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주일 오후, 중고등부 회장이 목양실로 찾아왔다.

“목사님, 우리 중고등부에 전도사님을 보내주세요.”
“내가 있잖아.”
“목사님은 좀….”
“왜 내가 싫으니?”
“목사님은 바쁘시잖아요.”
“전도사님은 안 바쁘냐?”
“그래도 전도사님은 우리만 신경 쓸 수 있잖아요.”
“그래. 알았다.”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지만 많은 농어촌교회와 오지의 선교사들에게 희망의 모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2008년 3월 해성교회에 부임하였다. 정읍성광교회 부목사 시절, 생활에 걱정 없이 사역도, 공부도 할 수 있었다.  또한 이곳보다 더 좋은 조건의 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는 길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목회자가 없는 시골에서 희망의 모델이 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소명감에 용기를 낸 것이다.

하지만 시골 목회가 만만치 않았다.  주일 오전예배 설교, 주일 오후예배 설교, 수요일 저녁예배 설교, 새벽기도회, 애경사, 성경공부, 제자훈련, 주일학교 예배, 학생부 예배, 구역예배 인도, 금요 전도 모임, 목요일 기도회, 여러 모임 등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며칠 교회를 비우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힌 것이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시골교회 목회자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가끔 갈비 사주고, 영화 보여주는 일이 전부였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여 재정을 마련하고 중고등부와 주일학교를 맡을 전도사님을 모시기로 했다. 인터넷에 올렸다. 몇 명이나 지원했을까? 기대감으로 메일을 열어봤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부교역자 시절 잘 알고 지내는 전도사님께 전화를 했다. 내 부탁을 들은 전도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 같아도 안 가겠네요. 교통편도 힘들고, 사례도 적고, 학자금 지원도 없는데 누가 오겠습니까? 큰 교회에 가면 좋은 조건에 자부심 가지고 일할 수 있는데 뭐 하러 시골로 들어가겠어요. 이게 현실입니다.” 전화를 끊은 후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 같아도 안 가겠네.”

언젠가 기독신문에 나온 부교역자 청빙광고를 보았다. 최선을 다해 대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우리 교회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였다. 좋은 부교역자를 얻기 위한 광고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골에 있는 우리 교회의 형편을 보면서 힘이 빠졌다.

지금 해성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을 하고 있다. 이제 혼자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나 함께 일할 젊은 전도사님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이런 고민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에게 다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 교단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단이다. 멋지다. 교단을 운영하시는 선배 목사님들에게 감히 제안하고 싶다. 농어촌 목회자들에게 1년에 한두 번 잘 대접해 주고, 좋은 세미나를 열어주는 것도 고맙고, 좋지만 그보다 목회 현장이 잘 되도록 정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한 예로 군 단위 행정지역 농어촌에 들어와 부교역자로 일하는 이들에게 교단적인 차원에서 강도사고시, 장학금, 생활비 보조, 개척 시 자금지원 등 과감한 특혜를 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교단이 부흥되고, 농어촌 목회를 살리는 윈-윈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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