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0~30대 종교 성향 보고서

청년기에는 인생의 중요한 고개를 여럿 넘는다. 대학 입학, 첫 직장, 사회생활, 주택 구입, 결혼, 게다가 요즘 많은 젊은이들은 믿음을 버리는 고개도 넘어 간다.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던 몇 년 전, 아버지가 목회자인 친구가 집으로 놀러왔다.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는 “나 이제 교회 안 나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그냥 하나님을 떠났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 친구를 마지막 봤을 때가 떠올랐다. 프라미스 키퍼 (Promise Keepers) 집회에서였다. 두 눈을 꼭 감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예배드리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의 가족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삼촌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항상 삼촌을 위해 기도했어.” 그 친구는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분명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을 거야.”

그즈음에 나는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같이 농구하던 친구, 같은 교회 성가대에서 섬겼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젊은 자매, 교회 청년회의 친구 등 많은 이들이 믿음을 버렸다. 한때 그리스도인이었음을 드러내고 말하는 사람들 외에도, 말없이 교회를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30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이런 기독교 이탈 사례가 덜 들려오고 있지만, 그저 정도가 조금 약화됐을 뿐이다.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추세의 일부일 뿐이다. 사회학자들은 현재 많은 미국 청년들이 기독교를 멀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이 변화를 면밀히 살펴보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그 누구의 자녀도 아니다

최근 연구들은 이 경향을 집중 조명했다. 2009년 미국종교분류서베이(American Religious Identification Survey)의 조사 내용 중 한 부분이 눈에 띈다. 스스로 ‘무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990년 8.1%에서 2008년 15.0%로 약 20년 동안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이 경향은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인 현상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무교’란에 체크하는 ‘종교 없는’ 이들은 종교 성향이 짙지 않은 미국 동북부에서부터 보수적인 바이블벨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에서 유일하게 증가세를 보인 그룹이었다. 무교는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많았다. 1990년 11%였던 종교가 없는 청년(18~29세)은 2008년 22%로 늘어났다. 조사에 따르면, 무교라고 밝힌 사람의 73%는 종교가 있는 집안 출신이었다. 무교의 66%는 소위 ‘변절자’로 분류되는 무리였다.

다른 설문조사 결과들은 더 암울하다. 저명한 정치학자인 로버트 퍼트남과 데이비드 캠벨은 공저 「아메리칸 그레이스」 (American Grace: How Religion Divides and Unites Us)에 발표한 연구를 2009년 5월 개최된 ‘종교와 공공생활에 관한 퓨포럼’에서 소개했다. 그들은 “미국의 젊은이들은 과거보다 다섯 배에서 여섯 배에 이르는 무서운 속도로 종교를 버리고 있다”고 했다(현재 무교 비율: 30~40%, 30년 전 무교 비율: 5~10%).

이러한 추세에 상응해 교회 참여도도 떨어졌다. 레이너리서치에 따르면, 약 70%의 미국 청년들이 18세와 22세 사이에 교회를 떠난다. 바나그룹은 교회에서 자라난 사람들의 80%는 그들이 29세가 될 무렵 교회로부터 “벗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바나그룹의 데이비드 킨나만 회장은 이 현실을 가혹하게 표현했다. “같이 교회를 다닌(혹은 같은 종교의 공동체를 이룬) 학생 전체를 찍은 단체사진이 있다고 해보자. 굵은 매직을 들고 사진의 학생 중 4분의 3을 지워봐라. 그것이 향후 20년 동안의 영적 여정에서 교회를 떠나는 학생들의 대략적인 수가 될 것이다.”

킨나만 회장은 자신의 저서 「비그리스도인」 (unchristian)에서 수천 명의 청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낸 사실을 소개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대다수의 미국인, 특히 청년들은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이다.” 킨나만 회장은 미국 청년의 65%가 한때 예수님께 헌신했다고 했다. 즉,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이 옛날에는 우리 친구였고, 어제의 예배자였으며 예수님께 기도하는 어린이였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

킨나만 회장의 말을 약간 비틀어 보면, 문제는 비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형제, 자매, 자녀들이며 친구들이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거했던 이들이다.


▲ 미국 젊은 세대(18~29세)의 종교 성향 변동 그래프 ⓒ PEW FORUM ON RELIGION & PUBLIC LIFE

그 사람들 언젠가는 그냥 돌아오지 않을까

연구자 가운데 일부는 20대가 영적으로 유리되는 현상이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젊은이가 교회를 떠나는 것을 일시적 현상으로,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일요일 아침에 ‘알람을 끄느냐 마느냐’에 달린 문제 정도로 본다.

사회학자 브레들리 라이트는 「증오로 가득 찬 위선적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그들의 거짓말들」 (Christians are Hate-Filled Hypocrites…and Other Lies You’ve Been Told)에서 청년들이 믿음을 버린다는 것은 현대 기독교의 ‘근거 없는 주장 중 하나’라고 말한다. 라이트는 어느 세대나 선대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왔다며 반기를 들었다. 라이트는 젊은 시절 자신도 “머리를 길게 기르고 요란한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며 “당시 어른들이 그런 모습의 10대들을 보면서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을까?”는 질문을 던진다. 라이트는 “앞날은 모른다”며 한발 물러서기는 하지만, 분명 과거와 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젊은이들은 대개 가족을 벗어나면서 종교와 멀어지지만 가정을 꾸리면서 다시 종교를 찾게 된다”고 말한다.

베일러대학교의 로드니 스타크 사회학 교수 또한 흥분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베일러대학에서 실시한 연구 또한 앞서 언급한 다른 조사 결과와 동일하지만, 스타크 교수는 이에 흔들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교회 출석률은 장년층보다 원래 낮은 경향이 있다”라고 한다. 스타크 교수는 젊은이들이 회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결혼을 하고, 특히 자녀가 생기면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온다. 이는 모든 세대에서 반복된 현상이다.”

이러한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라이트와 스타크 교수와 같은 학자들은 기독교의 종말에 대한 성급한 예견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북미의 교회가 멸종 위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젊은 층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오늘날 청년이 종교를 떠나는 속도는 옛날보다 훨씬 빠르다. “과거의 다섯 배에서 여섯 배”라고 퍼트남과 캠벨이 말했다.

둘째, 인생의 단계라는 주장은 더 이상 유효성이 없어 보인다. 오늘날의 청년기는 과거와 다르다. 우선 청년기가 길어졌다. 결혼, 꿈, 자녀와 같이 청년들을 다시 종교로 끌어들이는 주된 사회학적 요소는 20대 후반, 또는 30대까지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2~ 3년 정도 잠시  떠났다가 회심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10년 이상 떠나 있으면 회심은 상당히 가능성이 낮은 일이다.

셋째, 광범위한 문화의 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이전 세대들은 잠깐 동안 반항했을지라도 주된 유대교 문화를 유지했다. 과거에는 믿음을 버렸던 이들을 회심하게 했던 문화적 요소들이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가 지배했던 시절 이후에 등장한 다문화 사회에서 성장한 이들에게는 이러한 요소들의 역할은 약화됐거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2, 30대 청년들이 떠난다. 도대체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을 한다. 그러나 결국 도덕적 타협이라는 결론이다. 십대 소녀가 대학에 들어가 파티를 즐기기 시작하고 젊은 남자가 여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한다. 머지않아 믿음과 행동의 충돌이 견디기 힘들어진다.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고 죄를 짓는 생활 방식을 버리기 싫어서 결국 기독교를 버린다. 지적인 회의가 들어서라거나 교회에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그저 진짜 이유를 가리기 위한 연막장치일 뿐이다. 우리 부모님이 말씀하시듯 “그들은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바꿨다.”

이런 이유가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교회를 떠난 대부분의 청년들은 인정할 것이다. 그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이전에 그리스도인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중 도덕적 타협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고 정직하게 답한 사람은 단 2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지적 위기가 온 시점이 기독교의 도덕성을 벗어나는 생활을 시작했을 때와 공교롭게도 맞아 떨어졌다고 답했다.


▲ 사진은 어느 집회에서 찬양을 드리는 청년들의 모습. 레이너리서치에 따르면, 약 70%의 미국 청년들이 18세와 22세 사이에 교회를 떠난다. ⓒ 유성문

나머지 이야기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 도덕적 타협이 전부는 아니었다. 한 친구는 포스트모던과 관련해 기독교에 대한 의혹이 있었다. 그가 교회를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아버지가 알았을 때, 아버지는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순전한 기독교」 (홍성사 역간)을 권했다. 그러나 저자 C.S. 루이스의 논리는 이 친구의 고민을 증가시켰다. 그는 “모든 합리성이 서양철학 전통에서 왔어. 서양철학이 진실을 찾는 유일한 방법 같지는 않아”라고 말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기독교에서 지적 만족을 얻지 못해서 떠난 사람도 이었다. 3명의 자녀를 둔 27살 셰인은 ‘신 무신론’ 문학에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그는 ‘고난을 겪어보지 않은 루터교인’으로서 자랐으며 예수에 빠져 적극적으로 청년회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에서 증언하듯이 신중하게 천천히 말했다. “나는 무신론자이며 경험주의자다. 종교나 심령, 점성술 같은 초자연적인 것은 믿지 않는다.”

그리스도인한테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30대 초반의 케이티는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의 성도 두 명에게 성추행 당했다. 케이티의 어머니는 아직도 가끔 그녀를 억지로 교회에 데리고 간다. 한번은 케이티 어머니의 친구가 그녀를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케이티의 어깨를 잡았다. “얘야, 마음이 많이 강퍅해졌구나”라고 말했다.

당시를 떠올리자 케이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말에 뭔가를 느꼈다”고 그녀는 말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녀는 잠시 멈췄다. “하지만 단단해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생이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떠난 사람 중에는 다른 영적 존재를 받아들인 사람도 소수지만, 꽤 있다. 그중 많은 사람이 위카(Wicca)를 택했다. 모닝호크 아폴로(개종 후 위카식으로 바꾼 이름)는 솔직하게 교회를 떠난 이유를 말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의지에 순종하게 만들어서다. 위카에서는 정 반대다. 개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신을 믿지만 그 신들은 우리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모닝호크가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는 것은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는 “위카의 새 신자 중에서 어렸을 적에 교회 안 다녀 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다양하다는 데에 놀랐다. 이를 뭉뚱그려 “청년기의 반항” 때문에 기독교를 떠난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은 있었다. 기독교를 떠나는 원인은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내에 있었다. 물질주의적 세계관과 유행하는 영적 존재를 믿는 사람들마저도 교회 안에서의 일 때문에 기독교를 떠났다고 한다.

무엇이 그들을 떠밀어 냈을까? 다시 말하지만, 떠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이들은 표면적으로 기독교의 모양새를 갖춘 것들에 속아, 진짜 기독교를 접해보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미국 10대들의 신앙을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10대들이 흔히 “도덕적 치유의 이신론”이라고 부르는 종교를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종교는 신을 아주 먼 곳에 있는 창조자로 정의하고 ‘선하고 친절하고 올바른’ 사람을 축복한다고 믿는다. 신앙의 주된 목적은 믿는 자들이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고 기뻐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0대들은 어디서 이런 신앙을 배웠을까? 유감스럽게도 암시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대부분의 교회에서 모든 연령대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찾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이건, 헌신이 부족한 소모임이건 이 신앙은 교인들의 생각에 녹아 들어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이렇게 미숙하고 실용주의적인 생각이 진짜 현실에 부딪혀 깨질 때, 나이 불문하고 누구든 뒤돌아 떠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 2008년 미국 사회학협회 회의에서 학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갖는 의문을 증폭시켜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 Piotrus

그리스도인의 응답

2, 30대가 떠나는 이유는 복잡하다. 오늘날의 우리 문화가 젊은이를 교회에서 밀어내는 가장 큰 이유이지만, 별다른 대처 방도가 없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도 하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당연히 당혹스럽고 절망적이겠지만, 그 슬픔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어른이 된 아들이 믿음을 잃어서 실의에 빠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아들이 “사탄같은 것”에 빠져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의 아들은 흔해빠진 다신론자였던 것이다. 그는 예수를 사랑했지만 그저 여러 영적 권위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의견과 완전히 달랐다. 그런 아버지와 아들이 신앙을 논하는 것을 그리다 보니 속에서 겁이 났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떠난 사람과 대화할 때 악의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공격적으로 비판적인 설교를 하거나, 방어적인 자세로 꿈쩍도 않으며 마음을 닫아 버린다.

인터뷰를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기 전에 자신이 가졌던 의혹을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그럴 때마다 거의 무시당했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무례한 질문’을 한다고 친구들에게 면박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개는 자신이 고민하는 질문에 진부한 대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 대답에 수긍하지 않는다고 혼이 난 적도 있다고 했다. 한 명은 실제로 뺨을 맞았다고 했다.

2008년 미국사회학협회(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회의에서 코네티컷대학교와 오리건주립대학교의 학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갖는 의문을 증폭시켜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라고 보고했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솟아나는 의혹들을 그리스도인 친구나 가족과 나누면, 돌아오는 것은 진부하고 쓸데없는 대답뿐이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적절한 프로그램이 교회에 없는 경우가 많다. 성, 나이에 따른 소그룹, 중독극복 프로그램, 새 신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넘쳐나지만, 신앙과 싸우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다행히도 다음의 책 2권은 이것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톰 레이너와 샘 레이너 공저 「본질적 교회? 교회를 버리는 세대 되찾기」 (Essential Church? Reclaiming a Generation of Dropouts)와 에드 스텟져의 「죄인을 구원하심: 교회를 모르는 젊은이와 이들에게 다가가는 교회」 (Lost and Found: The Younger Unchurched and the Churches That Reach Them)는 교회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도와준다.

물론 프로그램 하나를 개설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겉만 그럴듯한 예배나 마음이 없는 봉사의 효과를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오직 기도와 사려 깊은 교제로 관계를 맺을 때만이 현 이탈 현상이 조금이나마 감소할 것이다.

청년층에서부터 장년층까지 어떻게 사역할 것인가를 재고해 보는 것이 시작일 수 있다.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알리는 것이라면, 피자나 비디오 게임,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맞는 예배, 헌신이 부족한 소모임 모두 괜찮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제자훈련이나 교리문답을 대체할 순 없다. 믿음을 약화시키는 유혹은 항상 있어왔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엡 4:14) 모든 성도의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라고 권면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믿음을 버린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 유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즉, 그들이 가진 의혹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이들의 의문은 그저 영적인 갈망이 만들어낸 뒤틀린 언어일 뿐이다.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이해하면서 신뢰의 고리를 만들면, 그들이 돌아오는 길을 비출 준비가 될 것이다.

Christianty Today 2010년 11월호·박효진 옮김
드류 딕(Drew Dyck)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교회사역미디어그룹의 매니저이자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세대」 (Generation Ex-Christian)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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