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의 연합과 일치, 출구가 없다?

필자는 오늘의 주제를 다루면서 다소 비관적인 질문부터 던지고 싶다. “한국교회에 아직도 연합과 일치를 향한 기대가 남아 있는가?”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는 지금 분열한 힘이라도 남아 있는가?” 솔직히 요즘 한국교회를 바라보노라면 연합과 일치라는 주제는 아예 논의의 주제로 올릴 형편이 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물론 금년 들어서도 부활절과 8.15 등에 연합모임을 열기는 했지만, 반대할 명분이 별로 없고 대형집회를 열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기 때문에 그저 따라갔을 뿐, 진정으로 연합과 일치에 관심을 갖거나 그것을 위해 교회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교회의 교파와 교단은 현재 상황에서 꼼짝하지 않거나, 아니며 여전히 분열과 다툼이 진행 중인 형국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현재의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그 존재의미와 신뢰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어 좌우나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함께 공존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극히 위험한 형편이다.
솔직히 교회 내부적으로 말한다면 연합과 일치라는 주제는 너무 오랫동안 입에 올려 이제 식상할 정도가 되었다. 그 문제는 더 이상 한국교회의 관심을 끌지도 못하고, 흥미도 주지 못하고 있다. 연합과 일치는 더 이상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화두로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내외적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제자운동을 일으키며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조직해 한국교회에 새로운 일치운동의 기수역할을 해온 옥한흠 목사마저 세상을 떠난 상황이라, 진심을 담아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을 펼칠 동력마저 사라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보다 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현재의 한국교회 상황은 일치가 교회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치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리게 된 WCC 총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반응을 보면 이런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WCC 총회를 일반사회에서는 ‘기독교 올림픽’이 열린다고 보도하고, 부산시장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전에 없이 확연하게 둘로 나누어진 입장을 보이며 분열현상을 노골화하고 있다. 장로교 합동측을 중심한 보수교회들은 일제히 아예 WCC 총회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9월 총회를 거치면서 다소 신중해지기는 했지만 각 교단이 WCC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운동자금을 모으는 등 여전히 WCC의 신학을 의심하며 한국교회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며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세계교회의 연합을 도모하기 위한 기구의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면서 오히려 한국교회의 분열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의 보수성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 장로교 합동 교단과 통합교단이 명목상 WCC 문제로 1950년대 말에 분열된 역사를 안고 있으면서 당사자인 통합교단이 유치 준비 단계부터 한국교회를 설득하는 조치를 계획하고 시도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교계 신문은 교회 연합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교회 연합의 새 역사를 쓴다, ‘전기총全基總’ 본격출발”이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한국교회 연합기구가 출발했음을 알려준다. 기존의 ‘한기총’과 KNCC와는 궤를 달리하는 ‘전국기독교총연합회’라는 기구가 지난 8월 23일 창립총회를 열었다가 9월 17일 속회하여 전임 한기총 회장인 엄신형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옹립하였다. 기존의 교회연합 조직이 서울 중심이라는 것을 간파한 인물들이 16개 시도총연합회와 232개 도시군구연합회 등 각 지역별로 구성되어 있는 기독교연합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하고 있다. 교회의 연합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조직과는 별개의 연합체를 만들어 한국교회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두 연합체를 염두에 두고 ‘한기총과 NCCK를 받들며 적극적인 뒷받침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앞으로 ‘전기총’이 지역 교회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호응을 얻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연합체의 성격상 결국 경쟁적인 관계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말하는 것은 마치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을 뿐 아니라 어색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한국교회와 일치운동 역사

(1) 지난 세기의 일치운동

역사를 보면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 교회 일치 운동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였다. 최초로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은 한국 땅에서 하나의 교회로 출발하기를 원했다.
선교 초기의 한국교회는 어쩔 수 없이 장로교 4개 교단 (미국 남북 장로교, 캐나다, 호주 장로교)과 미 남북 감리교회로 시작했지만 각기 다른 장로교단이 하나의 공의회를 형성하였고, 감리교회도 하나의 선교부를 이루었다. 연합기관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예수교 성교회 (현재의 대한기독교서회)”가 1890년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조직되어 평신도 서적과 찬송가를 출판하게 되었다. 1895년에는 성서공회가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조직되어 성경 출판을 위해 연합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05년 9월 15일에는 장로교와 감리교 여섯 선교부 관계자 150명의 선교사들이 모여 ‘재한 복음주의 선교부 통합 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를 결성했다.
1910년 105인 사건으로 교회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선교사들은 1911년 제 7차 회의에서 ‘통합공의회’를 ‘연합협의회Federal Council’로 명칭을 바꾸어 재조직하면서 “연합협의회의 목적은 분열보다 연합하여 더 좋은 사업을 하고자 하는데 있으며, 그 권한은 자문에만 있고, 동일한 기존 치리기구, 동일한 예배에 대한 권한은 없다”고 못박아 목적과 권한을 후퇴하였다. 이 결과 한국교회 내의 일치운동은 후퇴하게 되었고 각 교파교회를 세우는 데 열을 올리게 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한국교회를 시작한 선교사들은 지역을 분할하여 전도하는 정책에 합의하여 불필요한 힘의 낭비를 막았고,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자 선교부 통합 공의회를 형성하여 단일 교회 설립에 대한 노력을 기울인 점이 돋보이지만 외부적 상황에 의해 초기부터 연합운동의 성격이 느슨해진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1916년 선교사 연합협의회 총회는 한국 교파 지도자들로 하여금 연합협의회에 대하여 발언권을 갖게 하기 위하여 연구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917년 6월 평양에서 ‘장감연합협의’를 조직하기로 합의, 1918년 3월 26일 서울 YMCA 회관에서 ‘조선예수교 장감연합협의회’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 총회는 미구북감리회 10명, 남감리회 10명, 미국북장로교 12명, 남장로교 4명, 캐나다장로교 3명, 호주장로교 1명 등 모두 40명의 대표로 구성되었고, 회장으로 남장로교의 김필수 목사가 선출되었다. 이 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목적을 설정하였다.

① 양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되는 정신을 증진케 하며, 친목하는 정의를 돈독케 한다.
② 양 교회가 단행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경우 협력 진행하기를 힘써 도모한다.
③ 양 교회가 교역상의 경험과 지식을 교환하여 그리스도의 사업을 확장함에 유조케 한다.

말하자면, 선교사 위주가 아닌 본토인 신자 위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작부터 공존을 모색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장감 두 교회는 신경이나 예배모범 및 치리권은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규정하였고, 외국 선교지역의 경계 분할에 합의, 장로교는 만주, 감리교는 시베리아 지방을 맡아 선교하기로 합의하였다. 바람직한 연합의 모습을 일찍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07년 사상 최초로 785개교회, 72,968명의 교인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가 조직되고,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교총회가 결성되는 등 하나의 장로교단이 형성된 이후 1924년 9월 24일에는 마침내 남감리회, 미감리회, 조선선교회 장로교파의 4단체, 감리교파 2단체, 영국성서공회, 조선기독교청년회 등 11개 단체로 ‘조선예수교 연합 공의회Korean National Christian Council’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감리교와 장로교 두 교파협의체에서 연합공의회로, 교파 단체 뿐 아니라 기독교단체도 회원이 되는 연합체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NCCK는 자신들이 바로 이 조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초기 한국교회는 매우 지혜롭게도 오늘날까지 교회 분열의 씨앗이 되어온 신학교를 설립하면서 평양에 장로교신학교란 이름으로 단 하나의 학교만 세웠다. 성경을 만드는 작업도 함께 하였다. 일본과 중국에서 각기 번역이 이루어져 스코트란드 장로교 출신의 로스가 번역한 성경과 일본에서 미국 성서공회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수정의 <신약성서 마대전> 등 성경과 성서로 나누어져 나타나기는 했지만 곧 하나의 성경을 만들어 사용했다. 일제하에서 장로교가 일본교회에 통합되고 마침내 1944년에는 한국교회 전체가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병합되어 조직상으로는 억지로라도 완전한 하나의 교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그렇게 바라던 해방을 맞게 되자 오히려 교회가 분열로 치닫게 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해 가운데서는 하나로 존재하던 교회가 시련이 끝나고 나니 핵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미 수입된 수많은 교파들은 제각기 세를 확장하기에 여념이 없게 되었고, 장로교회도 1951년 분립이 시작 된 고신을 비롯하여 50년대 말에는 기장, 승동, 연동 등 4개 교단으로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7,80년대에 들어서면서 특히 장로교단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분열의 상황 속에서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태어났다. 지금까지 군사정권하에서 한기총이 설립된 동기에 관하여서는 그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기는 하지만, 한기총은 한국의 보수교회를 대표하는 기구로 자리 잡고 있다.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던 7,80년대에는 NCCK가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활약하였으나 지금은 그 세력이 대단히 약화된 인상을 주고 있으며, 따라서 외형적으로는 한 기관이 다른 기관을 끌고 가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2) 한목협의 등장과 일치운동

필자의 판단이 일방적일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한목협이었다. 묘하게도 1996년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고신 합동 기장 등 한국장로교단내에서 일어난 교회 갱신운동은 1998년 14개 교단 내의 교회 갱신을 소망하는 목회자들이 함께 모이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옥한흠 목사, 손인웅, 전병금 윤희구, 박경조, 신화석, 현해춘 김원배 목사 등을 중심으로 4,50대 소장층 목사들이 주축을 이룬 한목협은 이후 한국교회와 사회를 향하여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일치 갱신 섬김을 주요가치로 내세운 한목협은 해마다 회원교단 목회자들의 수련회를 개최하며 목회자간에 교제의 폭을 넓히는 일에 주력하였다. 특히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를 자처하는 목회자들은 우리 교회와 사회에서 발생하는 중요 사안에 대하여 함께 입장을 모아 발표하며 공감의 폭을 확대해 갔다. 진보의 대명사로 불리는 고 강원용 목사와 보수 논객 옥한흠 목사와의 공개적인 대담을 통해 교회가 분열될 때마다 입버릇처럼 내밀어 온 소위 ‘신학적 차이’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그리고 엉뚱하게 오해되어왔는가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경로로 교회 일치의 당위성과 사명감, 행동원칙을 찾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는 정통성을 갖춘 교단들이 나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대학 이상의 신학 교육기관을 갖고, 이단시비에 휘말린 적이 없고, 노회(지방회)와 총회의 조직을 갖춘 교단을 중심으로 교단장 회의를 구성하자는 한목협의 제안이 교단들의 동의를 받게 되었고, 이런 교단장들의 모임이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되도록 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2003년 4월 11일 마침내 24개 교단장으로 이루어진 교단장 모임의 대표와 한기총, 교회협의 대표 각각 6명씩으로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모임(통칭 18인 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 연합기구 두 개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논의할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18인 위원회는 3개 단체 소속의 사람들로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9인 실무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가 위원장을 맡고 이성구 목사(고려신학대학원)가 서기를 맡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2003년 6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열두 차례를 회의를 열어가며 조율을 거듭한 끝에 평양대부흥 100주년인 2007년에 한지붕 두가족식 연합이라도 이끌어내도록 하는 로드맵에 합의하게 되었고 따라서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선언문’의 전문前文과 구체적인 연합의 기본원칙도 설정하였다. 이 사역의 구체화를 위하여 실무위원회와 18인 위원회의 연결할 필요가 있어 ‘3인 창구위원회’(김상근, 손인웅, 전병금 목사)까지 구성하며 힘을 쏟았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어렵게 만들어진 로드맵은 양대 기구 중 특히 NCCK(교회협)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에큐메니컬 운동을 위하여 태어난 교회협의 반대는 의외였고, 교회에 대한 본질적 논의없이 연합을 논의할 수 없다는 태도는 설득력이 전혀 없는 주장이었으나 그들을 설득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21세기 들어서서 가장 열정적으로 논의되어 온 교회연합과 일치의 문제는 연합회에 의해 무력화되는 어이없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후 이 운동은 평양부흥운동 100주년 행사, 부활절 행사를 양 기관이 합의하여 진행하는 정도로 축소되어 버렸고, 더 이상 교회연합과 일치를 위한 진지한 논의는 재점화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세상을 떠난 옥한흠 목사님을 기리면서 다시 한 번 교회 일치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만도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여기서 한목협을 통하여 진행된 교회연합과 일치를 위한 모임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살펴 보면서 무엇이 우리의 논의를 가로막는 것인지 살피면서 일치운동에 대한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모임

●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모임(18인위원회)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모임”은 2003년 4월 11일 정오 12시 교회협·한기총·교단장협 3개 기구에서 6인씩 파송한 대화위원으로 구성된 18인위원회(교회협 - 최성규, 이종복, 박종화, 백도웅, 김상근, 김재열, 한기총 - 길자연, 박천일, 손인웅, 박종수, 박종선, 유상열, 교단장협 - 한명수, 김진호, 최병곤, 전병금, 김요셉, 김원배)가 한 자리에 모임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체 구성의 필요성을 절감한 참석자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며 의견을 나눌 것을 발표함으로써,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통일된 연합체 구성을 위한 실질적 논의의 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3인창구위원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3인창구위원”는 2003년 4월 11일 열린 18인위원회의 첫번째 모임에서 교회협·한기총·교단장협 3개 기구의 원활한 만남을 위한 창구위원으로 두기로 함에 따라 각 기구에서 선정한 3인(교회협 - 김상근, 한기총 - 손인웅, 교단장협 - 전병금)으로 구성되어 대화모임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실무9인위원회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실무9인위원회”는 2003년 6월 4일 열린 18인위원회의 두번째 대화모임의 합의에 따라 한국교회 연합을 빠른 시일 내에 이루기 위한 “로드맵”을 연구하고 제안할 목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교단장협에서 7명을 추천하고, 교회협과 한기총에서 각각 1인씩 추천한 9인(고용남, 권오성, 김경원, 김근상, 김운태, 이성구, 이성희, 이요한, 허승운)으로 구성된 실무9인위원회는 총 12차례의 모임을 가지며 교회협과 한기총 양 기구의 의견을 수렴하여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선언과 이행과정, 정관작성 등의 소임을 완수하고 2004년 4월 1일 해촉건의를 끝으로 사실상 해산하였다.

●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이해와 협력위원회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이해와협력위원회”는 2004년 3월 31일 열린 18인위원회의 여덟번째 대화모임의 결의에 따라 양기구의 대표 각 5인과 3인창구위원 등 13인(교회협 - 신경하, 백도웅, 김희원, 김근상, 이두희, 김상근, 한기총 - 예종탁, 박천일, 이성희, 장은화, 김형원, 손인웅, 교단장협 - 이용규 목사)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18인위원회는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방향제시, 최종결의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2)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선언

전문(前文)

한국교회 연합운동은 1905년 재한복음주의선교회통합공의회로 시작하여 1918년 조선예수교 장감연합협의회, 1924년 9월 24일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로 발전하였으며, 해방 이후 이러한 전통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이어졌다. 1989년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새롭게 조직되어 오늘날에는 두 개의 기관이 연합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실로 한국교회는 이러한 연합사업을 통하여 복음화를 통한 구령사역과 함께 한국 사회의 근대화, 민주화, 인권신장과 사회봉사, 평화와 통일운동에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의 교파선교, 일제 강점기의 신앙의 박해, 해방 이후의 분단과 한국전쟁, 세계 여러 곳의 인권유린 사태, 권위주의적인 군사독재 등 역경의 시기에 발생한 신학과 신앙, 사회 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처방법 차이로 인해서 분열의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예언자적인 선교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놀라운 교회 성장의 열매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내적으로는 지나친 분열, 타락과 일부 교회의 자정능력의 상실로 인하여 사회적 비난을 초래하였고, 외적으로는 남북한이 극단적인 대립관계를 청산하고 통일의 길을 공동 모색하는 변화된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그리고 한국교회 연합을 위하여 2000년 12월에 설립된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분열의 죄책을 고백한다. 더불어 우리는 지난 일 백여 년간의 교회 연합 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개인과 사회의 복음화를 통하여 민족과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명실 공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를 결성하기로 합의하고, 다음과 같은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기본원칙의 구현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3)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기본원칙

1. 하나의 신앙고백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하나의 연합기구를 조직한다.
2. 교회의 책임완수
다양성 속의 일치를 지향하며, 선교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의 연합기구를 조직한다.
3. 연합 운동의 계승 발전
한국교회 연합 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킬 하나의 연합기구를 조직한다.
4. 한국교회의 공 교회성
우리 사회와 세계 교회 속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고, 각 교단이 대표를 파송하여 관련 사안을 책임있게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는 하나의 연합기구를 조직한다.
5. 공동 선교와 협력
복음선교와 사회봉사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교단을 초월하여 서로 협력하고, 지역 사회에서 개교회주의를 넘어선 연합 활동을 벌이는 하나의 연합기구를 조직한다.
6. 연합정신의 확산
기존 연합기구의 연합을 넘어서서 지역별, 영역별, 과제별, 또 개교회들과 여러 기독교 단체들이 새로운 한국교회 연합기구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과 일치를 경험하고, 실천하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7. 미래를 향하여 열린 연합
하나된 연합기구의 조직은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목적이거나 최종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며, 분열된 교회들의 연합, 건전한 신학교육을 통한 한국교회의 궁극적인 일치를 지향한다.

※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선언 전문과 기본원칙은 그동안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모임’(교회협, 한기총, 교단장협)의 9차례의 회의와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9인위원회’가 12차에 걸쳐 회의한 결과 제5차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모임’에서 채택한 것입니다.

4)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이행과정

1. “한국교회연합”을 위한 이해와 협력위원회 구성 - 2004년 초
* 양기구의 대표 각 5인(총 10인)과 3인 창구위원을 포함하여 13인으로 구성하기로 하다.
2. 교회협과 한기총의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공청회 - 2004년
1) 교회협과 한기총의 개별 워크샵 - 2004년 상반기
2) 교회협과 한기총의 공동 워크샵 - 2004년 하반기
* 교회협과 한기총이 각각 개별 워크샵을 갖고, 이후 양 기구가 공동으로 워크샵을 갖는다.
3. 협의체 조직 파악 및 (가칭) “한국교회연합”과의 연계성 확보 - 2005년 상반기
* 지금까지와는 달리 밑으로부터 구체적인 한국교회 연합이 가능하도록 지역, 선교단체, 신학협의회의 조직을 파악하고 연대와 활동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여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 양기구에 맡겨 진행하기로 하다.
4. 18인위원회 주관하에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전체 공청회 - 2005년 상반기
5.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이해와 협력위원회의 주선하에 사업위원회별 한기총/교회협 연합체 구성 - 2005년
* 두 단체가 시행하는 사업의 연계작업을 위하여 유사 위원회의 연합모임을 구성하고 공동사업을 구상한다.
6. 정관(초안) 작성, 협의 및 합의 - 2006년 상반기
* 9인위원회의 안을 18인위원회가 합의한 이후에 양기구의 결의를 거쳐 확정한다.
7. 한기총과 교회협 가맹 교단 총회의 교회연합 승인은 이미 결의한 각 교단의 결의를 존중하고 각 교단의 형편을 고려하기로 하다 - 2006년 상·하반기
8. 정관(초안) 세칙 작성 - 2006년
* 일단 정관(초안)을 승인 받은 후 구체적인 연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세칙을 마련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실제적인 연합 작업이 가능해질 것이다. 교단별 대표의 규모와 재정분담 비율 등 연합에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이 세칙을 통하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혹은 세칙까지 마련하여야 총회 상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9. “한국교회연합” 출범 준비위원회 구성 - 2007년 상반기
교회협, 한기총의 모든 인력과 업무, 재정을 인수받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10. “한국교회연합” 출범 - 2007년 하반기
1907년 한국교회 부흥운동 백주년이 되는 2007년에 새로운 한국교회 부흥의 전기를 만든다.


3. 한국교회 연합일치 운동의 전망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우리는 지금 통일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북한에서 격변이 나든 김정은이로 정상적으로 권력이양이 이루어지든 이전보다는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통일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어린 김정은을 둘러싼 환경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통하여 손쉽게 돈 버는 법을 알아낸 북한은 지금 계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정부의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은 북한으로 하여금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앞날이 매우 불투명하지만 통일문제가 단순히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로 둔갑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교회가 겸손히, 그리고 강력하게 하나 됨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김일성 김정일이 60년 이상 하나로 엮어온 북한 땅을 온갖 종류의 ‘다른’ 기독교로 덧칠해도 좋을 것인가?
그러나 논리상 연합과 일치의 문제가 중요하다고는 하여도 과연 누가 어디서 어떻게 그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사실은 대단히 간단할 수 있다. 한목협이 파악한 대로는 2003년 구성된 교단장 모임 속한 교회의 숫자가 전체 한국교회의 90%를 상회한다. 그렇다면 24개의 공교회가 뜻을 같이할 수 있다면 한기총과 교회협의 연합은 그리 어려울 일이 아니다. 특히 양 기관에 동시에 가입되어 있는 장로교 통합교단이 제 역할을 감당한다면 얼마든지 양기구의 통합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열려있다.
모든 교파와 교단들은 나름대로 일정한 특성과 역할을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내적으로야 얼마든지 각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대외적으로 하나 된 모습을 보이도록 엮어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일은 없다.
문제는 누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주님의 뜻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가 떠난 지금, 지난 12년간 함께 살아온 한목협의 회원들이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한다. 우리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교회의 본질에 충실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한국교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시대적 사명 앞에 눈을 감지 않는 한목협과 한목협 소속 목회자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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