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한중기독교포럼에서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중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만나게 된 것은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서 두려운 나라였다. 그 이전으로 따지면 한국전쟁에서 중국군과 싸움을 한 것도 불과 60년도 안된 때이다. 그런데 한중기독교포럼을 통해 한 책상에 둘러서 앉게 되었다. 그것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함께 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빠른 변화, 특히 긍정적인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이 변화는 우리에게 미래를 향해서 열려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에서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 지난 2009년 7월 1일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중국 기독교양회 지도자 및 삼자교회 목회자들이 상해 중국기독교양회 대회의실에서 한중기독교포럼을 개최하였다. 이번 포럼은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최대 규모의 행사로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를 통칭하는 중국기독교양회가 주최하였다. ⓒ 박정현
▲ 지난 2009년 7월 1일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중국 기독교양회 지도자 및 삼자교회 목회자들이 상해 중국기독교양회 대회의실에서 한중기독교포럼을 개최하였다. 이번 포럼은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최대 규모의 행사로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를 통칭하는 중국기독교양회가 주최하였다. ⓒ 박정현

1. 사회 발전 가운데 발견하는 한중 기독교의 유사점

1) 산업화 과정의 기독교

한국과 중국은 빠른 산업화의 과정을 겪었고 겪고 있다. 두 나라의 산업화는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것이다. 이러한 유사한 사회적 배경은 두 나라의 기독교에 유사한 경험을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이 시기 한국의 기독교는 급격한 발전을 했다. 한국의 학자들은 개신교가 이 시기 빠르게 성장한 것은 한국의 산업화에 기독교가 이바지하고 잘 적응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독교가 잘 적응한 것은 당시 급격히 이루어지는 산업화와 도시화 시기에 교회가 준거집단을 제공한 것이다. 산업화의 빠른 과정에서 사람들은 정신적 공황을 겪었다. 자아정체성의 혼란과 가치관의 혼란을 겪은 것이다. 이 때 교회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아정체성과 가치관을 제공해 주었다. 특히 매 주일 교회에서 듣게 되는 쉬운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중적 교육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산업화와 함께 나타난 도시화에서 교회는 고향과 가족을 떠난 사람들에게 대체가족의 역할을 감당해 주었다. 그 안에서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실제적으로 타지에서 필요한 도움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전에 가족들이 감당해 주었던 관혼상제의 일들을 구역원들이 나누어서 챙겨 주었다. 이렇게 교회가 전통적인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 줌으로서 사람들이 가족의 평안함과 안정을 교회에서 찾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 교회가 산업화의 시기에 급격하게 성장하게 된 배경이며 동시에 한국의 산업화에 교회가 이바지 한 것들이다. 중국도 이와 비슷한 과정들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최근 중국 기독교가 급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사회적 배경과 교회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 있다. 서로의 경험이 좋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세계화와 기독교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유교적 전통에 있기 때문에 상당히 폐쇄적인 사회이다. 두 나라 모두 외국의 강제로 세계와 만나게 되었다. 비슷한 배경일지라도 일본의 경우는 일찍 자의가 많이 포함된 개항을 했다. 다른 면이 있다면 한국은 일본에게 지배를 받는 바람에 기독교가 반제국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에서 서양은 좀 우호적인 관계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국과 중국은 빠르게 세계화되고 있다. 특히 올림픽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1988년에 올림픽을 치르면서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고 국가적으로도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실제적으로 1989년 여행자유화가 이루어져서 세계 각지에 많은 사람들이 나가게 되었다. 중국도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많은 유학생들이 세계 각국에 나가 있고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국가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의 세계화는 기독교가 선도적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자체가 서구적인 종교이다 보니까 기독교가 서구 사회와 연결되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감당해 주었다. 또 기독교인들은 서구 사회에 대해서 좀 친밀했기에 외국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 외국의 교회나 선교사들이 중요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기독교는 선교에 관심이 많으므로 세계 각국에 한국의 선교사가 1만 6천여 명이 나가있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이다. 이러한 선교사들은 그러한 나라에서 구제활동과 봉사를 많이 함으로써 정부가 다 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봉사를 이루고 있다.

중국의 기독교는 서구에서 받아들였지만 삼자정신으로 중국식 기독교를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서구의 문화와 많이 만나게 되었고, 특히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많아서 서양식 기독교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것은 이제 중국과 중국 교회가 서구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결과라고 본다. 그 만큼의 강한 중국과 중국 교회의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경향이 아마 중국 기독교가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거라 생각해 본다.

이러한 세계화의 시기에 기독교는 민간외교의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기독교는 비록 말은 달라도 그 내용은 같은, 즉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한 인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 그리고 세계를 향한 진취적인 기상이 열린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독교 교류에 큰 기대를 가지게 된다.

3)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독교

서양종교인 기독교가 한국에서 빨리 자리 잡고 성장하게 된 것은 기독교가 이 사회에 이바지 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많은 디아코니아의 일들을 감당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에 미국 등의 세계 기독교계에서 도움을 주어서 많은 고아원과 구호단체들을 꾸렸다. 지금도 한국의 구호시설 중 60~80% 가량이 개신교 기관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구호단체들도 대부분 기독교 배경에서 설립됐다.

역사적으로도 19세기 말에는 조선이 붕괴되는 시기에 기독교가 새로운 사상으로 자리해서 사람들의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채워주었다. 일제시대에는 기독교가 민족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산업화 시기에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정신적 뒷받침을 해 주었다. 그리고 산업화 이후에는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이바지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발전하는 데 기독교는 항상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현재 대한민국의 62년 역사에서 기독교인, 특히 장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세 번째 일어날 정도로 한국에서 기독교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 기독교는 정직이나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며 좋은 인재를 많이 만들었다. 과거에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것이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가 될 정도로 도덕적 기대가 컸었다. 한국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고 감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기독교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중국에서도 기독교가 중국인들의 정신세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책에서 읽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정직하고 도덕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중국 사회에서 이제 기독교가 선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도 보았다. 이제 앞으로 중국의 기독교가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 박정현

2. 기대되는 교류의 방향

1) 동북아의 영적 지도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포함하는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그간 이 지역의 정신적 배경이 되었던 유교가 무너지고 종교적 의미의 정신세계는 상당히 공허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고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세계는 요즘 영성의 시대라고 일컫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영성을 뛰어넘어서 초월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대의 영적 갈급함에 대해, 특히 급하게 변하고 있는 동북아의 상황에서 기독교는 중요한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본다. 즉 동북아의 영적 지도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2) 신학 교류의 활성화

중국 교회에서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급하다고 들었다. 한국의 경우도 기독교가 급격하게 증가할 때에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학을 교육시킬 수 있는 토대가 잘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의 교회 지도자들을 많이 포용하여 유학생으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중국의 신학교를 도와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와 중국 교회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을 것이다. 수천 년의 문화적 배경이 서로 엇물려 있다. 또한 동양의 전통종교인 유교나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비슷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의 신학자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이 동양종교들과의 대화를 이끄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서 한국인과 중국인들의 심성에 있는 종교적 토양을 살펴보는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양국 간의 신학적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3) 한반도 통일 이후의 기대

독일은 통일 과정에서 교회가 많은 역할들을 감당했다. 동서독 간의 교류에 교회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통일 이후에도 많은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서로 협력하여 동구권 선교에 좋은 업적을 만들었다. 구서독의 교회들은 재정적 후원을 하고, 구동독의 교회는 인적 자원을 댄 것이다. 구서독 교회의 사람들은 동구권의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구권 사람과 동독 출신들이 잘 대화가 되었다. 그래서 구서독의 교회는 직접 선교를 하기 보다는 물적 자원을 대는 것으로 하고, 동역 관계로 구동독 교회의 사람들이 인적 자원을 댄 것이다. 이러한 모델이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교회의 경우는 북한과 직접 교류를 하기 힘들다. 북한에는 기독교인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북한에는 교회가 두 개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교회와 교류한다는 것이 어렵다. 오히려 한국 교회는 중국 교회와 더 가까울 수 있다.

통일이 되어서 북한 지역에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면 한국 교회와 중국 교회가 협력을 잘 하여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의 배경에서 본다면 중국 교회가 북한 지역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에서는 한국보다는 중국이 더 가까운 나라일 수 있다. 특히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후원으로 통일 이후에 중국 교회가 북한 선교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통일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할 북한에 비슷한 경험을 가졌던 중국 교회가 그들의 마음에 와 닿을 복음을 전해 줄 것으로 믿는다.

3. 나가는 말

한국과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함께 존재하며 나누면서 살았다. 그러나 기독교를 기준으로 볼 때면 아직 그러한 교류의 역사를 제대로 만들어 보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중국 교회가 함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졌다고 본다. 이것은 민간 외교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동북아의 영적 지도를 만들어 간다는 차원에서도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더 멀리는 남·북한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통일된 이후에 교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들을 서로 나누며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확장되는 사역이 기대된다.

▲ 밤을 낮처럼 밝히는 상해의 야경처럼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그간 중국의 정신적 배경이 되었던 유교가 무너지고 종교적 의미의 정신세계는 상당히 공허한 상태이다. 바로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지역에서 정신적 가치를 만들어 가는데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줄 수 있다고 본다. ⓒ 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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