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화론 논쟁 최대 격전지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 2009년 세계가 다윈과 그의 진화론 때문에 다시 한 번 뜨거워지고 있다. 그리고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이 가장 격렬한 곳은 단연 미국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이 높은 나라이자 그러면서도 어느 나라보다도 신앙심이 높다는 사회조사 지표들이 해마다 발표되는 나라, 미국에서 탄생 150주년을 맞은 진화론과 이에 맞선 창조론이 세기를 넘기며 문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원숭이 재판'의 상처

1925년 3월 21일 테네시 주지사가 <버틀러 법>(1925년 1월 21일 하원의원 존 워싱턴 버틀러가 상정, 1월 28일 하원 통과, 3월 13일 상원통과)에 서명했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야기를 부인하는 어떤 이론도 가르쳐서는 안 되며, 인간이 저급한 동물의 후손이라고 가르쳐서도 안 된다"는 조례가 이날 테네시 주에서 발효된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되자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존 스콥스라는 과학 교사를 앞세워-정황상, 부추겨-의도적으로 이 법을 위반하게 한다. 의도대로, 스콥스는 1925년 진화론을 가르친 혐의로 기소됐고, 이어, 미국 전체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명 '원숭이 재판'이 시작됐다. 이 재판은 대선에 세 번이나 출마했던 의원이자 국무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유능한 변호사인 클레런스 대로우의 대리전으로 전개되면서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 1925년 7월 17일 끝난 일명 원숭이 재판은 피고 스코프스의 유죄 판결과 100불의 벌금형과 함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재판은 진화론이 전 미국으로 확산되는 동기가 되었다. 재판과정에서 제시된 진화론의 증거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진화의 논리성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기소자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의 정확한 진화론의 문제 지적과 그의 성경에 대한 믿음을 향해서, 당시 미국 언론들은 브라이언을 성경을 무모하게 신뢰하는 고집쟁이로서, 그리고 피고측 변호단을 진리를 향한 피해자로 표현하였다. 더욱이 이 재판은 1960년대 까지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진화론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던 당시의 추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 ⓒ AP

결과는 현행법을 위반한 스콥스에게 벌금형이 선고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법정 승리로 창조론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판결 뒤에 몇 개 주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건은 '원숭이 재판'이라는 별칭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미확인 보도와 루머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리고 창조론자들을 풍자하고 스콥스를 진화론 순교자로 묘사한 신문 만평과 풍자, 연극과 영화, 심지어 나중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로까지 각색되면서,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몰지각하고 광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로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엎치락뒤치락

이 사건 이후, 진화론-창조론 논쟁은 더욱 격화됐고 결국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이 창조론을 내모는 형국으로 대세가 형성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특히 미국에서 복음주의 진영이 정치적 블록으로 부상하면서, 창조론 진영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진화론에 맞서고 있다.

최근 양 진영이 창과 방패를 번갈아 집어 들어 공방을 벌이고 있는 최대 쟁점은 “‘진화’는 무결점의 과학인가, 아니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답변할 수 없는 의문이 존재하는 하나의 이론인가”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과학적 논리로 무장하여 진화론에 맞설 중요한 대안적 과학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적설계’ 이론이 구사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진화론 교육에 반대하는 쪽은 진화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권리를 교사와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쪽은 학문의 자유를 그런 식으로 남용하면 과학 교육이 종교 교육으로 변질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을 편다.

진화 또는 진화론 교육을 둘러싼 이 논쟁은 대부분 각 지방 자치 단체의 교육위원회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정해진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들이, 지역 교육위원회의 교육 자치를 비교적 폭넓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교육위원회가 과학 교육 지침을 확정하면 산하 공립학교들은 이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어떤 입장을 가진 인사들이 교육위원회의 다수를 점하는지가 중대한 정치적 이슈로 등장한다.
논쟁의 또 다른 한 축은 진화론을 주창하는 단체들이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생들이나 학부모 등 개인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하는 가장 대표적인 단체는 1925년 스콥스 재판을 기획했던 바로 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다.

ACLU는 주 교육위원회나 지역 교육위원회가 반진화론 교육 정책을 도입할 기미를 보이면 어김없이 소송 위협을 가해 사전 차단을 하고, 그래도 도입될 경우에는 소송을 통해 법정에서 정책을 뒤집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경우에, 이들이 기대는 가장 큰 법적인 장치는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1조의 '정교분리 원칙'이다. 이들은 교육위원회가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을 과학 교육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도입한다고 판단하면 “공립학교 교육에 종교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온다.

물론, 진화론에 반대하는 쪽도 이제는 무턱대고 창조론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래게 해봐야 법정에 가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설계론이 문자적 창조론을 대신해 가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넓은 의미의 창조론 진영은 과거 '스콥스 재판' 과정과 그 이후 문화 투쟁에서 "맹목적인 광신도들"로 매도당한 쓰라린 경험을 거울삼아, 이제 "뱀 같이 지혜로운" 전략에 눈을 뜨고 있는 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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