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오후 2시 55분. 사랑의교회안성수양관 장지.
3시 5분 전에 고 옥한흠 목사님의 하관예배가 드려졌습니다.
태풍으로 흐렸던 하늘이 개이고 밝은 빛을 내려비춰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랑의교회 장로님들의 찬양
오정현 목사님의 설교 그리고 축도로 이어졌습니다.

이어 유족을 대표해서 감사인사를 하기위해 나선 차남 옥승훈 씨.
조객들에게, 한국 교회에, 사랑의교회에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우리 아버지는 신학 공부는 많이 하셨는데 가정에 대해서는 공부를 못하셨습니다.
목사님들께 부탁이 있습니다.
신학 책을 열권 읽으시면 가정에 대한 책도 한 권씩 읽어주십시오...."
목회자로서의 분주했던 생활, 누구 말대로 제자훈련에 미쳤던 아버지 목사님,
그런 목사님을 아버지로 두었던 목회자 자녀,
목회자 가족의 눈물이 배인 말씀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나와 아들의 손을 잡았지만 아들은 한 마디 더 했습니다.
아버지가 시간이 없어서 가족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매장하기 전에 아버지의 관을 모시고 '가족사진'을 찍겠다고.
그리고는 관 앞에 환하게 웃으시는 목사님의 영정사진을 세우고 그 좌우로
김영순 사모님과 세 아들이 나란히 서서 기막힌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 모두 숙연했습니다. 울었습니다.
목회자인 우리는 교회에 매달려 가족을 소홀히 했던 못난 아버지,
매정한 남편인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목회자인 우리는 목회자의 가족이라며
아내와 자녀들에게 강요하듯 목회자의 무거운 짐을 지우고 살았습니다.
성경공부 몇 팀을 지도하면, 정말로 가족과 함께 하는 날이나 시간이 없었습니다.

옥 목사님은 가족을 통해
후배인 우리들에게 가족을 잘 돌보라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옥한흠 목사님.
존경했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닮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배운 대로 목사님을 기억하며 주님의 교회를 섬길 것입니다.

내가 조기은퇴를 할 때 옥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황목사, 왜 일찍 그만 두는거야"
"목사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목사님 하신대로 하는 겁니다."
"그래… 잘해요…"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시던 따뜻하고 좋은 스승님. 대 선배님.

교갱협 일을 함께 하자며 불러주시던 일.
목사님과 가까이 할 수 있었던 만남의 날들. 제게는 큰 은혜였습니다.
그 날들이 참 좋았습니다.  
이제 옥 목사님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목사님을 추억하며 말하며 자랑하며 그렇게 닮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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