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듣게 됩니다.”

최근 몇몇 스님들이 집필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교황에 관한 책이 활발히 출간되고 있으며,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여전히 사회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그간 교계 지도자들이 보인 행보는 대중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교단장의 임기가 짧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1년 동안 정도에서 어긋나는 일들을 무수히 많이 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다소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황 한 사람이 천주교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부러움의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한 한국교회 내부의 풍토부터 되집어 봐야 할 것이다.

타임지는 작년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그 이유로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개혁과 변화에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취할 행동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참고로 교황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9개 언어로 개설한 트위터에 등록한 팔로어는 전 세계적으로 1천 2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300만 명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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