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 '공감을 위한 공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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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공감을 위한 공간' 만들기
  • 신응종 목사
  • 승인 2014.03.1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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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교회 60주년기념 다음세대 특별세미나

1. 한국교회 청년 사역의 4가지 위기

1) 교인과 선교단체 회원의 수 감소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가진 우주적인 교회는 영원하지만 지상의 교회와 단체는 개척, 성장, 정체, 쇠퇴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 중에 하나가 ‘교인 혹은 회원의 수’이다. 표1)에서와 같이 대구 IVF의 30년의 역사 가운데 배출한 졸업생의 수를 볼 때도 이러한 현상을 볼 수가 있다.

표1) 대구지역 IVF 학번 별 졸업생 현황
년도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졸업생    14      22      41     33     42      62     84     86    123    113   139    134    137
년도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졸업생   155    191    214    250    195   175    146   143    115     86     67     82     
(2000학번이 실재로 졸업하는 시기는 2006년 혹은 2007년이다)

한국교회 청년부와 선교단체는 2000년대 중반부터 숫자의 감소로 인한 위기감을 느끼고 열린 예배, 이미징 처지, 미셔널 소그룹(MSG) 등의 새로운 전략을 통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줄어드는 숫자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1997년 말에 터진 IMF 이후 캠퍼스 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2) 교회와 선교단체의 존립 위기

이러한 교인과 회원 수의 감소는 교회나 선교단체의 존립에 위기를 가져왔다. 실제로 캠퍼스의 많은 선교단체들이 사라졌고, 교회 내에서는 청년부가 사라지는 교회가 생겼다.

표2) 대구지역 각 선교단체 신입생 현황(1학년 때 단체에 들어와서 2학년 되는 숫자)
단체        A     B     C     D     E     F     G     H     I
신입생    80   150  110   6      5     7     10    12    8
(선교단체의 실명 생략)

대구 학원복음화협의회에 가입된 선교 단체는 총 13개다. 표2)를 보면 각 선교단체에 들어온 신입생이 1년 후 지속적으로 선교단체에 남아서 운동하는 숫자는 미미하다. 실제로 3개의 선교단체만 대구지역 각 대학에 독립지부를 두고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들 역시 몇 개 대학에서는 지부를 형성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각 지부 개척을 위한 모임이 형성되었다가도 독립 지부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그 주기 역시 짧아지고 있다.

표3) 대구지역 각 교회 청년부의 현황 (예배출석현황을 중심으로)
교회         D          S          B          S          D          S          K         M
교인수   4500     4000     2000     1500       800       400      300       100
청년부    850       620       250      180         80         60       30         15
%          18.8       15.5     12.5      12.0       10.0      15.0     10.0      15.0

표3)을 통해서 대구지역교회 청년부의 현황을 보면 교인 대비 약 10%~18% 정도다. 1000명이 넘는 중대형교회들은 청년부 역시 100명 이상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100명 미만의 성도들이 있는 교회의 청년부는 20여명이 되지 않아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3) 구체적 대응 전략의 부재

2000년대 중반 이후 각 교회와 선교단체는 여러 가지 전략들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본 교회나 단체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 개 교회나 단체들이 주로 사용했던 전략들의 대부분은 전도와 관련된 프로그램이었다. 실제로 대구지역 청년 대학부에서는 위기감을 느꼈지만 능동적인 전략이나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결국 10년의 시간을 흘러 보내고 때를 놓쳤다.

2010년 중반을 맞이하면서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위기감은 높아진 반면 구체적 전략부재는 여전한 채 동일한 위기의 시기를 반복적으로 맞이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전략들을 시도해 보았지만 해법이 없는 이 현실 앞에서 개척이나 부흥의 시기에 사용했던 근본적인 방법으로 돌아가는 단체도 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단체나 교회들이 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여전히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특별히 교회는 청년 사역자들의 잦은 교체로 인해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갖고 청년사역을 이끌어 갈 지도력의 부재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수년간 교회와 선교단체의 연합을 통한 돌파구는, 학원 복음화 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EF(전도집회) 정도이다.

4) 사명의 위기

선교단체와 교회 청년부의 숫자로 인한 존립의 위기는 청년 사역에 대한 가치와 사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교회에서 어른들이 청년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다. 교회가 선교단체를 바라보는 입장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청년 사역자들 사이에도 평생 이 사역과 운동에 헌신하는 이들이 급격히 줄고 있다.

이러한 내적인 위기와 상태는 비기독인의 눈에 비친 기독인의 모습을 통해서 더욱 더 분명히  드러난다. 최근 기윤실에서 발표한 2013년 한국교회신뢰도 조사 발표 세미나 자료집에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5점 만점에 2.62로, ‘개신교에 대해 기대나 신뢰를 하지 않는다.’라는 발표가 있었다. 비기독교인이 가장 신뢰하는 종교는 카톨릭 47%, 불교 38%, 기독교 12.5%의 순이다. 최근 10년간 한국교회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세상과의 소통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신뢰도의 변화가 없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2. 회복을 위한 성경적인 모델 찾기

교회의 역사는 언제나 위기의 역사였다. 이러한 위기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언제나 터닝포인트가 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셨다. 교회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카톨릭에서 기독교로 전환하게 된 종교개혁이다. 그러나 종교개혁보다 오래 되고 근원적인 개혁은 바로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잉태되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제자 공동체를 통한 교회의 등장이다. 따라서 위기의 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 그리고 그 분의 세우신 제자공동체의 중심 철학과 사역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의 나라」(도널드 크레이빌, 김기철 옮김, 복있는사람, 2010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교회의 용어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 교회, 문화, 조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비젼과 가치체계를 가진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 ‘교회’란 자신들의 마음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무리이다. 이러한 무리들이 같이 모여 그들만의 특별한 교회의 형태나 조직, 그리고 가치와 관습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문화’이다. 마지막으로 ‘조직’은 이들의 필요를 채우거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나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바라보면 이러한 모습들이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1) 세상과 거꾸로 선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 외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이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선포하셨던 그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은 로마의 치하에서 헤롯 대왕 이후 패권을 잡기 위해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헤롯 안티파스와 유다를 중심으로 한 총독 빌라도의 패권 싸움이 한창일 때였다. ‘종교적 상황’은 성전과 산헤드린 공의회를 중심으로 종교적 기득권과 정치적 기득권을 함께 누리고자 했던 ‘사두개인들’이 득세했고, ‘바리새인들’은 장로의 유전을 중심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과 심판하는 것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정치력과 군사력을 통하여 민족의 회복을 추구한 ‘열심당원들’, 세상과 분리되어 새로운 시대를 갈망했던 ‘에세네파’ 정도가 있었다.

이런 정치적∙종교적 상황에서 예수님은 전략적 선택을 통한 이들과의 연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를 뚜렷이 반영한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모습인지 몸소 섬기며 말씀으로 가르쳤다. 특별히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부자와 거지 나사로, 선한 사마리아인, 맏아들과 탕자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의 주도 세력들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전혀 다른 ‘긍휼의 나라’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세족식과 성만찬을 통하여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섬김과 희생의 가치를 친히 보이셨고, 십자가를 통해 ‘희생과 약함’으로 세운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모습을 보이셨다.

결국 예수님은 흔적만 남은 종교권력(유대)과 로마 정치세력(로마)을 향해 그들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기 위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의 유지전략과 조직운영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분명히 인식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 교회와 선교단체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주소는 조직관리, 건물유지보수, 관습과 전통, 그리고 지난 날 부흥시기의 프로그램이나 전략을 답습하면서 안타까워만 하고 있다.

2) 새로운 공동체와 문화 만들기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불러’ 공동체를 세웠다. 세상의 가치에 익숙한 그들에게 세상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르치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몸소 보이셨던 사역과 삶은 세상의 가치와는 너무 달랐다. 갈릴리 나사렛 출신, 목수라는 신분, 천대 받았던 갈릴리에서의 사역, 주목받지 못한 자들로 구성된 제자 공동체, 예수님이 친구로 삼았던 세리와 창녀들, 최후의 만찬에서 보이신 세족식과 성만찬,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신 모습과 십자가의 죽음.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하나님의 나라를 나누셨고, 이러한 사역과 삶을 통해 제자들의 삶과 그들의 공동체 가운데도 동일한 가치가 실현되길 원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했고,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자리싸움을 벌였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 사건을 경험 한 후 이들의 삶의 방식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섬김과 희생의 삶으로 전환되었다.

3)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 만들기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당시 정치적 세력들의 중심인 헤롯의 궁전과 종교 세력들의 중심인 이스라엘 성전과는 동떨어진 변방에서 자신의 사역을 시작했다. 예수 사역의 출발점은 정치∙경제 ∙교육∙문화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천대받고 멸시받던 땅 갈릴리 지방이었다. 예수님은 지역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들의 문제를 함께 아파하시며 말씀과 능력으로 치유하셨다. 그 곳에서 그들을 불러 함께 먹고 살며 가르치신 후, 다시 그들을 삶의 현장으로 파송하셨다. 예수님이 수제자 베드로와 만난 곳은 게네사렛 호수가요 만나게 된 계기가 고기의 문제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이 바로 ‘그들의 삶과 그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고민하며 사는 이들을 불러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가진 공동체, 바로 ‘교회’를 세우셨다. 그들이 머물렀던 곳은 마가 다락방, 베드로 장모님의 집,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 등이다. 그들이 살던 그 곳이 바로 ‘예배처소’였다. ‘공간’과 ‘제도’, ‘프로그램’으로 그들을 이끈 게 아니라,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꿈을 가진 각자와 그들의 모임(공동체/교회)이 사역의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3. “공감을 위한 공간 만들기”

위에서 언급한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기초로 새로운 사역의 방향을 고민해 보자. 새로운 사역의 방향을 ‘공감을 위한 공간 만들기’라 이름 지었다.

1) 하나님 나라 신학의 정립과 실체 만들기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IVF는 2006년 50주년을 맞이해 “캠퍼스 복음화와 지성사회 복음화”라는 비전을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 IVF”로 바꾸었다. 변화를 도모한지 8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 나라 운동이 그저 신학이나 구호가 아니라, 캠퍼스 현장과 학사들의 삶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지속적인 운동으로 전환되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비난 받는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이유는 ‘신앙과 삶의 불일치’이다. 그 불일치의 결정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개인과 교회라는 울타리 안으로 제한한 결과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신앙을 ‘성전이나 혹은 화석화 된 장로들의 유전’으로 제한하고 로마와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삶 속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과 유리된 것과 동일한 현상이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1차적인 원인 제공자는 ‘목회자’다. 제한된 교회 공간에서 특정한 지역의 변치 않는 대상을 목회하는 교회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내가 시무하는 교회 성도들과 그 교회의 문제해결이다. 목회자가 개교회의 상황과 문제를 넘어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역 하는 것은 이런 구조적인 상황 아래에서 쉽지 않다. 게다가 교회 청년부를 맡고 있는 교역자들에게 민감하고 가장 큰 부담은 청년부의 수적인 성장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통해 변하고 성숙한 이들이 교회에서 세워지고 세상 속에서 도전적인 삶을 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교회는 이 길고 험난한, 때로 지루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열매를 위해 기꺼이 기다리는데 실패하고 있다. 교회의 성장 조급증과 수적 증가에 대한 욕망은 한국 교회의 뿌리 깊은 병폐이고 목회자는 이 구조의 압박을 견디기 어렵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그릇이다. 교회의 규모나 교권은, 교회의 본질을 판단하는 기준일 수 없다. 규모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목회자는 사역의 목적과 목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 헤롯이 지은 화려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던 제자들과 예수님의 관점이 확연히 달랐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교회와 선교단체의 수적 감소를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교회가 그 본질을 세상 속에서 시험하고, 그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조정기라고 볼 수도 있다.

표1)을 통해 83-90년대까지는 개척의 시기,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약 15년 동안 양적 성장의 시기, 2000년 말까지 약 5년 정도는 정체기, 2010년 초반부터는 쇠퇴기로 볼 수 있다. ‘정체 혹은 쇠퇴기’의 선교단체 학생들의 모습은 개척 때와 같이 ‘왜 이 운동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열렬히 자문하면서 이 운동하고 있다. 복음의 생명력은 결국 교회와 선교단체 구성원들의 ‘자발성’이다. 조직 구성원의 자발성은 조직이 처한 위기와 고질적인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해결하기위해 씨름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가치를 알고 현재 주어지는 시험(유혹과 위기)을 회피하지 않고 그 과정을 정직하게 헤쳐 나가는 이들에게 경험된다. 최근 활발한 자발적 작은 교회 운동이나 미셔널-처지 운동들은 메가-처지가 곤두박질하는 속에서 좋은 실례라 생각한다.

실례1) 세이비어 교회
실례2) 미셔널 처지 소개하기

2) 역동적인 교회론 정립하기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의 ‘무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사명을 위임’ 받은 곳이다. 교회의 영원성은 우리가 속한 교단 중심의 조직적인 교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이고 정치적이고 신학적 상황을 가진 이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구약 성전의 역사를 보아도 그 형태는 회막, 성막, 성전 그리고 성전의 파괴까지 시대마다 변화와 개혁을 거듭하면서 절대적인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았다.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고 그 통치에 ‘순종하는 남은 자들’이었다. 신약의 예수님은 헤롯 성전의 화려함에 넋을 잃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성전은 제자들의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회가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고정적이고 전통적인 교회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신학적이고 역사적이며 현실적으로 상상하고 구체적으로 새롭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1) 로컬의 의미가 사라진 교회

지금 우리 교회들의 모습은 대부분 ‘로컬(지역)’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예전에 교회는 주로 그 지역의 이름을 붙였다. 아직도 농어촌 등에는 여전히 그 지명을 따라 교회의 이름을 짓지만, 도시 교회는 교회의 이름이 지명이나 지역성보다는 이미지화 하고 브랜드화 하는 모습이다. 교회가 특수하고 구체적인 지역에 자리 잡고 있지만, 지역 교회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했다. 실제로 도시 교회의 모습을 보면 교회 건물은 한 지역에 있지만 많은 성도들은 그 지역을 멀찍이 벗어나 곳곳에 흩어져있다. 교회가 특정한 지역에 있지만 실제로 그 지역과 소통하는 것은 부재하다. 교회의 지역성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더 적극적으로 지역과 그 지역의 주민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지리적 ‘지역성’을 넘어서고 벗어나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교회는 이 양면성과 긴장을 잘 조율하고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

(2) 다양한 형태의 작은 교회들로 한 몸 이룬 교회 만들기

교회의 기원은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가 지향은 ‘지역교회’라 단정하기란 어렵다. 사도행전에도 보면 예루살렘교회나 안디옥 교회와 같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서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했고, 바울의 선교팀처럼 특수하고 상황적인 형태를 취해 하나님 나라 운동에 적극 동참한 모습도 보인다. 한국교회의 여러 위기 상황에서 교회 역시 다양한 모습과 형태의 교회들이 세워질 필요성 있다. 교회 자체 뿐만 아니라 교회의 청년∙대학부 역시 똑같은 모양의 청년 1,2,3...부의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전략적인 임무를 띤 청년∙대학부이 다양한 형태로 구성하고 재편할 필요가 있다.

실례1) 블루 라이트 교회(송창근 목사)
실례2) 기쁨의 교회(김유복 목사) - 러빙핸즈와 멘토링 학교

(3) ‘교회’의 사역과 ‘교인’의 사역 구분하기

교회는 성도를 구비시켜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곳이다. 교회는 성도를 구비시킬 때 교회를 섬기는 자로 세울 뿐만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자로 구비시켜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 소그룹 교제, 제자 훈련, 전도, 구제, 선교 지원 ‘사역’ 등에 집중하고 있고, 그 사역을 위한 교사, 성가대, 목장의 리더, 방송실 담당 ‘직분’ 등으로 섬기고 있다. 이러한 사역과 직분의 특징은 ‘교회의  내부 사역과 운영을 위한 일’이다. 성도들은 자기 에너지의 1/10을 여기에 투자한다. 나머지 9/10는 사역적인 연관성을 찾지 못한 채 직업의 영역에서 생존을 위한 도구로 자신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사역 곧 섬김의 의미를 좀 구분하자면, ‘교회’의 사역이 있고, ‘교인’의 사역이 있다. 실제로 교회에서 성도들이 참여 할 수 있는 사역은 너무나 제한적-교회에 (일주일 중 겨우 하루에 불과한) 주일 오후나 저녁까지 남아 있는 이들을 떠올려 보라-이다. 이 말은 교회에서 섬기는 교사, 성가대, 목자의 사역 등이 하찮은 것이라는 게 아니다. 실제로 교회 사역은 성도들이 자신의 역량을 100% 발휘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교회의 사역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역자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게다가 교회는 성도들이 하고 싶고 참여하길 원하는 모든 사역을 다 담을 수도 없다. 이제 교회는 선교사를 선발∙훈련∙파송∙지원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매일을 살아갈 평신도들을 선발∙훈련∙파송∙지원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회’의 사역에 성도들이 헌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 속 ‘성도’의 사역에 교회가 영적∙물적∙인적자원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의 사역>으로 그 영향력을 평가한다면 당연히 대형 교회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교회의 사역>은 교인수와 재정, 규모의 경제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인의 사역>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허와 실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교인의 사역>은 교회의 규모와 특별한 상관이 없고, 각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고작 12명의 제자를 세웠다. 12는 수적으로나 규모의 경제로 볼 때 제한적이다. 결국 예수님이 주목한 것은 제자들 각자와 그들의 연대가 일궈낼 잠재력이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이 민족과 열방을 품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도록 훈련시켰다. 교회가 <교회의 사역>이 아니라 <교인의 사역>에 집중할 때, 수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나라의 셈법으로 열매 맺을 것이다.

실례1) 에녹커피
실례2) 장원수학
실례3) 5대양 6대주 선교회

3) 새로운 사역 시스템 만들기  : 공감을 위한 공간 만들기

(1) 공감을 위한 공간 만들기

예수님의 사역은 특정 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가 있는 곳으로 파송하고 직접 찾아가는 사역이었다. 그 곳곳에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했다. 사람들은 그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현장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고 또 다른 이들을 세우는 자로 세워졌다. 예수님은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그들을 만나 함께 공감하며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 대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IMF와 금융대란 시절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들에게 ‘안전한 직장’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 세상에 안전한 직장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직장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소개하고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안전을 가르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예배와 교제와 교회의 사역을 위한 공동체만 조직되어 있다. 개인의 진로나 삶의 현장에서 겪는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고독은 치명적이다. 이런 고독 속에 성도들은 점점 세속화가 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복음의 능력은 개인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삶-공동체와의 구체적인 만남 속에서만 맛 볼 수 있다. 교회는 이들의 구체적이고 절실한 고민에 대해 공감하고, 해결을 시도할 수 있는 현장에 속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육화(肉化)’해야 한다.

실례1) 비젼캠프(Calling & Job)
실례2) InG School(Calling & Tuning & Working)
실례3) 영업 관심자 인턴 과정
실례4) 싱글피움학교
실례5) 커플피움학교

(2)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하는 사역 모델 만들기

세상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할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은 그들에게 영적으로 삶의 방향을 잡아 줄 목회자들도 필요하지만, 그들 곁에서 함께 걸어가면서 인도해 줄 평신도-지도자가 필요하다. 결국 이들을 세우고 훈련시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도 목회자의 중요한 사역이다. 교회는 이제 목회자 중심이 아니라 수혜자인 성도 중심으로 사역과 조직과 프로그램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평신도들은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의미 있는 지도력을 발휘하기 원하고, 세상 속에서 자기들이 매일 겪고 있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성경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과정과 실제적인 해결을 원한다. 이제 목회자와 평신도는 함께 머리를 맞대어 이들을 돕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지도력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와 평신도는 서로를 돕고 서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만들고 사역하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실례1) 정희돈 간사(가나 웨딩 플래너, 훈련담당간사)
실례2) 청년부 부장 집사님과의 공동 사역
실례3) InG School에서의 박희광 교수와의 연합 사역

(3) 지원-시스템의 필요성

세상은 강력한 시스템이다. 학교는 입시라는 강력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대학은 취업을 중심으로 시장의 논리에 의하여 움직인다. 70~80년대에는 가수가 노래했지만,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소비자에게 맞는 가수를 찍어내는 시대이다. 교회가 성도들을 바르게 가르친다고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바르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혹 그 싸움에서 예수님처럼 지는 싸움을 싸웠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삶의 공동체와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 홀로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제자다운 삶을 살기란 매우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실례1) 권도균 대표(Primer Founder and CEO)
실례2) 취업이나 창업을 위한 시스템 만들기
실례3) 예담 어린이집
실례4) 대안학교~대흥교회
실례5) 원룸사역
실례6) 협동조합

4) 새로운 형태의 교회 연합 운동의 필요성

교회의 구비뿐만 아니라 교회 간의 연합 역시 필요하다. 요즘 연합 운동에 대한 부정적이다. 교회의 조직적 연합으로 인한 부작용과 일회성 연합 대형 집회의 한계와 부정적 경험 때문이다. 시대를 생각하고 성도들이 살아갈 세상의 견고함을 생각할 때, 교회들의 연합 사역은 반드시, 더더욱 필요하다.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성도들의 싸움을 지원하고 응원할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역의 연합이 필요하다.

실례1) BCM(부산 해운대 연합 교회)
실례2) 교회 연합을 통한 대안학교 만들기
실례3) 인맵 만들기(페이스 북 One To One)

글을 마무리 하면서 필자가 지금까지 제안한 모든 관점과 방법들이 절대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려는 몸부림이라 여기면 좋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 포도주는 세상과 거꾸로 세워진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를 이 땅에 심기 위해 세운 우주적인 교회다. 지상의 교회와 선교단체가 구성한 조직∙시스템∙인력∙전략∙프로그램은 유한하고 불안정하다. 시대의 변화와 상황, 성령의 인도에 따라 탈바꿈해야 한다. 새 포도주를 위해 새 부대가 꼭 필요하다. 어떤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부흥과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세상 속 ‘공감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 새 포도주를 날마다 더 분명히 경험하고, 그 포도주를 담기 위한 새 부대를 상상력 넘치도록 만드는 작업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삶의 현장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더 풍성히 경험하고, 그 감격을 교회가 모일 때 마다 찬양하며, 실패조차 두려움과 좌절이 아니라 또 감사의 경험으로 담대히 고백할 그 날을 소망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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