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에

한국 교회가 오늘날처럼 수모를 겪게 된 시대는 없었다. 별별 이름을 붙여 교회와 기독교를 비하하는가 하면 목회자를 희화하는 데 모두가 익숙하게 되었을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은 넉넉히 이해할만 하다. 교회와 목사가 부리는 추태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서서 교회가 잘하고 있는 것이 많은데 대중매체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볼멘소리로 아무리 대응해봐야 역효과만 나온다. 이것은 여러 사회 조사의 결과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리하여 뜻있는 이들은 이와 같은 조사가 나올 때마다 교회의 각성과 반성을 촉구하고 나온다.
그러나 생각 깊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사회 조사가 나오기 이전부터, 아니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한국 교회에 대하여 깊이 새김질해 왔다. 이들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늘의 우리 교회를 어떻게 보실까 하는 것이 두렵고 떨리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는 모든 판단의 근거와 기준은 ‘말씀’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예언자의 전통을 따라 말씀에서 벗어나고 있는 교회를 두고 가슴 치며 애통해 왔다. 그리고 외쳤다. 하지만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자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오늘날 교회가 이처럼 우리 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어서야, 그리고 교회에 대한 사회 조사의 결과를 보고서야 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때 늦은 것이지만 때에 맞는 것이기는 하다. 사회 조사의 내용은 이리저리 헤아려보아야 할 자료이다. 하지만 근본에서는 ‘말씀’에 비추어 오늘날의 우리 교회를 비춰보아야 한다.

 


2. 허영의 도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정치 이념이나 선호와는 상관없이 군사 쿠데타 이후의 사회 변동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겪어온 ‘발전’을 귀하게 여기고 있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삶은 그때 시작한 경제 성장의 덕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실체는 어떤 것인가?
익히 알다시피 우리는 ‘잘 살아보자’는 경제 성장의 행군에 묵묵 동참해온 나머지 오늘의 물질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제도 교육을 통하여 앞서 배우게 되었던 인권이니 자유니 하는 민주주의의 가치조차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간단하게 내팽개쳐버리게도 되었다. 가난했던 지난날을 청산하고 하루 속히 모두가 대량 소비를 즐길 수 있는, 오직 그러한 뜻에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에 모두 복창하며 우리는 성장의 역군으로 자임하였다. 그러한 나라를 건설하자며,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모두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마이 카’ 시대를 앞당기자며 모두가 밤낮없이 일해 왔다. 우리는 모든 초가집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는 지붕 개략 사업도 쉽게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경제 성장의 논리로 무장한 국가 주도의 동원 체제는 그렇게 국민을 온통 황홀 속으로 휩쓸어갔다.
강력한 산업화 정책으로 여기저기에 공장도 들어섰다. 공단 지역이 만들어지고 농촌을 떠나 도시도 옮겨가는 거대한 인구 이동의 현상도 일어났고, 급기야 고속도로도 건설되고 모두가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마이 카 시대’에도 진입했으며, 그다지도 바라던 소비 생활도 즐기게 되었다. 소비 욕구를 부추기는 온갖 소비재가 도시에 넘쳐나 도시는 화려한 소비 도시의 면모를 갖춰갔다. 우리 국민은 모두가 “잘 살게 되었다”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물질 영역에서만 그러할 뿐이었다. 물질의 풍요만을 제 일차의 것으로 믿도록 국가가 밀어붙인 그 동원 체제 밑에서 반세기를 살아오는 동안 모두가 물질 획득에 대한 관심 그 너머의 관심 세계를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삶의 균형 감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오로지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을 구하였고 그것을 당연한 삶의 길이라고 신앙하게 되었다. 값비싼 것을 먹고 값비싼 옷을 입고 값비싼 집에서 살고 값비싼 차를 몰고 값비싼 물건을 사는 소비의 즐거움과 소비를 통한 과시 욕구,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세계 제일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것을 확보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른바 일류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한 다음 재벌 기업체에서 직장을 얻고자 하거나 무슨 국가시험에 합격하고자 경쟁하며 분투하는 것, 이 모두가 잘 먹고 살겠다는 한 목표를 향하고 있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몰아가며 교육시키고자 하는 교육열의 실체이다. 그러한 욕구가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을 분기시키고 광분케 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대량 소비를 즐길 수 있는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 목표를 향해 우리 국민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해 온 끝에 드디어 그것을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우리는 소비라는 성장의 과일을 여유롭게 따 먹으며 삶을 즐기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역사의 쾌거이다. 극악무도한 일제 강탈의 만행도 겪어야 했고 해방은 되었지만 남과 북이 맞붙어 싸움질까지 한 전쟁도 해 본 마당에, 앞서간 다른 나라들을 따라잡아 대량 소비의 시대를 만들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 마디로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켜주려는 허영의 도시 건설을 뜻하였다. 박 정희 정권 이후 국가가 앞장서 이 허영의 도시를 건설코자 했던 셈이다. 우리 국민 모두는 이 허영의 도시 거주민이 되었다. 우리는 허영의 도시민이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겨 이 도시를 일군 건설자라며 그를 칭송하며 오늘도 유쾌하게 살아가고 있다.


3. 허영의 교회

정부가 이끌어간 경제 성장의 대열에 교회는 기꺼이 함께 했다. 필요하다면 그 대열에 앞장서기도 했고 뒤에서 그것을 떠받쳐주기도 했다. 다른 말로 교회는 군사 쿠데타 정권의 성장 정책에 합류하여 그것을 정당화하는 충실한 시녀의 역을 맡아왔다. 이것이 현대 한국 교회의 역사를 특징짓게 되었다.
교회는 경제 성장의 자원을 최대한 동원한 성장의 이용 주체이자 수혜자였다. 경제 성장 정책은 교회가 성장하는 데 더 없이 편리한 조건이 되고 동력이 되었다.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교회는 놀랍게 성장했다. 교인의 수가 1960년에는 고작 백만 정도였으나 1970년에는 그 배가 넘더니만 1980년 가운데에 들어서서는 인구의 약 20퍼센트가 되는 천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인구의 도시 집중화에 따라 전체 인구의 9할이 도시에 몰려들게 되어, 정부는 이들에게 살 집을 지어주어야 했다. 주택 개발 정책이 나왔고 뒤따라 건설 붐이 일어났다. 이들 개발 지역은 교회의 개척지가 되었다. 구도심 지역에 있던 교회를 팔고 신개발 지역에 새로 땅을 사서 교회를 짓기도 하고, 아예 주택 개발지역을 찾아 교회의 문을 새로 열기도 하였다. 개발 지역 곳곳에 교회가 자리 잡고 나왔다. 정부의 대규모 개발 정책은 교회의 설립을 북돋았을 뿐 아니라 대형 교회의 건축을 꿈(?)꾸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대형 교회가 나타났고 모두가 그러한 교회를 본보기로 삼아 몸집을 불려나가고자 했다. 그것이 교회의 부흥이고 그것이 기독교의 전파의 공식이 되기에 이르렀다. 2007년에 나온 조사에 따르면, 주일마다 예배에 출석하는 교인의 수가 5,000명이 넘는 이른바 ‘메가 처치’가 35개나 되었고, 같은 해 외국의 유력지는 80만이 넘는 교인을 둔 세계 최대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하여 세계 10대 개신교회 가운데 5개가 한국에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대형 교회를 세우게 된 목사는 개발 정책을 기회로 삼아 성공을 거둔 부동산업자 못지않은 출중한 능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교회가 커진다는 것은 머리수만 많아진 것을 뜻하지 않았다. 교회의 수입도 불어났다. 교회는 교인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우람하고도 호화로운 예배당을 지을 뿐만 아니라 교인에게 갖가지 편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시설도 갖춰나갔다. 되도록 모든 것이 교회 안에서 충족될 수 있도록 교회는 자기 충족 욕구를 채워나갔다. 교회가 묘지를 마련하는가 하면 산천이 좋은 데 기도원이나 수양관을 짓기도 했다. 나아가 교회 안에 카페도 열고 공연장으로 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두고자 했다. 자기 교인들에게 모든 편리를 제공해 주고자 하여 만든 교회 안의 각종 편의 시설이 교회 바깥 이웃들의 삶의 터전으로부터 교회를 분리시켜 새로운 담벼락을 치는 결과를 빚게 되었지만, 그런 것은 교회주의에 빠진 이들에게는 전혀 관심 둘 바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교회 중심이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개발 지역에 덩치 큰 교회가 이곳저곳에 다투듯 세워졌다.
교회가 대형화될수록 교회의 목회는 ‘경영’이 되어 성공/성장 기업체에서 배우며 그것을 닮아갔다. 목회자는 기업 조직을 경영하는 경영주처럼 되고 목회의 능력은 곧 경영의 능력처럼 되어 갔다. 목회자는 자연스럽게 기업 조직의 총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처신하며 군림하게도 되었다. 기업체의 크기에 따라 그 총수의 지위가 달라지듯이 교회의 크기에 따라 담임 목사의 지위도 달라졌다. 큰 교회를 목회 경영하는 교회 총수라는 자리 때문에 담임 목사가 행사하는 막강한 권리를 당연하다고 여기게끔 되었다. 대형 교회는 중세 교회의 거대함과 호화스러움을 뒤따르고 대형 교회의 목회 경영자는 중세 교권주의자들처럼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대었다. 이들 목회자는 화려한 ‘가운을 입은’ 교회 조직의 경영자이고 기업가였다.
경제 성장이 가져온 허영이 교회 안으로도 들어와 교회 자체가 허영의 교회가 되고 목회자가 허영에 휩싸이고 교중이 허영을 떠받들고 허영을 즐기는 판국이 되었다. 목사는 색채가 풍부한 가운을 몸에 걸치고 거대한 교회당의 강단에 올라가 설교하고 갖가지 그런 모습으로 자주자주 행사장에 나타난다. 교인은 그것을 허영이라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엄숙하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교회의 허영에 대하여 누구도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차라리 허영이 ‘정상화’되어버렸다. 허영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회를 더 웅장하게 짓고 더 화려하게 꾸미고자 하는 대형화의 공모자가 되고 전위대가 된다. 이들은 교회의 재산이 눈덩이처럼 커져 그것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게 되면 거기에 끼어들어야 하고 목회자의 후임자 선정을 두고 분란이 일어나게 되면 거기에도 끼어들어야 한다. 이들 스스로 허영의 덫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허영의 도시에서 허영으로 길들여진 이들이 일구고자 함께 계획하고 운영해온 교회란 한낱 허영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눈여겨 볼 것은 이것이 반드시 대형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형 교회 목사의 문제만도 아니라는 점이다. 대형 교회를 향한 허영의 꿈은 성장을 꿈꾸는 교회 일반에도 널리 퍼져 있고, 대형 교회의 강단에 올라가 설교를 하고 각종 부대시설을 만들어 그 거대 조직을 당당하게 부리고 싶은 허영의 유혹은 미래의 교회를 계획하는 목사들의 마음속에도 스며들어있다. 모든 교회가 앞 다투어 내로라하는 대형 교회를 벤치마킹코자 하고 대형 교회를 이끈 목회 경영자의 이야기를 갈급해 하고 그에게서 한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이들은 허영에 젖어 무슨 일이건 돈이 있어야 할 수 있고 큰일을 하려면 모름지기 돈이 많아야 한다는 세상의 논리에 짓눌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도 돈이 많아야 하고 그러려면 교회가 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단순한 공식을 신앙하고 있다. 이들은 작은 교회라면 할 수 없는 ‘큰일’은 대형 교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대형교회중심의 이데올로기에 오래 동안 지배당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대형교회 단독으로 할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모든 교회들이 힘을 모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나아가, ‘큰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이 허영의 도시에서나 통용되는 잣대에 따라 ‘큰’ 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닌지, 이들 누구도 묻지 않는다.
이렇듯 허영의 도시에는 붉은 십자가만큼이나 많은 허영의 교회가 즐비하고, 허영의 도시 거주민처럼 교회 안에는 허영심에 불타는 교인이 들어차 있으며, 그 한 가운데 허영심에 얽매인 목사가 올라서 있다.


4. 지평 초월

허영에 사로잡힌 이 도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별달리 새로운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오래된 대답만이 있을 따름이다. 허영으로 들뜬 이 도시와 교회는 그 지향성에서 하나의 지평에 서 있다. 이 둘이 단일 지평 안에서 함께 어깨동무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과 짝하면서 교회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허영을 허영인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그것이 추구하고 향유하는 것이란 허영일 뿐이라고 교회는 소리 낼 수 있어야 한다. 참다운 교회라면 그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보는 이 모든 것은 바울의 저 유명한 표현으로 “쓰레기”이고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의 길, 이것 밖에는 어떤 해답도 없다. 이것은 허영의 지평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말씀’이라는 지평에서 바라보면 허영의 지평은 벗어나고 넘어서야 할 지평이다. 이 ‘초월의 지평’에서 허영의 지평에 갇혀 있는 이 도시의 교회와 목사와 교인을 향하여 그 지평에서 벗어나라고 소리 높여 외칠 수밖에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
초월 지평에서 누리는 기쁨은 특별한 것이다. 허영의 도시에서는 차마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삶의 세계를 맛보게 된 그 자체가 놀랍고 뜻 깊은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허영에 들어 허영의 삶을 목표로 삼아 그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데, 초월 지평에 들어 도시의 허영이란 덧없는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특권이 아닐 수 없다. 허영의 삶밖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하는 그 삶의 지평을 초월하여 허영의 삶을 ‘쓰레기’라고 이름붙일 수 있게 되고 그 모든 것이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고 당당히 평가 절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 사실은, 실로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허영의 눈으로 보면 ‘말씀’이 가르치는 삶이 어리석게 보이지만 ‘말씀’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값있다고 하는 바로 그것이 허영의 부스러기로 보일 뿐이다.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기준을 뒤엎어버리는 통쾌한 이 삶, 그것은 지평 초월의 체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 교회는 세상의 허영에서 벗어날 때를 맞고 있다. 교회를 거대하게 지어 눈부시게 꾸미고 교회 안의 모든 시설을 화려하게 만들어 사람의 눈을 마냥 즐겁게 해야 할 것인가, 하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허영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질없는 것이라고 외쳐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허영의 도시를 뚫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의 공동체로 서 있어야 한다. 진정 목회자라면 교인의 허영심에 장단을 맞춰 교인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허영의 시험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 대형화를 향한 허영심의 시험도 능히 물리친다. 그리고 그는 순례의 길에 들어선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허영의 세계에서 따돌림 받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순례의 길동무가 되어, 지평 초월의 믿음 안에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함께 성숙해 가도록 기도한다. 말씀에 뿌리내린 목회에 헌신코자 하는 사람이라면 교인이 늘어나는 것에 대하여 무턱대고 기뻐하기보다는 차라리 깊은 물음을 던진다. 행여 그것이 자신의 설교가 교인의 허영에 장단 맞추었기 때문은 아닌지, 그 허영에 말씀을 뒤섞어 일종의 ‘종교 혼합주의’를 발동시켰기 때문은 아닌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말씀을 증거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지, 섬세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허영의 도시에서 경제 성장을 말하고 경제 규모를 들먹이면서 모든 것이 ‘커야 한다’는 가치 때문에 ‘작은 것’을 무시하게 된 것을 이들 예수의 사람은 다시금 새김질한다. 이들은 지평 초월의 세계에 잇대어 삶을 추슬러, 통째로 허영의 도가니가 된 이 시대에 맞서 하나님이 주신 분량대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에 따라 묵묵히 일해 나간다. 그렇게 이들은 대형 교회에 주눅 드는 다수를 천하게 여길 줄 아는 믿음의 품위를 실행해 간다. 이들에게는 허영의 도시에서 대형교회로 나아가는 어떤 교회가 결단코 본받을 모형으로 떠오를 수가 없다. 이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우상이지 않기 때문이다.


5. 맺으며

한국 교회의 문제는 어느 한두 가지로 다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두고 깊이 연구했다고 할 만한 것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수많은 대형교회가 있는데다 곳곳에 신학교육 기관이 있고 거기서 가르치는 수많은 신학 교수들이 있음에도 그러하다.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한 세기 하도고 반세기가 되고 있음에도 신학은 아직도 우리의 현실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에서 배운 자투리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으로 우리의 교회 현실을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묻는다. 우리나라의 교회와 기독교의 문제를 두고 깊고도 균형 있게 가르치는 신학교가 과연 있으며, 넉넉히 ‘신학자’라고 불릴 수 있는 교수는 몇이나 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서양 교수들을 불러 세미나다 심포지엄이다 하는 모임을 연다고 해서 해결 될 것도 아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교회 문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문외한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교회 문제는 현장에서 목회하는 우리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고 다짐해야 할 뿐이다. 분명 이 일이 우리에게는 벅찬 것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이 각오로 우리는 개신교의 전통을 새삼 떠올린다. 개신교의 정신은 세상―여기서 말하는 허영의 도시―을 ‘거부’하면서 살아가는 데 있다. 세상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고 ‘부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에 겨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신교도라면 지켜가야 할 신앙이고 실천 행위이며, 걸어가야 할 삶의 길이다. 허영의 도시가 더럽다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 어느 한적한 곳으로 물러서서 자기 수양을 일삼아서도 안 되며, 피정이다 수양이다 하면서 쳇바퀴 돌듯이 허영과 명상을 되풀이하는 삶의 주기를 능사로 삼을 수도 없다. 그 모든 것은 허영의 영원한 승리를 보장해줄 따름이다. 우리는 허영이 난무하는 현실의 삶 한 가운데서 그것에 맞서 그것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허영에 둘러싸여 살아가야 하지만 허영과 짝하지 않고 허영과 맞부딪히지만 도망가지 않고 싸우면서 살아가야 한다. 허영의 단일 지평에서 지평 초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란 결코 간단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삶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많을 수 없다. 소수이다. 좁은 길이다. 그러한 길에 들어서 순례의 길을 걷도록 부름 받은 자가 그리스도인이며 그러한 자들이 모인 곳이 말씀의 교회인 것이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하늘의 물음이다.

"이 땅 위에는 우리가 차지할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앞으로 올 도성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히브리 13:14 (공동번역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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