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총체적인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컬럼비아 경영대 학장 글렌 허버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비즈니스 주체들에게 사회적 의식(공동체 의식)이 결여되어 온 것이 오늘날과 같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곧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는 탐욕에 눈이 멀어 공동체 정신을 상실한 결과라는 것이다.

일찍이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류 복리에 기여하기 위한 하나의 경제 작동장치에 불과한 시장이 본연의 역할에서 이탈하여 사회의 다른 논리와 가치들을 파괴하는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 되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러한 시장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나아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적 경제 운동'이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대응 속에서 출현하였다. '사회적 경제'는 새로운 경제 운용시스템을 지향한다. 시장, 국가, 제3섹터(시민사회 영역)가 각각의 역할을 분담하고 상호 견제, 협력을 통해 효율성과 도덕성, 그리고 책임성과 공공성을 구축하고 여기에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를 더하여 대안적 경제구조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착한 소비' 또는 '윤리적 소비'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부응한 것이다. 생산자와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건강한 농산품들, 악화되어가는 지구환경을 위한 친환경제품과 재활용품들, 어려운 이웃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들, 그리고 제3세계의 가난한 생산자와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게 하는 공정무역(Fair Trade) 상품을 선호하는 최근의 소비 트렌드를 두고서 사람들은 '착한 소비' 또는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라 한다. 일반적으로 소비할 때 가장 우선하는 것은 단연 상품의 품질과 가격이다. 타 제품과 비교하여 보다 좋은 상품을 보다 싼 가격에 구매하는 것은 경제활동의 기본이자 자본과 시장이 돌아가게 하는 기초 원리다. 그런데 '착한 소비'는 이러한 기존의 '합리적' 소비 개념에서 개인의 신념과 의식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는 '가치적' 소비 개념으로의 전환을 꾀한다. 제품의 질과 가격에만 반응하지 않고 해당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윤리성, 나아가 지구촌의 빈곤과 환경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의 유익을 고려한 소비,  '나'만을 위한 소비가 아닌 '모두'를 위한 소비가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인 것이다.

이러한 '착한 소비'가 증대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시장 인프라와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새로운 시장 인프라를 형성하고 착한 소비를 부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 당국자나 경제단체, 특정 NGO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필자는 여기에 한국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시대적 사명과 역할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경우, 지역 교회들이 착한 소비운동에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기독 신앙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이 땅의 교회들도 공정무역을 비롯한 착한 소비운동의 서포터가 되어 적극 동참한다면,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한국 교회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 교회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목적에 걸맞게 방법을 거룩하게 하려는 노력의 부재', 즉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방식과 참된 제자도의 상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크 엘룰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에서 기독교의 임무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징후가 되는 현존하는 ‘인격’과 ‘공동체’의 삶의 양식을 낳지 못한 기독교는 죽은 상태라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교회는 어떤 상태인가?  이천년 교회사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신실하게 반응할 때마다, 그 결과는 언제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갱신과 사회 변화도 새로운 삶의 양식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실현해나가는 삶의 방식을 만들 것인지, 그 신학적 토대를 제시하는 것과 함께 공동체적 실천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착한소비운동'은 한국 교회 안에 삶의 방식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과 현실적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서 실천가능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디트리히 본 훼퍼는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세상의 한 가운데에 진정으로 현존하시고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안에서 이 세상을 위하여 교회를 통해 실존하신다"고 했다. 이것은 교회가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뿐만이 아니라 ‘공공의 삶의 영역’에서도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해야 하며, 근본적으로 교회의 자리는 세상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이 점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곧 교회는 스스로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시켜 나가는 목적에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착한소비운동’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 수행의 방편으로써,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삶의 양식으로써 한국 교회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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