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 “도래한 재난과 무력한 기독교”


2011년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다. 연초부터 이른바 ‘장로 대통령’을 배출한 한국의 대표적 교회에서 오래된 교회 내분의 결과로 담임목회자 폭행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또 다른 대표적 교회에서는 교회 건축을 둘러싼 특혜 의혹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였다. 또 장관 청문회에서는 후보자가 교회에 낸 헌금이 그 교회에 다니는 대통령을 의식한 일종의 ‘뇌물’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사태까지 벌어져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국교회에 닥친 시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위상이 급상승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대표회장 선거를 둘러싼 내홍으로 신.구 회장 측이 가처분 소송을 벌이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스스로 금권선거 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세상보다도 교회선거풍토가 타락했다’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 대지진은 하나님을 멀리한 탓”이라는 발언이 일파만파를 불러 일으키는 등 교회 내 갈등과 추문, 잇따른 ‘설화’(舌禍)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가 갈수록 땅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가운데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사람은 17.6%에 불과해 6명당 한 명꼴이었으며, 해마다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현실 탓인지, 최근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어떤 크리스천 지식인 모임에서는 “도래한 재난과 무력한 기독교”라는 표현이 발제제목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에서는 일본이 대지진과 쓰나미, 방사선 피해로 시련을 겪고 있지만, 한국 땅에서는 교회가 대재난을 맞은 꼴이다.


II. 언론보도에 비춰진 한국교회

1) “조선일보여 너마저도”

한국교회언론회가 2010년 상반기 중앙일간지(국민, 경향, 동아, 문화, 서울,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 한국경제)의 종교와 관련된 보도 내용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불교 관련 보도가 가장 많아 중앙일간지 전체 보도의 40%를 차지했다. 뒤이어 기독교가 25%, 천주교가 20%, 기타 종교가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한 내용 중에서 기독교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보도를 한 언론은 한겨레로 20.41%를 차지했다. 다음이 한국일보로 8.63%, 세 번째가 경향으로 7.25%, 4위가 문화일보로 5.37%, 서울신문이 5위로 4.55%, 중앙일보가 3.7%로 6위이며, 동아일보는 1.4%를 할애하고 있으며,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는 부정적 보도를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언론회가 집계한 이 통계는 2010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모든 언론을 직접 모니터하여 통계화한 것이다.
필자는 최근 우리 언론에 비춰진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20년이 넘는 필자의 언론인 생활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움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 한국교회언론회에서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자제하고 있는 언론으로 조선일보를 거명했지만, 필자가 최근의 기사를 들여다보니 그같은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음을 역력하게 느낄 수 있었다.

● 1월 20일 조선일보 아침논단 윤평중 한신대 교수 <열린 교회에 성역 없다>
부제; 불미스러운 교회엔 공통점..카리스마 지도자/ 종교재벌
● 조선일보 2월 15일 사설 <여권법 개정과 ‘위험한 선교’ 문제>
고 이태석 신부의 사례를 들어 높이 평가하면서 “정부가 법으로 여행자유를 제한하는 선택을 하기에 앞서 종교계가 스스로 해외선교 방식을 바꾸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결론
● 2월 16일 김성영 전 성결대 총장 기고 <한국교회, 스스로 개혁해야 산다>
● 2월 19일 조선닷컴 블로그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강도의 소굴이 된 교회, 이대로면 기독교 신자
는 ‘지옥불’ 신세>
비록 조선닷컴 블로그회원의 인용 게시물이기는 하지만 조선일보 사이트에 게재됐으리라 상상하기 어려운 글.

올해 들어 개신교에 대해 싸늘해진 여론은 언론보도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회언론회가 1월초부터 3월 23일까지 일간지의 개신교에 대한 보도를 분석한 결과 총 159건의 보도 가운데 긍정 보도는 4.4%, 사실보도는 32.7%인 반면에 부정적 보도는 무려 62.9%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부정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한겨레신문이 100%, 한국일보가 77.8%, 한국경제가 69.2%, 중앙일보가 68%, 경향신문이 64.7%, 서울신문이 60%, 동아일보가 57.1%가 되고 있으며, 문화일보, 조선일보, 매일경제가 각각 50%의 비율을 보이고 있어, 모든 언론 보도를 평균적으로 볼 때 62.9%가 부정적 보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껏해야 20% 남짓하던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이렇게 수직상승한 것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초에 소나기처럼 이어지던 이같이 비판적인 보도는 최근 들어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 조선일보의 6월 초 개신교 관련 보도
‘빈들에 외치는 소리’ 강원용 목사 5주기 추모 문화제 열려
교회협 “北비밀접촉 정부 신뢰 잃어...北도 책임있는 자세를”
“교회, 지역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한기총 정상화 특별총회 7월 7일 개최

이같은 보도의 변화는 동정론 내지 유예론, 즉 교회의 자정노력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으니 조금 호흡을 고르며 지켜보자는 평가에 의한 것이지만, 교회 스스로의 자기개혁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어떤 분위기로 또다시 반전될 지는 예 측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2) ‘교회청문회’가 된 ‘장관 청문회’

지난 5월 24일 진행된 유영숙 환경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장관후보자 청문회는 마치 소망교회에 대한 청문회와 같았다고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영숙 소망교회 헌금 논란”
● MBC “유영숙 후보 청문회, 소망교회 거액헌금 논란”
● 머니투데이 “유영숙 청문회 최대 화두, 소망교회”

논란의 초점은 유영숙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전후해 소망교회에 출석해 권력과 줄을 대려 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원래 소망교회에 출석했었는데 한동안 뜸했다가 다시 출석한 것이라는 해명이 나오자 이번에는 남편의 출마를 위해 대전의 모 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다.
급기야는 유장관이 갑자기 소망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했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지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교회헌금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야기되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당사자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많을 것이다. 왜 강북에 사는 사람이 저 멀리 강남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냐는 의심에 대해 분명 본인 나름대로 해명할 바가 있었을 것이며, 헌금 역시 본인의 고액헌금 사실이 대통령에게까지 알려질 리가 만무하다는 해명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장관후보자의 청문회에서 왜 특정 교회가, 그리고 교회헌금이 논란이 되는 희대의 장면이 연출되었고 이를 언론과 독자들이 의혹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며 증폭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권력의 단맛을 즐기려 한다는 불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주소라 할 것이다.




III. 한국교회는 자기정화를 해왔는가?

1) 반복, 또 반복되는 사건

필자는 <기독교사상> 2010년 11월호 특집 ‘한국교회 걸림돔, 디딤돌’이란 주제의 여는 글로 한국교회의 걸림돌에 대해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자료를 뒤져 보았다. 그러다가 필자가 어느 잡지 2004년 신년호에 기고한 글이 눈길을 끌었다. ‘2004 한국교회 경계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이 글을 다시 읽어 보면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점은 해결되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는지,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는 7년 전 글에서 새해를 앞둔 기독교인 사이에서 화제가 된 사건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사석에서 조용조용하게 그러나 어느 이야기보다 큰 확산력을 갖고 회자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인 인천 ㅍ교회 장아무개 목사의 ‘과로사’ 소식이었다. ‘과로사’라는 교회  측의 공식발표와 달리 장아무개 목사가 30대 여신도의 오피스텔에 밤늦게까지 단둘이 있다가 남편이 찾아오자 베란다로 피신해 매달려 있던 중 결국 힘에 겨워 추락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은 주요 언론의 익명보도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소문이 확산되면서 목회자뿐 아니라 알 만한 모든 기독교인들의 연말 최대 화젯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화두로 내세우며 ‘한국교회가 경계해야 할 요소’로 무엇보다도 먼저 ‘실종된 기독교윤리’를 지목하였다. 또 우리가 경계해야 할 목회자들의 도덕성 문제는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 문제뿐만이 아니라면서 일부 목회자의 ‘교회의 사유화’ 논란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세 번째로 지적한 한국교회에 만연된 또 한 가지 비윤리적 모습은 바로 선거와 관련된 문제였다. 총회장 선거열풍에서 비롯된 금권선거 시비는 급기야 교단과 기관의 주요 직책의 선거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필자는 7년 전의 글에서 개탄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도덕성 문제와 더불어 필자는 당시 인터넷에 확산되기 시작한 ‘안티기독교운동’의 원인을 분석하며 한국교회의 게토화 현상에 대한 큰 우려를 표명하였다. 필자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게토화되어가는 이유로 전통문화에 대한 배타적 행태와 더불어, ‘붉은 악마’처럼 기독교 교리와 어긋나 보이는 사안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보편적 논리를 앞세우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도취해 기독교적 논리로 비기독교인들을 강압적으로 설득 내지 압박하려 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런 상황을 7년 만에 반추해 보면서 필자가 안타깝게 내린 결론은 한국교회 현실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욱 퇴보하는 느낌조차 들었다는 것이다. 교계 기자로 20년 이상 지내온 필자의 주변 동료들이 한결같이 하는 푸념이 “교계는 안돼” 라는 자조적인 말이다. 교계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를 해봤자 “교계언론이 은혜로운 기사를 써야지 왜 그러느냐”면서 넘어간다는 것이다. 은혜를 잃어버리게 만든 문제점은 슬쩍 덮어버리고 그 사실을 보도한 언론만 문제삼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초년병 시절에는 교회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에 불타올라 열성을 보이던 기자가 5년, 10년차가 되면서 냉소적으로 변하고 사명과 보람을 못찾겠다며 교계언론을 떠나는 경우조차도 목도하게 되는 현실이다.

2) 실종된 교회법, 대신 사회법으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3대 교단의 하나인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지금 2년이 넘게 법적 소송에 휘말려 심각한 내홍을 겪고있다. 교단선거법에 의해 피선거권자 자격이 없는 인물이 정치력을 발휘해 감독회장 선거에 끝까지 나섰고, 이로 이해 파행으로 치러진 선거는 결국 법적 논란에 휘말려 무효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 6천 교회에 교역자 만여 명, 신도수 백육십만 명에 이르는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대표자를 법원이 선임한 예장합동 측 장로가 맡아서 교단을 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개교회나 단체들이 교회법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법적 소송으로 가는 경우는 이미 한국교회에서 드물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심지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의 하나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조차도 지금 대표회장 선거절차의 정당성문제로 법정 소송에 휘말려 있다. 대표회장 선출과정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전 대표회장 측 인사들이 길자연 목사의 대표회장 선출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법정 소송을 제기하였고 법원은 이같은 주장을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이면서 중립적 인사로 직무대행을 선정하였다.
이에 대해 한기총 내부에서는 “어떻게 일개 집사가 한국교회 대표기관의 수장 자리를 맡을 수 있냐”는 식으로 반발하였지만 실정법의 권위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법원이 선정한 직무대행이 청문절차를 거쳐 7월 7일로 임시총회 날짜를 잡았고, 결국 이광선, 길자연 두 당사자가 화해하며 직무대행의 결정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를 소송당사자들이 수용하지 않고 있어 자칫 대표회장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는 교회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례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는 스스로의 도덕적 규법을 준수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발생한 사건조차 스스로의 규율로 해결하지 못하며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있는 현실인 것이다.

3) 그래도 희망이

이처럼 한국교회 현실은 날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동시에 최근 들어 분명 달라진 점 하나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으니, 그것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교회 안에 널리 퍼지면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평신도지도자인 손봉호 교수가 ‘한기총 해체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데서도 상징적으로 감지된다.
‘온화한 성품’으로 널리 알려진 손 교수는 10여 년 전 이른바 ‘교회 세습’ 문제로 교회 안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고조될 때 교회개혁운동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면서 교회개혁실천연대가 기윤실에서 별도로 독립하도록 했었다. 그런 손 교수가 이번에는 직접 교회 개혁의 깃발을 든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교회 안에 공감대가 확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한기총 해체와 한국교회의 회개를 촉구하는 기도회가 여러 교단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희망의 조짐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지난번 열린대화마당에 이어 오늘 같은 자리를 마련한 것도 한국교회 스스로의 노력에 희망을 걸게 하는 작은 움직임이라 할 것이다. 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교회개혁을 위한 비상회의를 제안한 것도 주목할만한 움직임이라 할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들이 각개약진에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의 거듭남을 향한 거대한 물결로 합류할 때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새롭해 해주시고 더욱 귀하게 쓰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IV. 나오는 말

한국교회는 분명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과도하게 비판을 받는 측면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장로 대통령이 되면서 한국교회가 큰 특혜를 받은 것처럼 비난하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는  측근 몇사람이 혜택을 받았을지언정 한국교회 전체가 덕을 본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정부가 기독교 편향 오해 때문에 다른 종교를 더 의식하고 배려한다는 지적도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일부 교계 인사들의 ‘경솔한 언동’ 때문에 오해를 받는 면이 크다. 그렇게 보면 이 역시 한국교회가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기는 하다.
‘장로 대통령’을 내세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신앙으로 포장해 길거리에 나서는 인사들로 인해 한국교회가 정치화, 권력화 됐다는 비판을 받고,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 같은 돌출적 행동으로 인해 공격적, 적대적이라는 지적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 예전 같으면 조그만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일도 이제는 전국민적 화제로 부각되는 것이 인터넷과 SNS가 기성언론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디지털미디어시대의 현실이다. 그만큼 교회 지도자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언행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비춰질지, 그리하여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며 사려깊게 행동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지금은 ‘교회는 교회의 방식과 논리가 있는데 세상기준으로 비판하면 안된다’거나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가 얼마나 큰데 왜 몰라줘’ 라는 식의 반응이 더 이상 가능하지않은 시대다. 선교초기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교하기위해 지혜를 짜냈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기독교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우리 사회환경 속에서 선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지혜로운 처신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 한국교회 안에서 어떤 사건이 터진다면 그 일은 덮으려 한다고 덮어지는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적나라하게 공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느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된 언행이나 개교회의 문제는 ‘우리들끼리의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문을 닫는 결과를 초래하는 크나큰 신앙적 범죄임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 교계에서는 한동안 풍미하던 ‘1200만 교인’이라는 말을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2005년 통계청 조사결과를 인용해 860만 명이라는 소리가 많아지더니 급기야 요즘 들어서는 실제로 정상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은 5,6백만 명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들려오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세가 역전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2005년 센서스 조사가 발표됐을때만 해도 이같은 역전 우려에 대해 ‘그렇게까지 될 리는 없다’거나 ‘먼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현실적 우려로 바뀌고 말았다. 무엇이 이렇게 한국교회를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오늘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숙제임이 틀림없지만, 해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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