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해를 맞이하여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예민해 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은 변화임에 틀림없다. 2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교회는 정치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3.1운동의 실패이후 견고한 현실정치의 벽을 실감한 교회는 내세화, 내면화되었고, 이것이 선교사들을 통해 전수된 정교분리이론과 맞아떨어지면서, 점차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믿음의 영역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정치적 태도는 두 차례 진보정권을 거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 정교분리의 기치아래 명분상으로는 정치적인 중립을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보수정권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교회들이, 사회 내 진보적인 정치세력의 약진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행보에 나선 것이다. 정권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반정부집회를 갖고, 지난 선거에는 장로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발 벗고 나서더니 이번에는 아예 기독자유민주당이라는 기독정당까지 결성하여 선거에 나서려 하고 있다. 정치적인 무관심과 중립을 신앙의 미덕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적극적인 참여로 바뀌었고, 참여의 도를 넘어서 오히려 교회가 정치화될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양대 선거는 교회들에게 어떤 올바른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두 분의 발제는 중요한 방향제시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발제를 중심으로 해서 한국 교회에 가장 시급한 과제를 몇 가지 짚어보고 싶다.


1) 정치공동체에서의 책임의식에 관한 지속적인 교육이 중요한 과제이다.

선거를 맞이하여 이러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이런 후보를 선별하라는 식의 교육은 한계가 있다. 오히려 이렇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살피는 근본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 자체가 아직도 여러 가지 면에서 정치적인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가운데, 교회에게 성숙한 정치적 자세를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여전히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국가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가운데, 정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가운데 왜곡되이 형성된 목회자들의 정치이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공동체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예언자적인 기능은 둘째 치고,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감당치 못하여 오히려 정치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구체적인 정치행위에 대한 방법론적인 접근 이전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에 관한 통전적인 가르침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2) 정치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사실 접근이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정치를 정치 이상으로 보는데서 기인한다. 정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영원한 것, 완전한 것이 아닌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것들이다. 김선욱 교수는 정치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의견의 문제이며 수행적 진리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정치의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고,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적과 반대자를 구분하여 반대자를 정치의 필요조건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한국 교회가 담지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자칫 특정한 정치적인 이념을 절대시하고 심지어는 영화(靈化)시키는 우를 범하기 쉽다. 다분히 자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경해석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정치적인 신념을 하나님의 뜻 내지는 선으로 규정한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김고광 목사가 발제의 초두에 지적한 바 소위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나오는 것이다.

반면에 자기 반대편을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악으로 정죄하거나 심지어는 그 배후에 마귀의 역사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런 사고의 틀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대화는 불가능하게 되고 오히려 상대방은 제거해야할 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독일 교회의 사회윤리적인 초석이 되고 있는 바르멘선언 제5항은 “국가는 인간적인 통찰과 인간적인 능력을 따라서 경고 내지는 공권력 행사를 통하여 공의와 평화를 지켜야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정치가 인간적인 통찰과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서 형성 수행되므로, 정치적인 이론이나 결정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가치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선과 악이 아닌, 더 나은 선과 모자란 선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정치이성의 상대성과 불완전성으로 인해서 권력은 분립되어 상호 견제해야 하고, 여당과 야당이 있어야 하며, 다른 이론에 대한 열린 마음, 비판과 타협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복음의 진리 이외에는 모든 것을 상대화하면서 자기 사상의 아집에 갇힌 자들을 대화의 자리로 불러 사회적 평화를 이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스스로 정치사상을 우상화하면서 사회적인 갈등과 분열의 원인자가 되고 있다.

나아가 베이컨의 우상들처럼 교인 속에 형성된 정치적인 편견은, 그들로 하여금 정치사안의 객관적 사실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이를 김 교수는 “정치과잉”이라고 말하면서 패거리정치에 익숙한 한국사회와 교회의 고절적인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어떤 정치적 사안이 이슈가 될 때에 자신도 팩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군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불경하거나 신앙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우리 사회나 교회에 아직도 선동적인 정치인들이 먹혀들어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과잉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김 목사 발제의 결론에서 인용한 융엘의 말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정치신학의 성공여부는 기독교 신앙이 진실을 말할 능력과 의무감을 끝가지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한국 교회는 모든 정치적인 편견을 내려놓고 팩트를 말하고 팩트에 접근하는 자세를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순종의 자세와 아울러 상대적인 다양성에 대한 수용과 분별할 수 있는 비판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3)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정치적 방향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독교적 정치행위라는 것이 기존 정치의 프레임이 가진 가치를 돌아보게 하고 기독교적 가치에 따라 사안들을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에, 프레임에 대해 기독교적 가치에 따라 비판적 관점을 적용하면서 사태를 바라보도록 한다라면서 기독교적 정치행위의 핵심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정치이념에 우리의 틀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반공이건, 반미건, 우파건 좌파건 어떠한 정치이념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기독교적인 가치는 모든 정치 프레임 속에 담긴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본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모든 사회 정치이론과 행위들을 판단할 척도 즉 기독교적인 가치가 무엇인가에 귀착된다. 당연히 우리는 그 근원을 성서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김 교수가 초두에 지적하듯이 기독교인들이 성서적인 원리를 직접적으로 현실정치에 실현하려고 하는 위험이다.(1) 이런 문제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메시아니즘이나 신정정치, 근본주의의 모습으로 수없이 나타났고,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심심치 않게 선포되고 가르쳐지고 있다. 

그 반대의 위험도 있다. 이미 자기 속에 고착된 정치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쉐롱은 드 보날드의 예로 이런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프랑스혁명을 비난하고 과거 신분제도로의 복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삼위일체를 끌어들였다 :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므로 그것을 근거로 세상에는 세 개의 신분을 있어야 한다. 고로 이 신분의 질서를 파괴한 프랑스혁명은 불의한 것이다’ 드 보날드에게 있어서는 복고정치의 정당성이 이미 전제가 되어 있었다. 삼위일체는 이러한 정치이념을 공인받기 위해 오용한 것에 불과했다.(Vgl. D. Schellong, Die Gerechtigkeit als Gleichnis des Himmelreichs, zur politischen Ethik Karl Barths, in: Karl Barths Theologie, Aufnehmen und weiterdenken, Tagung der Evangelischen Akademie Baden S.54-74)

이런 문제는 보수적인 그룹뿐 아니라, 제 3세계의 정치신학등 진보적인 그룹에서도 유의해야 할 점이다. 민족, 민중해방을 절대선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회정치적인 눈으로만 해석하려고 함으로 자신들의 정치이론을 뒷받침하는 정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교회의 일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것이다. 그 말씀 속에서 개별적인 정치 사례보다는 국가가 지향해야할 일정한 방향과 지속적인 노선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을 얻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방적이고 연역적 원리에서가 아니라, 정치의 통전성 속에서 해석되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인간적인 통찰과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서 세워진 정치세계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김 교수는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현실 정치와 기독교와의 관계를 의미 있게 고민하려면, 성서로부터는 사회, 정치적 원리에 대한 이해를 얻고 현실로부터는 정치 작동 원리와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은 뒤 이 둘을 지혜롭게 연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목회자나 신학자와 정치학전공자들의 지속적인 만남이 중요하다.

이 두 영역의 상호작용(Wechselwirkung/ interchange)이 반복되면서 성경과 정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고, 점차로 공허한 이론이 아닌 실질적인 방향과 노선을 찾아가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후버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성경을 갖고 “단순한 연역적인 도식이나 또는 반대로 현실상황에 종속된 결정론”을 따르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W. Huber, Gerechtigkeit und Recht, S.126.)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기독교적 정치윤리는 정치공동체가 갖는 다양한 프레임의 가치방향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독교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정치적인 정황 속에서 찾아가는 일이야말로 교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기독교 정치인이란 교회의 직분을 가지거나 교회에 적을 둔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기독교적인 가치를 정치영역에서 실천하려는 정치인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후보자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를 갖고 선택하기 보다는 이러한 기독교적 가치에 얼마나 가까운 정책과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냐를 갖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기독교적인 정치행위는 기독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독교적인 가치를 사회 속에 실현하는 일이다. 정치인으로 나서거나, 그런 정치인을 선출하거나, 또는 이러한 잣대를 갖고 사회비판적인 자리에 서거나간에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국가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세워가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믿음의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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