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옥한흠 목사님은 이 세상에 계시면서 불꽃같은 눈으로 한국교회와 시대를 그냥 지켜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우리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원로이셨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옥 목사님을 모시고 함께 동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그 분이 도달한 하늘나라는 그 분을 사랑하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추상명사가 아니고 우리들의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옥 목사님은 그분이 그토록 흠모했던 예수님의 우편에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뻐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고 응원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옥 목사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고 매일 새벽기도 시간에 히스기야 왕에게 허락하셨던 은총을 베풀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분이 감당하셔야 할 일이 더 있어서만은 아니였습니다. 옥 목사님은 이 땅위에 오셔서 그분에게 맡겨진 몫을 빈틈없이 휼륭하게 잘 감당하셨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는 바울사도의 고백이 목사님의 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전에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던 주님과 같이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을 최선을 다해 이루셨습니다. 옥 목사님은 언제라도 주님이 부르시면 죽음을 당당히 맞이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준비 오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라는 시편기자의 마음을 그 분의 마음에 담고 살아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저와 나눈 마지막 메일에서 성경이 말하는 평균연령에 다다랐다고 고백하면서 82세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목사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그 곳이 그리워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시고 먼저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평소에 스데반의 죽음을 흠모하면서 스데반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 성령 충만하게 죽기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위해서 살려고 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고, 스데반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했던 것처럼 나도 그 사랑에 감동한 사람이니까 ‘스데반이 죽은 것처럼 나도 잘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스데반의 가사를 읽을 때마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1)
그 분이 그렇게 평소에 원하시고 기도하셨던 모습대로 그 길을 가셨지만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감당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소천소식을 듣고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줄을 서있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문 행렬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 분이 깨웠던 평신도들만이 아니라 그 분의 목회철학에 동의하고 그 분이 지향하는 제자훈련 목회를 실천하는 교파를 초월하는 목회자들의 뜨거운 추모 열기를 보면서 목사님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충일한 삶을 살았으며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 Vergangenheit und Zukunft
옥 목사님의 보내드리면서 위로를 받고 감사드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분의 삶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가 재현되어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발제자가 영향을 받은 20세기 개혁신학을 대표하는 스위스가 낳은 신학자 <칼. 바르트>는 그의 삶과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두 스승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을 때 “과거와 미래Vergagenheit und Zukunft” 2) 라는 수상을 발표했습니다. 그가 따르고 존경했으나 안타깝게도 복음의 역사가 기껏 해야 민족중흥의 이데올로기로 상대화되는데 그친 한 스승의 삶에 대해서는 “과거”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바르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스승의 삶은 “현재가 되기도 전에 과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아쉬워 하면서 나직히 “아니오Nein”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와 반면에 다른 한 스승의 삶을 “미래”라고 명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가 축소되지 않고 온전히 재현되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바르트는 말하기를 그의 반대자들은 침묵하게 될 것이고 그 스승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부활의 역사와 함께 미래 가운데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스승의 삶에 대해서는 “그렇다Ja”를 선언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발제자는 옥한흠 목사님의 삶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가 온전히 재현되어 나타났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발제자는 옥한흠 목사님의 삶을 “미래”라고 명명하고자 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믿음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와 함께 미래 한 가운데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역사와 오고 오는 세대들 가운데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영광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고 닮기를 원했던 한 제자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따르기를 원하는 제자의 삶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가 현재화되어 나타나는 것 이상의 더 큰 영광이 있겠는가! 생각을 해 봅니다.
따뜻한 예언자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사랑을 받던 옥한흠 목사님은 태풍 콘파스가 한 반도에 상륙하여 서울을 강타하던 날 아침 소천하셨습니다. 필자는 소천 소식을 접하면서 회오리바람에 실려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승천한 엘리야 선지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입관예배와 하관예배에서 같은 은유로 옥 목사님이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예언자였고 엘리아처럼 회오리바람으로 소천하셨다는 언급이 있어 발제자 개인만의 상상력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상력의 틀에서 생각해 보니 평소에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옥 목사님의 모습이 크게 부각되어 나타났습니다. 머리카락 하나라도 흩으려 트리지 않고 자기관리에 철저했고 그가 가진 힘을 철저히 억제하면서도 그가 살았던 시대의 바알적인 세력들과의 영적 대결을 피하지 않았던 그분의 예언자적인 기상이 엿보입니다. 자기에게 철저했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위상과 자존심을 훼손하는 바알적인 힘들에 대해서는 온 몸을 다해 저항했던 그 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불의한 현실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한없이 자애로운 따뜻함을 잃지 않으셨던 그 분의 모습이 벌써 그립습니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리라는 믿음 가운데 한 영혼을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기위한 제자훈련에 진력했던 모습은 선지자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양육했던 엘리야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한 영혼을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기 위하여 생명을 걸었던 광인의 열정을 가슴에 지닌 참 목자였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기상과 예수께 미친 광인의 열정을 가졌던 그는 떠났고 그분이 남긴 겉옷만 남았습니다. 업적에 메이지 않고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의 삶이 남긴 자취입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사랑의 교회, 국제제자훈련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교회갱신협의회 등이 그가 남기고 간 겉옷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서있는 자리는 그분이 남기고 간 한목협이라는 겉옷을 붙들고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외치던 엘리사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갖습니다. 그리고 요단 언덕에 올라 그가 남긴 겉옷을 붙들고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간구했던 엘리사의 간구가 우리들의 간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도 옥한흠 목사님의 삶 가운데 함께 했던 성령의 역사가 갑절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일치, 갱신, 섬김 Unity, Renewal, Diakonia
옥한흠 목사님은 한목협 창립예배에서 한목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치, 갱신, 섬김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이 목표의 실현이 우리에게 남겨진 겉옷의 유산인데,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 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목협은 무엇보다도 그의 교회 사랑의 신앙유산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옥한흠 목사의 생애는 한마디로 진정한 교회의 본질을 찾고 세우는 일에 집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는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와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목회자와 교회가 사느냐 죽느냐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한목협 목회자들에게 하셨던 옥 목사님의 교회 사랑 메시지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평생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또 저 자신이 성경말씀대로 살려고 조금씩 노력을 해왔는데 한 가지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만큼 예수님이 사랑하는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의 전부요 교회는 예수님의 비전 전부다 하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고 분명하게 저 자신이 깨닫게 되고 그러면서 교회를 보는 시각이 자꾸 달라지는 것을 저 자신이 인식을 하게 됩니다. 주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하셨는데 생명을 던질 만큼 사랑하는 이 교회가 얼마나 소중하며 또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이라면 이 교회를 놓고 주님이 오늘도 얼마나 하나님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겠는가! 이런 차원에서 나 같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불러서 내양을 치라 하시면서 교회를 맡기셨다는 것은 전율을 느낄 정도의 무거운 짐이라는 생각도 저 자신이 하게 됩니다.” 3)
제가 옥한흠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도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도정에서 였다고 회고합니다. 교단 파송 선교동역자와 신학연구를 위해 주어졌던 11년간의 독일 체재를 마감하고 그리던 조국에 돌아와 저는 교단 교육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단이 나아가야 할 미래의 교육을 책임진 저로서는 새 시대의 도전에 창조적으로 응전할 수 있는 확고한 교회론의 정립이 요구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속한 교단의 상황은 국내와 해외에서 폭넓은 선교 경험을 가진 한 평신도 지도자의 탄식속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를 억압했던 자들은 물러갔는데 우리는 우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통한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지향했던 우리 교단은 변화된 상황속에서 신앙의정체성을 확립하고 선교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하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교회상을 찾던 과정에서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고 사랑의 교회를 탐방하면서 옥한흠 목사님이 지향하는 교회에야말로 성경이 말하고 새 시대가 찾고 있는 새로운 교회의 파라다임이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자훈련 교육에 참여하여 이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우리 교단에 속한 상당히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 교육에 참가하였고 제자훈련을 목회현장에 접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속한 교단의 목회자들의 목회 성향을 대별한다면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 그룹이 가지고 있는 목회 방향의 공통점은 하나님나라 실현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한 수단에 있어서 차이점을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사회구조의 변혁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실현과 성령운동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실현, 그리고 개교회의 활성화를 통한 하나님나라실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1세기목회자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개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전초기지가 되어 선교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목회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병금 목사님을 모시고 목협을 창립하면서 옥한흠 목사님을 주제강사로 초청하였습니다. 몇 번이나 사양하셨으나 필자의 여러 번에 걸친 간곡한 요청에 결국 수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WCC의 경우를 예로 들어 하셨습니다. 그 핵심은 “WCC가 평신도를 선교의 주체로 파악한 것은 매우 선구적인 발상이었으나, 그들을 의식화만 시켰고 제자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보진영교회의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정확한 지적이었기에 우리를 놀라게 했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주제강연 후에 목사님과 나누었던 진지한 대화는 옥 목사님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그 후에 한목협 목사들이 모인 모임에서 목사님께서 당시를 회고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기장 목사들은 뿔 달린 사람들로 생각했는데 그 고정관념을 교정하셨다는 것과 진보진영에 속한 목사들도 저렇게 교회갱신을 위해 몸부림치는데 우리는 무엇이냐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 옥 목사님의 교단에 속한 뜻을 같이하는 목회자들을 모아 교회갱신협의회를 창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옥 목사님은 평생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교회와 신학교 졸업 후 섬겼던 교회에서 경험한 현존하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이상적인 교회를 세우는 데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분명한 목회철학을 가지고 주님의 교회를 처음부터 세워가는 모험의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특별히 성도교회 대학부를 섬기면서 발견한 제자훈련을 통한 새로운 교회의 가능성과 유학시절 발견한 사도성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본질회복이 그의 목회철학의 기본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발제자는 옥 목사님께서 생명을 건 모험과 실천을 통해 발견한 평신도들의 제자화를 통한 교회세우기의 모델이야말로 가장 성경적이고 이 시대가 요청하는 참 교회의 파라다임이라고 확신합니다. 옥 목사님은 이를 위해 먼저 신학적으로 빈틈없는 목회철학을 정립하시고 이를 30년에 걸쳐 목회현장에 적용함으로 그 진가를 증명하셨습니다. 현재 그의 목회철학을 받아들이고 제자훈련에 참여하여 제자훈련을 통한 건강한 교회의 목회에 뛰어든 수많은 엘리사들이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목회야말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목회임을 믿고 이를 실천에 옮김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좋은 교회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목도하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옥 목사님의 영향 아래 예원교회를 개척하고 제자훈련목회야말로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는 교회를 세워가는 일이라 확신하며 이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갈릴리의 광인이 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생애에서 좋은 영적 거장들을 만나는 축복을 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그 중에서 두 분의 신앙유산을 이어받고 발전시키는 것을 생의 남은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강원용 목사님과 옥한흠 목사님입니다. 한분은 에큐메니칼 진영을 대표하는 지도자로제 인생의 전반부에 만났고 다른 한분은 복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후반부에 만났습니다. 두 분이 가진 공통점은 어떤 경우에도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 율법이 되지 않고 현실 속에 능력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분은 복음의 기쁜 소식이 율법과 도덕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못견뎌하셨습니다. 이 두 분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계시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능력이 교회와 사회 속에 충만히 드러나게 하는데 관심과 열정을 쏟았습니다.
이 두 분의 차이점은 한분은 평신도들의 의식의 변혁을 통해 사회구조의 변혁을 이루어 아가페사랑이 구현되는 하나님나라를 꿈꾸었고 다른 한분은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깨워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나라를 성취하고자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두 분이 이를 통해 다다르고자하는 지향점은 같았지만 그 결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평신도들의 의식 개혁을 통한 사랑과 정의가 지배하는 하나님나라 실현의 강조는 신앙의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두 번째 회심의 영향력이 아직은 미미하게 감지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둘의 장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충하는 제자훈련의 모델이 창출되어야한다는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논의는 다른 장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해야 할 주제이기에 언급하는 정도에 머물겠습니다.
일치 Unity
옥한흠 목사님은 한목협을 창립하고 과제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개교회가 가진 보편성만이 아니라 한국개신교를 대표하는 연합체의 보편성도 확보되어야 교회의 대표성과 위상이 사회 속에 정립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는 일치라는 목표는 세계교회일치운동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먼 목표라는 사실이 여러 과정의 논의를 통해서 분명하게 인식되어졌습니다.
그래서 한목협은 옥 목사님의 지도력 아래 우리가 지향하는 일치가 세계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연방연합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입니다. 연방연합모델은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정체성과 교리를 묻지 않고 서로의 역사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한 지붕 아래 모여 협의회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현 세계교회협의회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WCC라는 지붕 아래 현재 297개 교단이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협의회에는 전혀 다른 전통과 역사를 가진 동방정교회를 비롯하여 진보보수교단들이 다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연방연합이 두 개이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연합시키자는 것은 신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파하고 일치 대신에 연합을 한국교회의 일치의 전략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이 연합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일치와 연합에 관계된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수년간에 걸쳐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The Association of Moderators for uniting Korean Churches”를 성취시킨 것은 지난 10년에 걸쳐 한목협이 이룩한 가장 값진 성과인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름을 드러내지 그림자행보를 하면서 헌신했던 옥 목사님의 겸양한 지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탁월한 덕성과 조정능력을 가지고 헌신했던 손인웅 목사님과 적절한 상황판단과 실천능력으로 헌신했던 전병금 목사님의 지도력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증언하고자 합니다. 이분들의 탁월한 지도력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한국 기독교 93%를 대표하는 26개교단의 교단장들이 결집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협, 한기총, 한목협 양 기구의 6인대표로 구성된 18인위원회가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이 되는 2007년에 양 기구를 통합하자는 로드맵을 이끌어내는 것은 감히 꿈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목협은 옥 목사님이 생전에 이루어 놓으신 성취를 바탕으로 적어도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며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해 헌신할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옥한흠 목사님의 신앙유산을 이어가도록 부름 받은 한목협이 계승해 가야할 미래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향후 10년을 내다보면서 연합과 일치를 위한 연구와 실천을 위한 바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머지 않는 장래에 적어도 명실공이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연방연합기구가 탄생되는 카이로스의 때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갱신 Renewal
옥 목사님은 “갱신”이라는 커다란 유산을 남겼습니다.
옥 목사님은 한목협 창립예배에서 아모스 3:7~8절을 본문으로 “부르짖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신 바 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 목회자들이 왜 한목협이라는 깃발 아래 모였는가를 묻고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사자처럼 부르짖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부터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우리를 통해 그 부르짖음을 듣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부르짖음을 듣지 못하면 일치와 갱신과 책임은 사치스러운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으면 일치를 위해 겸손해 질 것입니다. 들으면 갱신을 위해 옷을 찢고 들으면 병든 이 사회를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성직자들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남달리 강경하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4)
옥 목사님은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다운교회를 세워가는 과정 가운데서 평신도를 깨우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갱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가 끝나는 1999년은 유난히도 사회적인 비리가 줄을 이어 터져 나오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그 비리의 중심에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인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옥 목사님과 우리 목회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우리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목협의 이름으로 죄책 고백선언을 발표하기로 하고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조선일보, 한계레, 국민일보에 발표했습니다. 이 죄책고백에는 옥 목사님의 생각이 많이 반영되었고 목협이 발표한 성명 중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과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907년 상암경기장의 연합예배에서 “이놈이 죄인입니다” 라고 울부짖던 모습에서 한국교회의 세속화와 죄책에 대해서 그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지도자들의 총체적인 회개를 통한 교회의 갱신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스스로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는 자기억제의 삶을 살면서 목회자들이 성화되지 않으면 교회가 거룩해질 수 없음을 절실하게 깨닫고 이를 자기 자신부터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분의 삶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분이 그의 말과 행동이 불일치를 보이지 않고 그의 인격 안에서 통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밤이고 낮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응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부딪치는 문제들과 목회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놓고 예수님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생각하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에게서 배우기를 열망했습니다.
“표준을 낮추지 마십시오. 우리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은 완전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 고집스럽게 주님만을 응시하고 주님만을 본받으려 하는 자세가 결국 사역에 영광이 되고, 능력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능력을 갖고 있는 이상, 어떤 문제도 겁나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구름 떼처럼 일어난다고 해도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자이십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응시하는 몸부림이 그를 겸손하게 했습니다. 그분은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억제력의 장인匠人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유산을 이어받은 우리들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달려가면서 옥한흠 목사님에게 함께하셨던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도 갑절로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를 향해 매일매일 공격해 오고 있는 사탄의 시험을 결코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섬김 Diakonia
옥한흠 목사님의 평생 변하지 않고 견지하였던 목회철학은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겠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사 60:22)는 확신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항상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주목하였고 지극히 작은 자 한사람을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로 바로 세우는 일에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초창기 은평교회의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하였을 당시 교회의 주요멤버들은 가정부, 셋방살이 노동자, 구멍가게 아줌마들이었습니다. 한 많고 사연 많은 한 가정부가 병이 들어 옥 목사님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사택에서 3일장을 치루었던 이야기는 신문에도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 후에 인텔리들과 중산층들이 교회에 들어옴으로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변은 “우리는 목사님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교회도 사랑하지만 우리하고는 맞지 않는 교회다”였습니다.
옥 목사님은 평생 이들을 기억하고 마음에 두고 있었음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산업화의 소용들이 속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민중들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한 신학자들이 70년대 민주화투쟁의 과정 가운데서 이들의 실체를 보고 이들과 연대하려고 몸부림쳤던 같은 시기에 해당합니다. 한국교회 지성들이 산업화의 와중에서 민중들의 실체를 보고 그들과의 일치를 모색하는 몸부림이 민중 신학을 탄생시켰습니다. 한국교회 지성들이 민중의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을 선교의 주체로 받아들이고자 했는데 이 꿈은 미완성의 과제로 남았습니다. 두고두고 진보 보수를 넘어 한국교회와 신학이 직면해야 할 이상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교회의 주역이 되는 꿈은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꿈입니다.
한목협은 소외된 이웃과의 연대를 위해서 성탄절을 계기로 매년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성탄행사를 기획하고 이들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 왔습니다. 목협에 속한주요교회들의 성탄헌금 1/10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목협의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기독교 사회복지 EXPO”로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목협의 지도자들의 주도적인 지도력 아래 2005년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개최되었던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가 2008년 부산, 2010년 서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이 섬김의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교리는 우리를 나누게 하지만 섬김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는 확실한 에큐메니칼복지 신학을 바탕으로 앞장선 손인웅 목사님의 지도력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발제자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손인웅 목사님은 옥 목사님과 함께 시작했던 일치와 섬김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목협의 정신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간의 한목협 사역에서 부족했던 섬김의 영역을 활성화 시키고 심화 시킨 것은 손인웅 대표회장님의 지도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으며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남긴 신앙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가를 논의하면서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옥한흠 목사님과 같은 영적 거장을 모시고 한국교회의 일치, 갱신, 섬김을 향해 달려올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낡은 고정관념의 틀에 사로잡혀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이 서로 만나 서로가 가진 은사와 경험을을 나누면서 교회다운 교회를 향한 행진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를 가슴 뭉클하게 했던 표어는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의 만남이었습니다. 닫힌 보수와 닫힌 진보가 한국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발제를 마감하면서 평소 제가 교회일치 운동에 대해 품어왔던 생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 일치를 말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용어가 유래된 성경의 “오이쿠메네”라는 단어는 단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큐메니칼운동이라는 말은 단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사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 매일 자신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가 속한 환경을 변화시켜 가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걷는 도정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된 우리들은 옥 목사님과 함께 했던 성령의 능력을 갑절로 받아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될 것을 굳게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