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랭 드 보통 저, 정영목 역, 이레출판사, 2009-08-25, 374쪽, 15000원
“그들은 호기심이 강렬하게 자극을 받으면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배의 프로펠러를 보기 위해 몸을 낮게 구부리기도 한다. 관심 있는 유조선이 지금 바다 어디쯤 떠 있을까 생각하다 잠이 들기도 한다. 이들의 이런 집중력을 보면, 혼잡한 쇼핑가 한가운데 멈추어 서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행인들은 옆으로 비켜가는데 아이는 그 자리에서 허리를 굽히고, 마치 고급 피지로 장정을 한 책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성경학자처럼, 보도에 달라붙은 껌 조각을 주의 깊게 살피거나, 외투 호주머니는 어떤 식으로 닫히는지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다. 사실 이들은 좋은 직업의 요건에 관한 관습적인 관념을 뒤집는다는 점에서도 아이 같은 면이 있다. 그들은 늘 어떤 직업의 물질적 혜택보다는 그 일 자체가 주는 재미를 더 높이 평가한다. 특히 선호하는 것은 컨테이너 터미널의 크레인 조종사 자리다. 배와 부두를 굽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열차의 유압식 문이 여닫히는 ‘쉬익’하는 매혹적인 소리에 반해 기차 운전자가 되기를 갈망하거나, 부풀어오른 봉투에 항공 우편 딱지를 붙이는 만족감 때문에 우체국 운영을 갈망하는 것과 비슷하다.” - 31쪽

내 왼쪽 눈썹 꼬리 부분에는 손가락 반 마디쯤 되는 흉터가 있다. 앞 머리칼이 가려주고 눈썹이 적당히 감춰주어 남들 눈에(그리고 눈 나쁜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이 흉터를 나는 이따금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이 버릇은 어김없이 몇 가지 연상 작용을 동반한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는 이제 정확하지 않다(두 살 터울 누나도 국민학생이었던 것 같으니 아마도 3~4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수요일이었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나같은 초등학생도 수요일 저녁 예배에 빠지지 않았고, 그날 사고 덕분에 나와 아버지는 ‘정당한 사유로’ 수요 예배에서 빠졌던 것이다. 그날 내게는 상처 난 눈가에서 흐르는 피를 의식하면서도, 틀에 박힌 일과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작은 동네에서 약간의 소동과 주목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야릇한 흥분이 있었다.

그날 사고는 우리 동네를 감아 돌아 나가는 철도 위로 굴다리가 놓이는 공사가 벌이지고 있던 현장에서 일어났다 친구들과 놀다가 못인지 철사인지에 눈가가 찢긴 것이다. 이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건널목이 있던 자리였다. 여기서 나의 두 번째 연상이 이어진다.

그곳 건널목에는 지금 생각하면 공중전화 부스 네 개를 모아 세워놓았음직한 크기의 작은 집이 있었다. 그리고 건널목지기가 있었다. 검정색 제복과 순경 아저씨가 쓰는 것과 비슷한 각진 모자에 아마도 붉은색 테두리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경상도 북쪽과 남쪽을 잇는 지선인 이 철도에는 많은 기차가 지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면 건널목지기 아저씨는 차단기의 둥근 핸들을 돌려 노란색과 검은색의 가로대―이걸 정확하게 뭐가 부르는지 모르겠다―를 내렸다. 신작로(어른들은 그 시절 우리 동네를 지나는 도로를 그렇게 불렀다)에서 이제 막 2차선 포장도로로 변신을 꾀하고 있어 제법 교통량이 늘고 있던 터라 그 건널목은 때로는 여러 대의 자동차들을 나란히 줄 세우는 위용을 부리기도 했다. 기차가 건널목을 지날 때 그곳의 왕은 단연 건널목지기였다. 적어도 어린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더구나 건널목지기 아저씨는 기차가 지날 때면 깃발을 흔들면서 기관사과 무언가 교감을 하고, 다소 거만한 동작으로 기관사와 거수경례를 주고받았다. 그때 동네 아이 중에 분명 커서 건널목지기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아이가 있었다. 나야 이미 정해 둔 다른 꿈이 있었기 때문에 건널목지기가 되겠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게도 건널목지기는 멋진, 남자다운 직업이었다.

아마도 내가 그때 건널목지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면, 어쩌면 나는 건널목지기의 ‘일’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호기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건널목지기는 기차가 오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아는지, 깃발의 용도는 정확이 무엇인지, 내가 가로대라고 부른 그것의 정직 명칭은 무엇인지, 제복과 제모도 있으니 혹시 계급도 있는지, 기관사와는 무슨 신호를 주고받는지, 그 신호는 어떻게 익히는지.

신작로가 고속화도로로 바뀌면서, 건널목 자리에 굴다리가 놓이면서, 그렇게 건널목지기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제는 건널목지기―등대지기의 정직 명칭이 ‘항로표지원’이듯이, 건널목지기의 정직 명칭도 따로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직업도 내 눈가에 남은 흉터마냥 보일 듯 말 듯 한 직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알랭 드 보통, 나와 동갑이라 가끔 나의 질투를 유발하는 이 친구(저자가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별난 재주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것들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해 내는 재능이 그에게는 있다. 이번에는 그의 시선에 “항구에 정박한 배 옆에 서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이물의 첨탑들이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샤르트르 성당의 버팀벽 앞에 선 순례자들과 마찬가지로 말없이 경이감을 느끼고 흡족해” 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호기심과 열정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노래”한다.

이 책 몇 군데(몇 군데 안 된다)에 ‘소외’라는 말이 얼핏 얼핏 나오는 것을 보아서도 짐작 가건대, 알렝의 지적 사유의 근저에는 이른바 ‘노동소외론’에 대한 질문이 깔려있다. 아주 간단하고 거칠게 말하자면, 현대 사회의 분화와 직업의 전문화, 노동 분업화는 노동하는 인간을 그의 노동의 산물 및 의미로부터 떨어뜨려 놓는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너무 일방적이지 않을까? 이 주장에는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않을까? 직접 표현을 안 하고 있지만, 알랭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문제제기에 나도 공감한다.

좀 길지만 인용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 있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 66쪽

갑자기 알랭이 진지한 도덕주의자가 된 건가? 물론, 그럴 염려는 없다. 그의 명민함이 발휘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그는 ‘노동 소외 현상’의 일반화의 오류를 ‘그렇지 않는 일도 있다’는 반증으로 뒤집는데, 그가 제시하는 바로 그 ‘그렇지 않은 일’이 참 가관이다.

그는 비스킷 공장을 직접 찾아가서 ‘스위트 비스킷 브랜드 감독 코디네이터’를 만나고, 송전탑에서 송전탑으로 옮겨 다니며 ‘철탑 사이의 길이’와 ‘길이 단위가 효과적인 무게’와 ‘송전선에 따른 상수’ 같은 단위로 이루어진 방정식을 계산하는 ‘송전 엔지니어’―나는 알랭이 이 송전 엔지니어를 만나는 대목에서 특별히 더 흥분했고, 공감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늘어선 송전선로를 보면서 나는 구릉에 늘어선 송전탑들과, 그 송전탑들 사이에 길게 늘어선 고압 케이블의 우아한 유선미에 감탄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알랭을 빼고는 이 거대한 설치 미술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은 없었다―를 만나고, 인도양 섬나라 몰디브로 날아가 낚시로 낚아 올린 참치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어부를 만난다. 또 알랭은 물류 창고와 비스킷 공장, 직업 상담소, 로켓 연구소, 화가의 작업 현장, 송전탑, 회계 사무소, 창업 컨설턴트, 항공 박람회에 들러, 우리의 일상의 관심 밖에 있던 수많은 일(직업)들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다시 말해, 알랭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혀서, 의사나 콜카타의 수녀와 과거의 거장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경계”한다. 테레사 수녀처럼 사람들에게 추앙받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은 많다는 것이다. “아홉시부터 정오까지 길고 긴 아침나절의 공복감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는, 매끈하게 빠진 줄무늬 초콜릿 서클을 만드는 것도, 존재의 짐을 덜어주는 혁신들의 만신전에서 비록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그 나름의 자리를 확보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알랭의 이 책을 나는 부산의 어느 서점에서 샀다. 이틀간의 부산 여행을 마무리하는 늦은 저녁에 기차 안에서 읽을 요량으로 산 책이다. 전날 나와 가족들은 ‘태종대 등대’, 공식 명칭 ‘영도 항로표지 관리소’에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정서적 호감을 느낀 것은 ‘등대’였지 ‘항로표지관리소’가 아니었다(솔직히,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건조한 명칭에 비호감마저 느꼈다).


이제 알랭이 내게 각성을 재촉한다. ‘항로표지관리소’의 일상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정교하고 전문적인 일의 의미와 그 일의 기쁨과 슬픔에―우리에게 ‘등대’ 또는 ‘등대지기’는 그 일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막연한 낭만적 운문, 자기도취에 지나지 않는다―호기심 어린 시선과 마음을 가져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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