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를 보면 아프리카의 영적 지도가 보인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개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만 아니라 나이지리아도 우리의 관심사로 만들었다. 기왕에 갖게 된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축구(“1:1 무승부를 기록한 나라”)에만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지리아 연방공화국,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을 이제 조금 더 넓혀보자.
지구촌 돌아가는 사정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번 월드컵 이전에도 이 나라에 관한 소식들을 외신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이 나라 수도 ‘아부자’보다 어쩌면 외신에 더 자주 등장했을 이름이 있다. ‘조스Jos’라는 도시다.
그리고 세계 교회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 있는 이라면, ‘조스’보다 훨씬 더 익숙한 이름이 있다. 피터 아키놀라 대주교다. 사실 현재 세계 교회의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이번 월드컵이 열린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만큼(어쩌면 더 많이) 유명한 인사가 바로 아키놀라 대주교다(둘 다 가톨릭 대주교가 아니라 성공회 대주교다).

조스 폭동(Jos riots)

2010년 새해 첫 달부터 나이지리아는 ‘조스 폭동’으로 또 다시 초긴장했다. 1월 17일부터 나흘간 계속된 폭동으로 400명이 넘는 인명이 살상됐고 곳곳에서 교회와 모스크가 불타고 파괴됐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폭동에 대해서도 기독교인 주민들과 무슬림 주민들 사이에는 입장 차이가 있었다. 기독교인 주민들은 두 달 전(2009년 11월)에 기독교인 3명을 살해한 범인의 집을 수리하러 온 무슬림 청년들이 그 집 근처를 지나던 한 여성을 성폭행하고 인근 교회 세 곳을 방화하자 격분한 기독교인 청년들이 모스크에 불을 지르면서 폭동이 격화됐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슬람 쪽은 기독교인들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무슬림과 모스크를 공격했다고 반박했다. 먼저 도발한 쪽은 상대방이라는 주장은 나이지리아 종족-종교 분쟁에서는 이렇게 늘 되풀이 된다.
1월로 그치지 않았다. 3월 7일, 하우사 족과 풀라니 족 무슬림 주민들이 요루바 족 기독교인 마을을 습격했다. 또 다시 수백 명이 살해됐다. 이제는 ‘조스 폭동’이라는 이름까지 갖게 된 이 도시의 기독교-이슬람 유혈 충돌은 2008년에도, 2001년에도 있었다. 그때마다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만 명이 집을 버리고 피난을 가야했으며, 교회와 모스크는 불탔다.


▲ 2010년 1월 17일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조스 폭동은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지만 대부분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한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의 대량학살에만 주목할 뿐이었다. 조스 폭동은 나이지리아의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이슬람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 Ed Kashi 2010

아키놀라 대주교

미국 주간지 <타임>은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피터 아키놀라 대주교를 올렸다. 당시 아키놀라 대주교는 세계 성공회 내부의 일부 진보주의자들에 맞서는 보수 진영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최근 은퇴했다. 릭 워렌 목사는 당시 <타임>에 기고한 ‘피터 아키놀라 대주교: 사자의 힘(The Strength of a Lion)’이라는 글에서, “세계 기독교의 리더십과 영향, 성장, 무게중심이 지구의 북반구에서 남반구에서 바뀌는 시대적 전환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며 제3세계의 근본주의와 제1세계의 상대주의 모두에 맞서는 “사자의 힘을 지녔다”고, 아키놀라 대주교에게 찬사를 보냈다.
피터 아키놀라 나이지리아 성공회 대주교는 잉글랜드 교회(Church of England) 내부의 일부 진보적 세력이 동성애자 주교 서품을 추진하자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라는 격한 발언을 했었다. 캐나다 성공회가 동성결혼을 축복하기로 하고 미국 감독교회가 동성애자를 주교로 서품하자 그는 “어떻게 남자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조차 못하겠다. 개나 소, 사자 같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그런 짓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보수 진영을 이끌고 있는 피터 아키놀라 나이지리아 성공회 대주교가 세계 성공회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잉글랜드 교회와 세계 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 감독교회에 극언까지 불사하며 철저하게 맞서는 배경에는, 크게는 아프리카 전체 대륙 차원에서, 좁게는 나이지리아 국내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극심한 종교간 경쟁과 대결, 갈등의 상황이 있다. ⓒ geoconger.wordpress.com

충돌하는 종교적 단층선

조스 폭동은 아프리카 종교 대립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조스 폭동에서 전형적인 양상을 볼 수 있는 나이지리아(그리고 전체 아프리카)의 심각한 국내 분쟁은 ‘종교’라는 단일 요인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종교가 여러 분쟁 요인들 가운데서 거의 언제나, 촉발 요인이든 격화 요인이든,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다(▼ 도표 참조).


▲ 종교 갈등이 국가의 “큰 문제(a very big problem/ a moderately big problem)”라고 말한 응답자.
ⓒ PEW FORUM ON RELIGION & PUBLIC LIFE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종교 지형은 한 세기 만에 극적으로 변했다. 1900년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당시 이 지역에서는 대다수 주민들이 아프리카 토착 종교들을 신봉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을 합쳐도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희망봉 사이에 거주하는 무슬림 인구는 20배 증가했고(1900년의 1100만에서 2010년의 2억 3400만으로), 기독교인은 무려 70배 증가했다(700만에서 4억 7000만으로). 현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전 세계 기독교인 5명 중 1명(21%)이, 전 세계 무슬림 7명중 1명 이상(15%)이 살고 있다(▼ 도표 참조).


▲ 1900년 이후 사하라 이남 지역 이슬람/기독교 종교 변동 그래프 ⓒ PEW FORUM ON RELIGION & PUBLIC LIFE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의 이와 같은 급격한 팽창 과정에서 두 종교간 갈등도 격화됐다. 아프리카인의 영혼을 두고 쟁탈전에 가까운 선교 활동을 한 것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기독교인이 무슬림의 거의 두 배지만,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는 두 종교의 인구는 각각 4억~5억으로 비슷하다.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는 무슬림이 다수이고, 남부 아프리카는 기독교인이 다수이다. 이슬람과 기독교, 두 종교를 다른 색깔로 구분하여 종교 인구 분포 지도를 그린다면 두 대륙은 두 개의 종교적 단층이 한 지역에서 극명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표 참조).


▲ 아프리카의 무슬림과 기독교인 분포 ⓒ PEW FORUM ON RELIGION & PUBLIC LIFE

바로 그 단층선이 충돌하는 곳이 동쪽의 소말리아에서 서쪽의 세네갈에 이르는 아프리카 대륙 중부 지역이며, 나이지리아도 여기에 속해 있다. 알카에다가 최초로 대규모 테러 공격을 감행한 1999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의 현장인 케냐와 탄자니아도 이 지역에 속한다. 특히 36개 주로 이뤄진 연방 국가 나이지리아는 북부 이슬람 단층과 남부 기독교 단층이 자기네 영토 안에서 맞부딪히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조스 폭동’은 아프리카 대륙의 두 종교 세력이 대립하는, 나이지리아 중부 “중간 지대(middle belt)” 플래투(Plateau) 주에 위치해 있다. 1960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 끊이지 않는 나이지리아의 종족-종교 갈등 대부분은, 종족과 언어와 종교가 이질적인 주민들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이 중간 지대에서 발생한다. 조스 시에서는 폭동의 당사자인 기독교 주민들은 “원주민”으로, 무슬림 주민은 “정착민”으로 불리는데, 오래 전 북부 지역에서 이주해 정착한 무슬림 주민들은 원주민 자격을 얻기 위한 정치적 노력을 하고 있다. 몰론 정착민에게는 차별이, 원주민에게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중간 지대 다른 도시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99년 11월 잠파라 주를 시작으로 나이지리아 북부 12개 주(Kano, Katsina, Niger, Bauchi, Borno, Kaduna, Gombe, Sokoto, Jigawa, Yobe, Kebbi)가 잇따라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사법 체계에 도입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카두나 주를 비롯한 곳곳에서 샤리아를 지지하는 무슬림 주민과 기독교 주민 사이에 유혈 충돌이 발생해 수천 명이 살해됐다.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던 올루세군 오바산조 당시 연방 대통령이 나서 샤리아를 폐지하겠다고 공표했지만, 이슬람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북부 주들은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샤리아는 현재 케냐 등에서도 나이지리아와 유사한 종교간 갈등과 충돌 양상을 일으키는 문제의 요인이다.
서방 교회가 변방 취급하는 아프리카의 대주교가 세계 성공회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잉글랜드 교회에, 그리고 세계 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 감독교회에 극언까지 불사하며 철저하게 맞서는 배경에는, 크게는 아프리카 전체 대륙 차원에서, 그리고 좁게는 나이지리아 국내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와 같은 극심한 종교간 경쟁과 대결, 갈등 상황이 있다.


▲ 나이지리아의 학교에서 한 소녀가 친구들에게 꾸란을 읽어주고 있다. Ibadan, Nigeria
ⓒ www.britannica.com

서방 기독교회의 진보적인 성 윤리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이슬람이 기독교를 공격할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키놀라 대주교는 잘 알고 있었다. 아키놀라 대주교 같은 아프리카의 보수적 교회 지도자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샤리아에 따라 간음이나 간통 죄인을 돌로 쳐 죽이는 극단적인 성 도덕이 공고한 아프리카 무슬림들의 눈에, 동성애를 지지하는 기독교회는 어떻게 보이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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